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①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①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09.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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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님
이아영 작가

수상 소감

저는 이번 제5회 디멘시아 문학상 수기(에세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이아영입니다. 저는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전공에 재학 중에 있습니다. 먼저, 저에게 이러한 과분한 상을 주셔 큰 감사를 표합니다. 저의 뜻이 잘 전달이 된 것 같아 너무나 기쁩니다. 특히 수기(에세이) 부문은 이번 5회때부터 추가 신설이 된 분야라 더욱 뜻깊습니다.

‘치매’라는 주제와 수기 부문이 있다는 것을 보고 바로 저의 이야기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3년전 저의 친할머니가 치매로 돌아가신 후, 저는 큰 후회를 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치매라는 병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고, 치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가슴이 울렁이는 찰나가 많았습니다. 치매에 관한 기사를 볼 때에도 마치 저의 할머니처럼 느껴져 그 기사는 끝까지 정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제가 창작의 길을 걸으면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꼭 써야겠단 다짐을 해왔습니다. 진짜 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니 더욱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의 퇴고를 거치고 나서야 이 글이 완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할머니와 저의 이야기를 글에 녹여냄으로써 저의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제 글을 보는 독자들 중에서도 분명히 꼭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지난 사람에 대한 후회, 그리움을 지닌 독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글을 읽고 같이 공감하고 깨우치며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아직 학생이라 쌓아 온 연륜이 없어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상을 통해 제가 앞으로 더 써나갈 이야기들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깨우치기도 하고 글로 인해 사람의 찰나의 심리,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글이 제 이야기가 보는 독자들에게 공감이 되고 진심이 전달이 될까라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상으로 인해 그 고민이 조금은 덜어진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진심이 전달이 된다는 사실에 굉장히 벅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수상에 감사를 표합니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치매라는 병이 좋은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진 않습니다. 물론, 모든 병에 걸린다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기는 하나 혀를 차며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치매라고 하면 대부분 요양원을 찾는 것 같은 경우입니다. 치매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가장 고통스러울 것은 환자 본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다양하게 할머니 이야기를 써나갈 계획입니다. 이번 수상에는 저의 할머니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계신 저의 할머니에게도 저의 뜻이 전달이 되었기를 바라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수기를 통해 지금이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하시는 독자분들도 계시길 바랍니다. 처음 써보는 수상소감이라 많이 서투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들어주심에 감사를 표합니다. 다시 한 번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셔 너무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내려가도록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감이 되는 좋은 글 많이 써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잎 클로버

무성하게 자라난 잎사귀들을 품고 있던 나무는 자신들에게 위태로이 매달려있는 사진들을 꼭 붙들어매고 있었다. 또한, 옅게 살랑이던 바람은 나의 콧속을 간질이다 달아났다. 나도 모르게 훅 끼쳐 온 간지러움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한참을 같은 자세로 서 있던 나는 곧이어 작게 솟아나 있던 나무 앞에 그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매달려있던 사진들은 나와 마주했고 나도 그 사진을 따라 활짝 웃어보였다. 나무 아래 펼쳐져 있는 클로버들은 감쪽같이 어딘가에 있을 네 잎 클로버를 감추고 있었다.

출근길 꽉 막힌 도로 위, 왠지 모르게 상기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리를 피웠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대개 오늘같은 상황이라면 짜증이 밀려올 법도 한데 어쩐지 오늘은 그저 콧노래만 흥얼거릴 뿐이었다. 거의 멈춰있다시피 할 땐 강의 자료를 수시로 확인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내부순환로를 통과하고 나서야 속 시원하게 엑셀을 밟을 수 있었다.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다왔을 무렵, 학교 도착하기 전 크게 나있는 육교 위쪽에 어떤 할아버지가 목놓아 울부짖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곧이어 나를 향해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허겁지겁 비상등을 켜고 차를 도로 갓길에 세웠다. 나는 반사적으로 할아버지가 있는 육교 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풀이 죽어 앉아 고개를 떨구고 목놓아 울부짖고 있었다. 빠른 템포를 내던 구두 소리는 할아버지 앞에서 멈췄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어요? 가시려던 곳은 어디세요? 괜찮아요. 정말 다 괜찮아요.”

나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살며시 들썩이던 할아버지의 어깨를 감싼 후 조심스럽게 토닥여 주었다. 육교 위는 할아버지의 크나큰 울음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육교 위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도 자연스럽게 나와 할아버지를 거쳐 지나갔다. 쉼없이 울던 할아버지는 나의 말없이 계속된 토닥임에 조금씩 울음을 그쳐갔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겨우 입을 뗐다.

“마..누라. 우..리 마누..라가 읎어. 나.. 우야고 나는.. 으디 갔는 지 모르겄어..”

나는 할아버지 말에 더욱 더 어깨를 거세게 끌어안았다. 여전히 할아버지의 울부짖음은 우렁차게 계속되었다. 

