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야기
[곽용태 칼럼]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야기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8.10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15)

–며느리와 시어머니 이야기

제목: “때때로 시럽 속에서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조기 발병 치매에서 자아상실의 경험("Sometimes it feels like thinking in syrup" - the experience of losing sense of self in those with young onset dementia.)1)

저자: Busted LM, Nielsen DS, Birkelund R.

결론: 조기 발병 치매 환자는 자기 자신 조절 능력이 상실하고, 자아가 사라짐에 따라 가족의 부담이 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굴욕적인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논문명; Int J Qual Stud Health Well-being. 2020 Dec;15(1):17342

이 논문은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조기 발병 치매 환자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기 위한 연구입니다. 65세 이전에 치매가 생기는 환자는 많지 않지만 저도 가끔 볼 정도로 아주 적지도 않습니다. 임상적인 차이 뿐 아니라 환자가 처하고 있는 가정적, 사회적 등 여러 이유로 이들에 대한 접근 방법이 나이가 들어 발병한 일반적인 치매 환자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조기 발병 치매 환자들은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아직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상처도 많이 받지요.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치매 환자에 비하여 이들은 여러가지 경제적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어린 자식이나 건강한 부모가 생존해 있을 수도 있어 가족에 대한 더 많은 의무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능력저하에 따른 자존감 상실이 더 심하게 나타나고 현재의 역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가족들은 이 병으로 그들의 미래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런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조기 발병 치매 환자가 어떤 주관적인 경험을 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질적 연구를 하였습니다. 연구대상은 15개월 이내에 치매 진단을 받은 9명의 조기 발병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고 방법으로는 이들에게 반구조화된 면접(semi-structured interview)을 시행하였습니다. 이 면접에는 과거 사전 연구들을 참조하여 일련의 개방형 질문을 이용하였고 이 면담은 모두 녹음하였습니다. 이러한 개방적 질문 방식에 대하여 환자는 개인적이고 다양한 어떤 때는 은유적인 표현으로도 답변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 환자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시럽 속에 빠져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생각은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가 끈적하고 어려워요(Sometimes it feels like thinking in syrup—it is possible, but it takes a long time, it’s sticky and it’s difficult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주관적이고 개방적인 답변 모두를 데이터로 수집합니다. 이후 이 데이터를 성찰적 주제 분석(reflexive thematic analysis) 방법으로2) 의미 있는 항목을 찾아내서 분석합니다. 연구의 결론은 "조기 발병 치매 환자들은 ①환자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 ②환자 자신의 자아가 사라져 가면서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 부담이 된다는 것 ③다가올 굴욕적인 미래에 대한 공포스럽다는 것을 느낀다"입니다.

부수적으로 이들은 가족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길을 잃고 이 때문에 자아가 상처 받기 보다는 감시받는 위치 추적장치 장착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들입니다. 이 연구는 조기 발병 치매 환자들이 인지기능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경험, 극복 노력, 공포, 미래에 대한 소망 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이런 능력이 점차  사라질 수 있지만 저자들은 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론은, 조기 발병 치매 환자도 우리와 똑 같은 것을 고민한다. 자신을 고민하고, 가족을 고민하고, 미래를 고민한다. 입니다.

