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패한 임상시험을 성공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보도자료
[칼럼] 실패한 임상시험을 성공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보도자료
  • 양현덕 기자
  • 승인 2021.10.21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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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인지장애 치료 효과 입증 근거 없어
논문 핵심 내용 숨겨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내과 박정미 교수 연구팀(이하 ‘연구팀’)은 지난 10월 20일 ‘경도인지장애, 한약 치료 효과·안전성 입증’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연구팀은 보도자료를 통해 치매의 전단계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가미귀비탕’ 한약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으며, 해당 논문이 해외 SCI급 학술지인 ‘BMC, Complementary Medicine and Therapies’ 2021년 10월호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치매 국가연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예산 지원(grant number: HI16C2352)을 통해 이뤄졌다.

연구팀은 총 33명의 기억 상실형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가미귀비탕의 치료 효과 및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 대상자들을 가미귀비탕을 복용하는 시험군(17명)과 위약을 복용하는 대조군(16명)으로 무작위 배정해 24주 동안 연구했으며,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처음과 24주 후에 Seoul Neuropsychological Screening Battery (SNSB) 점수 변화를 비교했다.

보도자료는 연구 결과 시험군에서 Clinical Dementia Rating-Sum of Boxes (CDR-SB)가 위약군에 비해 유의하게 호전됐고, 전체 SNSB-D 점수와 기억력 세부 항목이 초기 평가와 비교해 유의하게 호전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연구를 통해 가미귀비탕이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인지기능 및 기억력 개선에 안전한 치료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가미귀비탕의 효과가 입증됐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예비 연구가 아닌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서 시험군과 대조군 사이의 뚜렷한 치료 효과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무작위 이중맹검 위약대조 임상연구(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RCT)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시험군과 대조군의 24주 후 일차 변수(SNSB) 변화를 비교’한 내용이 보도자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논문 원문을 검토한 결과, 보도자료에서 밝힌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가미귀비탕 한약치료의 효과를 입증’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문은 가미귀비탕을 복용한 시험군 내에서 SNSB-D 총점과 기억력 점수가 24주 치료 후에 개선되기는 했으나, 정작 시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했을 때에는 의미있는 차이가 없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연구 가설을 검증하지 못해 실패한 임상시험이다.

치매치료제 임상시험에서 효과 검증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간이정신상태(Mini–Mental State Examination, MMSE) 점수의 변화도 시험군과 대조군 간에 차이가 없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보도자료는 논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시험군과 대조군 간의 SNSB-D 점수 변화를 비교’했을 때 통계학적 의미가 없었다는 부분은 밝히지 않고, 단지 시험군 내에서의 점수 변화만을 보여주며 ‘가미귀비탕이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점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패한 임상시험을 보도자료를 통해 성공한 임상시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과거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연구결과를 부풀리는 유사한 사례가 있다. 지난 2020년 9월 경상대학교 생명과학부 연구팀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배포한 ‘치매 조기진단기술’ 관련 보도자료에서 연구 결과의 범위를 벗어난 부풀리기 행위가 발견되어 논란이 됐었다.

이번 연구도 국민의 혈세인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비 지원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연구성과에 대한 부풀리기 홍보는 일종의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연구 성과를 선택적으로 일부만 발췌해서 배포하는 ‘보도자료 부풀리기 관행’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

<논문> Shin, HY., Kim, HR., Jahng, GH.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Kami-guibi-tang for mild cognitive impairment: a pilot,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BMC Complement Med Ther 21, 251 (2021). https://doi.org/10.1186/s12906-021-034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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