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5]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5]
  • DementiaNews
  • 승인 2018.07.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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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킨들(Kindle)


2004년 아마존 창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는 미래에도 분명히 책은 필요할 것이며, 아니 더 필요할 것이지만 그 소비 형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좀 더 쉽게 책을 구입할 수 있으며 좀 더 쉽게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암호명 피오나(Fiona)가 그 결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오나를 실제 시장에 상품화 할 때 이 제품에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이 제품 이름에 기술적인 내용이나 진부한 상업적인 단어가 아닌 좀더 창의적인 이름을 쓰고 싶었습니다. 당시 아마존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마이클 크로난(Michael Cronan)은 이 문제를 부인인 카린 힙마(Karin Hibma)와 상의하던 중 문득 떠 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KINDLE”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Kindle)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1

천재들이라도 천재적인 사고가 샘에서 물이 줄줄 흘러 나오듯 끊임없이 나오지는 않겠지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도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누워서 사과나무를 보다가 사과가 떨어질 때 순간적으로 머리가 번쩍 하였겠지요. 즉 초가 번쩍 켜지듯이 켜지는 것이 창의성이 세상에 나오는 일반적인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가 창의적인 제프나 크로난은 킨들이라는 의미가 그들 자신에게 매우 정서적으로 공감이 갔을 것입니다. 독서나 정신적인 즐거움 흥분의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처음 시장에 이 기기가 나올 때 사람들은 이 이름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Kindle… 책을 굽나(burning the book). 독일의 아이를 표현하는 Kindl 과도 유사해서 독일의 이용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당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킨들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으며 이미 확고하게 전자책 단말기로서 그리고 브랜드나 문화로서 자리를 잡았지요.

하지만 저는 이 킨들을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도 합니다. 우리가 보는 병 중에는 발작성질환(paroxysmal disorder)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발작성 질환은 평소 문제 없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병이지요. 그리고 보통 짧은 시간 증상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질, 심장 부정맥 등입니다. 대부분 이런 질환은 증상이 없는 동안에는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병이 발현되지 않는 동안에는 일반적인 검사, 예를 들어 간질의 경우는 뇌파 검사, 심부정맥 경우에는 심전도 검사에서도 전혀 이상 소견이 없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아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병이 진행되어 심각한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간질 환자 같은 경우에 갑자기 운전을 하다가 간질이 생기면 미처 차를 안전한 곳에 대피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발작증세를 보여서 2차적인 사고를 일으킬 수 있지요. 만약 이게 심각한 심부정맥이라면 심장이 순간적으로 기능이 작동되지 않아 의식 소실, 이후 생기는 2차적인 외상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몰고 갑니다. 일단 이 병들은 증상이 시작되면 아주 특수한 의료시설이나 장비가 없으면 중간에 막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간질 같은 경우는 대부분 몇 분 정도 지속되며 심한 발작 후 서서히 저절로 증상이 없어지고 환자는 발작 후 수면이나 의식의 혼탁이 한동안 지속되지요. 문제는 한번 증상이 생기면 발작이 멈추더라도 뇌에 손상이 조금씩 오게 되고 이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결국 뇌에 심각한 손상을 남기게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발작성 질환은 증상이 없을 때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작성 질환은 보통 갑자기 생긴다고 하지만 환자들이 계속 이 증상을 경험하면서 환자들은 대부분 어떤 특정 상황이 이 발작을 일으키며, 전조 증상도 올 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지 못하거나, 피곤하거나, 술을 먹거나, 때로는 특정한 환경에 노출 되었을 때 일어나지요. 어떤 특정한 상황이 균형을 이룬 뇌세포를 자극하여 일시적으로 뇌세포가 폭발적으로 전기적으로 이상 전류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 간질의 병태생리입니다. 즉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뇌세포에 불을 붙이는 작업 이것을 점화현상(kindling) 이라고 합니다. 창의적인 사고도 아마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균형을 이룬 뇌세포를 자극하여 특정 뇌세포들이 갑자기 활성화되면서 어떤 막혔던 문제들이 한번에 풀리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간질 환자나, 부정맥 환자에서 점화현상은 갑자기 병적인 현상을 극적으로 증폭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신경 세포들이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방전하지 않도록 뇌세포를 안정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지요. 이것이 항간질제제 입니다. 항간질제제는 정상적인 상태의 뇌에는 최대한 작용하지 않지만 외부 자극에 대한 뇌세포가 자극되어 점화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어렵게 해주고 일단 발작이 시작되더라도 다른 신경세포로 진행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더 큰 발작과 이로 인한 이차적인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간질이나 부정맥과 같이 병적이고 극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발작적인 현상을 일상에서도 볼 수 있지요. 갑자기 어떤 영화를 보다가 통곡을 한다든지, 별로 신통치 않은 내용에도 발작적으로 웃는다든지 하는 일이 일상에도 일어나지요. 하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는 일상적이고 당사자가 즉각 행동을 수정하여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모시다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일 중에 하나가 발작적으로 화를 내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을 하는 경우이지요. 그리고 일단 시작이 되면 굉장히 멈추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가위나 칼과 같은 것을 가지고 위협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요. 전형적인 발작성 질환보다 좀더 오래가고 더 주변 사람에게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이런 발작적인 정신행동증상을 뇌의 간질과 같은 발작성 질환으로 생각하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항간질약물이 이런 증상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흔히 사용되는 약이 카바마제핀, 페니토인, 오르필과 같은 전형적인 항간질 약물이지요. 다만 이러한 약들은 전형적인 정신병증상, 예를 들어 망상, 환각 등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 어디에 속하는지 잘 관찰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보통 이 약들은 전형적인 항정신병 약물보다는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잘 사용하면 치매 환자에서 보이는 정신행동증상을 부작용이 적게 치료 할 수도 있고, 혼합하여 사용하면 항정신병 약물의 용량을 줄여 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약 들은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비록 이 약이 부작용이 적더라도 지속적이 경과 관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약을 복합하여 사용하게 되면 약물 사이에 상호작용까지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잘 기억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초에 불을 키는 kindling 이 있었지요. 한 초에서 시작된 kindling 이 수많은 초로 옮겨 갈 때 그 파괴력은 가공하였습니다. 그것이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kindling 이었는지, 파괴적이고 병적이었는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겠지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좋든 싫든 kindling 은 세상과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지요.


Reference
1. Friedman, Nancy (December 9, 2008). "How the Kindle got its name". nancyfriedman.typepad.com. Retrieved April 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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