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똥으로 그린 그림②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똥으로 그린 그림②
  • 염성연 작가
  • 승인 2021.10.2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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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성연 작가
염성연 작가

실습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요양원에는 칠십 대의 최 노인이 입소하였다. 최 노인은 석양 증후군이 있는 환자인데 집에서 요양하다가 식구들이 감당할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낸 분이었다. 최 노인은 낮에는 별다른 증상 없이 요양보호사의 지시를 잘 따라주었고 다른 환자들과 인사도 잘하고 담소도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볼 사람은 보고 각자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와당탕” 하고 뭔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렸다. 모두 소리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최 노인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당신의 방을 들여다보는 환자에게 물컵을 던져 이마에 달걀만 한 혹을 만들어 놓고도 성 차지 않아 방 안에 있는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있었다. 구석에 세워둔 수액 받침대가 손에 잡히자 그것을 거머쥐고 사람들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 마치 날뛰는 성난 사자 같았다. 간호사가 진정제 주사를 들고 달려왔지만, 주사를 놓을 수가 없었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머리로 박치기를 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 간신이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데 이번에는 주위 사람들 얼굴에 “퉤, 퉤!” 하고 걸쭉한 가래침을 뱉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나에게 소리질렀다. “여사님, 마스크요!” 나는 얼른 마스크를 가져다 최 노인의 입에 씌우려고 다가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입에서 튕겨 나왔다. 마스크를 쥔 손을 최 노인의 입에서 간신이 빼내어 보니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간호사는 주삿바늘 두 개를 휘어버리고서야 겨우 주사를 놓을 수 있었다. 간호사의 손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최 노인을 진정시키고 나니 모든 일꾼이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나도 쿡쿡 쏘는 손을 붙잡고 소파에 쓰러지듯 기대어 앉았다. 머릿속이 온통 잿빛 안개로 가득 채워진 듯 생각의 굴렁쇠가 돌아가지 않고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 일을 내가 진정으로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나에게 닥친 도망칠 수 없는 운명 같은 이 일을 정녕 어떻게 해야 하나. 암보다 무서운 치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튿날 아침, 최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다. 간호사에게, 요양보호사에게 아침 인사도 곱게 하고 있었다.

치매란 도대체 뭘까, 어떻게 생긴 물건이기에 머릿속에 들어가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멀쩡하던 사람을 야수로 만들었다 다시 사람으로 만들었다가 장난질일까. 할 수만 있다면 나쁜 기억은 모조리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는 그런 지우개였으면 세상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개월 후, 나는 나의 사진이 정중히 박힌 요양보호사 증서를 받았다. 증서를 받는 순간, 나는 커다란 돌덩이를 받아 안은 것처럼 그 무게에 몸을 흠칫 떨었다.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무거운 줄 처음 느꼈다.
                  
어머님의 치매 증세는 나의 노력과 염원과는 상관없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들어오니 어머님은 거실의 서랍이란 서랍은 모조리 끄집어내어 뒤지고 있었다. 

 “어머님, 뭘 찾고 계세요?” 
 “오라, 네년이로구나. 내 금반지 내놔, 네가 훔쳤지?” 

어머님의 손가락에 늘 끼어있던 닷 돈짜리 금반지가 보이지 않고 하얗게 반지 자국만 남아있었다. 나도 어머님과 같이 찾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방, 거실, 화장실, 어머님이 지나다니던 모든 장소를 구석구석 비로 쓸고 무릎 꿇고 엎드려 들여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장롱 밑은 철사 옷걸이로 갈고리를 만들어 모조리 훑으면서 찾았다. 반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네년이 내가 모르는 곳에 숨겨놓고 찾는 척하는 거지, 힘 빼지 말고 빨리 내놔, 이 도둑년.”

땀을 뻘뻘 흘리며 거꾸로 엎드려 있는 내 엉덩이를 손으로 철썩철썩 치면서 어머님이 호령한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어머님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네년이 훔친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 집에 너와 나, 둘 뿐이지 않냐. 네 방에 숨긴 거지, 네 화장대를 뒤져야겠다.”
 “그렇게 하세요, 만약 내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어머님이 내 하라는 대로 하셔야 해요. 약속할 수 있죠?”

나는 어머님께 다짐을 받은 후 함께 내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화장대 위를 보세요. 반지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반지가.”
 “지금 첫 번째 서랍을 뽑았어요. 어머님, 이 안을 들여다보세요. 반지가 있어요?”
 “없어요.”
이렇게 화장대 서랍을 차례로 모조리 열고 검사하였다. 

