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③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우수상] 네 잎 클로버③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10.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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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작가
이아영 작가

그 때, 내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간 곳은 경찰서였다. 내가 해줄 순 있는 것은 이게 최선이었으니. 경찰관은 나에게 아마 치매이신 거 같다며 가족들에게 연락 드렸으니 걱정 말라 일러주었다. 나는 으레 짐작했던 참이라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음에 안도했다. 

할아버지를 향해 집요하게 물어보는 경찰관의 물음이 따갑게 경찰서 안을 울렸다. 할아버지는 그런 경찰관의 물음에도구석 한 곳에서 웅크려져 있을 뿐이었다. 속으로 내 탓도 하고 있을 것만 같아 씁쓰름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학교 근처 가까운 경찰서에 잘 데려다 드린 후, 차로 돌아왔을 무렵이었다. 차 문고리에 현금이 끼워져 있었다. 당장은 보강 준비 때문에 경찰서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일단 지갑에 넣어두었다. 누군가 실수로 끼워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아함을 접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며칠씩 차 문고리에 현금이 끼워져 있었다. 한 사람의 고의라 생각하고 더욱 기다려 보았다. 누가 의도적으로 내 문고리에 현금을 끼워 넣으면 기다렸다가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와 나와의 타이밍은 좀처럼 맞지 않았다. 

계속해서 학교 근처에 차를 세워 놓을 때마다 그 누군가는 차 문고리에 잘도 돈을 끼워 넣고 갔다. 급기야 어느 날은 찐 만두도 놓고 갈때가 있었다. 찐 만두를 보았을 때에는 괜스레 우리 할머니도 생각나 찝찝했다. 범인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딱히 화를 내고 싶진 않았다. 범인은 대범해진 것인지 계속해서 돈과 찐 만두를 놓고 갔다. 반드시 내가 그 범인과 만나야겠다 다짐했지만, 어림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속해서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지닐 순 없었다. 범인을 기다리다 모아진 돈만 20만원이 훌쩍 넘었다. 찐 만두도 받은 것만 해도 질릴 때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또다시 할아버지를 데려다 드렸던 경찰서를 재방문했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것인지 할아버지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보자마자 아는 척을 해주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경찰관의 말로는, 그 날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데리러 와 잘 귀가하셨다고 했다. 가족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한두 번 그랬던 것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다행히 날 기억해주는 그 경찰관을 붙잡고 돈과 찐 만두 봉투를 건네며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경찰관은 주변 CCTV를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 했다. 나는 분실신고 접수를 확인한 뒤 경찰서를 나왔다. 그전에 범인을 잡으면 대화를 해보고 싶단 당부도 전했다. 왠지 모르게 화를 낸다기 보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모르는 누군가였지만.

오래 걸리지 않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을 찾았다는 얘기였다. 경찰관은 경찰서에 방문하여 분실 신고했던 품목들을 직접 범인에게 전달해줬음 한다라는 얘기를 전해왔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경찰이 괜한 소리를 한다곤 생각지 않았다. 그렇게 강의를 마친 후 경찰서에 다시 한 번 방문을 하였고, 경찰관은 날 반기며 돈과 찐 만두를 그대로 나에게 건넸다.

“범인이 할머니더라구요. 주소지랑 다 확보해 놨으니까 직접 돌려 주세요. 알아보니까 치매이신 거 같더라구요. 한 번 뵙고 왔는데 혼자 사시고 손녀 차인 줄 알고  그렇게 놓고 가신 모양이에요. 차가 파란 색이죠? 손녀 차가 파란색인 것만 알고 그러신 거 같아요. 커버린 자식들보다도 손녀랑 각별한 사이였나 봐요. 손녀가 할머니 때문에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랬나 봐요. 그 손녀랑 자식들은 지금 모두 타지에 머무르는 것으로 확인 되었는데 연락은 닿지 않았어요… 직접 전달해 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연락 드렸어요. 뭔가 모르게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경찰관의 얘기를 들으니 순간 멍해졌다. 복잡미묘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손녀를 찾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손녀가 그야말로 이전의 나와 겹쳐져 떠올랐다. 경찰관에게 한번만 더 손녀에게 연락을 해보자고 권했다. 계속해서도 닿지 않으면 그때 직접 가겠다 일렀다. 한동안 접어 두었던 기억이 다시금 펼쳐져 올랐다. 

