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③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마디진 어머니 사랑③
  • 이동소 작가
  • 승인 2021.10.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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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소 작가
이동소 작가

4. 어머니, 나의 자화상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아마도 6년 전이지 싶다. 당시 우리 5형제들은 다들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살고 있는 터라, 석 달에 한 번씩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한번이라도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날도 5형제가 팔순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1박 2일 여행을 마치고 막 부산에 도착했을 때였다. 자가용으로 어머니를 댁까지 모셔드리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굳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순간, 나는 또 어머니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머니가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을 알지만, 자식 된 도리마저 못하게 하시는 어머니께 너무 화가 났던 게다. 

어머니는 일찍이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자리에 눕자 억척스레 우리 5남매를 키우신 여장부다. 하지만 언제나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대하며,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 역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세상을 활기차게 살았던 것 같다. 이젠 어머니는 젊은 날의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라도 마음 편히 사셔야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들 생각에 당신의 존재는 항상 뒤로 제치신다. 그런 어머니 모습에 나는 자꾸 화가 난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어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이라고 여겨져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틀간의 나들이는 참으로 살갑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머니랑 네 딸과 아들, 증손주들이 다 함께 개울에 몸을 담그고 물놀이를 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준비해간 고기를 구워먹고, 음악을 들으며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물가 비치파라솔 아래 오순도순 새끼들을 거느리며 행복해 하시는 어머니 모습은 병아리들을 품은 푸근한 암탉 모습이었다. 모진 세월 힘들게 보내고 나니, 이젠 어머니 밑에 이렇게 당당한 가계家系가 뿌리 내린 것이다. 내심 어머니가 얼마나 뿌듯해하실까 싶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 순간에 영원히 시간이 멈추길 기도하고 계셨지 싶다. 

문제는 저녁에 호텔에 들어가고부터였다. 자식들에겐 조금도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어머니 특유의 신경전이 또 시작된 것이다. 종일 피로하셨을 걸 걱정한 나머지, 우리는 어머니께 먼저 목욕을 하시라고 권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혈압이 오른 것 같다며, 당신은 새벽에 목욕을 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침대 머리맡에 놓아드렸더니, 당신은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서 손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셨다. 거기까진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이 주무실 때 코를 고는 걸 걱정해서인지, 일부러 더워서 마루 거실바닥에서 자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머니 고집을 누가 꺾으랴 싶어 우리들은 제각기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머니는 거실에서도 계속 몸을 뒤척거리며 밤을 꼬박 새우신 것을. 그리고 자식들이 잠을 설칠까 염려되어 아침 목욕도 못하신 것을 말이다. 그런데 헤어지면서도 굳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우기신 것이다. 순간, 어제부터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자식이 부모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는 건 당연한 일! 어머니 마음 편하고자 왜 우릴 불효자식으로 만드시는가 말이다.

내가 왜 어머니께 그렇게 고함을 치며 화를 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모진 세파에 살아남으려 눈칫밥을 먹으며 주눅이 들어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머니께 화를 낸 게 아니라 20년 후의 내 모습, 나의 자화상에 화를 낸 셈이다. 항상 세상 눈치를 보며 웅크리고, 내 것마저 떳떳하게 챙기지 못하는 우리의 DNA에 말이다. 

당신이 아파도 절대로 알리지 않으시는 어머니. 자식이 보고 싶어도 바쁘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마음껏 전화도 못하시는 어머니가 바로 우리 어머니다. 그렇게 곱던 얼굴엔 이제 풍상이 휩쓸고 간 자리마다 골주름이 패이고, 자식들 챙기느라 손마디는 대나무 마디처럼 불거졌다. 항상 자식들 바람막이가 되어 탄탄하게 버티던 등은 어느새 구부정하게 휘어져버렸다. 게다가 그렇게 총명하던 분이 이제 중추신경계까지 제자리를 이탈해버렸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면 자식 걱정만 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나는 자꾸 눈물이 난다.

어머니와 나는 이제 같이 늙어가고 있다. 둘 다 인생의 해거름에 서 있으니, 오늘 숨을 쉬고 있어도 내일 아침 눈을 뜰지 모르는 나이다. 나는 어머니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겉으론 활달해도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내가 커피가 고프고, 술이 고프고,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내고 싶을 때 부르면 단번에 달려올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니 같이 피를 나누고, 이제껏 같은 배를 타고 함께 풍랑을 헤쳐 나온 모녀만큼 좋은 친구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저만치 서 계신다. 함께 공원산책을 가자고 해도,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도 번번이 핑계를 대어 거절을 하신다. 모두가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런 날이면 나는 괜스레 울적해진다. 이젠 훌쩍 나이가 들어버린 딸이 부담스러워지신 건지,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하지 못한 세월 속에 내가 어머닐 그렇게 만들어버린 건지 알 수가 없지만, 내 마음은 차가운 납덩이가 된다.

