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④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최우수상] 낫 가는 여인④
  • 양승복 작가
  • 승인 2021.09.2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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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복 작가
양승복 작가

세월의 시작은 봄인 거 같네. 꽃을 피우거든. 나는 더 마르고 굳어 가는데 말이야. 

바스락 거리는 내 몸에 손을 대는 사람과 눈을 마주하면, 돌보는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내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부며 대지. 이 송장 같은 늙은이가 살아있는 기척을 보이면 그게 반가운 모양이야. 

몇 년 전부터 병원치레를 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 이제는 풀어낼 것도 없는 텅 비어버린 마음인데 무엇이 아쉬워 살아오는 것일까. 보잘 것 없는 나만 붙들고 살아 온 허망한 날들이었는데. 그 척박한 삶의 끝에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과 대우를 받으며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조마님이라고 부르며, 때마다 입도 잘 벌리지 않고 시원스레 넘기지도 못하는 나에게 정성껏 죽을 먹이고. 똥오줌을 깨끗하게 갈아주고, 노래를 좋아 한다고 앉혀놓고 노들강변을 한차례씩 불러주고. 기분이 나아져 따라하면 난리들을 피우지. 연거푸 몇 곡씩 부르며 사진을 찍어 딸들에게 보내기도 하니 말이야. 

그러면 딸들이 전화해서 같이 부르기도 하고, 좋아졌다고 감사인사도 하곤 하지. 

간난아이 때는 어머니의 손길로 살을 올랐지만. 지금은 바람의 손길이 내 살점들을 흙으로 보내고 있다네. 통통했던 살점을 거죽만 남기도 다 가져갔으니 사람모습이 아니라네.
 
얼마 전까지 나는 밤이 되면 잠을 자는 것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발뒤꿈치가 다 닳도록 밤새 헤매고 다녔지, 밤새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내젓기도 하고 두 발을 허둥거리며 소란을 피웠지. 

남편과 살던 집으로 가서 젊은 남편을 만나기도 하고, 귀여운 어린 딸을 만나기도 하고 발뒤꿈치에서 피가 나도록 돌아 다녔지. 그러면 피멍으로 너덜해진 발을 잡고, 간호사는 깨끗하게 씻어내고 약을 바르고, 가제를 도톰하게 붙여 배게 위에 올려놓았어. 그러면 발이 나을 사이도 없이 낮에는 자고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헤매고 다녔어. 

선생님들은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히며 ‘기운이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어, 치매는 무서워,’ 라는 말을 주고받았지.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보리쌀을 닦아 안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소란을 부릴 때도 있었어, 시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정신이 혼미해 지면서 밧줄이 풀리듯이 풀려 나오는 거야. 그런 나에게 선생님들은 “시어머니가 조마님 주무시는 동안 보리 쌀 안쳤대요. 하며 죽을 먹여주곤 했지.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하던 내 혼이 이승에 머물면 살아 있는 거고, 다시 외로운 길을 가야하는 거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끝이 야속하기도 하고 진저리나게 지루하기도 해. 

간호사는 발 치료 대신 굳어버린 내 다리를 잡고 굽혔다 폈다하며 놀아주네. 이제는 팔 다리도 움직일 수 없이 기력이 쇠해진 나에게 힘내서 밤 마실 가시라고 하네. 아픈 아이 다루는 엄마같이 "빨리 나아서 뛰어 놀아라" 라고 하는 것 같았지. 정말 내 어머니같이 많이 의지하고 산다는 생각이 드네. 외로운 길에 한 송이 풀꽃같이, 한 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야. 
 
등이 배겨서 아픈 것도 아프지만 쓰려서 돌아눕고 싶어도 꼼짝 할 수 있나. 그런데 등창이 났다는 거야. 등창치료를 한다고 소독을 한다, 약을 바른다고 들락거리며 이리저리 돌려 뉘이네. 등창이 문제가 아니야. 옆으로 누워있으니 어깨와 팔이 저려 아파오고, 침을 삼킬 수가 없어 베개로 흘러내리는 내 모습이 얼마나 흉하겠어. 등창이란 놈이 죽기 전에 내가 죽을 지경이야. 밥맛이 없어 삼키지를 못하니 콧줄을 해서라도 먹어야 산다고 딸에게 구구절절 설명 하는 거야. 