10년전부터 경도인지장애로 제 외래에 오시는 85세 할머니가 있습니다. 지금은 초기 치매로 살짝 진행하였지만 아직은 혼자서 버스 타고 걸어서 오시고 1년에 1-2번은 며느리나 딸과 병원을 방문하십니다. 치매 약 하나만 먹으면 될 정도이고 외출을 포함한 일상적인 생활 수행 능력에 큰 문제가 없으십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인지기능 검사를 하지만 크게 나빠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오시면 할머니에게 간단한 설명과 약을 처방하고, 다시 방문하고, 또 약을 처방하고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오래 간만에 며느리와 같이 병원에 오셨습니다. 저는 늘 하던 데로 할머니에게 별일 없었는지 물어봅니다. 항상 하던 데로 할머니는 역시 별일 없으시다고 하시고 저는 똑 같은 약을 처방하고 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며느리가 저번 달에 시행한 인지기능 검사가 어떤 지를 물어봅니다. 별 변화가 없다고 하자 며느리가 저에게 넋두리를 하십니다. 며느리는 할머니가 작년부터 급격히 사람의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하시고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귀만 못 알아 드는 것이 아니고 가끔은 누가 물건을 훔쳐갔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며느리는 이번 제사 때 온 시누이와 한바탕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할머니가 청력도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입니다. 며느리는 치매도 문제이지만 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시고 시어머니에게 보청기를 하시라고 하지만 시어머니가 이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저에게 보청기를 하시도록 시어머니를 설득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보청기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며느리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자기 병은 자기가 잘 안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자 며느리가 폭발합니다. “아니 이번 제사 때 어머니가 반지가 없다고 시누에게 이야기 하여 시누가 제사 때 와서 옥신각신 했는데 결국 어머니 책상 속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얼마나 난감하고 화가 났는지 몰라요. 제가 그렇게 잘 찾아 봐 달라고 이야기해도 못 들은 척 하더니….” 그리고 그 자리에서 펑펑 웁니다.(continue…..)

여기서 소개한 논문의 연구 방법은 의사들에게는 생소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고등학교때 이과를 하고 의과대학을 갑니다. 교육 과정이 전형적인 과학자 훈련입니다. 의학(과학)에서의 논문은 대부분은 어떤 것을 설명하고 싶어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병에 새로운 약이 진짜로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하기를 원하지요. 그러면 이 약과 위약을 투약하여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을 계량화(숫자화) 한 후 통계라는 이름으로 이것을 결정합니다. 이런 것을 양적연구(quantitative study)라고 합니다. 반면 이 논문에서 이용하는 방법은 질적연구(qualitative study)입니다. 질적연구는 현상을 개념화, 범주화, 계량화, 이론화 이전의 자연 상태로 환원하여 최대한 “있는 그대로” 혹은 “그 본래 입장에서” 접근하는 연구 방법입니다. 질(質, quality) 이라는 것은 비교하기 이전의 상태, 또는 측정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하지요. 좀 쉽게 설명하면 양적 연구의 목적은 설명이고, 질적 연구의 목적은 이해입니다. 설명과 이해 어떻게 보면 같은 의미인 것처럼 보입니다. 설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함. 또는 그런 말(네이버 국어 사전)”입니다. 즉 설명은 이유를 밝히는 것이지고 그 이유는 원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양적연구는 설명을 위한 것이며 곧 어떤 사물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면 이해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네이버 국어 사전)”입니다. 이해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어떤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사정을 헤아린다는 것은 단순히 원인을 파악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행위자, 상대방의 심리 상태를 헤아리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선 때로는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감정이입도 필요합니다. 이런 태도는 양적연구에서는 편향(bias)이라고 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질적연구는 매우 다양하고 오랜 시간 훈련이 필요한 어려운 부문입니다. 이 연구에서 사용된 방법론 역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닙니다. 결국 의사들은 질적연구를 접하기도 어렵고 대부분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훈련도 받지 못 합니다. 양적연구 훈련만 받은 의사들은 알게 모르게 환자를 치료할 때는 철저히 방관자 입장에서 환자가 아닌 병을 보려는 경향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일까요? 특히 환자의 신경이나 정신을 치료하는 의사는 자연과학자와 인문과학자의 양면성을 갖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의사는 질병이라는 자연과학적인 면과 사람이라는 인문과학적인 면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병은 따로 하늘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질병을 병력이라는 관점에서 본 사람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라고 합니다. 그는 질병은 일정한 경과가 있어서 처음 증상 이후 여러 과정을 겪고 치료가 되든지 아니면 치명적인 결말로 끝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병력은 처음 인턴으로 의사를 시작할 때 열심히 하던 병력 청취와 기록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는 질병이 주체이지 정작 그 병을 앓고 있는 개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치매가 생기게 되고 이것을 알게 되고, 또 필사적으로 여기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는 그 환자, 그 당사자 자체에 대해서는 의사들은 대부분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꾸 넘어지는 58세의 여자 환자의 증례”와 같은 피상적인 문구 안에는 58세, 여자, 환자 이외에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지 등에 대한 아무런 정보나 관심이 없습니다.

