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커뮤니티케어를 중심으로 제도 변화가 시작됐다
[칼럼] 커뮤니티케어를 중심으로 제도 변화가 시작됐다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19.04.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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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효자병원 김대훈 원장

김대훈 원장

커뮤니티케어라는 처음 용어를 접했을 때 무엇인지 낯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영화나 서적에서 경험하고 있었고 부모 세대의 삶을 보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삶의 후반부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던 시절인 2009년에 보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영화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의 모습이 고령자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세상을 천천한 기법으로 표현된다. 건강에 이상이 있지만 고집스럽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고 세상과 단절한 외로운 노인에게 이방인이자 이웃인 동양인 젊은이와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자신의 의지로 맺는다. 2015년 국내에 번역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원제 Being Mortal)]을 읽으면서 오랜 동안 접어 두었던 인간의 존재(Being)와 윤리(Mortal)에 대한 각자의 결정을 가지고 직접 죽음과 대면의 순간을 준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의사로서 생존에 대해서만 배우고 의미를 부여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보건복지 체계가 바로 커뮤니티케어였다.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서구와 일본의 재가 중심의 의료와 복지는 매우 실용적인 제도를 통해서 아직도 만들어가는 중이다. 영국은 1991년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하여 돌봄 체계를 시설보호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재편하였고 미국에서는 취약계층도 자신의 집에 거주할 권리를 인정한 1999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 연방정부는 주정부가 시설입소 대신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일본에서는 2000년에 시행한 개호보험 제도를 2005년에 개혁하면서 예방 중심의 시스템 강화와 시설급여를 축소하고 재가급여를 확대하는 중이다(김용득, 2018).
개념 이해를 위해 김용득의 설명을 더 옮기면 우리말로 지역사회로 번역되는 커뮤니티라는 단어는 서구사회 보건복지서비스의 단계별 혁신 과정에서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공간의로서의 지역사회(in the community) 의미로 탈시설화를 시작으로 한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로 옮겨온 사람들이 지역사회 공간에서 잘 지내도록 돕는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의 책임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의해 추진된 지방정부로의 권한이양(decentralization)의 의미이다. 세 번째는 분리된 시설에 살던 사람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만으로는 진정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지역사회의 관여가 없는 ‘고립된 모델’이 아니라 자연적인 지원(natural support)과 함께하는 ‘상호 의존하는 자립’이 강조되는 다양한 주체의 참여(by the community)의 의미이다.

케어라는 단어는 서구사회에서 포괄적인 맥락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특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정적인 의미로는 크게 세 가지를 뜻한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의미로서 일상적인 활동을 돕는 돌봄 또는 수발의 의미이다. 두 번째는 의료적 측면을 중심으로 치료, 간호 등의 활동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세 번째는 관심, 지원, 지지 등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활동을 의미한다. 포괄적인 맥락은 이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경제구조와 사회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처하는 과제로서의 보건복지서비스

영국의 커뮤니티케어 모델 개발의 핵심은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탈중앙화하여 개별 현장 복지사에게 위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복지사들은 개별 이용자들의 욕구에 맞추어서 유연하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설계하여 케어 패키지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연계나 기관 간의 협력을 중심에 둔 행정 모델(administrative model)과 분명히 구분되는 것으로 케어 매니지먼트의 중심에는 이용자들의 욕구가 있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보장을 국가적 차원에서 소득보장, 보건의료 및 공교육 체계 구축으로 대응하던 국면에서 국민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최대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국면으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김보영, 2018).

하지만 우리의 커뮤니티케어의 구상과 추진 내용을 보면 다른 의도를 갖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고 그러하기에 복지전문가나 의료계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우선 복지계의 우려는 크게 구조와 체계의 관점에서 첫 번째로 거주지원 서비스의 혁신이 부족하여 국토부, 행정자치부,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사업을 커뮤니티케어에 편입하는 방법은 여전히 분절적이며,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의 가정을 기반으로 지원되는 서비스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고 서비스 설계의 주체와 권한에 대한 설정이 없고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선의를 이끌어 내는 문화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점을 든다. 두 번째로 기존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전국화로는 그 동안 계속 해법을 찾지 못한 사회서비스 전달 체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고 이미 기금의 주체별로 제공되는 200여 가지 이상의 사회서비스를 통합적이고 이용자의 욕구에 맞게 설계하는데 실패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김보영, 2018).