우리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유별나다. 그 중에도 외아들인 남동생에 대한 해바라기는 가히 기네스북수준이다. 간식이나 먹을 걸 드리면, 항상 동생 준다며 덜어두신다. 심지어 식당에 가서 밥을 시켜도, 항상 당신은 양이 많다며 동생에게 덜어서 옮기고서야 식사를 하신다. 삼계탕도 절반을, 당신이 좋아하는 냉면도 반을 잘라서 동생 그릇에 옮기신다. 그럴 때면 나는 곧잘 고함을 지른다. 어머니는 소화기도 좋고 식성이 좋아 나보다도 음식을 잘 드신다. 삼계탕 한 그릇은 거뜬히 드실 수 있다. 딸은 어머니 건강을 생각해서 억지로 시간을 내어 외식을 시켜드리는데, 어머니는 내 앞에서 습관처럼 아들만 챙기는 모습이 순간 얄밉고 질투가 난다.  

작년 일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장협착이 와서 입원을 하셨다. 한참 어머니 밥상 시중을 드는데, 갑자기 밥상에 있던 가자미 생선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벌써 다 먹었다고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결국 나는 생선접시를 찾아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어머니가 먹던 생선 반 토막을 아들 준다고 숨겼던 것이다. 일생을 그렇게 자식 뒷바라지를 했으면 되었지, 구순이 되어서도 회갑이 넘은 아들을 챙기는 그놈의 모성애가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한가 말이다.

시대는 많이 바뀌었다. 모든 업무가 디지털화되어 속도를 중시하며, 모든 게 개인중심으로 흘러가는 세상이다. 인간과 인간의 고리 역시 그 옛날 대가족사회처럼 끈끈하지도 않으며, 단출한 핵가족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니 요즘 시대엔 부모가 자식에게 효孝를 강요해서도 안 되거니와, 반면에 부모라고 자식에 대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건 우둔한 짓이다. 하물며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참고 아들에게 줘야 직성이 풀리는 모성애는 박물관에나 보관해야 하는 쾌쾌 묵은 덕德이다. 덕이라기 보단 일종의 자가당착이고 아집이다. 자신이 그렇게 애지중지해서 기른 아들이 나중에 그런 부모 마음을 알기나 할까 말이다. 참사랑은 서로가 눈높이를 맞추어 마주 보면서, 가슴으로 서로 정을 나누어야 한다. 양쪽이 다 행복하기 위해선, 사랑의 질량이 평형으로 되어야 하는 게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해바라기를 하며 오매불망 그리워하면, 그건 불행이다. 짝사랑은 언제나 가슴앓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의 법칙이 도통 통하지 않는 게 있으니, 그게 바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 사랑이다. 하물며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을 남편처럼 친구처럼 의지하며 살아온 어머니로선 그 사랑이 유별날 수밖에 없으리라.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오로지 아들을 해바라기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한편으론 측은하다. 

오늘도 어머니와 놀아드리려고 왔다. 그런데 과일을 드려도, 빵을 드려도, 조금 있다가 동생이 오면 갈라먹자고 하신다. 원두커피를 드리면 동생도 이 커피를 좋아한단 말이 자동응답기처럼 새어나온다. 이제 어머니에게서 아들은 하느님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쪽은 어머니가 아니라 동생이고, 동생의 행동 여하에 어머니의 행복이 좌우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알 수 없는 질투심이 곰실거리고 올라온다. 딸들이 죽어라 어머니 뒷시중을 들어도, 결국은 어머니는 아들만 찾으니 말이다. 
  욱하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어머니 침대 밑 방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시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다. 언제 침대에서 내려왔는지 어머니가 내 얼굴 위에서 달덩이처럼 웃고 계셨다. 눈에서 사랑의 꿀이 뚝뚝 떨어졌다.

  “자랑스런 박사 딸, 고맙대이. 니 땜에 내가 평생 어깨에 힘주고 살았다아이가.”

나는 오늘 또 어머니께 반전의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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