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4]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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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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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항불안제

장면1.

증례1. 78세 중등도의 알츠하이머병 할머니는 계속 돌아다니십니다. 조금이라도 이것을 제지하면 꼬집고 때리려고 하며 소리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때때로 심한 공황장애와 같은 발작적인 증상도 있지요. 이 환자에게 □□□□□를 처방한 후 환자는 불안감도 없어지고 소리치는 것도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증례2. 69세 중등도 혈관성 치매 할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 전원된 환자입니다. 이 환자분은 끊임없이 배회하며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제지하면 소리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때리려고도 합니다. 설득하면 알아듣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계속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이 환자가 기존에 복용하던 □□□□□를 중단 한 후 환자의 공격적인 행동도 소리치는 것도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장면 2.

개그맨 이경규(52)가 얼마 전 뜻밖의 고백을 했다.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지 4개월 됐다”고 털어놓은 것. 이에 대중은 방송은 물론 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가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이경규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난해부터 원인 모를 가슴 통증에 시달렸고, 초조함과 불안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지만, 몇 가지 검사를 통해 결국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여성동아 2012년 2월 7일 기사에서)

공황장애는  ‘심하게 두려워하며(恐) 당황한다(慌)’ (panic disorder)란 뜻을 갖고 있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합니다. 증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심한 불안감, 심장이 뛰고 호흡이 어려우며, 어지러움, 파멸감, 심지어는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심각한 신체질환을 암시하는 듯한 증상들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전까지 인근 병원들을 순회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지요. 공황발작은 돌발적으로 나타나며 한번 나타나면 죽을 만큼 공포스럽지요. 이런 끔찍한 일을 반복적으로 당하게 되면, 언제 올지 모르는 발작에 대해 항상 불안해지고,  결국 공황발작이 없는 평소에도 지속적인 불안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경험하는데 정확히 연예인이 더 잘 걸리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습니다. 다만 연예인은 직업 특성상 항상 대중 앞에 나서야 하며, 대중의 즉각적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인기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연예인의 공황장애를 유발할 수는 있겠지요.

치매 환자에서 불안은 흔히 관찰됩니다. 또한 갑자기 공포스러워 하며 숨을 쉬기 어려워하는 공황장애 증상도 많이 관찰됩니다. 한번 증상이 생기면 계속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게 되지요. 사실 공황장애는 이전에는 없던 병입니다. 그냥 불안 장애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중반은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수많은 정치사상이 만들어지고, 제국주의가 형성되었으며, 결국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으로 기근과 사망 등 원초적인 생존 문제가 위협받던 시기였지요. 즉 생존이라는 실질적이고 존재론 적인 문제가 불안을 사회적으로 키운 것이지요. 그러던 중 60년대에 최초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이전에 바비튜레이트 계열과 달리 졸림과 같은 부작용이 적고 탁월한 항불안 효과를 보였지요. 이 뛰어난 약의 개발로 1970년 대 초 한때 모든 정신과 외래를 찾는 사람들의 반수가 이 약을 복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약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약의 중독성 입니다. 이 약을 끊으려고 하면 복용 전보다 더 나빠지는 금단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결국 1975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 약을 엄격하게 규제하게 됩니다. 이러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에 대한 규제와 사회인식의 변화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은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매력적인 약이 되지 않았지요. 그러던 중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 중에 반감기가 짧은 알프라졸람(alprazolam)이라는 약이 제약회사 업존에 의해서 개발됩니다. 하지만 회사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미 불안 시장과 벤조다이아제핀 시장은 포화와 사회적 견제를 받게 된 상황에서 새로 개발된 약의 판로가 애매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던 중 이 약이 급작스러운 발작이 동반되는 공황장애에 효과가 뛰어난 것을 이용하여 공황장애라는 병을 불안 장애에서 떼어 내고 새로운 질병 분류를 만듭니다. 이 약은 불안에도 효과가 있지만 공황장애에 특화된 약으로 선전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렇게 새로운 병명을 만든 것이 정신의학적으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제약회사와 정신의학회가 어느 정도 타협을 본 것이지요. 제약회사는 새로운 시장을 만든 것이고, 의사의 입장에서는 좀 더 병명에 특이적인 약을 투약함으로써 전문성을 인정받고, 규제도 피해가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약이 일반적인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 보다는 공황장애에 좀 더 잘 듣지만 다른 항불안제 약이 공황장애에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요. 또한 이약 역시 다른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과 같이 중독성이 보고되어 다른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과 마찬가지로 단기간 치료 위주로 진행이 됩니다. 노인 치매 환자에서는 지속적으로 공황장애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이 증상이 나타날 경우 사고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알프라졸람이 필요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좀 더 중독성이 떨어지는 항우울제 계통도 많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계열의 약이 필요하면 부작용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 치매 환자가 평균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여명)이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 중독성이라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이 약은 노인환자에서 관찰되는 많은 복용약으로 인한 약물 상호작용이나 역설적인 효과(paradoxical reaction)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위 증례는 실지로 병원에 있었던 일입니다. 증례에서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이 무엇일까요? 여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약 이름은 자낙스, 즉 알프라졸람입니다.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다른 약들과 마찬가지로 이 약은 강력한 항불안제입니다. 대부분의 공격성은 불안과 연관성이 많지요. 그래서 대부분 의사들은 공격성을 보이는 치매 환자에서는 이런 약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알프라졸람이 공격성을 조장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치매 환자에서 문헌은 거의 없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은 나이가 많거나, 과거 공격성을 보이던 환자, 알츠하이머병 환자 등에서 좀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역설적인 결과가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한 가지 가설은 불안/위협 체계의 변화 이론이 있습니다. 1우리는 어릴 적부터 공격성이 증가하면 이것은 어떤 징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지요. 그래서 공격성은 보통 불안을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공격성을 감소시키는 방향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항불안제가 공격성과 연관된 불안을 없애 주거나 경감시킴으로써 공격성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알프라졸람과 같이 반감기(약물 체내에서 반으로 줄어드는 시간)가 짧은 약이 역설적으로 공격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동시에 있지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종종 약에 환자를 맞추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환자에 약을 맞추어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환자를 진단하는 순간 환자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병명만 남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안, 혹은 공황장애 그리고 이와 연관된 공격성이라고 하면 바로 기계적으로 항불안제를 처방하는 것이 보통 의료 관행입니다. 하지만 이 환자가 어떻게 살아왔고 그 불안이나 공격성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본다면 그 치료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치매 환자에서 보이는 공격성을 비롯한 모든 증상이 간단하지만 매우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약을 안 쓰거나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먹고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먹으면 왠지 하루에 힘들었던 일, 불안한 일들이 잊혀지고 마음이 편해지지요. 그런데 가끔 그러고 들어오는 날 집사람이 째려보면서 “쓰레기나 버리고 와” 라고 하면 저도 모르게 소리칩니다. “가장인 남편한테 무슨 이런 일을,,,” 그리고는 호기롭게 들어가서 그냥 자버리지요. 그러면… 다음날 아침 무지하게 혼납니다. 무차별하게 항불안제를 먹고(마시고) 집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대든 후유증이지요. 그래서 항상 술을 먹고 집에 들어 갈 때는 되도록이면 조용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들어가 죽은 듯이 자는 척 합니다. 이게 제가 평화롭게 사는 방법입니다.


Reference
1.  Hoaken PNS, Stewart SH. Drugs of abuse and the elicitation of human aggressive behavior. ddictive Behavior 2003;1533–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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