끝끝내 손녀와 자식들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중 후회할 손녀의 그림도 잠시나마 떠올랐다가 뭉개졌다. 경찰관도 그냥 내가 직접 전달해주라 일렀다. 나는 경찰관한테서 할머니의 집 주소를 받아 들었다. 할머니의 집은 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 정리를 했다. 할머니는 이미 치매 상태이시고, 현재 기억의 조각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어느 때에 머물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기억의 조각을 깨고 싶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미친 척해봐도 되지 않을까. 한 번 더 헛웃음을 지으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악셀을 힘껏 밟았다.

“할머니! 내가 너무 늦었지? 요새 넘 바빠서 정신이 없네. 아니, 뭐 하고 계셨어?”

그랬다. 나는 이 할머니의 손녀가 되기로 했다. 혹, 진짜 손녀가 오기나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겐 지금 당장의 이 할머니의 아픔이 중요했기에. 할머니는 정말 손녀라고 생각한 듯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어이구 내새끼 인자 왔어? 나가 얼마나 찾았는디. 잘 왔어. 나가 준 건 잘 봤제? 할미가 미안혀. 인자 아프진 않어? 참말로 미안혀. 할미 맘 알제?”

할머니는 망설임없이 나를 푹 안아 주었다. 할머니가 안아주는 순간 구수한 내음이 내 콧속을 간질이다 달아났다. 그 내음을 맡자마자 나도 모르게 울컥함이 새어 나왔다. 나 또한 할머니를 붙잡고 그대로 흐느꼈다.

“할머니, 내가 넘 늦게 와서 미안해. 더 일찍 왔어야 됐는데. 미안해 너무 미안해. 다 알지. 할머니 맘 다 알아. 누구 손녀딸인데. 괜찮아 다 알아.”

할머니 집 안은 구수하고도 굉장히 따뜻했다. 부엌에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둘러본 집안에는 손녀가 그간 받았던 상장들이 늘어져 있었다. 과학 글짓기 대회 우수상, 체육 육상대회 1등상, 학급 부회장 임명장, 교내 영어 발표대회 최우수상 등. 이 손녀딸도 어린 시절의 추억 속 조각에 함께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였으리라 알 수 있었다. 괜스레 내가 다 뿌듯했다. 그리고 진열된 상장들 속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니와 어린 아이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많이 오래된 사진이라 희미했지만 둘의 웃음만큼은 매우 선명했다. 할머니와 손녀딸은 똑닮아 아주 예뻤다.

할머니는 어김없이 찐 만두를 내왔다. 지금 막 찐 것이라 김이 모락모락 나 꽤 먹음직스러웠다. 우리 할머니가 쪄 줬던 만두와 몹시 비슷한 모양이었다. 또다시 울렁거리는 무언가를 애써 꾹 눌렀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연기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야 나는 한 입을 할 수 있었다. 고소한 찐 만두의 맛이 입 안 가득 채웠지만, 이 만두 또한 그 맛이 나진 않았다. 정말 그 어디에서도 그 맛을 절대 다시는 찾을 수없단 생각에 벅차 올랐다. 자꾸만 올라오는 저릿한 무언가를 만두로 꾸역꾸역 삼켜냈다. 

“맞아 할머니. 왜 내 차에 이런 걸 다 끼워 놨어. 내 차인지는 또 어떻게 알구. 나 돈 잘 벌어. 괜찮아. 이거 할머니가 다 써. 아니 할머니 용돈 해. 할머니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사. 그렇게 해도 충분해.”

꾸깃꾸깃하게 접혀진 그간 모은 돈을 할머니에게 돌려주었다. 더하여 내가 좀 더 보탠 돈을 말이었다. 할머니는 준 걸 다시 돌려받기 싫다며 내색했지만, 나의 지독한 매달림 끝에 다시 돌려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물론 내가 장단맞춰주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렇지만 그저 나의 존재에 저렇게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할머니를 보니 영락없는 어린 아이 같아 멈출 수 없었다.

