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내 남편 뇌 속에 있는 테러리스트
[곽용태 칼럼] 내 남편 뇌 속에 있는 테러리스트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6.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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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8)

- 내 남편 뇌 속에 있는 테러리스트

제목: 루이소체 치매의 치료 선택: 무작위 대조군 네트워크 메타분석 (Treatment Options for Dementia with Lewy Bodies: A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sed Control Trials)1)

저자: Tahami Monfared AA, Desai M, Hughes R, Lucherini S, Yi Y, Perry R.

결론: 기존에 발표된 루이소체 치매 무작위 대조군 치료 연구를 네트워크 메타분석한 결과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도네페질이 가장 유용하였다.

논문명;  Neurol and Therapy 2020 Jun 3.

로빈 윌리엄스의 매니저는 계속 그를 찾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매니저가 그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으나 역시 인기척이 없어 결국 문을 따고 들어갔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2014년 8월 11일 아침 11시 45분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한 지 6년이 되어갑니다. 그는 국내에서는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탁월한 코미디언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이것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영화가 대부분 유쾌한 것은 이런 코미디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성공하였고 밝은 이미지를 가진 그가 돌연 자살을 하였습니다. 충격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로빈 윌리엄스는 2013년 10월부터 변비, 배뇨장애, 속쓰림, 불면, 후각장애, 스트레스 등 다양하고 사소한 신체적 이상을 느낍니다. 가끔 왼쪽 손에 미세한 경련이 간헐적으로 생깁니다. 의사는 로빈 윌리엄스의 다양한 그러나 사소해 보이는 증상에 여러 처방을 합니다. 문제는 로빈 윌리엄스의 반응입니다. 그는 예전과 달리 단순한 복통에도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보였습니다. 같이 사는 부인은 한번도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이런 과도한 심리적 반응에 그가 건강 염려증이 생기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 였습니다. 그가 자살하기 전 10개월 동안 이런 비특이적 신체적 증상이 점점 늘어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망상, 편집증, 불면증 등이 새로 나타나거나 심해졌습니다. 특히 그와 그의 가족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입니다. 그의 부인은 그의 이런 극심한 증상들이 전혀 근거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그에게 설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를 치료하기 위하여 정신치료(psychotherapy) 및 여러 항불안제를 복용해야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증상들은 일반 항불안제로도 조절되지 않아 항정신병 약물까지 복용하게 됩니다. 항정신병 약을 복용 후 일부 증상이 호전되었지만 여러 예측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처방 받는 다양한 약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였으며 그 반응을 예측하기 힘들었습니다.

사망 3개월 전에는 급격히 인지기능이 나빠져 영화 대본 한 줄을 외우기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인지기능의 손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자신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가 분명히 그의 뇌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뇌를 재부팅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이 병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수 많은 문제 때문에 그는 여러 의사를 전전하며 그 원인을 찾기 위하여 끊임없는 피검사와 뇌영상 촬영을 했지만 그 결과는 항상 “이상이 없다”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이상이 없다”는 이 말은 구원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진짜로 “이상하다”라는 느낌에 불안해 하였습니다.

사망 2달 반 전인 2014년 5월 28일이 되어서야 결국 그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는 그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걷기도 힘들었으며, 대화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때는 멀쩡하다가 갑자기 의식이 혼탁해지는 증상이 수시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반복되는 공황장애, 공포 등의 신경정신 증상이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테러리스트가 그녀의 남편의 뇌 속에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그들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중 자살하기 1주일 전부터 신경정신 증상이 갑자기 좋아졌다고 합니다. 평화가 온 것 같았다고 합니다. 8월10일 저녁 로빈은 잠자리에 들면서 부인에게 "Goodnight, my love"라고 하였고 부인도 "Goodnight, my love"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 자살했습니다. 그가 사망하고 3개월 지나서야 그의 부인인 수산 윌리엄스는 루이바디 소체라는 이상 병변이 남편의 뇌에 광범위하게 있다는 부검 보고서를 받게 됩니다.

이 논문은 퇴행성 치매 중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루이소체 치매 환자에서 어떤 치료 약물이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 기존의 논문을 네트워크 메타분석한 것입니다. 기존의 연구가 제한되어 있고 특효약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가 어렵기 때문에 루이소체 치매에 대한 기존의 다양한 약물 시험에서 유의한 것들을 모아 다약제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을 시행하였습니다. 도네페질 3mg, 도네페질 5mg, 도네페질 10mg, 메만틴, 쿠에타핀, 리바스티그민, 6개군을 비교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도네페질 5mg, 10mg이 가장 효과가 있다고 분석합니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적인 유의성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네거티브(negative) 스터디, 혹은 언더파워(underpowered) 스터디 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는 얼핏 보면 도네페질이 루이소체 치매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논문의 맨 마지막 연구지원항목을 보니 도네페질을 만드는 에자이 제약사의 후원을 받았다고 쓰여져있습니다.

결론은 "논문은 끝까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어째 논문을 고르던 중 도네페질 홍보 논문에 낚인 것 같다. 다음부터는 논문을 볼 때 뒤에서부터 읽어야겠다"입니다.

