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해요 당신’ 아내의 치매로 인해 회복된 사랑..
연극 ‘사랑해요 당신’ 아내의 치매로 인해 회복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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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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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Culturemine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은 치매에 걸린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치매라는 병을 매개로, 자신의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할 줄 모르는 어떤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무뚝뚝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통해 흘러간다.

연극 전반부는 남편에게 섭섭한 것이 많지만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된장찌개를 끓이는 아내를 표현한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는 없다. 남편은 단지 그날따라 배가 안고프기 때문에 아내의 아침밥상을 먹지 않는 날도 있다. 흔히 보아온 가족 드라마처럼 아내의 섬김은 당연하고 남편의 일은 바쁘다. 이야기 속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보면, 남편은 바깥 일, 아내는 집안 일로 구분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이 설정되어 있다.

연극 속에서 남편은 아내의 마음 깊숙한 곳과의 교감은 없이 하루하루를 현실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보통 가정에는 있을 법한, 가끔씩 같이 여행을 떠나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노력도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나는 싫어하기 때문에, 정 여행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 다녀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나름 성실히 산 것처럼 보인다. 졸업한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찾아오는 제자도 있으니 말이다.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이 조금전 화분에 물을 주었는지도 잊어버리고, 가스렌지에서 무언가 끓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아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또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한편 아내는 어떤 사건으로 세상을 등져버린 둘째 딸과, 또 집이 싫어 이민 가 버린 첫째 딸을 자주 그리워한다. 하지만 두 딸 역시 그들과 아버지와의 마음의 교감은 거의 없는 채이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둘째 딸이 세상을 등진 이유는 자신의 딸을 성추행한 자신의 제자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딸이 아닌 제자를 감싼다. 극 속에서 아버지가 몸 담았던 교직은, 가정이 아닌 어떤 최선을 다하는 다른 영역을 뜻하는 듯 하다. 아버지는 말한다 “그 제자는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선생인 내게 딸에 대한 고민을 자주 상담해왔지 않느냐? 딸이 그렇게 된 것은 평소에 지나친 결백증이 있어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자신이 최선을 다한 삶의 장소가 가정이 아닌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객관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학생을 위해서는 웬만한 손해는 감수하는, 자신의 ‘올바른’ 교직관으로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어머니는 이제 아들도 다른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로 병세가 심해졌다. 아랫집에 내려가 남의 비싼 옷을 자기 옷인 양 걸치고 왔다가, 남편이 대신 사과하기도 한다. 잠시 남편이 외출한 사이에 불안감이 엄습하자 공포에 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런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내의 치매를 통해 뒤늦게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서툰 요리를 해가며 어머니를 뒷바라지하는 아버지의 뒤늦은 고생이 안쓰럽다기보다는 웬지 화가 난다. 아버지와 진심을 나눈 적이 없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 슬프게도 어머니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바라보며, 제자보다는 딸의 결벽증을 탓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이제 모든 화살은 뒤늦게야 아버지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도, 누나가 세상을 등진 것도 다 아버지 때문’이라며..

아버지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아들에게 여전히 큰 소리를 내다, 결국에는 마음 깊숙한 곳의 진심을 얘기한다. “나는 네 어머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아들은 나중에 찾아와 사과한다.  평생 듣기 어려웠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남편은 아내의 휠체어를 밀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던 그 시간, 이미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아내의 무릎팍에서 편지 하나가 떨어진다.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다고..’ 평생을 남편을 위해 헌신했던 아내는 마지막 시간을 남편의 마음을 느끼고 세상을 떠난다. 연극 속에서는, 기억을 잃어버린 아내가 잠시 정신이 돌아와 실제로 편지를 쓴 것인지, 환상이나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지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던 간에, 이제는 마음이 통하게 된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연극 속에서 남편 역은 이순재와 장용이. 아내 역은 정영숙과 오미연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햇살 비치는 어느 봄날, 그래도 희망을 안은 채 관람해보면 좋을 것 같다.

디멘시아뉴스 dementianews@dementi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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