그러나 나아갈 방향으로서의 커뮤니티케어의 의제가 옳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고 다른 대안의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문제점은 바로 보건복지에서 ‘보건’의 내용과 방법론이 없다는 점과 제도만 이식하고 결과를 낙관하는 관료주의적 태도가 문제이다. 즉 의료계와의 관계는 나빠질 대로 나빠져 대화의 시기와 대상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고 케어 매니지먼트의 노하우에 대한 고민이 없다 보니 기금 주체간의 주도권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정작 대상자들의 욕구 실현이라는 제도의 목적이 뒷전이 될 것으로 비관하고 있다.

노인의료비 억제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복지의 문제를 보건이 주도하면서 그 추진의 동력은 노인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고자 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11월 20일에 발표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 1단계를 보면 사업의 출발을 어디에서 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4대 핵심요소별 중점 과제 중 첫 번째 주거 지원 인프라 확충을 제외한 나머지 과제들을 보면 방문건강 및 방문의료 실시의 관리 주체는 보건소의 건강생활지원센터인데 나머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점은 보건과 복지 케어의 연속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는 의심을 갖게 하고 있다. 또한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를 확대하고 서비스 지원 대상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면서 사회서비스 공단을 통한 고용 창출의 청사진과는 달리 복지서비스 종사자의 직접고용이나 사회서비스 직영 사업체에 대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기본계획은 한 마디로 요양병원 경증 환자들의 퇴원 계획으로 요약된다. 그 목표 인원까지 직접 추계하고 있는데, 전체 사회적 입원 추정 43,000명 중 2022년까지 1만9,000명을 지역사회로 복귀시키고 의료급여 환자 10만3,000명 중 신체기능저하군 환자들의 본인부담금 부과 및 상한제 적용 제외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이 주요 내용은 요양병원에 환자가 입원하면 건강보험공단에 전산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하여 등록된 모든 환자들을 대상으로 장기요양 대상 여부에 대한 사례관리를 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에 요양병원 환자분류체계, 수가체계에 대한 수정 및 건강보험정책심의가 예정되어 있고, 요양병원 입원급여 적정성 평가도 수정됨에 따라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경증 환자들의 강제 이주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판단을 하기도 전에 합의를 강요당하다

보건복지와 관련하여 의료계는 실증주의와 엄밀주의에 발목 잡혀 그 외의 분야에 대해 언급을 피해왔다. 아니면 오히려 순응적 관료화라는 해석이 나을 수도 있겠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논의를 의학회에서 주관하고 있을 당시 2016년 대한노인신경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발표를 끝마치고 퇴장하는 이모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연명의료 중단에 앞서 가족들의 경제적 동기로 강제되지 않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빠졌습니다.” 이에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경제적 동인에 의한 강제 결정 가능성에 대한 논의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는 그의 대답은 실망스럽고 부끄러웠다. 환자의 질병과 죽음과의 거리만 측정하는 것이 죽음의 결정을 조력할 의사로서 소임의 전부인가?

