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나라는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
[칼럼] 우리나라는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
  • 양현덕 발행인
  • 승인 2020.10.11 0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치매를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는 ‘어리석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치매(癡呆)’라는 용어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용어에 거부감으로 인해 치매의 조기 발견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치매라는 진단은 환자와 가족으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치매’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같은 한자문화권인 대만은 2001년도에 ‘치매증(癡呆症)’을 ‘실지증(失智症)’으로 개정했으며, 일본에서는 2004년도에 ‘인지증(認知症)’으로 용어를 변경했고, 홍콩에서도 2010년도에 ‘치매증(癡呆症)’을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변경하기에 이르렀으며 중국도 2012년도에 ‘뇌퇴화증(腦退化症)’으로 병명을 개정했다.

그렇다면, 같은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치매’ 명칭 개선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왔을까?

2006년, ‘치매’ 명칭 변경 첫 시도

대만·일본·홍콩·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치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2008년도부터 시행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앞두고, 2006년 보건복지부에서 치매 명칭 변경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후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여 용어 변경을 추진했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2011년, 성윤환 의원 대체 용어로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을 제안

법률개정을 통해 용어를 변경하고자 하는 첫 번째 시도는, 2011년 11월 3일 성윤환 의원이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을 제안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이다. 질병의 본질이 인지능력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지(認知)’라는 용어를, 장애인과 같은 범주에서 사회의 관심과 이해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장애(障碍)’라는 용어를, 그리고 질병이라는 점에서 ‘증(症)’이라는 용어를 결합한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을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로 제안했으나 용어 변경에는 이르지 못했다.

2014년, 보건복지부 ‘치매 병명 개정 욕구 조사’ 실시

2014년 보건복지부는 제3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 수립을 위한 사전기획연구 단계에서, ‘치매’ 용어 변경 추진 여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치매 병명에 대한 인식 및 개정 욕구 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에서 일반인 1,000명과 치매 유관 전문가 423명을 대상으로 ‘치매’ 용어에 대한 인식, 용어 변경 욕구, 대체 용어에 대한 선호도와 병명 개정을 통해서 기대되는 인식 개선 여부를 파악했다.

- 10명 중 4명에서 치매 병명에 거부감 느껴

치매 병명에 대한 평소 인식 조사에서 40%가량에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했다. 거부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조사하니, ‘질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으며, 두 번째 이유로는 ‘질병이 불치병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으며, 다음으로 ‘질환에 대한 편견’, ‘환자를 비하하는 느낌(9%)’ 순이었다.

- 치매 뜻 알고 나서, 치매 병명에 대한 거부감 더 커져

‘치매’가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로 이루어져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알려주고 다시 ‘치매’라는 병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니, 용어의 뜻을 알기 전보다 거부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이 일반인에서는 40%에서 51%로 ‘11%p’가 증가했으며 유관전문가에서는 30%에서 69%로 무려 ‘29%p’가 증가했다.

- 치매 뜻 알고 나서, 일반인의 53%, 전문가의 73%에서 병명 개정 원해

치매 병명 개정 욕구에 대한 조사에서는 일반인의 22%, 유관전문가의 49%에서 병명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한자 의미를 알려준 다음 조사한 병명 개정 욕구는 일반인에서는 53%로 유관전문가에서는 73%로 높아졌다. 일반인에 비해 유관전문가에서 치매 병명 변경에 대한 욕구가 높았으며, ‘치매’ 용어의 의미를 알고 난 후 병명 개정에 대한 욕구가 훨씬 더 증가했다.

- 대체 병명으로 ‘인지저하증’ 가장 선호

대체 병명 조사를 위한 설문에 이용된 ‘치매’ 대체 용어는 대만·일본·홍콩·중국에서 이용했던 후보 병명 중에서 예비 후보를 선정한 다음, 유관전문가를 대상으로 선호도를 조사하여 ‘인지증’, ‘실지증’, ‘인지저하증’, ‘인지증후군’ 이렇게 네 가지를 최종 대체 후보 병명으로 정했다. 네 가지 대체 용어 중에서, 일반인의 51%, 유관전문가의 38%에서 ‘인지저하증’을 가장 선호했다.

- ‘인지저하증’으로 개정 시 긍정적 영향 기대

마지막으로, 병명 개정을 통해서 기대되는 인식 개선 여부에 대한 조사에서, 일반인의 46%그리고 유관전문가의 62%가 ‘인지저하증’으로 개정할 경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응답했다. 반면, ‘인지증’, ‘인지증후군’, ‘실지증’은 인식 변화를 주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 설문 조사와 상반되는 결론으로 치매 병명 개정 보류

‘치매’ 용어 변경 추진여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된 ‘치매 병명 개정 욕구 조사’에서, 응답자의 40% 가량에서 치매 병명에 대하여 거부감 느꼈으며, 이러한 거부감은 ‘어리석다’는 치매 한자 뜻을 이해한 후 더 커졌다. 또한, 치매의 뜻을 알고 나서, 일반인의 53%, 전문가의 73%에서 병명 개정을 원했다. 그리고, 여러 대체 병명 중에서 ‘인지저하증’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지저하증’으로 개정 시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위와 같이 설문 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결과 및 기대와는 달리, 치매 병명 개정은 진척되지 못하고 보류됐다. ‘치매’의 한자 의미를 알기 전, 일반인의 10명 중 2명만이 치매 병명 변경에 찬성했으며, 의미를 이해한 후 일반인에서는 2명 중 1명이 전문가는 10명 중 7명이 병명 개정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서는 2명 중 1명만이 용어 변경에 찬성했다는 것이 이유로 병명 개정이 보류됐다.

또 병명 개정 보류의 다른 이유로, ‘인지저하증’이라는 대체 병명이 신경·정신의학 분야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다른 질환명과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크므로 선택해야 할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응답자의 51%가 ‘인지저하증’으로 개정할 경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답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매’ 병명을 변경 시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대한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치매’라는 병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가장 큰 요인이 명칭 자체가 아니라 질환이 가지는 어려움이며, 병명을 개정하더라도 치매의 치료 기술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식개선 효과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이유로, 마땅한 대체용어가 없다는 결론과 함께 병명 개정은 보류되고, 결국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에 포함되지 못했다.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 도입되며 명칭 변경 법률개정안 재발의

2017년 5월 ‘치매국가책임제’가 도입되면서 치매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면서 ‘치매’ 병명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었다. 정치권도 이에 동참하면서 용어 대체를 위한 법률개정안이 다시 발의됐다.

2017년 7월 17일 권미혁 의원은 ‘치매’라는 부정적인 용어의 사용이 질병에 대한 편견을 유발하고 환자 가족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장애증(認知障碍症)’으로 변경하는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또한, 2017년 9월 29일 김성원 의원은 ‘치매’가 지니는 부정적인 의미가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방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질병의 특징을 왜곡하고 있어 질병의 용어로 부적절하므로,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저하증’으로 변경하여 치매 환자 및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줄이고 질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하고자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인지장애증’과 ‘인지저하증’을 제안한 두 건의 개정법률안 모두 2년 이상 계류의안으로 머물다가 결국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2021년도에 ‘치매’ 용어 변경 국민 인식도 조사 예정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을 확정 발표했다. 사회적 연대를 통한 치매포용국가 조성을 목표로 하는 이번 종합계획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치매’ 용어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하여 내년 2021년도에 ‘치매 용어 변경 검토’를 위한 인식도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제3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 수립을 위해 2014년도에 실시했던 ‘치매 병명 개정 욕구 조사’ 경험과 보류 결정 배경을 반면교사로 삼아 치매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결론에 이르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