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④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④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10.07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4. 지숙씨의 긍정적인 하루

아침부터 지숙씨의 노래 소리에 센터가 즐겁다.
지숙씨는 세상은 요지경 노래를 부르며 춤까지 춘다.
요즘 코로나로 창살 없는 감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숙씨는 세상이 요지경이라며 떠들어댄다.
지숙씨는 연이어서 잘 놀다 가세를 열창하며 오늘 하루 잘 보내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실 지숙씨의 치매는 중등도이다 보니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렸다.
자신의 딸이 누구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 집이 어딘지 모른다.
대신 해맑게 웃으며 농담도 잘하고 가장 즐겁게 생활한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가장 크게 하고, 선생님 제가 한 것 좀 봐주세요.
라며 적극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에너지를 발휘하며 대답을 크게 하세요 라며 웃음을 자아낸다.
치매 어르신이라 해도 그 어느 누구보다 해맑게 웃는 모습에 나 또한 즐겁다.

어느 날 내가 오늘 간식은 뭘까요?
알아 맞춰 보라고 했더니, 소고기요.
선생님 소고기 먹고 싶어요. 
몸보신 하게 소고기 주세요..라며 떼를 쓴다.
나는 돈 많이 벌어서 사 줄게요 라고 했더니 그럼 내가 쏠께요..
웃으며 돈 있어요?
라고 했더니 주머니에서 아파트 카드를 꺼내며 이걸로 사 줄게요..라고 말한다.
이거 집에 들어갈 때 문 여는 카드 쟎아요..했더니 이거 소고기도 살 수 있는 만능카드에요.
해맑고 순수한 지숙씨의 모습이 그 누구보다 가식적이지 않다.
요즘 사람들은 웃는 날이 거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웃을 수 있는 일이 없다.
나 또한 걱정과 근심에 묶여 웃음이 나오질 않는다.
근데 지숙씨와 이야기 하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근심 걱정 없이 웃기만 한다.
모든 걸 잊게 해준 지숙씨를 보며 나는 오늘도 견딘다.
하루는 지숙씨가 화장을 하고 왔다.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요?
라고 물으면 내 애인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며 웃는다.
애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비밀이라며 동네방네 떠들면 안 된다고 한다.
선생님 나 화장하니깐 예쁘죠?
여자는 꾸며야 예쁘죠.미소를 짓는다.
어느 날 아침 다른 어르신이 혈압을 안 잰다고 해서 실랑이를 하는데, 지숙씨는 왜 선생님 말을 안 듣느냐면서 당신이 간호사냐고 혼을 낸다.
여기 왔으면 조용히 말을 들어야지 마음대로 할 거 같으면 오지 마라며 옳은 소리를 해댄다.
이럴 때는 지숙씨의 야무진 말에 놀란다.
사실 지숙씨는 텔레비전을 보면 조용히 보는 게 아니라 자막을 소리 내어 따라 읽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어르신들이 시끄럽다며 피한다.
하루 종일 쉴새없이 중얼중얼 하다 보니 다른 어르신들이 눈살이 찌푸린다.
한번은 노래프로그램을 보는데, 노래를 음정박자 무시하고 말만 따라서 불렀다.
나는 지숙씨  땡이에요. 땡 더 연습해서 오세요.
라며 웃었더니 자신은 땡이여도 좋다며 계속 중얼거렸다.
자신의 실력을 몰라준 심사위원이 야속하다며 땡이여도 좋다.
나는 계속 노래 부를 거야..이러면서 따라 불렀다.
그날 우리는 지숙씨의 노래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숙씨는 즐겁단다.
하루 종일 흥얼흥얼 늘 즐겁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80살이 넘었는데도 외모는 70보다도 더 젊어 보인다.
주위 어르신들은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니 지숙씨는 늙지를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날마다 즐거운데 언제 늙느냐고 말이다.

