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⑤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⑤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10.08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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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5. 금자씨의 슬픈 하루

내가 처음 이곳에 입사한날 금자씨는 나를 보자마자 욕부터 해댔다.
혈압을 재기 위해 커프를 팔에 감았을 뿐인데 혈압기를 던지며 가라고 했다.
공격성치매인 금자씨를 대할 때면 최대한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오늘 식사는 맛있어요?
인상 쓰면서 욕부터 해댄다.
지랄한다.
오늘아침부터 금자씨는 집에 가겠다며 문 열라고 소리친다.
어디 가시게요?
나 집에 간다.
나 갈란다.
라며 막무가내다.
금자씨는 다른 어르신들과 달리 휠체어를 타고 오신다.
그날은 휠체어에서 내려서 집에 간다며 옆의 난간을 잡고 계셨다.
위험해서 안 됩니다.
라고 말했더니 씨~자로 시작된 욕을 해대며 휠체어에서 막무가내로 내렸다.
금자씨는 잘 걷지는 못하지만 손의 힘은 엄청 세다.
문 앞에 서서 가겠다며 문을 두드리며 시끄럽게 소란을 피웠다.
기사님이 지금 오고 있으니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께요
라고 요령껏 달래긴 했지만, 그날 하루 금자씨는 몇 번씩 시끄럽게 문을 두드렸다.

금자씨는 아들과 며느리와 살고 있다.
금자씨의 댁은 우리 센터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거리가 30분 이상 소요된다.
금자씨가 처음 왔을 때의 상태는 이 정도까지 심각하지는 않았단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일본어를 어찌나 잘하는지 자신의 어렸을 적 배웠던 언어를 술술 풀어냈단다.
내가 온 후부터는 금자씨는 욕을 해대며 휠체어에 의존한 채 늘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금자씨가 힘들까봐 몸을 만지면 쌍욕을 해댔고, 손이 부어서 위로 올려주면 꼬집기 일쑤였다.
그런 금자씨도 과거에는 농사를 지어서 그 일대의 부자 아줌마로 소문날 정도로 악착같았단다.
지금도 금자씨의 밭과 논은 아들과 며느리 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금자씨는 과거 똑 소리나는 아줌마로 동네에서 농사일을 가장 열심히 할 정도였단다.
그래서인지 재벌이라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한번은 금자씨 댁에 가면서 금자씨 밭이 넓네요.
밭일 하느라 손이 마를 날이 없었겠어요.
금자씨 손을 잡으며 말을 했다.
그날 금자씨는 무언가 생각이 나는지, 일본어로 뭐라 뭐라 대답했다.
금자씨는 일본말을 정말 잘했다.
어릴적 일본에서 공부한 게 지금도 기억이 나는 듯 했다.
그래서 한 번씩 일본말로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은 시조를 읊기 시작하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나도 외우지 못하는 시조를 슬슬 읊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음률을 맞춘다.
태산이 높다고는 하지만 결국 하늘 아래 산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오르지도 않고서 산을 높다고 하더라. ‘
이 시조를 반복해서 읊으며 의기에 찬 목소리였다.
그날 나는 금자씨의 또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금자씨에게 이 시조는 살면서 삶의 시조가 아니 였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노력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전달이 되었다.
다음날 나는 금자씨에게  다른 시조 한 구절을 말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첫 구절을 말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이러자 금자씨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라고 말했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이렇게 말하자.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뒷 구절은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지 더 금자 대답이 없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릴오리다.
금자씨는 슬슬 시조를 읊었다.
그날 이후 금자씨에게 다가가 노래 한번 불러 주세요. 시조 한번 읊어 주세요.
라고 말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욕설을 하던 금자씨도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 한구절을 불러준다.
금자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고장난 벽시계라는 노래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랑보다 니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척 하고 있느냐
나를 버린 사람보다  니가 더욱 무정하더라
뜬구름 쫒아가다 돌아 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금자씨는 이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이 촉촉하다.
한번씩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금자씨의 모습속에 흘러가는 세월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금자씨는 세월에 대한 노래를 좋아한다.
세월아 어디 가느냐 내 청춘 여기에 두고
쉼없이 살아온 인생 구름되어 밀려 가는데
청춘아 어디 있느냐 내 모습 변해 가는데
마음은 그대로인데 내 모습만 변하는구나
사랑도 인생살이도 못다한 젊은 꿈들도
가슴에 미련이 많아 세월아 청춘아
가지를 가지 말아라 청춘아 어디 있느냐
내 모습 변해 가는데 마음은 그대로인데
내 모습만 변하는구나
사랑도 인생살이도 못다한 젊은 꿈들도
가슴에 미련이 많아 세월아 청춘아
가지를 가지 말아라
세월아 청춘아  가지를 가지 말아라
금자씨는 세월이 흘러가는 아쉬움을 노래로 표현하는 듯 했다.
한때는 금자씨의 청춘도 불타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혼자 남겨져서 악착같이 아이들 키우느라 엄마의 삶은 없었다.
그렇게 불타는 청춘도 시들어가고 세월은 흘러 금자씨는 치매를 진단 받았다.
치매에 몸도 제대로 쓰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런 자신의 삶이 한편으로는 원통하고 분할꺼라 생각이 들었다.
금자씨는 세월의 노래를 부르며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한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금자씨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먹을거 달라며 밥 좀 해가지고 오라고 한다.
밥 안 먹었어요? 라고 물으면 며느리 이름을 대면서 안 해주더라..
안주더라..라며 흥분을 한다.
그래서 간식을 주면 또 달라고 소리친다.
식사 시간이 끝나도 금자씨는 수저와 젓가락을 놓지 않는다.
한번은 금자씨를 차에 태우기 위해 휠체어에서 일으키는데, 뭔가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났다.
금자씨의 헐렁한 바지에서 숟가락 젓가락 물컵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금자씨는 바지 속에 자신이 먹었던 수저, 젓가락, 물컵을 넣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금자씨의 물건 넣는 버릇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리고 차를 태울 때마다 바지 사이로 뭔가가 두두둑 떨어졌다.
어떤 날은 색연필이 떨어지고, 어떤 날은 간식으로 줬던 떡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수저 젓가락 물컵은 수시로 떨어졌다.
그 떨어진 물건을 집으면 금자씨는 차안에서 내 꺼 라면서 달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비닐 봉지에 넣어서 금자씨의 손에 쥐어줬다.
다음날 보호자 편으로 금자씨가 가져갔던 물건들이 다시 배달되어 돌아왔다.
금자씨의 치매는 진행 중이다.
그것도 중등도 환자다 보니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물건에 대한 집착도 심해서 모든 물건을 바지 이곳저곳에 넣기 위해 바쁘다.

