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5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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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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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 - 박완서의 <해산바가지>에서의 치매

김은정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해산바가지>는 치매와 관련된 박완서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따뜻한 결말을 보이는 작품이다. 박완서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의 결혼을 두고 주변에서는 홀어머니에 외아들이라며, 해괴망측한 홀시어머니 사례까지 들어가며 모두 반대했다. 그렇지만 나는 시어머니의 어수룩한 분위기가 좋아 결혼을 결심했고 이후 결혼 생활도 무난한 편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일흔다섯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나서 나타나기 시작한 치매 증상은 나의 모든 생활을 뒤흔들어 놓는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데서 시작된다. “쌀 씻어 놓았냐?”, “쌀 씻어 놓아라. 저녁 때 다 됐다”, “쌀 씻어 놓았냐?”처럼 허구한 날 계속되는 같은 말의 반복은 ‘나’로 하여금 차라리 똥오줌 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든다. 이렇게 예민한 성격의 며느리, 그리고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는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 이것은 이미 정상적인 가족생활이 불가능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아들 부부 방을 엿보는 것으로, 그리고 아예 아들 부부의 방에 들어오는 것으로 그 정도를 더 하게 된다. 이런 치매 시어머니를 보는 나는 일반적으로 치매 노인을 모시는 며느리보다 그 괴로움을 더 크게 느낀다. 그 이유는, 결혼 전 친정 이모들한테서 들었던 대로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아들에 대한 홀어머니의 이상한 집착으로 확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은 혐오감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내 눈엔 그분의 그런 짓이 평범한 망령으로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프로이트 때문인지 성적인 연상을 하고 내 속에 또 하나의 지옥을 만들었다. 그 분은 점점 더 자주 우리 방으로 야행을 하였다. 당신 방으로 아들을 불러냈다. “아범 추워 죽겠어. 정말이야 냉골이라니까. 늙은이 얼어 죽는 꼴 안 보려면 한 번만 와서 만져봐.” “아범 나 배고파 죽겠어. 어멈이 나를 굶겨. 정말이야 배가 등갓에 붙었어. 와서 한 번만 만져보라니까” 이렇게 새록새록 구실을 만들어냈다. 구실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망령 노릇도 새록새록 새로워졌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새록새록 더해가는 치매 증상이 아니라, ‘구원의 가망이 조금도 안 보이는 지옥에 살면서 아이들이나 친척과 이웃들에겐 여전히 무던하고 참을성 있는 효부’로 비춰지길 바라는 나의 ‘이중성’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나는 자기 내부의 정신이 이미 분열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이중성은 더욱 심화되어 시어머니에 대한 맹렬한 살의까지도 느끼게 되는데, 결국 내부의 이런 감정이 두려워 신경안정제를 상습적으로 복용한다. 또 ‘당신 어머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신경안정제 복용을 남편 앞에서 과시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이중적 성격을 스스로 견딜 수 없어 분열된 순간, 결국 나는 일부러 파출부 아줌마가 보는 앞에서 시어머니를 잔인할 정도로 거칠게 다룬다. 그리고 그 여파로 몸살에 신경안정제의 후유증까지 겹쳐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시어머니를 집에서 모실 수 없다는 데 가족 모두가 동의하게 되고, 나는 자연스레 치매 시어머니를 모실 요양 시설을 찾게 된다. 

박완서의 <해산바가지>가 1985년에 발표되었고, 문학 작품은 그 시대의 현실을 담는다고 할 때, 당시 우리나라의 치매 전문요양병원의 시설은 작품에서 언급한 대로 ‘몬도가네’ 수준의 기도원이거나 치료 시설이었을 것이다. 작품에서도 이 점이 강조되고, 그래서 작품 속의 남편 곧 시어머니의 아들은 열악한 여러 시설들을 돌아보면서 가슴아파한다. 

이 작품의 극적인 전환은 불교에서 운영한다는 요양 시설을 둘러보러 가는 길에서 비롯된다. 나와 남편 모두 그곳 역시 그렇게 좋은 시설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이미 하면서 가고 있다. 그러다가 나는 정말 우연히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잘생긴 박 서너 덩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박을 보면서 무심결에 ‘해산바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 ‘해산바가지’를 떠올리면서 오랜만에 기쁨과 평화와 삶에 대한 믿음이 샘물처럼 괴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바로 시어머니가 나의 해산을 위해 준비해 주신 그 정성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첫아이를 뱄을 때, 시어머니는 ‘잘 생기고, 여물고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를 구해 온다. 그리고 그 바가지를 ‘첫손자 첫 국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로 귀하게 여긴다. 시어머니는 이 바가지로 내가 낳은 딸 넷과 마지막에 낳은 아들까지 단 하나의 차별도 없이 귀하게 받아들이고 정성껏 해산구완을 해 준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감금 시설 비슷한 곳에 보내려고 한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시어머니의 이런 모습이었다.

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나는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었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미록 지금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사이비 기도원 같은 데 맡겨 있지도 않은 마귀를 내쫓게 하는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이후 시어머니의 치매를 받아들이는 데 엄청난 힘이 된다. 무엇보다 여전히 해괴하고 새록새록 더해지는 시어머니의 치매 증상에 대해 더 이상 효부인 척 위선을 떨지 않게 됨으로써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된다. 속상할 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큰소리로 시어머니에게 분풀이도 하고, 목욕을 시키거나 옷 갈아입힐 때 아프지 않을 만큼 거칠게 다루기도 한다. 그게 오히려 둘 사이에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시어머니도 나를 잘 따랐다. 마치 간난아이처럼 천진한 얼굴로 내 치마꼬리만 졸졸 따라다녔다. 임종 때의 그분은 주름살까지 말끔히 가셔 평화롭고 순결하기가 마치 그분이 이 세상에 갓 태어날 때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그분의 그런 고운 얼굴을 내가 만든 양 크나큰 성취감에 도취했었다.

보통의 다른 작품들은 며느리의 눈으로 시어머니의 치매를 다룰 때 치매로 인한 가족생활의 붕괴나 간병의 어려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점에서 <해산바가지>는 다른 작품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이 작품에서 시어머니의 치매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점이 치매 이전의 시어머니가 지녔던 아름다운 정신을 떠올리는 순간이라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지 말고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나를 결코 잊지 말자’는 것이 작가 박완서가 아주 오래전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치매에 대한 또 다른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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