알츠하이머 박사가 죽은 지 80년이 지난 1995년 12월 21일 그가 처음으로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진단한 환자 아우구스테 데테르(Auguste Deter)에 대한 자세한 의료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기록에는 아우구스테의 병에 대한 기계적 기술 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이 글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환자를 중심으로 두고 병을 서술하는 전통과 습관은 19세기에 절정을 이룬 후 의학의 객관화 속에 쇠퇴하였습니다. 신화나 고전을 보면 다양한 영웅이 역경을 이겨가면서 세상을 바꾸기도 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웃기도, 울기도, 감명도 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 하나하나가 지금 병과 벌이는 투쟁은 어느 것보다도 감동적인 서사가 되고 신화도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객관화와 숫자에 매몰되어 인간 그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환자가 느끼는 감정, 생각 등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병보다 그 환자의 감정 생각을 중시할 때 비로서 치료에서 환자가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앞에서 연결…..) 며느리가 펑펑 울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제사는 20년전 사별한 남편의 제사였다고 합니다. 며느리는 45세때 남편이 두아들과 시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 역시 나이 47세때 남편(며느리의 시아버지)이 죽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 역시 남편 없이 어렵게 긴 세월 동안 1남7녀 8명을 키운 것이지요. 며느리는 남편이 죽으면서 아들과 어머니를 보살펴 달라고 한 부탁으로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힘들었지만 여러 정으로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온 것이지요. 그런 시어머니가 최근 이러니 속상할 수 밖에 없지요. 감정 수습이 안되고 눈물이 많아져 더 이상의 면담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일단 며느리를 방에서 내 보내니 이제는 할머니가 웁니다. 며느리를 보면 자신의 과거가 생각이 나고 너무 고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잘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제 할머니의 머리가 안 좋아졌습니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는 집안에서 역할도 있고 이를 잘 해왔고 또 집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우울하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차라리 안 듣고 못 알아듣는 것이 지금껏 고생을 한 며느리를 위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이제는 치매처럼 보여져야 국가에서 지원도 받고 빨리 요양원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조금이라도 며느리가 젊었을 때 놔 주고 싶다고 합니다. 넉두리가 끝날 무렵 며느리가 다시 외래로 들어옵니다. 일단 두 분을 잘 달래고, 처방을 냅니다. 항상 하는 처방…Repeat….. 하지만 며느리에게 시간내서 혼자 외래를 다시 방문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보니 이미 외래가 끝난 지는 한참이고 밖은 어둑어둑해 집니다. 밖에 나와서 안 피던 담배 한대를 물었습니다.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제대로 한마디도 물어 보지 않은 내가 10년 동안 환자에게 무엇을 하였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가 않았던 날입니다.

후기.  이런 우여곡절이 지나가고 할머니는 좋아지셨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며느리가 비싼 것을 사주었다고 자랑도 합니다. 훨씬 인지기능도 좋아 보입니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 왔을까요? 할머니에게는 두 손자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를 떠맡아야 했던 며느리를 대신하여 할머니가 이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있고 나서 큰 아들이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큰 아들은 처갓집에 자기를 키워 주신 할머니 자랑을 하였고 이 말에 처갓집에서 호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결혼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할이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역할을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좀더 이 자리를 지켜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약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1. "Sometimes it feels like thinking in syrup" - the experience of losing sense of self in those with young onset dementia. Busted LM, Nielsen DS, Birkelund R. Int J Qual Stud Health Well-being. 2020 Dec;15(1):17342
2. Using thematic analysis in psychology. Braun V and Clarke V. Qualitative Research in Psychology. 2006 3 (2): 77–101.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