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란 명칭, 계속 써도 괜찮은가?
'치매'란 명칭, 계속 써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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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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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세계적 권위의 의학저널인 '란셋'(Lancet)에 정신분열병의 명칭을 '조현병'(調絃病)으로 바꾼 한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글이 게재된 바 있다.

란셋지에 실린 ‘한국의 정신분열병 개명’이라는 제목의 글은 지난 2007년 대한조현병학회(前 대한정신분열병학회)가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 주는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명칭 개정 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조현병의 의미 등을 상세히 담았다.

조현병학회가 정신분열증이란 병명의 개칭에 나선 건 단어 자체가 주는 이질감과 거부감이 더욱 큰 사회적 편견과 낙인효과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가 정신분열병 관련 844건의 신문기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신분열병에 대한 부정적 관점의 기사가 67.4%(569건), 폭력 및 범죄를 다룬 기사가 32.9%(278건)에 달했다.

조현병학회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08년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 관련 단체와 공동으로 '정신분열병병명개정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명칭 변경 작업에 돌입, 2011년 12월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개칭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결실을 맺었다.

정신분열병이란 명칭처럼 어떤 병명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해당 질환을 앓는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병, 간질 등의 병명이 그렇다. 이들 질병은 지금은 각각 한센병, 뇌전증(腦電症)으로 불린다. 정신분열병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절차와 관련 법개정이란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명칭이 변경됐다.

우리 사회에서 명칭 변경이 필요한 질병이 또 있다. 바로 '치매'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가 7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치매'는 중대한 공중보건 문제로 떠올랐다.

치매는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엄청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질환이다. 치매환자 돌봄체계가 크게 부족한 탓에 간병 부담은 오롯이 환자 가족들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치매환자를 바라보는 주위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는다.

무엇보다 치매라는 명칭이 환자 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영어의 'Dementia'는 'mentia'(정신)와 'de'(부재)라는 라틴어어가 합쳐진 것이다. '지적능력이나 정신이 상실되거나 손상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학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치매(癡呆)라는 병명의 한자어는 '어리석은 치(痴)'와 '어리석은 매(呆)'를 합쳐 '미치다, 어리석다'라는 뜻을 표현한다. 즉 치매 환자가 '어리석고 미친 사람'이란 의미로, 환자를 비하하는 모욕적 뜻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치매라는 명칭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2006년 보건복지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을 앞두고 치매의 명칭 변경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지난 2011년에는 한 국회의원이 치매라는 병명이 뇌질환으로서 해당 질병의 특징을 왜곡하고 환자와 그 가족에게 모멸감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2015년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을 수립하면서 치매의 병명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을 반영하고자 의견수렴을 했지만 정작 발표된 종합계획에는 그 내용이 빠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일본과 홍콩, 대만 등의 국가는 앞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거쳐 치매 대신 '인지증(認知症)', '실지증(失智症)', '뇌퇴화증(腦退化症)'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5년 5월 신종 감염병의 이름을 지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신종 감염병의 명칭을 지을 때는 특정 지명이나 개인의 이름, 동물이나 음식의 종류, 특정 문화나 산업, 또는 직업 등과 관련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신종 감염병에 '돼지독감'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과 같은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관련된 특정 지역이나 산업 분야에 의도치 않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정 질병의 이름으로 인해 특정 종교나 민족 구성원의 반발을 불러왔고, 여행이나 상업, 무역 분야의 부당한 장벽과 동물들의 불필요한 도살을 유발하는 상황을 조성하는 일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특정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어리석은 사람'이란 사회적 낙인을 찍는 질병 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편견으로 가득 찬 병명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가장 큰 폐해는 환자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며 "조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숨기면 만성화되고, 결국에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부담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질병명칭의 사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디멘시아뉴스 dementianews@dementi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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