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②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②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21.09.24 1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승복 작가
양승복 작가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 문은 다 잠겨 있어 창문으로 내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어. 그 곳을 향해 딸들 이름을 부르며 나가게 해 달라고 했지만 나만 따돌리고 대답을 하지 않았어. 내가 나타나면 슬슬 피하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야.

아무리 소리 질러도 타박하는 사람은 없고, 기다리면 딸들이 온다고 달래는 이상한 곳이었어. 아이 취급하며 노래 불러주며 놀아주고, 마실 거 먹을 거를 내 놓으며 먹으라며 나를 달랬지.

이곳은 이제까지 살아오던 세상과는 다른 곳이었지. 나갈 수도 없게 문은 모두 잠그고 마음대로 할 수 없이 간섭하면서, 이유 없이 잘 해주고, 친절한 척 하고, 귀찮게 했지. 모르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 같기도 한 이곳을 도통 모르겠어.
 
밥은 밥그릇도 없이 판에다 밥을 주고 반찬은 심심해서 먹을 수가 없고, 된장은 날내가 나서 밥맛을 버렸지. 난 먹을 수가 없었어. 밥을 안 먹으니 죽을 주고, 죽은 죽어도 먹기 싫다고 하니 다시 밥을 주고, 뭐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어. 숟가락으로 밥 판을 치며 가지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고약을 떨었어.

딸들이 간간히 죽을 쑤어 와서 먹기도 했지만, 나만 빼고 모두가 한편인 건 확실했어. 늘 나를 바라보면서 수근 거렸거든.

목욕 시켜 준다고 옷을 벗기려 하여 머리를 후려치며 나무랬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이들은 일일이 막으며 간섭을 했어. 내가 혼자 한다고 하면 위험하다고 참견하며 정말로 귀찮게 했지.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살았어. 몸은 작아도 강단이 좋아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거든. 이렇게 멀쩡한데 약을 먹으라고 하는 거야. 약을 먹지 않았어. 내가 살아 온 긴 세월을 자기들 마음대로 돌려놓는 것이 보통 화가 나는 것이 아니야. 아프지 않는데 약을 먹으라고 한다며 소란을 떨었어. 그래서 약을 먹지 않게 되었어.

-같이 사시는 어르신들이 식판에 드시는 것을 보고 조마님도 서서히 드시게 되었으며, 약은 시럽에 타서 드리기도 하고 간식에 넣어 드렸다-
 
못 나가게 문을 다 잠그고 망을 보는 거야. 답답해서 살수가 있어야지. 딸이 기다린다고, 가야 한다고 졸랐지만 열어주지 않아 창문바라기가 되었어.

그래서 날마다 농을 열고 옷가지를 보자기에 쌌지. 니것들이 아무리 막아도 나갈 것이라고 틈을 노리고 있었지만 한 번도 도망치지 못했어. 야속하게도 말이야. 그래도 짐 싸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 보따리 싸는 게 유일한 낙이고 희망 이었어.

나가지 못하는 나는 밤마다 꿈을 꾸며 온 몸이 땀에 젖도록 돌아 다녔어.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데려간 반장을 찾아 따지러 다니기도 하고, 딸들 이름을 불러 대기도 하고, 침대에서 내려와 다른 침대 할머니를 깨우고 방마다 불을 켜고 찾아다니고 했어. 밤마다 잠도 자지 않고 나는 점점 멀리 가고 있었지.

사람들은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닦아 주고, 때로는 새 옷을 입혀주며 어디 갔다 왔느냐며 웃어 주고 했어.

내 이름은 조마님이었다네. 어르신이라 부르면 지팡이로 바닥을 치며 조마님이라 부르도록 했어. 한양 조 씨 양반가에서 귀하게 자란 나를 마구 대하고,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면 혼 줄을 내주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어. 허투루 대하는 사람들에게 호통도 치며, 이곳에서도 낫 갈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지키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영원한 조마님으로 살게 되었지. 위험하다는 핑계로 지팡이는 빼앗기고 작은 구루마를 타고 다녔지.

그렇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옆집 사람들이 놀러 온 것처럼 익숙한 얼굴들이 되었네. 아니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어. 넓은 곳으로 많은 노인들이 앉아 있었지.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내 손을 잡고 알랑거리며 노래를 부르라고 했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웃기를 바라고, 노래도 따라 부르라고 입을 크게 벌려가며 춤을 추었지. 평생을 이렇게 흥청거리며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어리어리 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거리고 있었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모여 본 적도 없는데 노래를 한다니, 처음에는 망측한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속에서는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었던 거야. 내 속에 모든 것이 살아 있었어. 낫 가는 일에 전념한 나는 모든 것을 참고 감추며 살고 있었어. 얼어있던 가슴이 이렇게 하나하나 풀려 나오고 있었던 거야.

나는 덩실거리고 춤도 추고, 웃으며 노래도 흥 있게 잘 불렀어. 그들은 나를 에워싸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 모두가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처럼 낯이 익었어. 오래 만에 만난 처녀 적 친구들 이었어. 내 기억 속에 있는 친구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잡고 그렇게 놀았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인가. 내 머릿속 주름에 살이 오르고 있는 것인가. 나는 가끔 처녀 적 친구도 만나고, 남편도 만나고, 어린 딸도 만나며 살아가고 있었어. 그럴수록 점점 혼란스러웠어. 때로는 그 속에서 더욱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밤마다 그 실체를 찾아 헤매고 다니게 했어.

창밖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이 생겼다네. 그렇게도 답답하던 이 생활에 체념을 한 것인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모르지만 흥이 살아난 것은 확실하네. 

내가 좋아하니 노래 부르고 춤추는 사람들에게 자주 데리고 다니며 놀게 했지. 이렇게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좋았지. 내가 이런 놀이를 좋아 하는 지도 모르고 살았으니까. 평생을 속으로만 흥얼거리던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살게 되었어.
 
-조마님은 흥이 있어 노래를 잘 불렀으며, 봉사오신 분들에게 우리가 모르는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 했다. 식사는 감정기복이 심하실 때는 투정을 부리며 던지기도 하셨지만 대체로 식사를 잘 하셨다. 목욕 할 때 옷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으셨다. 당신 스스로 벗고 혼자 하시면서 보호사님들이 도와드렸다. 성격상 까칠한 모습으로 고약스러운 행동을 하셨지만 성품이 착한 분으로 습관적인 배려가 있었다.

밤마다 병실에 불 켜고 다니는 행동은 한동안 지속되어, 같이 이름을 부르며 찾으러 다른 곳으로 모시고 가기도 하고, 앉아서 이야기도 하면서 생각을 돌리게 했다. 

어느 한분에게 집착하여 그 어르신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00 아주머니” 부르며 “왜 집에 가지 않고 여기 있느냐”고 매일 찾아 다녔다. 그 어르신을 일 인실에 모셨어도 찾아내 빨리 집에 가시라고 성화를 하셨다. 그 집착이 끝나지 않아 어르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병동을 옮겨 드렸다. 그리고 찾아다니다 서서히 잊어 진 듯이 찾지 않으셨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