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프로파일링
[곽용태 칼럼] 프로파일링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8.1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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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16)

–프로파일링

제목:  루이소체 치매에 대한 새로운 뇌척수액 생체표지자 확인; 프로테옴 접근(Identification of novel cerebrospinal fluid biomarker candidates for dementia with Lewy bodies: a proteomic approach).1)

저자: van Steenoven I, Koel-Simmelink MJA, Vergouw LJM, et al.

결론: 루이소체 치매 환자의 뇌척수액에서 프로테옴 접근 방법을 이용하여 6가지의 새로운 생체표지자를 발견하였다. 이들을 생체표지자를 같이 사용 분석하면 루이소체 치매의 진단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논문명;  Mol Neurodegener. 2020 Jun 18;15(1):36

루이소체 치매는 전체 치매 환자의 20%나 되는 비교적 흔한 질병입니다.2) 이 병은 특징적인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증상이 나타날 때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단이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에 비하여 임상적인 증상 이외에 검사나 영상 촬영에 이 병을 시사하는 특징적인 소견이 뚜렷하지 않아 더욱 진단이 어렵습니다. 허리에서 바늘로 천자하여 얻는 뇌척수액은 뇌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병리 현상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검사 대상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의 경우에는 뇌척수액을 검사하면 이 병에 특징적인 아밀로이드단백(amyloid-β 1–42), 타우단백(t-tau, p-tau)의 양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검사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상당히 높은 신뢰도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루이소체 치매에서는 이런 신뢰도 높은 생체표지자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뇌내에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이라는 이상단백질의 침착이 루이소체 치매의 특징적인 병리 소견입니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이와 연관된 이상 단백질이 뇌척수액에 반영되므로 여기에 알파-시누클레인을 포함한 이와 연관된 이상 단백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프로테옴 접근법으로 확인하고 확인된 단백질이 루이소체 치매 진단에 얼마나 진단적 가치가 있는지를 분석하였습니다. 20명의 루이소체 치매 환자와 정상 대조군에서 뇌척수액을 얻고 이를 질량분석법을 사용하여 여기에 있는 모든 단백질을 확인합니다. 총 1,995개의 단백질이 검출되었으며 이중 69개가 두 군 사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중 VGF(Neurosecretory Protein), SCG2(Secretogranin-2), NPTX2(Neuronal pentraxin-2), NPTXR(Neuronal pentraxin receptor), PDYN(Proenkephalin-B), 그리고 PCSK1N(Pro-SAAS)이라는 단백질이 루이소체 치매와 연관된 유력한 생체표지자로 확인하였습니다. 랜덤포레스트라는 통계적 모델을 이용하여 VGF, SCG2 와 PDYN 이 루이소체 치매를 정상이나 다른 질환과 감별하는데 유용함을 보여줍니다(정확도 0.82, 95% CI: 0.75–0.89).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고도의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뇌척수액에서 루이소체 치매를 진단하는데 유용할 것 같은 6개의 새로운 생체표지자 단백질을 찾아 냅니다.

1887년 발표된 코난 도일의 소설 '주홍색 연구'에서 셜록 홈스가 군의관으로 처음 복무하다 총상을 입고 장티푸스까지 앓고 나서 영국으로 송환된 왓슨을 만나 슬쩍 훑어본 뒤 그의 이력을 술술 읊는 장면이 있습니다. 홈스는 그를 보자 마자 "아프가니스탄에 있었군요"라는 말을 툭 던집니다. 놀란 왓슨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 합니다. “의사로 보이지만 군인이라는 느낌도 있으니 군의관이 분명하다. 손목이 희니 원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은 아닌데 낯빛이 검은 점으로 보아 열대 지방에서 최근 귀국했다. 얼굴이 좋지 않다. 고초를 많이 겪고 병도 앓았을 것이다. 왼팔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은 점으로 미뤄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열대 지방에서 영국 군의관이 그렇게 고생하고 팔에 상처까지 입을 만한 곳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셜록 홈즈의 추리는 기본적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단서를 수집한다. 단서에 숨긴 의미와 단서 간의 관계를 해석한다. 해석을 통해 단서는 정보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정보로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다 입니다.