루이소체는 뇌신경세포 내 비정상적으로 인산화된 신경섬유 단백질 및 ubiquitin과 alpha-synuclein이 응집된 이상 물질입니다. 이것은 루이소체 치매 뿐 아니라 파킨슨병에서도 관찰되며 이들 병의 병리적 진단에 필수적인 소견 입니다. 때문에 파킨슨병과 루이소체 치매는 임상적으로나 병리학적으로 유사한 질환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임상적으로 파킨슨병이 몸이 굳는 등의 운동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데 반하여 루이소체 치매는 치매가 먼저 나타나게 됩니다. 이 루이소체 치매는 퇴행성 치매 중에서는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지만 의외로 한국 사람은 이 병을 잘 모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1,5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루이소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환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도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상을 하는 제가 종종 이 병을 가진 환자를 마주치는 것으로 보아서 이 병이 상당히 많지만 진단이 잘 되지 않는 듯 합니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에서 보이는 인지장애증상(기억력 장애, 공간감각 저하, 사물 인식능력 저하 등)과 파킨슨병의 운동 장애 증상(느린 동작, 손 떨림, 몸이 뻣뻣해지는 증상, 보행 및 균형장애)이 동시에 수반되는 특이 질환입니다. 또한 의식 및 인지기능의 심한 기복, 환시, 피해망상과 수면장애(꿈을 꾸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꿈을 꾸면서 꿈의 내용대로 움직이는 증상)가 흔히 동반됩니다. 이런 이상행동을 조절하기 위하여 정확한 진단없이 항정신병 약물이 처방되기도 하는데, 루이소체 치매 환자는 이 약제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 혼수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로빈 윌리엄스와 같이 처음 증상이 치매나 운동 장애가 아닌 변비, 어지러움증, 불안, 우울증과 같이 매우 비특이적인 내과적 정신과적 증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지로 로빈 윌리엄스도 초기에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끝없는 피 검사와 영상 검사 후 정상이라는 진단은 이 부부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무서운 미궁으로 빠뜨린 것이지요. 특히 초기부터 보였던 불안과 공포 등의 정신과적 증상은 단지 그가 과거에도 우울증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이 증상들의 의미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사망한지 2년 후 그가 겪었던 이러한 증상에 대한 초기 평가 혼란에 대해서 그의 부인은 불편한 심정의 일단을 신경학(Neurology) 학회지에 기고합니다.2) 당연히 초기에 그를 치료하였던 정신과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불편하였고 그에 대한 약간의 논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고칠수 없는 병이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이기 때문에 자살도 그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일각의 볼멘 목소리도 있던 것이지요.

로빈 윌리엄스에게 아카데미 상을 안겨준 1997년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 감독 구스 반 산트 주연 맷 데이먼, 로빈 윌리엄스)은 상처받은 천재 학생 윌(맥 데이먼)과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암스)의 이야기입니다. 윌은 모든 분야의 천재이지만 어릴 적 학대로 인하여 사람과 사회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숨기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남을 조롱하지만 실지로는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을 것 같으면 버림 받기 전에 스스로 버려지려고 노력하는 듯 보입니다. 일종의 유기공포(fear of abandomism)를 가지고 사는 것 입니다. 이 영화는 숨겨진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는 윌과 이를 이해하고 손을 내밀려고 하는 숀과의 치열한 이야기입니다. 이 전쟁과 같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알아요.”(윌은 퉁명스럽게 답한다)
“윌,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숀은 온화하면서 단호한 말투로 거듭 말한다) 
“네, 알아요, 안다구요”
“아니, 넌 몰라. 윌..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결국 숀이 상처 받은 윌에게 말한 세번째 “it’s not your fault”라는 말에 윌은 울고 맙니다. 제가 보았던 영화 대사 중 가장 감동적인 대사 중에 하나입니다. 극중의 주인공도 영화를 보는 저에게도 위로와 치유가 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현실 세계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이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공포, 불안, 스트레스 등이 쏟아져 오지만 “이것은 마음의 문제야, 너는 이길 수 있어”라는 주변의 말에 혼자 고민하는 과정에 그는 점차 무너져 갑니다. 이들 부부는 갑자기 맞닥뜨린 이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말만 들었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의 부인인 수산 윌리엄스는 그가 죽고 나서야 이 병을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병이 특효약도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큰 고통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미리 알아도 할 수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였던 것은 왜 로빈 윌리엄스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그때 왜 이 병에 대해서 설명을 받을 수가 없었나 하는 것 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실을 알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저는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에게 지금 이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it’s not your fault”


참고 문헌
1. Treatment Options for Dementia with Lewy Bodies: A Network Meta-Analysis of Randomised Control Trials. Tahami Monfared AA, Desai M, Hughes R, Lucherini S, Yi Y, Perry R. Neurol Ther. 2020 Jun 3

2. The terrorist inside my husband's brain.  Williams SS. Neurology. 2016 Sep 27;87(13):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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