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하버드 둥지위로 날아간 새
[곽용태 칼럼] 하버드 둥지위로 날아간 새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7.27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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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13)

-하버드 둥지위로 날아간 새

제목: 치매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전기경련치료의 효과와 안전성; 후향성 차트분석(Efficacy and Safety of ECT for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BPSD): A Retrospective Chart Review)1)
 저자: Hermida AP, Tang YL, Glass O, Janjua AU, McDonald WM.

결론: 초조를 호소하여 전기경련치료를 시행한 치매 환자 60명의 차트분석 결과 다른 의학적 문제가 동반되어 있는 치매 환자에서도 이 치료는 안전하였다. 전기경련치료 후 치매 환자에서 초조와 일반적인 기능이 향상되었고 약물 복용 숫자도 줄었다.

논문명; Am J Geriatr Psychiatry. 2020 Feb;28(2):157-163

치매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보호자에게는 인지기능 저하 보다는 초조, 공격성과 같은 치매 행동심리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이 훨씬 힘들 수가 있습니다. 이 논문은 전기경련요법이 약물에 잘 치료되지 않은 치매 환자의 초조에 대하여 효과가 있는지를 보는 연구입니다. 방법론적으로는 환자의 과거 차트를 사용 분석하였으므로 후향적 연구입니다. 전기경련치료는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심한 우울증, 양극성장애, 정신증(psychosis) 등에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젊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정신병 환자에서 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내과적 질환이 있는 고령의 치매 환자에서도 우울증, 조증, 정신증에 비교적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2012년에서 2014년까지 에모리 대학에서 치매 환자 중에 초조 증상으로 전기경련치료를 받은 60명에 대한 차트 분석을 하여 이 치료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분석하였습니다. 60명의 연구대상 환자 중에 병명이 정확하지 않은 치매 환자가 28명,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22명, 혈관성 치매가 2명, 전측두엽치매가 2명, 혼합형 치매가 6명이었습니다. 연구 대상군은 치매 환자로 초조가 주요 증상이고 차트에 초조 진단 척도인 Pittsburgh Agitation Scale(PAS)를 시행하였던 환자입니다. MECTA spectrum 5000 ECT machine으로 전기 충격을 하였으며 마취 후 치료 방법은 에모리 대학의 전기경련치료 지침에 따라 시행하였습니다. 전기경련치료 후 환자의 PAS 점수가 치료 전 보다 유의하게 감소하였고(초조 증상이 호전되었고) 전반적인 기능을 보여주는 척도인 GAF(Global Assessment of Functioning) 점수가 유의하게 증가(전반적인 기능 호전) 되었습니다. 또한 전기경련치료 후 환자가 복용하는 정신신경계 약물의 종류가 6종에서 4.9종으로 유의하게 감소하였습니다. 부작용으로는 첫 전기경련치료 후 6명에서 경련 후 초조(postictal agitation)와 가벼운 의식 혼란이 있었고 이후 전기경련치료에서는 이에 대한 약물 치료 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전기경련치료가 초조와 같은 치매 행동심리증상 치료의 일차치료 방법은 아니지만 많은 종류의 정신신경계 약물에도 반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충분히 고려해야 할 치료법이다'입니다. 즉 '치매 환자의 초조 증상이 치료가 어렵고 많은 약물 사용으로 부작용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전기경련치료를 생각해 보자'입니다.

임상 연구에는 크게 전향적 연구(prospective study)와 후향적 연구(retrospective study)가 있습니다. 전향적 연구는 지금 현시점으로부터 대상자를 추적 관찰하는 것입니다. 풀어 말하면 아직 알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 가설을 세우고 지금부터 임상시험 계획을 세워서 대상 환자를 모집합니다. 임상시험에 들어가기 전에 이 환자들에게 연구에 필요한 기본 검사를 합니다. 이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직접 환자들의 상태 변화를 기록합니다. 전향적 연구는 객관성이 뛰어나고 신뢰성이 있는 자료를 얻는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시간과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 갑니다. 결과에 따라 인과 관계도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반면 후향적 연구는 현시점에서 과거의 기록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입니다. 연구대상에 결과(독립변수)가 이미 발생한 후에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여러 요인(종속변수)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방법입니다. 이미 독립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연구자가 독립변수를 조작할 수 없거나 연구대상을 실험조건에 따라 배치하기 어려운 경우에 사용됩니다. 이 연구는 시간과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어가는 반면 변수 조절이 어렵고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연구 결과가 나와도 인과 관계를 추론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제가 이 칼럼에 소개한 논문들은 대부분 많은 연구대상자를 수년간 추적하는 대규모 전향적 연구였습니다. 제가 별것 아닌 것처럼 이런 논문을 소개하였지만 이 연구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제가 처음 의료에 발을 딛을 때만 해도 이런 논문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향적 논문이 아닌 후향적 논문도 창의적이면 비교적 좋은 학술지에 개재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료산업 자체가 커지고 돈과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조금 좋은 학술지라고 하면 대부분 이런 전향적 논문들 일색입니다. 그런데 이번 컬럼에서 소개하는 연구는 비교적 적은 연구대상자에 대한 후향적 차트분석 연구입니다. 지금까지 칼럼에서 주로 다루었던 대부분의 연구들에 비하면 방법론적으로는 상당히 떨어집니다. 즉 이 연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결과의 신뢰성이 제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비교적 좋은 학술지에 개재된 것은 이 연구가 주는 희소성과 시사성 때문입니다.

