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7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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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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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여정 김원일의 나는 누구인가

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원일의 「나는 누구인가」는 그의 연작 장편소설 「슬픈 기억의 시간」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 「슬픈 기억의 시간」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를 겪으면서 역경의 시대를 헤쳐 온 네 노인들의 삶을 회상의 형식을 통해 들려준다. 이들은 사설 양로원인 한맥기로원에 함께 입주해 있는 인물들로서 「나는 누구인가」의 한여사, 「나는 나를 안다」의 초정댁, 「나는 두려워요」의 윤선생,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김씨가 각 중편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이 글에서는 「나는 누구인가」의 한여사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한여사는 하루 종일 화장과 머리 손질에 시간을 보내는 팔순의 노인이다. 그는 늘 자신을 공주요 귀부인이라고 여기고 그렇게 행동한다. 독서와 클래식 음악 감상이 취미이며, 명품 화장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까지 나가고,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팔순의 나이에도 꼭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인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미군사고문단 문관이었던 남편을 육이오 때 잃고, 하나뿐인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이후 여생을 함께 보낼 노회장을 만나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며 우아하게 살다가, 노회장의 죽음 후 기로원에 들어 온 사람이다.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들은 박사에다가 미국 대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이런 한여사의 과거를 그대로 믿지 않는 같은 방의 초정댁은 한여사를 ‘광대댁’이라고 부른다. 덕지덕지 화장을 하고 다니는 모양이 광대 같다고 비꼬는 것이다. 이렇게 한여사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초정댁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여사의 진정한 과거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어느 날 한여사는 잠결에 맡게 된 미나리 향에 취해 맨발로 기로원을 나와 언덕을 헤매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 사건을 통해 그의 과거가 드러난다. 반 혼수상태의 의식 속에서 한여사는 자신의 지난 삶을 좇고 그 과거는 그녀의 더듬거리는 말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다.

한여사는 일제 강점기 때 방물장수를 따라 부산의 건빵 공장에 취직하러 고향 마을을 떠나고, 거기서 제빵 기술자 모리를 만나 한경자, 즉 게이코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고 종업원으로 일한다. 모리에 의해 성에 눈을 뜨고 내연 관계로 지내다가 어느 날 돌연 일본군에 끌려가 그 길로 최전선의 남양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장교숙사 취사원으로 있으면서 성노리개로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러다가 종전 후 기적적으로 군함 갑판에 매달려 고국으로 살아 돌아온다.

이후 한여사는 한안나라는 이름으로 미군들을 상대하는 양공주가 된다. 윌슨 대위를 만나 토미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그에게 버림받고 그 배신감으로 결국 어린 아들마저 미국으로 입양 보낸다. 이후 그녀는 제빵 기술을 밑천으로 빵 가게를 하면서 제법 돈도 모으게 되고, 노회장을 만나 편안한 여생의 기반을 마련하고, 마침내 기로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한경자이자, 게이코이자, 한안나이다. 그녀의 짙은 화장은 자신의 이 아픈 과거를 감추고자 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진정한 자신을 찾아 헤맨다. 그녀는 혼수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스쳐갔던 질곡의 역사이자 ‘슬픈 기억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가장 마지막으로 그 어떤 슬픔도 없던 어린 시절에 이른다.

그네는 눈을 감는다. 이년아, 넌 한경자도, 게이코도, 한안나도 아냐. 넌 한점아가야. 이름을 그렇게 바꿔갈 동안 네 인생은 수렁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었어. 인생을 망쳤다고! 어디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어둠 속에 낫을 쳐든 아버지가 소리친다. 그래요. 난 집 떠날 그때부터 점아가가 아니었어요. 내장이며, 쓸개며, 간까지 내주고 살아왔어요.

가슴 사이에 큰 점이 있다고 붙여진 이름인 ‘점아가’는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이다. 늘 배가 고프고 하루 해가 길고 긴 날이었지만 ‘생미나리에 꽁보리밥 비며 먹어도’ 너무나도 맛있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그녀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미나리 향에 이끌려 비몽사몽 간 언덕을 헤매다 쓰러진 채 그녀는 마침내 그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이 순간은 작품에서 꽤 에로틱하게 묘사된다.

