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죽은 자(뇌)는 말이 없다?
[곽용태 칼럼] 죽은 자(뇌)는 말이 없다?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5.2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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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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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뇌)는 말이 없다?

제목: 임상적인 알츠하이머병 진단과 부검에서 신경병리소견의 일치(Concordance of Clinical Alzheimer Diagnosis and Neuropathological Features at Autopsy) 1)

저자: Gauthreaux K, Bonnett TA, Besser LM, Brenowitz WD, Teylan M, Mock C, Chen YC, Chan KCG, Keene CD, Zhou XH, Kukull WA

결론: 임상적 알츠하이머병 진단과 신경병리 소견이 상당 부분 일치 하지 않기 때문에 임상진단을  보조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biomarker) 를 개발해야 한다.

논문명; J Neuropathol Exp Neurol. 2020년 May 1;79(5):465-473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1955년 4월 12일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류(arotic aneurysm)로 인한 심한 복부 통증으로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하였고 5일 뒤인 4월 18일 새벽 1시15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7시간이 지난 뒤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차가운 철제 테이블 위에 놓였습니다. 화장(火葬) 전에 사인(死因)을 밝히기 위한 통상적인 부검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부검은 당직 중이던 병리학 의사 하비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유족의 동의도 없이 통상적인 부검 후에도 멈추지 않고 아인슈타인의  두개골에 전기톱을 댑니다. 순식간에 상대성 이론, E=MC2, 광전 효과 등의 혁혁한 과학적 성과를 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끄집어내고 바로 저울에 올려 놓습니다. 뇌의 무게는 1200g. 원래 아인슈타인은 조용한 죽음을 원하였습니다. 심지어 그 조용한 죽음을 위해 사망하게 되면 바로 화장 후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곳에 그 재를 뿌리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죽음 이후에도 숭배받고 주목받기 싫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의 몸에서 뇌와 안구는 사라지고 이들은 기묘하고도 긴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 뇌를 사적으로 소유하게 된 하비는 천재의 뇌에 집착합니다. 그는 천재의 뇌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뇌신경 병리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혼자 직접 할 수 있었던 것은 뇌의 무게를 저울에 잰 것이 유일하였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 뇌의 무게는 평범해 보였습니다. 당시 몇몇 병리학자들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과 뇌의 형태적 연관성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뇌에 대한 하비의 폐쇄적인 소유와 개인적 집착은 직장에서의 해고, 부인과 이혼 등 평탄치 않은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그와 아인슈타인의 뇌는 세상의 기억 속에 잊혀지고 맙니다. 그러던 아인슈타인의 뇌가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20년도 더 지나서 일부에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한 사람들이 나타나면서부터 입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아인슈타인의 뇌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보고가 나왔지만, 과연 그게 그의 천재성을 설명할 정도가 아니라는 반론과 회의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의 실마리인 뇌를 움켜쥐고 있던 그 에게도 노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997년 84세의 하비에게 마이클 패터니티(Michael Paterniti)라는 젊은 작가가 나타납니다.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하던 작가와 오랫동안 보관해 온 아인슈타인의 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늙은 의사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그의 손녀딸인 에블린 아인슈타인에게 돌려주자고 의기투합합니다. 기묘한 조합의 두 남자는 2월 17일 아인슈타인의 뇌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원통형 가방에 담아 자동차에 싣고 11일 동안 미국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6,400km의 여정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에블린을 만나게 됩니다. 막상 에블린을 만난 하비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슬그머니 아인슈타인의 뇌를 놓아두고 홀로 급하게 떠납니다. 그로서는 이로써 아인슈타인과의 질긴 인연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에블린은 정중히 이것을 돌려보냅니다. 이 뇌는 다시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여 하비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2) 결국 이듬해인 1998년 하비는 40년 넘게 갖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과거 근무했던 프린스턴 대학병원에 기증했습니다.  하비는 2007년, 에블린은 2011년 사망하게 됩니다.

이 연구의 중요한 장점은 뇌의 부검 연구라는 것입니다.

제가 의과 대학을 다닐 때 한달에 한번 CPC (clinicopathological conference)라는 아주 특이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회의는 환자의 부검으로 병명을 알고 있는 병리학 교수님의 주관합니다. 병리학 교수님이 제시한 환자의 증례를 학생이 발표하고 반대편에서는 미리 환자의 증례를 받아서 나름대로의 병명을 진단하고 참석하신 우리 병원의 교수님이나 이쪽 분야에 저명하다고 여겨지는 초청받으신 타 대학교수님이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중요한 또 다른 참석자는 이를 지켜보는 방청객(의과 대학생이나 조교들)입니다. 양측간의 진단 과정이나 진단명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끝나면 맨 마지막에 병리학 교수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환자의 부검 슬라이드를 보여 주며 최종 병명을 이야기합니다. 순간 토론자와 관객들 사이에 탄식이 쏟아지곤 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맞고 저명한 교수님이 얼토당토않게 틀리는 경우 등은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물론 망연자실한 교수님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즉 이 토론의 백미는 계급장 떼고 붙는 데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발표자들이 진단명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고 즐기는 병리학 교수님이 왕인 것이지요.

