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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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21.10.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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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7. 순자씨의 생각하는 하루

자그마한 체구에 웃음이 많은 순자씨는 혈관성 치매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왔수?
하면서 눈도 크고 코 오똑하고 입술도 앵두라며 과분한 칭찬을 해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제가 아가씨처럼 보이죠? 라며 재차 확인했다.

순자씨는 밥 먹을 때마다 밥이 보약이다 라는 말을 했다.
막상 자신은 밥 한 수저도 드시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침을 많이 드셨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날도 밥을 안 드신다.
말로만 밥이 보약이니 많이들 드시오..라고 한다.
보호자 상담을 통해 순자씨는 식사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속이 안 좋다며 먹는 걸 거부한다.
그래도 배꼽시계가 울릴 텐데 내심 걱정 됐다.
우리는 늘 점심시간이 되면 음식을 잘게 잘라서 드린다.
그러나, 순자씨는 먹는 시늉만 한다.
집에서 많이 먹고 왔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소화가 다 됬을텐데..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다.
보호자와 상의 끝에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순자씨는 위염에 위궤양까지 있었다.
약을 받아와서 증상이 호전되면서 조금씩 드시긴 했으나, 여전히 한 수저 정도 드신 후 거부한다.
내속이 지랄 같아서요..
안 먹을래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 순자씨는 치매 환자다 보니 의사소통이 정확하지 않다.
배가 부르다고 했다가..배가 고프다고 했다가..이랬다 저랬다 한다..
억지로 한 수저 드리면 뱉기에 바빴다.
집에 가서는 밥을 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한다고 했다.
순자씨에게 조금이라도 먹이기 위해 우리는 이것저것 가져다 드린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순자씨가 좋아하는 반찬을 찾아냈다.
재래 김과 간장이 나왔는데 순자씨는 그날 식사를 다 했다.
물론 많은 양은 아니였지만 다른 날보다 식사양이 늘었다.
그날부터 우린 김을 비상식량으로 두고 순자씨에게 주었다.
순자씨는 김을 먹으면서 과거 자신이 김을 좋아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 풀어냈다.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물로 배 채우며 살았어.
전쟁터에 나간 영감이 돌아오질 않아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지.
애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서 김에 밥 싸서 주는 게 최고의 밥상이었지..
그래서인지 순자씨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건 마른 김이였다.
김이 나온 날에는 순자씨의 밥양을 고봉으로 드린다.
그래도 날마다 김만 드릴 수 없었기에 다른 반찬도 함께 드리는데 거부했다.
다행인건 간식으로 나온 빵과 요구르트, 요플레, 고구마, 부침개 등은 잘 드셨다는 것이다.
걱정되서 나는 순자씨 옆에서 왜 식사를 안 하세요?
순자씨가 식사를 안 하니 걱정이 되네요..라고 말했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말한다.
순자씨의 웃음소리는 참 정감이 간다.
이렇게 걱정도 해주고.. 고맙구려..아가씨 하하하
아가씨나 많이 드세요..라고 말이다.
순자씨는 아직도 나에게 아가씨라는 호칭을 쓴다.
몇 번을 아줌마라고 해도 웃으며 어디를 봐서 아줌마야?
딱 봐도 아가씨구먼..
나에게는 기분 좋은 소리지만 옆에 계신 다른 분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어느 날 옆의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다가 서로 자기의 말이 맞다며 언성을 높였다.
순자씨는 갑자기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라는 명언을 쏘아 붙였다.
뭐 그리 잘났다고 언성을 높이세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에요..
인생에서 큰소리치며 사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에요.
결국은 지는 사람이 마음이 편한 거라우.
큰소리치며 할 말 다 한 사람은 마음이 불편하게 되어 있어요.
사람은 지면서 살아야 하는 거에요.
지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거에요.
할 말 다하고 큰소리 치는 사람은 두 발 뻗고 잘 수가 없어요.
인간이 할 말 다 하고 살면 안되요.
참고, 인내하고, 이겨내야지 성숙해지는 거에요.
맨날 큰소리 치는 사람은 인간이 덜 되서 그래요.
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에요.
그날, 나는 순자씨 에게 교훈을 얻었다.
말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뚫린 입이라고 내 뱉으면 안된다.
남에게 상처주며 살지 말자.
순자씨는 그 후로도 몇 가지 명언을 남겼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잘난 체 하며 살지 마라.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이 어딨나?
다들 똑같은 인생인데..
자기만 잘났다며 살지 말라고 했다.
인생 살아보면 별거 없다.
순자씨의 옆의 어르신은 늘 하늘나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런 어르신을 보며 순자씨는 한마디 쏘아 붙인다.
그래도 저승보다 이승이 더 낫다.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냐?
사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라.
인생 목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 번씩 훈계하듯 이야기 하지만, 순자씨는 옆의 어르신에게 지금 사는 것에 감사해라 라며 충고했다.
순자씨는 한 번씩 일본 놈은 나쁜 새끼라며 욕을 해댄다.
자신의 신랑을 강제로 데리고 갔다며 일본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다.
순자씨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 때론 우리가 배웠던 역사의 한 장면인 듯 했다.
나쁜 놈들.. 나쁜 놈들을 몇 번씩 외친다.

오늘은 센터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순자씨는 자장면을 너무 잘 드신다.
밥은 안 드시면서 자장면은 좋아 하시나 봐요?
그랬더니 맛있다면서 말없이 한 그릇을 다 드신다.
마지막의 한마디 밥이 보약이야.
잘 먹어야 돼.
인생 뭐 있어?
다 똑같지..
힘들어도 참고 사는 게 인생이야.
순자씨는 밥보다 자장면을 좋아한다.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자씨가 안 먹는 게 아니라, 입맛이 까다롭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는 순자씨가 좋아하는 김과 자장면을 자주 대접해야 겠다.
우리의 인생 별거 없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겸손하게 살아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겠다.
지금은 치매 어르신이지만, 우리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에 흥분하고, 남보다 더 오르기 위해 경쟁하고, 늘 불만불평인 우리들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치매 그 까짓게 뭐라고 사람들은 무서운 병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더 심한 불치병에 걸렸을 지도 모른다.
경쟁병, 이기는병, 욕심병, 걱정병, 시기질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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