치매 환자의 간병이나 치료가 어려운 것은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장애 자체보다는 치매 환자가 보이는 다양한 행동심리 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가 방에 얌전히 있으면서 기억이 안 나서 계속 물어보는 증상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죽을 만큼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치매 걸린 부모님이 초조해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면 간병을 하는 가족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때문에 병원에 가면 증상 조절을 위하여 치매 약 이외에 많은 정신신경계 약이 처방됩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신경계 약들은 치매를 앓고 있고, 나이도 많고, 동반질환이 많은 환자들에게는 부작용이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과서나 치료지침서에서는 치매환자의 행동심리 증상에 약물 치료에 앞서 비약물적 치료를 먼저 하도록 권유합니다. 하지만 치료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권고가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비약물적 치료가 회상치료, 인지중재치료, 명상, 아로마, 등 매우 많은 선택을 제공하는 것 같지만 병원에 도움을 청할 정도의 환자가 이런 치료만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여직원;  남자 상사가 자꾸 은근한 눈빛도 보내고, 업무 외 사적인 지시를 해요. 퇴근 후에도 수시로 개인적 사진을 보내요. 상사가 출장을 갈 때도 남자 직원이 가도 되는데 굳이 저랑 같이 가려고 해서 매우 불편해요. 상담사님 어떻게 해야 되나요?
상담사; 그 분은 할머니 같은 분이세요. 아마도 딸 같이 생각해서 그럴 겁니다. 좋은 분이니 다른 의도가 없을 것입니다. 일단 상사분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애교있게, 매너있게, 슬기롭게 잘 거절하시고 잘 이야기 해보세요.
여직원; 제가 처음에는 상사분이 기분 나쁠까 사적인 이야기를 해도 맞장구도 쳐주었는데, 이제는 사적인 요구가 있으면 슬쩍 피해요. 너무 힘들어서 퇴근 후에는 문자나, SNS도 안 받는다고 이야기 했어요. 상사가 싫어할까봐 최대한 웃으면서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도 전혀 안 고쳐져요. 불안해요.
상담사; 진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기분 나쁘지 않도록 애교 있게, 매너있게 슬기롭게 잘 이야기 해보세요.
여직원; 저도 노력했는데 전혀 안 고쳐져요.
상담사; 다시 한번 진심을 끈질기게 기분 나쁘지 않도록 애교있게, 매너있게 슬기롭게 잘 이야기 해보세요.
여직원; …….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대부분의 비약물치료는 위의 상담사가 권유하는 것 같은 진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슬기롭게,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원에 이 문제로 오는 치매 환자는 그 현실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결국 저 같은 임상가들은 이 증상 치료에 끈질기게, 슬기롭게, 열심하 하는 것보다는 일정 부분 약물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너무 증상이 심한 사람은 일정 부분이 아니라 굉장히 고용량, 다약물을 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칠 듯한 초조, 공격성 등의 폭풍과 낙상, 손떨림, 인지장애 등의 후폭풍이 동시에 혹은 교대로 나타나면서 환자는 서서히 더 망가지게 됩니다. 경우나 정도는 좀 덜 하지만 일반 젊은 정신과 환자들 중에도 이런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기경련 요법은 1938년 이탈리아 의사 우코 체를레티(Ugo Cerletti)와 동료 루치오 비니(Lucio Bini)가 뇌전증(간질) 환자에서 경련 후 우울증이 호전되는 것에 착안하여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 체를레티는 뇌의 어떤 부위가 간질을 일으키는지를 알기 위하여 개를 이용해 실험하였습니다. 처음 실험할 때는 결과가 참담하였습니다. 실험 동물의 반이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일주일마다 마차가 개를 가득 싣고 그의 실험실 앞에 놓고 가기를 수년간 반복하였습니다. 그 결과 체를레티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어려웠습니다. 좀더 인간과 몸무게가 비슷한 동물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돼지를 도살하기 전에 전기충격을 가해 의식을 잃게 하고 도살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돼지를 대상으로 수많은 실험 끝에 경련을 일으키는 전류양과 죽음에 이르는 전류양은 차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실험 뿐입니다. 이들은 결국 사람에 대한 실험 역시 마치게 됩니다. 이로써 이 치료법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전기경련치료는 어지간한 정신과 약물보다 오래되었고 안전한 치료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를 일으키는 기전은 아직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기경련치료는 심각한 우울증 및 다양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여 왔으며 효과가 뛰어납니다. 특히 약물에 치료되지 않을 정도의 심한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으며 자살 충동 역시 줄여줍니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이 치료가 비인도적 치료로 인식되곤 합니다. 아마 이것은 1975년에 개봉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잭 니콜슨의 연기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랬는지 여전히 많은 사람은 전기경련치료라고 하면 고문을 연상합니다. 사실 초기에 전기경련치료는 마취나 근육이완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이나 골절 등의 부작용이 있었지요. 하지만 영화가 상영할 당시에는 이미 이런 안전 장치가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신과 치료가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기보다는 환자에게 피해만 준다는 반정신의학 운동(anti-psychiatry movement)이 큰 영향을 떨치던 시기입니다. 이 영화에 곳곳에는 반정신의학적 태도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환자를 위한다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정작 고통 받는 환자에게는 피해를 준 것이지요.