 “화장대 서랍에 반지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어머님은 대답하다 말고 갑자기 눈에 푸른 빛을 번쩍이더니 씽하고 일어나 장롱 앞으로 갔다. 장롱 서랍을 뽑아 그 속의 옷들을 끄집어 내여 방바닥에 내던졌다. 말릴 사이도 없이 이번에는 이불장을 열어 이불을 꺼내 패대기쳤다. 

 “이불 속에 숨겼지? 내 신랑이 사준 금반지야, 내 금반지 내놔!”

어쩔 수 없어 나는 이불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고 다시 개여 장롱 속에 넣으며 말하였다. 

 “분홍 이불 속에는 반지가 없다.”
 “파랑 이불 속에도 반지가 없다.”

어머님더러 복창하게 하였다.

 “겨울 이불 속에는 반지가 없다.”
 “여름 이불 속에도 반지가 없다.”
 “핫이불 속에는 반지가 없다.”
 “홑이불 속에도 반지가 없다.”

이불을 다 정리하여 넣고 장롱 서랍에서 나온 옷들도 하나하나 다시 털어 넣으면서 말했다.

 “첫 번째 서랍 속에 반지가 없다.”
 “마지막 서랍에도 반지가 없다.”
 “며느리 방에는 반지가 없다. 며느리는 반지를 훔치지 않았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목이 꺽 메며 설움이 북받쳤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쳐들었다. 창문 너머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푸른하늘이 어른거린다. 구름 한 송이가 하얗게 반짝이더니 친정어머니 얼굴로 바뀐다. 친정어머니였으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였을까? 어머니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어머니는 손을 들어 살살 흔드신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힘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 나는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손을 흔들며 서서히 하늘 저쪽으로 사라진다.

나는 온몸이 땀벌창이 되었다. 어머님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머님 더운데 샤워하실래요?”
나를 한참 쳐다보던 어머님이 머리를 끄덕였다.  화장실에 가서 옷을 벗겨 드렸다. 겉옷을 벗기고 속내의를 벗기었다. 아, 이게 웬일이냐!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반지가 어머님 가슴에 대롱대롱 달려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굵은 털실로 꿰여져 어머님 목에 목걸이로 걸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비웃고 있었다.

 “이것 어머님 금반지 아녜요? 언제 목에 거셨어요?”
 “아, 이 반지 왜 내 목에 걸려 있지?”
 “오, 깜빡했구나! 엊그제 도둑년이 왔었지, 손가락의 것을 빼앗아 갈가 봐 목에 걸었다. 지금 생각나는구나.” 
 “후유, 다행이네요. 어머님, 내 금반지는 내 목에 걸려 있다. 이 세상에 도둑년은 없다. 이렇게 한 번 외쳐 보세요.” 
 “금반지는 내 목에 걸려 있다. 이 세상에 도둑년은 없다.”
 “금반지는 내 목에 걸려 있다. 이 세상에 도둑년은 없다.”

어머님이 외치셨다. 긴 한숨이 내 입에서 새여 나왔다. 온몸의 기가 한숨과 함께 죄다 빠져나오는지 내 몸은 물 먹은 솜뭉치처럼 축 처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금반지를 찾게 되어 잠시나마 소란을 잠재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또 어떤 일이 튀어나올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이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보려고 학원에서 배운 대로 실천해 보았다. 식사 후에는 먹은 그릇을 확인하게 하고 달력에다 스스로 색연필로 표시하게 하였다. 아침은 붉은색, 점심은 파란색, 저녁에는 노란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게 하였다. 그랬더니 먹고도 안 먹었다고 또 달라고 떼쓰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 가지 못했다. 색연필을 쥐기만 하면 오늘 날짜에만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력 전체에 큰 동그라미 작은 동그라미를 마구 그려 넣었다. 그것까지는 별일 아닌데 거실벽, 침실 벽 헤아리지 않고 낙서를 하였다. 색연필을 뺏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가며 어머님의 방을 심리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은은한 보라색으로 도배를 했는데 본바탕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큰 달력 뒷면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갈기갈기 찢어 온 방 안이 종이 폭탄을 맞은 듯 종이 부스러기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어머님을 거실로 모시고 달력 한 장을 뒤집어 탁자 위에 펴 놓고 색연필을 쥐여 주면서 당부하였다. 