셜록 홈즈의 추리는 현대 범죄 수사에서 하는 프로파일링(profiling)과 비슷합니다. 범죄 수사에서 프로파일링이란 현장 증거와 기존에 축적된 범죄 관련 자료 등을 토대로 용의자의 특징과 범행 동기 등을 추정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셜록 홈즈보다는 좀더 객관적인 통계나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 입니다. 제가 즐겨 보았던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에는 FBI의 행동분석팀이라는 프로파일러 조직이 미궁속에 빠진 사건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이들은 사건 현장에 와서 범인을 찾기 위한 단서들을 찾아낸 뒤에 일선 경찰관들에게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을 설명해 줍니다. 예를 들면, "범인의 키는 180~190센티미터에, 사건 장소/지역에 대한 지식이 많으며 특정 지역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장기간의 병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아시아계계 사람들과 관계가 깊은 사람이다. 중/고등학교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했을 가능성이 많으며, 거주지는 사건 현장 반경 10킬로미터 이내이다.” 현대의 셜록 홈즈인 셈이지요.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하면 용의자가 줄어 들게 되고 경찰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2000년부터 한국에서도 프로파일링이 경찰에 도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프로파일링이 현장에 보급될 때 현장에서 일하는 형사들은 이것을 굉장히 불신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게 새파란 경찰 요원이 나타나서 현장사진 몇 장과 수사 보고서나 뒤적거린 다음 범인은 학력은 어떻고 나이는 몇 살이고 직업은 무엇이다 식으로 다 아는 척 떠들어 대니(?) 일선에서 노가다 뛰는 경찰로서는 모 이런 게 있어 하며 황당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파일링의 목적과 기법 등이 일선에서도 범죄 수사의 한 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지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도 꾸준히 제기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드라마를 보면 프로파일링이 많은 범죄가 해결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수사로 해결한 것을 프로파일링 때문이라고 하거나, 범죄자 검거 이후 프로파일링의 여러가지 중에 범죄자와 일치하는 것을 짜맞추기 식으로 강조하고 다른 것은 어물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마치 점집에서 무당이 모호하게 여러 이야기를 하고 그중 하나가 맞다고 우기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또 현실에서 프로파일러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이들이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프로파일링이라고 하면 언론과 대중은 이를 포장하는 부작용도 있어 왔던 것 같습니다. 결국 프로파일링을 전공한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프로파일링 만으로 범인을 검거한 케이스를 수치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귀납적 사고 방식을 통하여 접근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서는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추측(educated guesswork) 즉 연역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돌아 보면 많은 사건의 경우에 결론에 근거가 없고, 프로파일러의 추측이 근거가 되는 논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좋은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직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편견으로 원하는 정보만 해석하려는 유혹을 넘어서야 합니다. 점쟁이와 같은 예언자가 되려는 욕망을 벗고 범죄나 사건의 연구자가 되려는 자세를 취해야만 이 사건의 용의자가 누구인지 객관적으로 추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53년 미국의 분자 생물학자인 제임스 듀이 왓슨과 영국의 분자생물학자인 프란시스 해리 콤프턴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발견한 이후 50년 만인 2003년에 인간 DNA의 모든 염기 서열이 해독되었습니다. 이른바 포스트게놈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유전자 지도만 알고 있으면 모든 인간 신체나 병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인간 유전체 염기서열이 다 밝혀졌다고 해도 이것만 가지고는 유전자의 결과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즉 유전자가 전사(transcription)되어 어떤 단백질이 생성 되는지 알아도 최종적으로 세포 내에서의 기능 여부는 이 단백질 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적절하게 합성되고 또 이것이 변형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최종적으로 완벽한 모양이 갖추어 진 단백질을 분석해야만 그 유전자의 세포 내 기능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프로테오믹스는 유전자 이후의 단백질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단백질학을 뜻하는 프로테옴(proteome)의 어미에 ∼학, ∼론을 의미하는 접미사 -ics 가 붙어 프로테옴을 연구하는 방법과 기술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말입니다. 굳이 번역한다면 '프로테옴분석학' 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유전자 명령으로 만들어진 프로테옴(단백질체)을 대상으로 유전자의 기능 분석, 단백질의 기능이상 및 구조변형 유무 분석, 단백질의 검출 및 정량 등을 하고 질병 과정을 추적하는 분석기술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질병과의 연관성을 추론해 나갑니다.

