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
  • DementiaNews
  • 승인 2017.04.1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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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오랜 시간 자연스런, 때로는 그리운 대화를 주고받던 사람에 대한 복잡미묘한 정서적 변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늘상 대화하고 살아왔던 사람이 마침내 낯선 타인으로 인식될 정도로 기억을 서서히 상실해간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던 느낌들을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는 통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읽었던 치매 소설이나 영화, 연극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들에서였을 것이다. 디멘시아 뉴스의 칼럼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는 치매라는 ‘애매하게 잔인한’ 질병에 직면한 사람들의 심리를 질병소설 전문가의 눈을 통해 정밀히 묘사함으로써 이 질병이 지니는 의미를 좀 더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바램이 시작 동기이다. -디멘시아 뉴스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김은정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박완서의 <포말의 집>에 나타난 치매와 가족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불, 물, 거울, 꿈 등 소재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다. 작가가 그러한 장치를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때문이다. 질병도 그 하나고, 그 가운데 ‘치매’는 특별하면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문학에서 ‘치매’가 등장하는 작품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작품들에서 치매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우리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오늘 이야기는 박완서의 <포말의 집>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인 박완서의 소설들에는 유난히 ‘치매’가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 작가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의 치매를 오랜 시간 간병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무엇보다도 ‘치매’라는 질병을 통해 자신의 숨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박완서 소설에서 치매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도 며느리가 치매 노인을 부양하는 경우와 딸이 부양하는 경우이다. 며느리와 딸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들 것이다.

오늘 소재인 <포말의 집>은 며느리가 치매 노인을 부양하는 이야기이다. 며느리가 부양자인 작품에서는 치매 환자가 겪는 고통이나 두려움, 육체적 심리적 위축과 상실감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겪는 가혹한 불편과 희생에 초점이 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작품으로 <포말의 집>, <집보기는 끝났다>, <해산바가지> 등이 있다.

이 세 작품은 공통점이 참 많다. 세 작품 모두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부양하는 며느리는 남편(아들)이 부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부양을 전적으로 그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치매’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정서적, 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치매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감정은 치매 시어머니의 행동에 대한 혐오감이 주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때 소설의 서술은 치매 환자 당사자보다는 주위 사람(즉 며느리)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가에 초점이 가 있다. <포말의 집>에서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보자.

『 에미야, 나 아침 먹었냐 안 먹었냐? 에미야 나 머리 빗을까 말까? 에미야 전깃불 끌까 말까? 수돗물이 넘치는데 잠글까 말까? 온종일 이런 백치 같은 질문을 하면서 내 뒤를 쫓아다녔다』

『아이들이 새록새록 재롱을 부리듯이 시어머니는 새록새록 새 노망을 부렸다. 어느 날, 북엇국을 끓이려고 북어를 찾았으나 한 쾌를 사다 찬장에 넣어놓은 지가 엊그젠데 온데 간 데가 없었다.(중략) 외출하려는데 좀 전까지도 거기 있던 구두가 없어졌다.(중략) 돌아간 시아버지의 검정 세루 두루마기 사이에서 동석이 교복을 찾아냈다』

『시어머니는 욕실로 들어가 양변기 속에 고여 있는 물로 세수를 한다. 혼자서 투덜대며 세수를 한다. “물이 또 다 식었잖아. 세숫물을 떠놓았으면 떠 놓았습니다”고 한마디 해줘야 식기 전에 씻지. 아유 쯧쯧, 신식 며느리 쌀쌀맞은 것...... (중략) 시어머니는 한 번도 옷을 순순히 갈아 입은 적이 없다.(중략) 노인의 나체를 보는 건 참 싫은 일이다. 더군다나 살갗에 닿는 일은 그 분이 그걸 즐기기 때문에 더욱 싫다』

 
『오밤중에 일어나 이 방 저 방의 문을 두드리며 다니는 거였다. 애간장을 끊는 것 같은 슬프고 애달픈 소리로, “얘야, 문 좀 열어다우.” 처음엔 밤에 급한 병환이라도 난 줄 알고 급히 문을 열었더니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알몸으로 떨고 서서 ”너희들은 갑갑해서 어떻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자냐? “ 하는 거였다. 그 후부터는 아무리 그 소리가 소름이 끼쳐도 아예 못 들은 척했다』

 
이렇게 <포말의 집>1)은 시어머니의 심화되는 치매 증상을 자세히 보여준다2). 물론 이러한 증상을 조목조목 나열하는 것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치매 시어머니의 행동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듯이 며느리는 이러한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두고 ‘새록새록 새 노망을 부렸다’고 표현한다.

