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명 표기하는 환자용식품, 신고제 허점 악용 '우려'
질환명 표기하는 환자용식품, 신고제 허점 악용 '우려'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8.10.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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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질환 표기해 홍보도 가능하지만 근거 제출은 생략

 

특정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영양 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환자용식품'이 향후 무문별하게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의료용도등식품 중 하나로 분류돼 있는 환자용식품은 식품 기준 규격이나 표시 기준에 따라 업체가 신고만 하면 판매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2016년 12월 당뇨환자용, 신장질환자용, 장질환자용, 연하곤란환자용 등 기존 4종의 질환별 환자용 식품 이외에 모든 질환을 포함하는 ‘환자용식품‘ 유형을 신설했다.

환자용식품은 질병명, 장애 등 환자의 영양조절을 위한 식품으로 표시·광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질환이 기재된 제품을 팔기 위해 업체는 별도의 근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하다.

환자용식품은 현재 식약처가 신고제로 운영하고 있는 데, 업체가 식품공전의 '특수의료용도등식품의 기준 규격'과 '표시 기준'을 충족시켜 신고하면 판매할 수 있다.

환자용식품 분류가 개정되기 전에 판매된 환자용식품은 당뇨나 신장질환자 등이 정상적으로 섭취, 소화, 흡수 또는 대사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거나 손상된 환자의 식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신할 목적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환자용식품 분류가 개정되면서 환자용식품으로 판매할 수 있는 질환이 대폭 확대됐다. 사실상 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질환이라도 환자용식품을 만들 수가 있다.

특정질병 환자를 위한 영양성분의 조정은 식약처 식품 공전에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업체가 의사 등과 상의해 과학적 근거에 따라 환자맞춤형으로 제조한다는 지침만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질병·질환 종류가 많고 병증 상태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질병별, 질환별, 병증별 영양성분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제품개발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업체에 맡기고 있다.

식약처는 다만 "환자맞춤형이나 식품공전에 규정돼 있는 질병 이외의 새로운 환자용식품의 성분의 배합 및 제조·가공은 영양학적, 의학적,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해당 문구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업체가 제품 신고시에 특정질환에 필요한 영양성분이라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환자용식품 분류가 개정된 이후 최초로 신고된 제품은 한독 경도인지장애 및 경증알츠하이머 치매환자용 특수의료용도등식품 '수버네이드'다.

이 제품 역시 식품공전의 기준 규격과 표시 기준 준수여부만 확인해 적합 판정을 받았으며, 해당 질환에 영양학적으로 수버네이드가 필요한 지에 대한 자료 제출은 없었다.

의료계에서는 경도인지장애나 경증알츠하이머 치매환자에게 특수영양식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 미국 FDA는 알츠하이머 치매가 영양분의 보충을 위해 별도의 치료식을 필요로 하는 질환은 아님을 밝히고 있다.

환자용식품은 특정질환을 표기해 해당 질환을 가진 환자만 복용할 수 있는 제품이지만 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별도 근거자료가 없이도 제품 신고만 하면 판매를 할 수 있게 제도가 설계돼 있다.

건강기능식품의 경우만 봐도 기능성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을 입증해야만 허가를 내 준다. 허가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신고제보다 더 높은 허들이 있는 셈이다.

환자용식품은 특정질환을 표기할 수 있어 건기식보다 환자들의 기대심리가 높을 수 있는 제품이지만, 허들은 일반 식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업체들이 제도를 악용할 마음만 먹으면 질 낮은 영양제를 특정질환 영양식으로 둔갑시킬 가능성까지 있다. 식약처는 환자용식품이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제도를 꼼꼼하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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