이렇게 프로테옴분석학 이라고 하면 아주 간단할 것 같지만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 필요합니다. 단백질은 합성된 후 주변 환경에 따라 복잡하게 변형될 수도 있고, 조직에 따라 아주 다양한 농도로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유전자의 경우에는 극미량만 존재하더라도 이를 증폭할 수 있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이라는 방법이 있지만 단백질은 이런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 이런 문제점들이 질량분석기기의 급속한 발전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기기의 성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논문이 길고 어려운 것이 단순히 뇌척수액의 단백질을 확인하고 측량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하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연구는 이런 방법으로 루이소체 치매와 대조군 뇌척수액에서 1995개의 단백질이 존재함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범위를 좁혀가면서 최종적으로는 6개의 단백질이 루이소체 치매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것은 마치 범죄현장(루이소체 치매)이 있고 이 범죄 현장에 남겨진 여러 증거나 증인(뇌척수액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이 있는데 이를 프로파일링 하면서 범인을 좁혀 나가는 프로파일링 기법과 유사합니다. 일종의 단백질 프로파일링이지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파일러는 아마 셜록 홈스일 것입니다. 소설 속 홈스는 짧은 순간 스캔을 한 후 그 여러가지 데이터를 직관만으로 분석하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범인과의 연관성을 현장에서 즉각 추리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추리는 직관과 어설픈 추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추리는 평소 법의학, 범죄학, 식물학, 지질학 등 폭넓은 분야에 걸친 깊은 지식을 토대로 범인 특성을 추정하는 귀납적 사고의 결과물입니다. 프로테오믹스에서 특정 단백질을 검출하는 것도 유사한 과정을 거칩니다. 다만 홈즈가 하는 분석을 현대 과학에서는 통계라는 것을 이용하여 합니다. 이 연구에서 사용되는 군집분석이나, 랜덤포레스트 분석 등과 같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많은 확인된 단백질 중에 이 질병과 연관된 단백질을 찾아 나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성과를 내려면 단지 질량 분석법에 의하여 원하는 물질을 잘 검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검출도 어렵지만 질량분석기를 사용하여 얻은 단백질들의 특정 값을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단백질들의 특정 정보와 비교하여 어떤 물질인지를 찾아냅니다. 우리는 홈즈가 하는 화려한 추리 과정을 즐깁니다. 하지만 홈즈의 추리 과정이 아무리 화려하여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 즉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드라마나 책에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질량분석기로 어떤 물질을 찾아내더라도 기존의 연구결과나 데이터 베이스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결국 용의자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굉장히 기술적이고 탐사적인 논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생체표지지라고 주장하는 뇌척수액에서의 6가지 특정 단백질이 루이소체 치매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일단 이 검사의 정확도는 0.82입니다. 어렵게 시행되어야 하는 수고에 비해서는 진단적 가치가 떨어집니다. 과연 이 논문에서 발견된 용의자가 진짜 범인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 논문에 발견한 용의자는 진짜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 것 같습니다. 즉 큰 조직 범죄자는 숨어 있고 행동대장 몇 명만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면 셜록 홈즈도 범인을 놓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 자막이 뜹니다.

To be continued….

예 그렇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이지요.


참고 문헌
1. Identification of novel cerebrospinal fluid biomarker candidates for dementia with Lewy bodies: a proteomic approach. van Steenoven I, Koel-Simmelink MJA, Vergouw LJM, et al. Mol Neurodegener. 2020 Jun 18;15(1):36.
2. Lewy body dementias. Walker Z, Possin KL, Boeve BF, Aarsland D. Lancet. 2015;386(10004):168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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