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6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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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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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모성 조창인의 [등대지기]

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조창인의 소설은 언제나 슬프다. 그 슬픔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에서 온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잊고 지내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조창인 소설이 주는 슬픔의 실체이다.

조창인의 소설 중 가장 유명한 <가시고기>가 아버지의 사랑을 다룬 것이라면, 이 작품 <등대지기>는 어머니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물론 과장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리하게 배치된 사건들이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다소 떨어뜨리기는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치매’는 매우 효과적이면서 눈에 띄는 장치이다.

외딴섬 구명도의 등대지기인 주인공 재우는 세상의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그에게 가장 큰 상처는 가족이다. 오로지 형만을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해야 했던 까닭에 재우의 성장 과정은 온통 상처로만 얼룩져 있다.

이런 재우에게 어느 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떠맡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것도 세상과 단절된 등대지기의 섬 구명도에서 말이다. 처음엔 한 달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약속은 어머니의 부양을 떠넘기려는 형과 누나의 속임수이다.

재우와 어머니의 섬 생활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없는 어머니, 자신이 평생을 바쳐 사랑한 난희의 집에 식모로 일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을 부끄러운 기억만으로 남게 한 어머니, 특히 그가 어렵게 난희에게 속마음을 고백하고 결혼을 앞두게 되었을 때 난희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난희와의 사랑을 단념하게 만들어 버렸던 어머니, 재우가 모셔야 할 어머니는 그런 어머니다. 더욱이 온전한 정신 상태가 아닌 어머니이기에 재우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힘들 수밖에 없다. 작품은 우선 이와 같이 어머니의 치매 증상으로 인한 재우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다.

어머니는 야밤에 혼자 돌아다니다 당직실에 소리 없이 나타나 등대지기 동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옷과 이불을 똥오줌으로 버려 놓는다. 결국 그는 동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해 어머니를 숙소 밖으로는 절대 나오지 못하게 감금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점점 깊어진다.

재우는 코를 움켜쥐고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냄새는 냉장실 하단 야채 보관함에서 흘러 나왔다. 넣어둔 기억이 없는 접시가 보였고, 접시 가득 동전크기의 경단이 들어 있었다. 코를 갖다대 냄새를 맡아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똥이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따로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중략) “어머니 없이도 잘 지내왔어요. 이제 와서 날 못살게 구는 이유가 뭐죠? 들들 볶아대는 저의가 뭐예요? 왜, 왜, 왜?” 고함을 지를 때마다 주눅든 채 푹 고개를 숙이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한동안 두 눈을 깜빡이더니 배시시 웃었다. “만두야, 너 줄라고 내가 만들었어.” “아주 맛있어, 먹어, 많이 먹어.”

이렇게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더해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가족 전체에 대한 분노 역시 그 정도를 더해간다. 그 갈등의 고리는 풀릴 길이 없다.

이 뒤엉킨 고리는 퇴임한 상사 정 소장이 섬을 방문하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재우가 평소 존경하던 인물인 정 소장은 어머니 방에 달린 자물쇠를 떼어내게 하고, 어머니가 부르는 대로 역할을 하며 어머니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재우에게 어머니의 과거를 전해 주는 통역자의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재우는 어머니의 과거를 이해하게 되고 어머니에 대한 깊은 오해를 풀게 된다.

정 소장에 이어 구명도를 찾아온 난희를 통해 재우는 그가 과거 어머니에게서 받았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실제로는 그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오랜 시간 재우의 위로가 되어준 반려견 해피도 실은 난희가 보낸 것이 아니라 난희를 시켜 어머니가 보냈다는 사실, 난희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결혼하고 나서 그가 난희 집안으로부터 상처받을까 봐 어머니가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유약한 그가 세상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할까 봐 일부러 모질게 키웠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똥으로 만두를 빚은 그 순간이 당신의 속마음 그대로 아들에게 사랑을 전한 유일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재우 자신도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알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재우의 심리적 변화를 잘 보여 주는 사건은 병원에 가려고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일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어머니가 원래 있던 그 장소에 그대로 와 있음으로써 어머니를 무사히 찾게 된다) 그 순간 재우는 어머니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가를 알게 된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마음의 분노를 걷어내고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는 데는 ‘치매’가 열쇠 구실을 한다. 치매를 통해서 어머니의 진실이 오롯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치매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치매는 이러한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재우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 어머니가 당신의 무릎 위에 재우의 머리를 올려놓았으리라. “아파?” 어머니의 물음에 재우는 대뜸 악을 썼다. “여긴 뭐 하러 올라왔어요! 뭘 어쩌겠다고 바보같이 여길 와요!” “많이 아파?” “당장 내려가요!” “아프지마. 내가 살려줄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고, 어머니가 손등으로 재우의 눈가를 훔쳐댔다. (중략)

어머니가 두 손으로 빗방울을 모아 재우의 입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재우는 입을 벌린 채 목젖을 움직여 빗방울을 넘겼다. 타오르는 숯불을 삼킨 듯한 고통이 사라졌다. 이어 어머니는 허옇게 갈라진 재우의 입술을 젖은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재우는 생각했다. 어머니가 곁에 없었다면 번개에 의한 내상이 아니라 갈증으로 먼저 죽고 말았을 거라고.

번개에 맞아 쓰러져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아들, 그 아들을 살리고자 어떡하든 빗물 한 방울이라도 먹이고 싶은 어머니. 어머니가 어떻게 그 급박한 상황에서 위험한 등대 위로 올라올 수 있었나 하는 것이 다소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치매가 만들어낸 세계에서 오히려 가장 가까운 모습의 만남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에서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이 작품 <등대지기>가 조창인의 대표 소설 <가시고기>보다는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한 것은 모성의 힘이라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치매’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서 그 모성의 본질을 새롭게 드러낸다. 몸과 마음이 온전하지 않은 치매의 상태에서 오히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욱 빛을 내며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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