한정된 정보만 가지고 환자를 볼 수 밖에 없는 임상의사는 오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의학 자체가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이 운명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계속 우리는 오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불안한 것이지요. 그래서 의사들은 지금 운명을 바꿀 수 없어도 다음에 오는 다른 운명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즉 현재 환자는 내가 놓쳤지만(오진을 하였지만, 극단적으로는 사망하였지만) 이 환자의 정답을 알고 싶은 것이지요. 모호한 병명이 많은 치매를 다루는 신경과 의사나 신경병리학자는 이 정답에 목말라 합니다. 의학에서의 최종적인 정답은 환자의 뇌를 부검하는 것이지요. 의사들이나 병리학자들은 환자의 뇌를 보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더 많이 배타적으로 이를 소유함으로써 남이 가질 수 없은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학에서 이런 지식은 환자의 치료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집착할 수도 있지요. 아인슈타인은 그 욕망이 불타는 젊은 병리의사의 옆을 지나가다, 본인의 소망과 달리 50년 이상, 아니 지금도 이 세계를 떠 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논문에서 제가 두번째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구하기 쉽지 않는 뇌의 부검 데이터를 좀더 많이 얻기 위해서 은행을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인간에게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방구석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고 항상 도둑맞을 까봐 전전긍긍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은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기에 맞기면 그런 걱정을 덜게 됩니다. 하지만 은행은 주인 돈을 잘 보관하는 착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처음에는 주인 몰래, 이후에는 주인과 합의하에 아주 중요한 다른 역할을 합니다. 즉 이 맞아 둔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으로써 또 다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과거 개인적 혹은 기관별로 소장하고 연구되었던 뇌조직이 뇌은행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좀더 많은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뇌가 기증되면 은행에 들어가 두부를 자르듯 반으로 잘라서 반쪽은 잘 염색해서 바로 검사하고 나머지 반은 동결시켜 향후 다른 연구나 외부협력에 대응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2,000명 이상의 치매 환자의 부검 결과와 생전에 진단명을 비교한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임상의사의 치매의 최종 진단이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닌 경우, 다른 치매로 생각하였는데 알츠하이머병이 나온 경우 등이 어떤 임상적 특징을 보이는 지도 알려 줍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것을 다해도 진단이 틀릴 수 있으므로 궁여지책으로 임상적으로만 진단하지 말고 이를 보조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biomarker)를 같이 사용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상 임상에서는 그렇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생체표지자는 아직까지는 마땅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죽으나 사나 우리는 유명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입만 쳐다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사족. 선사시대 이전부터 최근 까지도 식인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금기시되는 풍습이 지속되어 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여러 인류학적 설명이 있지만 이 중 하나는 남태평양 지역에서의 식인 풍습을 통해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식인을 통하여 그 사람을 소유하게 되면 먹히는 자의 장점을 획득한다는 주술적인 신앙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진짜 식인이 아닌 다른 형태의 식인으로 여러 사회, 시대에 존재하였습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유명한 예술가나 문학가의 심장을 수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심장을 소유함으로써 예술가나 문학가의 영감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테스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토마스 하디의 경우 사후 그의 심장을 따로 보관 혹은 매장하기 위하여 정성스럽게 분리하였다가 잠깐 부검의가 한 눈 판 사이에 고양이(혹은 개)가 그 심장을 먹어 버렸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그럼 그 심장을 먹은 고양이는 예술적 감성을 갖게 되었을까요? 돌아온 부검의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고양이를 죽여 남은 심장과 같이 포장하여 하디의 고향에 묻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친 소유욕은 화를 불러 오는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1. Concordance of Clinical Alzheimer Diagnosis and Neuropathological Features at Autopsy. Gauthreaux K, Bonnett TA, Besser LM, Brenowitz WD, Teylan M, Mock C, Chen YC, Chan KCG, Keene CD, Zhou XH, Kukull WA. J Neuropathol Exp Neurol. 2020 May 1;79(5):465-473.
2. Paterniti, M., Driving Mr. Albert: A Trip Across America with Einstein’s Brain. Random House Publishing Group,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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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설 2020-05-27 09:58:26
비회원 댓글쓰기가 안되서 가입했네요~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