하지만 좋은 치료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세계적 문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정신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복잡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가 불후의 명작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노벨상을 받으면서 그 명성과 문학적 권력은 정점을 찍습니다. 하지만 이 후 그는 급격하게 우울증에 빠져 들어갑니다. 수차례 뇌외상을 입었던 그는 알코올과 약물 등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빠집니다. 그가 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꿈 꾸었던 “사자의 꿈”을 정작 그 자신은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960년 헤밍웨이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미네소타주의 메이요 병원에 입원해 전기경련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석 달 뒤 그는 다시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다시 입원해 추가로 전기경련요법을 받고 6월 30일 집에 돌아왔습니다. 헤밍웨이는 우울감은 나아졌지만 전기경련치료의 부작용으로 기억의 일부가 손상된 것을 괴로워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틀 뒤 자살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선택한 치료 방법으로 도움을 얻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부작용을 못 견딘 것입니다.

2017년 1월 4일 뉴욕타임즈에는 One Flew Over Harvard Med School(뻐꾸기 둥지, 아니 하버드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제목으로 전기경련치료의 극적인 효과에 대해서 보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헤밍웨이의 전기경련치료를 언급한 독자 편지가 있습니다. 그는 “전기경련 치료 후 기억력(재능)이 손상된 헤밍웨이는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이것은 위대한 치료이다 하지만 우리는 환자를 잃었다(Ernest Hemingway – blew his brains out after ECT destroyed his memory, his `capital’ – `it was a great treatment but we lost the patient’)”라고 기고합니다. 어떤 위대한 치료라도 환자보다 앞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치료는 하지만 환자를 돌아보지 못 할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치료 뒤에는 항상 따뜻함이나 배려가 있었으면 생각합니다.

사족.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신기한 일이나 별난 일을 찾아 다니며 방송하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중 재미있게 보았던 것이 벼락을 맞고 살아났던 할아버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농사일을 하러 밭에 갔다가 그만 번개를 맞은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다행히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발견하여 바로 병원에 가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하반신 마비도 있었는데 다행히 마비도 풀리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후 할아버지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같이 사시는 할머니 말씀이 할아버지가 전에는 성격이 급하고 폭력적이었는데 번개맞은 사건 이후로는 아주 순해지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하셨던 할머니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하시던 마지막 말씀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잘 때 보면 다른 남자 같아…”.  전기경련 치료이든 얼떨결에 번개를 맞던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1. Efficacy and Safety of ECT for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BPSD): A Retrospective Chart Review. Hermida AP, Tang YL, Glass O, Janjua AU, McDonald WM. Am J Geriatr Psychiatry. 2020 Feb;28(2):15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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