이제 강의를 마치고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할머니 집으로 당연해졌다. 할머니는 여전히 날 손녀딸인 듯 매번 반겨주었다. 진짜 또 하나의 우리 할머니가 생긴 것만 같아 덩달아 나도 반가웠다. 이따금 내가 모르는 과거 얘기가 나올 때면 흠칫하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우린 괜찮았다. 하루는 할머니를 학교 뒤쪽에 있는 큰 공원으로 데려갔다. 공원 한 편에 널찍한 들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 집 앞에있던 들판처럼 수없이 펼쳐진 클로버들이 우리를 반겼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이끌고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어린 아이처럼 좋다며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시작했다. 좋으면서도 쓰렸다. 할머니는 얼마 안 가 다리가 욱신거린다며 주저 앉았다. 마치 지난 날 주저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처럼.

“아 할머니! 주저 앉으면 어떡해. 그렇게 주저 앉아버리면 그냥 그 정도의 사람이 되는 거야 알아? 누구나 첨엔 참 열심히 해. 그런데 점점 찾다가 한 명씩 자기 합리화를 한다? 원래 네 잎 클로버는 사람들의 환상과 행복을 위해 그냥 만들어진 구설일 뿐이라고. 아님 두 잎 클로버를 합쳐 네 잎 클로버 흉내를 내기도 하고. 자긴 행운을 찾은 사람인 걸 과시하기 위해. 것도 합리화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저들은 딱 거기까지인 사람이 되는 거야. 끝까지 찾아낸 사람이랑 못 찾고 합리화 하는 사람이랑 다른 거지.”

할머니는 정말 어린 시절의 나와 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들은 체 만 체 하면서 온몸으로 힘들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이끌고 다시 내려왔다. 할머니와 같이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갈 때면, 모든 상인들은 할머니와 나를 틀림없는 손녀딸과 할머니로 알았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우리 손녀딸 참 예쁘쟈? 하며 맘껏 자랑을 했다. 나도 그렇게 우리 할머니에게 깃든 아픔을 조금이나마 승화시킬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우리 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우리 할머니 산소에는 전보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 나를 반겼다. 할머니가 그렇게 간 후 가족 중 그 누구보다 꾸준히 할머니를 찾았다. 매번 와서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할머니는 분명 듣고 있을 것이었다.

수국 한 송이를 나무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나무에는 다양한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진 사진들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할머니를 향해 나 또한 한껏 웃어 보였다. 사진 속 할머니도 매우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아주 고운 우리 할머니.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할머니는 매우 고왔다. 

할미. 내가 요즘 뜸했지? 나한테 또 다른 할미가 생겼다? 할머니랑 똑같이 찐 만두도 해줘. 할머니가 해줬던 그 맛은 절대 없더라. 이 할머니도 치매셔. 날 진짜 손녀딸이라 생각 하더라고. 할머니도 생각나고 난 아주 좋아. 우리 할머니한테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그치. 그런데 할머니한테 생긴 죄책감이 약간은 덜어지는 거 같아서 덜 아픈 거 같아서 좋아. 우리 할머니가 다 보고 있겠지? 여전히 할머니한테는 매일 미안해. 아직도 많이 후회해. 그렇지만 할머니, 우리 네 잎 클로버 알지? 말 못했었는데 나도 할머니가 나한테 네 잎 클로버야. 우리 계속 서로가 네 잎 클로버하자. 우리가 찾은 네 잎 클로버처럼 길고 긴 시간 끝에 서로를 마주하는 거야. 그 때 마주한 우리는 더할 것도 없이 행운과 행복이 가득한 거잖아. 합리화 시켜서 만든 가짜 행운, 행복이 아니라 결국 찾아낸 행운과 행복. 그 끝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줘. 사랑해 할머니.

어김없이 울렁거리는 울컥함을 참지 못하고 흐르는 무언가를 내보냈지만, 머금은 미소를 놓치지는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할머니와 마주하고 있다가 항상 왼쪽 주머니에 자리하고 있던 지갑을 꺼냈다. 열어 본 지갑 속 왼쪽 한 편에는 이미 시든 지도 오래돼 변색된 네잎 클로버 두 개가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어 나무에 달린 할머니 사진에 같이 꽂아 두었다. 선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 미소 옆엔 네 잎 클로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 내 이야기는 오로지 우리 할머니였다. 쓰고 또 써보고 말하고 또 말해보고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무뎌지지 않는 그런 나의 이야기였다. 모든 날의 내가 흘려 보낸 눈물은 묻어둔 눈물은 꼭 다시 그 날에 있는듯 언제나 뜨거웠다. 하지만 그 끝에서 결국 다시 만날 할머니를 위해 나는 오늘도 네 잎 클로버를 꼭 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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