나는 지숙씨를 보면서 많은걸 배운다.
지숙씨는 화를 낸 적이 없다.
다른 어르신들은 자신의 감정을 불같이 내뿜지만, 지숙씨는 늘 한결같다.
어르신들의 자리배치를 하다보면 몇 번씩 자리를 옮겨야만 한다.
자신의 자리를 옮기기 싫어하는 어르신들도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지숙씨가 이쪽저쪽을 옮겨 다닌다.
지숙씨 에게 미안해요..라고 말하면 웃으며 괜챦아요..
그럴 수도  있죠..
자신은 이 자리는 텔레비전이 잘 보여서 좋고, 저 자리는 잘생긴 영감 옆 이여서 좋다며 웃는다.
지숙씨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디서든 긍정적인 자세와 즐거운 자세를 가진 지숙씨의 삶의 태도가 늙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늘 짜증과 화에 활활 타오르지만, 지숙씨는 늘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는 듯 했다.
뿐만 아니라, 지숙씨는 양보도 아주 잘한다.
한번은 간식을 나눠 주는데 옆의 어르신이 맛있다며 한 개 더 달라고 했다.
간식 개수가 딱 맞아서 더 드릴 수 없다고 하자, 지숙씨는 내꺼 하나 더 드시라며 자신의 간식을 양보했다.
그날 우리는 미안한 마음에 지숙씨에게 두유를 건네자, 지숙씨는 두유 맛이 꿀맛이라며 웃는다.
지숙씨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 덕분에 나는 많은 걸 배운다.
양보하는 자세, 남을 배려하는 자세, 자신을 낮추는 자세 등 우리가 쉽게 하지 못하는 걸 지숙씨는 쉽게 실천한다.
우리 센터 뒷마당에는 텃밭이 있다.
오이도 심어져 있고, 고추, 상추, 참외, 포도가 있다.
한번은 상추를 따러 나가는데, 햇볕이 강해서 몇 개 따다가 나는 지쳐서 그냥 들어가자고 말했다.
지숙씨는 쉬지 않고 계속 상추를 따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내가 몇 번을 가자고 말하니, 지숙씨는 사람이 일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다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며 주구장창 상추를 땄다.
지숙씨는 그날 상추와 부추, 고추까지 따서 수확물이 많다며 뿌듯해 했다.
그날 점심때 어르신들과 나눠 먹으면서 지숙씨가 딴 수확물이라며 칭찬을 했더니, 지숙씨는 많이들 드세요..
제가 또 따올께요..라며 즐거운 식시 시간을 만들어 줬다.

그런 지숙씨도 보호자와 상담을 통해 다른 면을 알 수 있었다.
지숙씨는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집에 오면 씻지도 않고 눕는다고 한다.
목욕하자고 몇 번을 말해도 안한다면서 막무가내라고 했다
딸과 싸우는 이유 중 하나가 목욕을 안 하는 거라며 딸은 그런 엄마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루는 딸이 전화를 하면서 자신의 엄마 기분이 어떤지 봐달라고  했다.
늘 똑같은 모습으로 수업도 잘 참여하시고 식사도 잘했다고 했더니, 그날 딸과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세수하고 화장품 바르라고 했더니, 씻지도 않고 옷만 입는다면서 딸이 화를 냈다고 했다.
지숙씨는 아무 말 없이 옷만 입고 센터로 왔다는 것 이였다.
지숙씨의 속이 말이 아닐 거란 생각에 딸은 걱정스레 전화를 했다.
그날 나는 지숙씨와 상담을 했다.
지숙씨에게 작은 인형을 가져와서 세수 좀 시켜달라고 했더니 왜요?
이 인형이 세수하기 싫어해서 이렇게 지저분해졌어요. 라고 말했다.
지숙씨는 웃으며 인형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세수를 왜 안하니?
예쁘게 하고 놀러가자, 라며 인형얼굴을 깨끗하게 씻겨 주었다.
지숙씨가 잘 씻지 않는 건 자신의 입장에선 씻지 않아도 깨끗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강압적으로 씻으라고 하니 반항심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주말이면 씻기 싫어 하루 종일 안 씻는다.
누군가 왜 안씻냐고 물으면, 나는 어제 밤에 목욕해서 깨끗해..라고 말한다.
지숙씨도 씻기 싫은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딸은 깨끗하게 하고 가야지,,라고 했지만, 지숙씨도 귀챦은 날이 있을 꺼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뭐하라고 하면 가장 하기 싫어진다.
왜 간섭 하냐고 말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가 씻어라, 밥먹어라, 공부해라.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어릴 때는 엄마 말을 잘 듣는다.
사춘기가 되면 반항심이 생긴다.
내 인생 간섭하지 말라고 말이다.
지숙씨도 어른사춘기 일지도 모른다.
다만 감정을 무시한 채 억지로 시키다 보니 반항심에 불타올랐을지 모른다.

