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9]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9]
  • DementiaNews
  • 승인 2018.08.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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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멈추는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가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치매 신약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으나, 이 분야에서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투자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화이자는 그 동안 신경과학 부문에서 8건의 임상을 진행했으며, 이 중 4건이 알츠하이머병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2년 치매약 임상에 실패한 것이 투자 중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당시 화이자와 존슨앤존슨은 2,4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바피네주맙의 임상 3상을 진행했으나 결국 기억력 감퇴 둔화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 치매약 개발 실패의 아픔을 겪은 업체는 화이자 만이 아니다. 릴리, 로슈 등도 최종 단계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위의 글은 2018년 1월 8일 디멘시아 뉴스 중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릅니다. 시지프스(Sisyphus)는 고대 그리스 도시 코린토스를 건설한 신화 속 인물로 영원한 죄수의 상징입니다.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와 그리스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일리아드의 작가 호머는 인간 중에서 가장 신중하고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신을 업신여긴다는 점에서 매우 못마땅한 존재였습니다. 결국 그는 신을 속인 죄로 저승에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했는데,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다시 굴려 내려 처음부터 다시 굴려 올리는 일을 영원히 계속해야 했습니다.

2002년 메만틴이 알츠하이머 치매치료제로 미국 식약청에서 마지막 허가를 받은 후 16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 치매의 병태생리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에 기반한 치매 치료제에 대한 임상은 천문학적인 돈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16년의 세월에서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릅니다. 거의 다 올라가 성공이 눈 앞에 보이면 실패하고, 다시 새로 계획하여 올리면 또 떨어지는 모습이 말입니다. 시지프스 신화의 해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알베르 카뮈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 입니다. 카뮈는 “영원히 끝날 수 없는 것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 아니고 그것을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비극이며 부조리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어떤 철학가는 시지프스의 어원이 코가 숨쉬는 모습, 즉 들이마시는 “시스” 와 내쉬는 “프스” 소리에서 기원했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가 부조리한 비극이 아니고 존재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 신이 시지프스에게 했던 일을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강에서 댐을 짓는 비버를 동물원에 데려오면 할 일이 없어지지요. 일부러 물을 흘러가게 하고 댐을 지을 수 있는 나무를 가져다 놓습니다. 비버는 끊임없이 댐을 만듭니다. 거의 다 완성하면 사육사가 어슬렁어슬렁 와서 부숴버립니다. 비버는 황당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나 곧 처음부터 반복하지요.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은 세계 대부분의 동물원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비버가 비만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지요.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동물원에 오는 관람객들은 그냥 비버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비버가 댐을 쌓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요. 비버를 위한 것인지, 돈을 내는 관람객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이 제약회사를 위한 것인지, 환자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끊임없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부조리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지프스는 끊임없이 무거운 돌을 올리고 떨어지는 과정을 부조리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이 항상 똑 같은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매일 해가 뜨고 지지만 45억년이라는 과정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저는 그 지구가 그 과정 속에서 해낸 것 중 가장 큰 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에 절대 똑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약물의 개발 과정이 아무리 마지막에서 꼬꾸라지더라도 끊임없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동산의 선주민들이 모두 해 왔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정상은 이미 밟았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누군가 조금씩 그 정상을 올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재를 마치면서 걱정스러운 것과 안타까운 것이 있었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주관에 흐르지 않고 객관적이고 옳은 내용을 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치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자칭 전문가들이 많은 책을 쏟아냅니다. 치매를 전공하는 신경과 의사로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주어지는 내용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검증가능하고 비교적 신뢰성 있는 문헌을 바탕으로 하여야 합니다(본인의 적절한 연구 논문이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성>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네 객실 하녀들은 열쇠 구멍으로 엿보는 일에 익숙해서, 당신들이 보는 사소한 일을 근거로 잘못된 만큼이나 멋지게 전체를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그 결과, 예를 들어 이 경우에는 정작 나보다 당신이 훨씬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지.” 저 역시 열쇠 구멍으로 내가 보는 세상만 이야기하지 않는지 책을 쓰는 내내 고민했습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많은 전문가나 문헌을 참조했습니다. 비판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문을 열어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미래보다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한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어떤 벽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너무 상식적일 수 있습니다. 남편과 부인, 직장 상사와 부하, 선생과 학생, 주인과 고객, 혹은 종업원의 관계가 항상 완벽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관계도 시간의 바람에 따라 덜컹거리기도 하지요. 결국 약이라는 것은 이 관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약과 병과, 환자, 보호자, 치료자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치매로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 가족, 그리고 사회가 고통스럽더라도 바위를 올리는 과정일 것입니다. 비극도 부조리도 아닙니다. 그냥 가야 할 길이지요.

마지막으로 연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가족, 친구, 출판사 관계자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2018년 너무 더운 여름날 어느 날, 진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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