금자씨는 어느 날 부터인지 증세가 심해져서 욕도 더 거칠어 졌다.
보호자와 상담 후 금자씨는 병원에 가서 약 용량을 좀 더 늘렸다.
금자씨가 약 용량을 늘린 후부터 금자씨는 자신의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축 쳐졌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호자께 이야기했다.
금자씨의 몸도 점점 굳어지는 듯 했다.
차를 태우기 위한 일도 갈수록 힘들어졌다.
금자씨는 물건을 가져가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도의 힘도 없었다.
금자씨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한때는 씩씩하게 노래 부르며, 세월의 아쉬움을 이야기 했는데 지금은 음악이 흘러나오면 웃다 울다를 반복한다.
보호자도 이런 금자씨를 요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고 몇 번 애기를 했지만, 한평생 자신을 지켜준 어머님을 보내려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금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어머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오후에 집에 하원 할때면 금자씨의 아들과 며느리는 늘 휠체어를 옆에 두고 기다린다.
추울 때면 이불을 들고 서있고, 더울 때면 부채를 들고 서 있는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하는 보호자의 모습을 보면서 효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금자씨의 상태로 센터에 온다는 거 자체가 사실은 힘들다.
대부분 이정도가 되면 요양원에 모신다.
자신의 어머니를 끝까지 지키려는 아들과 며느님을 보면서 센터에서도 종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금자씨는 씹는 것도 약하다보니 식사가 죽이나, 국으로 대체가 된다.
드시면서도 빨리 달라. 더 달라며 잘 드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금자씨가 지금까지 버텼던 이유는 식사를 잘 하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자씨는 음식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잘 드신다.
다만 사레가 잘 걸려서 부드러운 음식을 드린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금자씨는 오늘도 악착같이 음식을 다 먹는다.
사실 병원에 있다보면 대부분 콧줄(Levin tube)로 음식을 제공한다.
보호자는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면 콧줄을 끼울 꺼라며, 드실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입으로 드리고 싶다고 한다.

금자씨는 오늘도 휠체어를 타고 등원했다.
피부가 약해져서 조금만 스쳐도 피가 난다.
그런 금자씨를 위해 소독을 하고 조심스레 메디폼을 붙여준다.
금자씨는 나를 보면서 고맙소..라고 말한다.
금자씨의 힘찬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가 없다.
힘없이 말하는 금자씨를 보며 꼬옥 안아줬다.
한평생 자신의 삶을 악착같이 살았을 금자씨를 보면서 ..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는 금자씨를 보면서..
나는 금자씨가 센터에 있을 때까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길 바래본다.
오늘도 금자씨에게 시조 한 구절을 읊어본다.
금자씨는 처음과 달리 지금은 기억 속에 사라진 단어들이 많은 듯 했다.
그래도 금자씨는 나를 보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오르지도 않고서 산을 높다고 하더라. 를 반복했다.
지금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던진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힘들다고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높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못한다고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겠다.
금자씨가 일러준 이 구절은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이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 역시도 평생 이 구절을 읊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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