‘노쇠사’라는 개념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복지대학교의 니키 류 교수는 초고령자의 예측할 수 있는 천천한 죽음이라는 의미의 ‘노쇠사’라는 말의 확산과 무비판적 수용으로 고령자 의료 정책 방향도 ‘치료하는 의료’가 아닌 ‘지지하는 의료’로 전환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령자의 급성기의료 요구는 감소하지 않았음을 보고하고 있다. 또한 고령자의 죽음의 과정을 각 신체 시스템의 해부학적 혹은 기능적으로 확인한 쇠퇴를 인간 개체의 쇠퇴와 동일시한 노쇠사 개념을 반박하는 실증적인 증거를 2010년 Thomas M. Gill 등이 NEJM에 보고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지역사회에서 독립기능을 유지했던 노인 754명을 10년 간 매달 인터뷰하여 일상생활능력을 평가하면서 383명의 사망자의 일상생활능력의 궤적을 분석해 보니 사망 1년 내에 급격히 악화됨을 확인하였다. 1년 이전부터 심하고 지속적인 기능저하를 보인 경우는 21.9%에 불과했다. 우리는 천천히 죽어가는가 아니면 고령에 상응하는 독립가능한 기능을 유지하다가 급격히 병사하는가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고 실증적 증거에 따라 고령자 급성기의료에 임하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니키 류가 2017년 일본임상내과의회지에 1980년대 이후에 일본과 세계에서 실시된 지역・재택케어의 경제평가・비용효과 분석으로 다음 2가지를 보고하였다.
  ① 가족의 개호비용을 포함한 「사회적 비용」은 지역・재택케어가 시설케어보다 높다.
  ② 중증의 요양필요대상자에서는 「공적(의료・복지) 비용」에 한정해도 지역・재택케어가 높다.
그 때문에, 후생노동성의 공식문서, 담당자, 전직 장관도 지역포괄케어로 비용이 감소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고 다만 의료・개호의 실태를 모르는 경제관청이나 정치가들이 지역포괄케어로 비용을 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이 남아 있다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하고 있다.

노쇠사라는 오해와 노인의료비 절감이라는 환상이 만나 ‘고령자에게 의료는 사치’라는 폭력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료계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이해와 협조를 구하라

의료서비스가 없는 지역사회 재가서비스는 기존 장기요양서비스의 연장과 확장일 뿐이며 이것만으로는 ‘커뮤니티 케어’의 ‘케어’가 완성되지 못하고 실패한다. 유럽의 주치의 개념이든 일본의 단골의사 개념이든 비용을 전제로 한다. 혹시라도 비용절감 의도로 사업의 방향이 전개된다면 환자와 의사 모두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기회를 놓쳐 당면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현실로 맞아 들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주치의 제도’라는 말이 등장할 것이고 그 단어가 내포하는 한국만의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은 서로가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협조를 구해야 할 상대를 악인화하는 흑색선전을 방관한 후에 테이블에 앉혀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구시대적 협상 기술은 지양해야 한다. 앞으로 지속 가능한 의료제도는 의료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기본계획 1단계를 보면서 이전의 친시장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바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자 결집해서 저항할 수 없는 의료급여 환자부터 아직 서비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의 지역사회로 내몰릴 것이라는 대목이다. 제도는 항상 폭력적이라고는 하나 한국의 공공사업은 너무 실적 위주의 사업진행에 몰두한다. 개인적 경험으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 도입 시점에 건강보험공단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요양시설 창업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참여를 독려하였는데 아파트 단지 내의 편의점을 운영하던 분도 자신이 그 동안 새로 입주하는 단지에만 편의점을 입점하고 매도해 온 사업수완을 가지고 요양시설에 참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커뮤니티케어의 경우는 다르리란 확신을 주기 바란다.

또한 복지부는 정책 운영의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끌어야 할 커뮤니티 케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요양병원에도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 사회적 입원을 죄악시하고 사무장병원 등의 불법적 영업 행위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여러 매체들의 선정성에 기대어 그 동안 묵묵히 중증질환자들과 회복기 환자들을 치료해 온 요양병원 전체를 암묵적으로 매도하면서 수가체계나 환자분류체계를 일방적으로 바꾸는 건정심이 2019년 4월에 예정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안정된 주거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음으로 나타난 현상이 사회적 입원이었고, 일본의 요양병상을 모방하여 국내에 지원금을 주면서 요양병상을 유치하고 요양병원의 개설 조건을 무리하게 낮춘 당사자는 바로 정부이고 보건복지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야말로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방조자인 것이다.

실수는 괜찮다 실패는 안 된다

커뮤니티케어는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고 현실적 방법론에서는 각각의 지자체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고 유럽과 일본의 경우도 그러하다. 올해 선도사업을 16개 지자체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부디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실적에 매달리지 말고 그 동안 현장에서 환자와 노인과 장애인들을 돌봐 온 전문가들에게 조언과 협조를 구해야 현실적인 사례관리와 서비스 패키징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이란 체크 리스트로는 알 수 없는 노하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