사실 시어머니의 이러한 치매 증상을 잘 분석해 보면 그 중심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처절한 절규가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서술자인 며느리는 가족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어머니의 요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작가 박완서는 이러한 ‘치매’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는 진실이 실은 매우 허약하기 짝이 없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러한 내용이 곳곳에 나타난다. 먼저 미국으로 간 남편이 보내온 편지에 쓰인 ‘어머니는 잘 계시냐’는 안부는 사실 절대적 가치관인 ‘효’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미국으로 들어올 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같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면의 바람이 담겨 있다. 즉 ‘어머니는 잘 계시냐’는 인사에는 하루 빨리 어머니가 잘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어적 욕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또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는 ‘부정한 관계’를 욕망한다. 시어머니를 노인학교에 보내는 주말에 며느리는 불륜남인 건축학과 학생을 집으로 끌어들인다. 그와의 밀회 현장을 아들 동석에게 들키기도 한다. 그러한 사건에도 가족 관계는 유지된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우리는 굳건하다고 생각한 가족 관계에 내재된 허위의식을 볼 수 있다. 부서질 듯 허약한 가족 관계가 ‘가족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로 ‘허위의식’이며, 이것이 박완서 문학 세계의 핵심이다.

<포말의 집>에서 박완서가 제시하고 있는 허약한 가족 관계와 그로 인한 붕괴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허위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다. 시어머니의 야간 불면증3)에 시달리던 며느리는 수면제를 처방해 온다. 그러나 이 수면제를 시어머니에게 먹이는 대신 자신이 복용하고 깊은 잠을 자 버린다.

『나는 어쩌면 그게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는 약이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알약을 한 번도 시어머니에게 드리지 않았다. 내 바람이 무서워서 드릴 수가 없었다. 대신 내가 먹는다. 이제 그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가 잠든 후 시어머니는 아마 방마다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며 “얘야, 문 좀 열어다우. 얘야 나 문 좀 열어다우” 슬피 울부짖겠지』

잠 속에서 며느리는 자신이 사는 굳건한 ‘아파트’를 방울방울 불면 꺼질 듯한 ‘포말의 집’으로 느낀다. 이렇게 며느리의 의식 한가운데에는 바로 포말처럼 위태로운 가족 관계가 있다. 굳건하다고 생각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실은 포말처럼 한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은 ‘굳건한 가족’에 대한 지금까지의 믿음이 허위의식일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포말의 집>에 나타나는 ‘치매’는 ‘가족 붕괴’의 원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허위의식을 드러나게 해 주는 매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뒤집어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들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소망, 즉 치매 시어머니가 간절하게 원하는 ‘가족 간의 소통’만이 이러한 허약한 관계를 극복해 줄 수 있는 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 역시 우리가 치매를 소재로 한 문학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1) 포말은 물 따위에 생긴 거품을 의미한다. 포말의 집은 거품으로 지어진 집을 뜻한다.
2) 이 같은 증상은 치매에서 나타나는 신경행동증상의 하나로 치매 중기의 증상에 해당된다. 이 증상들은 모두 정서, 감정 증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 예문에서 보여주었던 반복되는 질문은 불안(Anxiety)의 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증상의 가장 흔한 예로 ‘곧 있을 일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행동’인 Godot증후군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예문들에서 제시된 옷을 벗거나 서성거리는 행동 역시 치매 증상 중 정서, 감정 증상의 하나로, 비정상행동(Aberrant motor behavior)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3) 수면장애는 치매 환자의 80% 정도에게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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