때마다 죽을 입에 대고 입을 벌리라고 성화를 하고, 입을 벌리면 죽을 떠 넣어주고 “꿀떡 꿀떡” 삼키라고 애걸을 하는 거야. 딸들이 콧줄을 반대한다고, 이러다 가시겠다고 안타까워하며 말이야.

딸들이 봄마다 고열에 시달리는 나를 입원 시킬 때 나를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만들지 말라고 소리 질렀지만, 내 늙은 딸들은 어미를 잃을까 절절했지. 그런 딸들이 다행이도 이번에는 반대한다는 거야.

콧줄도 하지 않고 죽도 넘기지 않는다고, 기력이 없어 잠만 자는 나를 작은 방으로 옮겨갔어.

밤이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홀로 있는 방. 하늘도 보이지 않는 작은 방이 답답하다 했더니 은혜방 이라는 거야. 죽고 싶었는데 혼자인거는 무섭고 싫더라구. 딸들도 그 방에 있는 나를 안고 울었지.  딸들이 간절하게 부탁하여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지. 햇살이 있는 창가에 누워, 밤이면 가슴 절이는 숨결을 함께 들으며, 수런수런 우리들만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게 되었지.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아 다행이야. 
 
이곳에 온지 8년이 되었어. 강산이 변하는 긴 세월을 살았네. 처음엔 살아온 세월도 서러운데, 구차한 노인들만 모아놓은 이곳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싫었어. 팔자가 한스러워 내 복을 나무라며 살았지. 그러다 다리 힘이 없어지면서 구루마를 타고 생활하다, 허리가 아파 누워있게 되면서 저승으로 가는 길 몫에 줄을 서게 되었어.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있었나 기억도 안 나네.

옆 침대가 비면, 새 얼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러다 나만 남기고 길을 떠나 가버리고, 또 다시 오고, 다시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했지. 청상과부로 외롭게 산 세월도 모자라, 긴 명줄까지 타고난 팔자가 박복하여 신들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 왜 나만 데려가지 않는 거냐고. 

어느 날부터 기다리는 이 길이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니 지루하지 않았네. 세월이라는 배를 타고 그냥 흐르는 거지.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 있는 나에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하지. 그렇지 않다네. 이렇게 누워 있어도 들을 수 있고, 예뻐하는 것도 알고, 싫어하는 것도 안다네. 그 명이 다를 뿐이고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니 그렇게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내 옆 침대에 생명 연장 줄을 달고 오는 동지들이 있었지. 그것이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네. 바라보고 혀를 차며 비난하지 말게나. 타고난 운명 속에 정해져 있는 명을 찾아가는 길이 멀고 험준할 뿐이라네.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동반하는 길도 많다네. 좋은 꿈을 꾸도록 기도하고 도와주게나.

명은 태어 날 때 약속이 되어 있는 거라네. 아무리 재촉해도 그 명을 다하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는 게 명줄이지. 십년 가까이 침대에서 멀미나도록 기다린 지루한 길도 있다네. 몇 번이나 험준한 고비를 넘기면서 그 때마다 명줄을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 명대로 잘 살고 깨끗한 몸으로 갈 수 있어 천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 가는 길에 철이 드는 거지.

젊은 영감이 나를 부르네. 길고 길었던 고부랑길 끝에 딸들이 웃으며 보내주면 좋겠네. 많은 빚을 지고 가네. 고맙네.
 
-조마님은 밤마다 침대에서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질러 발 발뒤꿈치가 늘 상처였다. 살이 올라올 수 없이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헤매고 다녔다. 푹 파인 상처는 조마님의 마음의 상처였다. 그리고 낮에는 주무시고, 가끔은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웃고 대화도 하시고 노들강변과 태평가를 잘 부르셨다. 밤마다 섬망에 시달리는 분이 아닌 것 같이 모두가 손뼉 치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병원에 몇 번 오갈 때 마다 딸들은 사이가 멀어졌다 가까워 졌다 반복하시다 돌아가실 무렵에는 서로 아끼는 모습이었다. 조마님은 목욕하시는 날 돌아가셨다. 깨끗하게 목욕하시고 옷을 입혀드리는데, 하얀 혀 위로 혈흔이 생겼다. 그 모습은 붉은 장미꽃잎처럼 아주 빨갛고, 선명했다. 병원으로 모셨으나 바로 운명하셨다. 

생전의 깔끔한 모습대로 깨끗하게 하시고 기다리는 영감께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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