머리 위로 수많은 나뭇잎이 바람에 일렁였고, 그 아래 벤치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을 하고 텅 빈 놀이터를 넋 놓아 바라보고 있었다. 활짝 고개를 내민 해는 할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을 더욱 밝게 비춰주었다. 그리고 벤치와 조금 거리를 둔 곳에서 나는 천천히 벤치쪽으로 거닐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잠시 멈추었고, 핸드폰에 가득 쌓인 연락들을 확인한 뒤 다급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한 쪽 팔꿈치에는 바 아이스크림 두 개를 간당간당하게 끼워놓았다.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강의는 본 교수의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휴강을 공지합니다. 미리 공지해주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보강 일정은 추후 공지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정말 죄송합니다.‘

공지사항 게시판에 본 글이 게시되었고, 게시글을 완료했다는 알림이 뜨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넋 놓고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본 나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금 빨리 놀렸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구두 소리에도 할아버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여전히 넋을 놓고 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자, 여기요. 시원한 거 드시고 앓으셨던 속마음 시원하게 가라앉혀요~ 그리고 저한테 막 하소연하셔도 괜찮아요. 저 얘기 듣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얘기 하고 싶지 않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막 재촉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하하. ”

나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겨우 끼워 둔 바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며 말을 건넸다. 나의 격려에도 할아버지는 쉽사리 입을 떼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준 아이스크림만 묵묵히 먹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나 또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며 급하게 할아버지를 재촉하지 않았다. 또, 할아버지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놀이터로 옮겼다. 우리는 그렇게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산뜻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막대기를 잘근잘근 씹다 겨우 입을 떼기 시작했다.

“우리 마누라 좀 찾아줘. 어디 갔는 지 모르겄어. 은제 없어졌는지두 모르겄어. 그냥 갑자기 읎어져 부렸어. 나 우예? 좀 찾아주면 안되겄나? 보고싶은 울 마누라.. 분명 이 길로 같이 왔는디 마누라가 길을 잘못 들은 거 같어. 길만이라두 알려주면 안되겄나?”

어렵사리 입을 뗀 할아버지의 물음에 이번에는 내가 입을 떼지 않았다. 아니 떼지 못하였다. 그저 남아있는 아이스크림만을 베어 불며 정면에 있는 놀이터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할아버지 눈에 또다시 물렁한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손에 꼭 쥔 채 묵묵히 할아버지 말을 듣고만 있었다. 또다시 고요함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고, 할아버지의 반복되는 코 훌쩍임과 동시에 나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곧이어 나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이내 나는 고개를 떨궜다. 곧바로 나의 어깨는 살짝 들썩이기 시작했다. 굵은 눈물이 내허벅지 위로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내 눈물에 흠칫한 것인지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나의 울음에 대해 물었다. 아주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덕분에 나의 어깨는 더욱 거세게 들썩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쏟아내던 나는 지쳐 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한 할아버지를 보니 우리 할머니가 더욱 그려졌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순 없기에 황급히 눈에 남아있는 물기를 대충 손으로 닦아냈다. 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할아버지한테도 건네 드린 뒤 고개를 돌려 코를 풀어냈다. 

나는 그랬다. 할머니를 그렇게 보내드린 후부터 눈에 스쳐가던 모든 할머니는 물론 할아버지들까지도 우리 할머니로 그려졌다. 허리를 깊이 굽혀 유모차를 막대기 삼아 걸어가시던 할머니도, 정말 아무것도 모른단 순수한 얼굴로 길을 물어보던 할아버지도, 지금 내 옆에 있는 할아버지까지도… 우리 할머니와 겹쳐져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워낙 많이 베긴 굳은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소 많이 거칠었지만 깃든 따스함은 여전했다. 그리하여 나도 따라 할아버지 손 위로 내 손을 얹어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누렇게 변색된 치아를 내보이며 활짝 웃어주었다. 그리곤 또다시 내게 같이 할머니를 찾아달라 일렀다. 참으로 순진한 얼굴을 한 것이 나를 흔들었다. 한참을 할아버지를 바라보다 먼저 할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이 교수, 또 휴강했어? 대체 매번 무슨 일이야”

그랬다. 자주 거리 한복판에서 헤매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놓칠 수 없어 자연스레 휴강을 공지하는 날이 잦았다. 물론 보강을 생각하고 벌인 일이라지만, 소홀했던 건 사실이었다. 마땅히 들어올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로 휴강을 공지했다가 몇 번이고 학과장님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기에 사실대로 토로할 순 없었다. 그렇게 찾아낸 핑계라곤 집안 사정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변명을 늘어놓을 때에 흔히 나오는 변명 중 하나. 그렇다고 이 변명에 대해 그 어느 누구든 표정이 금세 바뀌며 자세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좋은 변명이었다. 

보강 자료를 위해 준비해야할 것은 ‘치매’에 관한 심리였다. 수업 자료를 만들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켰지만, 몇 시간 째 새하얀 화면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수업 자료는 그야말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강의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자료들을 토대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타자를 놀리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갈 것만 같은 이유이기도 했다. ‘치매환자의 행동심리증상’… 겨우 제목만 적어놓은 채 한참을 깜박이는 커서만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깜박이는 커서와는 달리 내 머릿속은 좀처럼 번뜩이지 못했다. 금세 머릿속은 우리 할머니로 가득 차올랐던 이유였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미리 치매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았더라 면에서 나온 후회부터였다. 어린 나이임에 무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잊지 않고 평생의 한이 되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늦게나마 그들의 심리를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럼 이제라도 우리 할머니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작 이 전공을 그만둘까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더한 후회 막심한 날들이 내 앞을 가로막을 것만 같았다. 이미 하늘에 있는 우리 할머니가 그곳에서 마저도 나를 봐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나의 지나친 착각일 수도 있었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와 나, 세상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약속이니 놓지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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