온몸을 어루던 향기가 몸 아래쪽으로 쏠린다. 무엇인가, 이파리 같은 게 살랑살랑 흔들리며 간지럼을 피운다. 미나리꽝이 장대비로 물이 넘쳐나자 미나리가 뿌리째 떠서 흘러 내려와 음모 사이를 헤집고 든다. 미나리가 뿌리를 질 벽에 착근시키자 질 벽 속으로 파고드는 실뿌리가 간질간질한 쾌감을 전해 온다. 파릇하게 돋아난 미나리의 여린 잎순이 흔들리며 질 벽에 간지럼을 피운다. 한여사는 횡재를 만난 듯 즐거움에 취해 온몸을 떤다. 숨길이 가빠진다. 참으로 야릇한 일이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떠올려도 예전의 느낌조차 아슴아슴하던 성감이 이 나이에 다시 살아나다니. 그네는 코앞에 떠도는 향기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미나리와의 교접은 현실 속에서 그를 스쳐간 수많은 남자들의 교접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것은 슬픈 기억이 아니라 나를 찾는 행복한 행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여사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을 찾는 이 순간, 그는 사람들로부터 ‘치매’로 판정된다.

잠결에 귀신이 한여사를 불러냈나봐. 얼굴에 기어 다니는 저 개미떼 봐. 가렵지도 않나봐. 무슨 힘으로 기어서 예까지 왔을까? 저 피딱지 봐. 무르팍이 온통 까졌어. 정강이뼈가 보이네. 얼마나 아플까. 쯔쯔. 노망들면 아픈 걸 어떻게 알아. 제 똥도 찐빵인 줄 알고 먹는다는데. (중략) 사람 한평생이 이렇다니깐. 꽤나 몸치장이며 얼굴을 가꿔쌓더니만, 이젠 아주 갔어. 망령도 가지가지라더니. 나동으로 옮겨야겠지? 우리도 저 꼴 되기 전에 어서 죽어야지. 주위의 웅성거림에 한여사는 가까스로 깨어나 실눈을 뜬다.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온 치매 ─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의 ‘미치고 어리석음’도 아니요 노망도 아니다. 그의 중얼거림이 다른 사람에게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겠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가장 명료한 현실이다. 그가 화장한 얼굴 뒤에 감추어 둔 현실이고 그 속에서 끝없이 찾아 헤매던 진실이다.

다른 이들이 ‘치매’라고 판정하는 그 순간에 그녀는 자신을 찾고 삶의 의미를 회복한다. 그래서 드디어 한 많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게 된다. “나, 난 더 바라지 않아. 지옥, 거기도 가보고 천당, 극락, 거기도 가봤으니깐. 더 바랄 게 뭐 있겠냐.”고 입속말로 떠듬거리고, 마침내 떠나겠다고 말한다.

한참 뒤, 그네의 표정이 찌그러지더니 입술이 다시 꼼지락거린다. 나, 주, 으, 며,, 가, 아, 데, 야. 거, 거, 기, 로,, 다, 시,, 가, 아, 데, 야. 아, 무, 도,, 어, 으, 느,, 거, 기, 로,, 보, 내, 주, 으. 다, 시,, 오, 지,, 아, 흐, 데, 야. 어, 마, 아,, 나, 느,, 누, 구, 야? 내, 가,, 도, 대, 체,, 누, 구, 지?

흔히 우리는 치매를 현실을 망각하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질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한여사가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점아가’를 찾는 순간이 바로 치매가 온 시점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점에서 ‘나는 누구지?’라는 한여사의 말은 치매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잘 보여 준다. 삶의 거짓을 모두 걷어버리고 난 본질,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기억이 치매의 저편에 끝끝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치매를 다루는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는 치매가 현실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나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되새겨볼 수 있다. 그래서 아직은 ‘맑은’ 정신을 지닌 우리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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