 “어머님, 이 종이에 사과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어머님 귀여워하시는 손자, 손녀도 그리세요. 예쁘게 그리면 상으로 케이크를 드릴게요. 그동안 저는 어머님 방 청소를 할게요. 부탁드립니다.”

방 청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데 이상한 퀴퀴한 냄새가 코를 벌름거리게 하였다. “야단났구나!” 속으로 외치며 달려 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머님이 차고 있던 기저귀를 벗어서 갈기갈기 찢어 거실 바닥에 버리고 한 손에는 걸쭉한 “도료”(?)를 움켜쥐고 다른 손바닥은 펴서 찰싹찰싹 벽에다 단풍잎을 찍어가고 있었다. 삽시에 연한 초록빛 거실벽이 누런 단풍 숲으로 물들었다. 나는 넋 빠진 사람처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어머님이 진짜 칠감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면 어떠할까, 한 폭의 가을 풍경화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맏딸로 태어나 배우지도 못하고 살림 밑천으로만 되어 소녀 시절을 보낸 어머님은 어쩌면 지금 환상의 동화 속에서 마음으로만 꾸던 꿈을 실현하고 있지 않을까. 나를 본 어머님은 더욱 신나서 찍어대며 싱글거린다.

 “내가 그린 그림이 예쁘지? 너 아까 약속했지, 예쁘게 그리면 케이크 준다고.” 

어처구니가 빠져나가면서 내 목을 막았는지,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숯가마처럼 까맣게 된 잊음의 바닷속에서 오직 케이크만은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도 없고 야단칠 수도 없었다. 어머님을 놀라게 하여서도 안 되고 자긍심과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 요양보호사의 의무이다.

그러나 내 위장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반응을 보이였다. 

 “왝, 웩,!” “꽥, 꽥 꽥꽥!”

오장 육부가 뒤집히며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머님을 씻기고 방에 모시고 가서 점심을 차려드리고 케이크도 한 조각 잘라드렸다. 맛나게 드시는 것을 확인하고 거실 청소를 시작했다. 비위가 상해버린 나는 연신 구역질을 해 댔다. 토하다 토하다 노란 물만 나오는데도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거실벽은 걸레로 닦아내고 물로 씻어도 누런색이 지지도 않고 냄새가 가시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배설물도 고약한 치매라는 놈과 한통속이 되어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칼을 찾아 벽지를 한 조각, 한 조각씩 찢어 내었다. 거실 벽지도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연초록
색이었는데 얼룩덜룩 허물 벗은 뱀처럼 흉측하게 변해 버렸다. 소독약을 뿌리고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 놓고 선풍기 두 대를 몇 시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공기 청정제를 뿌린 후에야 고약한 냄새를 쫓을 수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머리가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시계를 쳐다보니 저녁때가 다 돼 가고 있었다. 점심 먹을 상황도 아니었고 먹을 수도 없었다. 구역질에 구토까지 하다 보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듯 배가 고팠다. 대충 밥 한 그릇과 김치 한 접시 놓고 찬물에 밥 말아 허기나 달래려고 숟가락을 드는 순간, 벼락 치는 듯한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내겐 밥도 안 주더니 너 혼자 여기 숨어 밥 훔쳐 먹고 있어?”

어머님이 들어오시더니 다짜고짜 밥그릇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숟가락까지 빼앗아 던져버렸다. 

 “어머님, 왜 이러세요. 어머님은 밥도 케이크도 다 드시지 않았어요, 케이크 생각이 안 나세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너무 억울하니 말문이 닫혀버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개도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는데 나는 이게 뭐야.’ 주책없는 눈물만 봇둑 터진 냇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머님 때문에 일찍 퇴근한 남편이 문에 들어서자 속으로 흐느끼던 울음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엉엉 소리 내여 울면서 남편의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두드리며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그에겐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일밖에. 그 후부터 남편은 일찍 퇴근하여 어머님의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집안일도 열심히 도왔다. 

똥으로 그린 풍경화가 거실에, 어머님 침실에 그려지는 일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똥 그림을 막아보려고 어머님의 표정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고 배변 시간을 점검하고 수시로 기저귀를 검사하고 갈아주었다. 그러나 어머님은 숨바꼭질 달인이 된 개구쟁이 아이처럼 내가 방심한 순간을 귀신처럼 포착하여 일을 저질러 골탕을 먹이였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벽지는 새로 바뀌었고 그림 솜씨는 날로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이 똥으로 그려지지만 않았으면 멋진 추상화로 남겨둘 수도 있을 텐데. 내 머릿속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컥,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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