우리 센터에는 운동기구들이 있다.
지숙씨는 운동을 싫어한다.
몇 번씩 설득하긴 했지만, 지숙씨는 텔레비전 보며 등 마사지 하는 게 즐겁단다.
그런 지숙씨에게 억지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숙씨의 의사를 존중해 준다.
그래서인지 지숙씨는 등 마사지 하면서 시원하다를 몇 번씩 이야기 한다.
한번은 딸이 지숙씨는 집에서 꼼짝도 안한다면서 하소연 했다.
운동을 하기도 싫어하고, 걷는건 더더욱 싫어한다고 말이다.
나는 센터에서도 자전거 타는 기구, 발 운동 기구들이 있지만 지숙씨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건강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며 운동 좀 하게 하는 방법 없을까 고민을 했다.
나는 딸에게 지숙씨와 함께 마트 간다고 하고 일부러 길을 돌아서 가는 게 어떨까 제안했다.
걷기 싫어하는 지숙씨에게 장보러 가자고 하고는 아파트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이다.
그 후로 지숙씨는 딸과 함께 30분 이상씩 걸어서 마트를 다닌다고 했다.
사실 지숙씨는 길을 모른다.
손목에는 위치 추적기를 차고 있다.
지숙씨는 딸과 함께 저녁마다 마트를 간다.
딸은 엄마를 위해 30분 이상씩 마트가는 시간을 투자한다.
지숙씨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어느날 내가 마트에 도착했을 쯤 지숙씨와 딸이 장을 보고 나오고 있었다.
나는 지숙씨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지숙씨가 나를 못 알아 본다.
사실 딸은 상담때를 제외하곤 통화만 했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숙씨는 늘 봐왔던 사람이다.
그런 지숙씨에게 마트 앞에서 손을 번쩍 들고 몇 번을 흔들었지만, 지숙씨는 내 옆을 휑하니 지나갔다.
주위 사람들은 저 여자,,왜 손들고 혼자 웃고 있지? 라며 이상하게 비춰졌을지 모른다.
지숙씨를 향한 내 손은 무색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뻘쭘하게 마트로 들어갔다.
다음날, 나는 지숙씨에게 어제 저녁에 마트 갔죠?
라고 묻자 지숙씨는 몰라요. 안갔어요.라고 말했다.
마트 앞에서 내가 아는체 했는데, 왜 몰랐냐고 묻자, 지숙씨는 내가 당신을 본적이 없어요. 라며 웃었다.
정말 순수하게 웃으며 말하는 지숙씨 앞에서 나는 아...그랬군요..라고 했다.
내가 알았으면 우리 선생님 꼭 껴안아 줬을 꺼에요..라며 말이다.
오늘도 지숙씨 덕분에 즐거운 하루다.

지숙씨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며 오늘은 일기장의 내용이 길어진다.
지숙씨는 알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이 기억들을 말이다.
다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숙씨가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기를 바래본다.
걱정 많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