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이었다. 세 군데 병원을 옮겨 다니며 7개월여 입원 생활을 한 어머니는 결국 의료 효과가 없다는 통보와 함께 퇴원 명령을 받았다. 나는 중환자인 어머니가 더는 병원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몹시 당황했다. 당시로서는 장기 입원할 수 있는 재활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대학병원의 가정간호사제도를 이용하기로 하고 매주 한 번 방문하는 간호사에게 T케뉼라 교체와 레빈튜브 확인, 혈압 체크 등의 역할을 맡기고 그 외에 모든 간호를 내가 도맡았다.
나는 어머니의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가위손 역할까지 해내는 멀티 의료인 아들이 돼야만 했다. 특히 어머니 머리 깎아드리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힘쓸 각오를 했다. 전날 밤부터 꼭 기도를 드린다. 머리 깎는 동안 가래가 쌓여 호흡이 막히시지 않도록, 내 팔과 허리 힘이 딸리지 않도록. 머리 깎기나 목욕, 모두 침대 위에서 이뤄진다. 병원에서 어머니 몸에 냄새가 날 때마다 죄송했고 건강을 잃기 전의 모습으로 깔끔하게 해드릴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내 손으로 집에서 모든 간호를 해내야 하니, 매일 오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침상 목욕을 해드렸다.
내 간호의 역량은 어머니의 위생부터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 다져갔다. 우선 식염수를 묻힌 솜을 핀셋으로 잡고 양치질을 해드린다. 가그린을 묻힌 거즈를 핀셋에 감아 혀를 닦아낸 후 물을 반 컵 정도 입에 넣어드린다. 석션을 해가며 기관 절제한 부분인 T케뉼라와 세트로 장착하는 Y거즈의 드레싱을 마친다. 정수기 물을 받아 가제 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아드린다. 나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달래는 방편으로 정수기 물로 세안을 해드렸다. 눈 주위와 귀 뒷부분과 목 주변을 특히 신경 써서 깨끗하게.
침대 높이를 낮춰 머리 감을 준비를 한다. 수건 두 개를 둘둘 말아 어깨 밑에 받쳐서 머리와 침대 사이 공간을 확보한다. 방수포를 어깨 아래에 대고 세숫대야에 담아 놓은 물로 머리를 적신다. 큰 대야를 침대 옆에 두고 미리 따뜻한 물을 담아 놓아야 한다. 한 손으로 어머니 뒷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의료용 가위로 들고 귀 주위의 머리카락부터 깎아 나간다. 양쪽 귀 부분을 정돈한 후 전체적으로 고르게 깎는다. 이때 가래가 끓으면 큰일이다. 잘 견디시도록 조심조심 신속하게 자른다. 머리카락 범벅이 된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받아서 머리를 헹군다. 여러 번 물을 갈아서 헹군 후, 샴푸 칠을 하고 샤워기를 대신하는 페트병에 담은 물을 머리 위에 부어 깨끗하게 헹군다. 눈과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수건으로 조심조심 닦아드리며 귀와 목뒤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떼낸다. 목에 쌓인 가래를 석션하고 감기 들지 않으시도록 빨리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면봉으로 귀의 물기를 제거하고 콧속도 청소한다.
로션을 얼굴에 발라드린 뒤 웃옷을 벗기고 등에 수건을 깔아가며 목욕을 시킨다. 침상 목욕은 엄마의 표정과 숨소리를 세심히 확인하며 섬세하고 기민하게 진행해야 한다. 불편한 표정이 감지되면 바로 석션을 하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처한다. 옆으로 등을 들어 닦고 그 다음 다리, 엉덩이 등을 비누로 깨끗이 씻긴 후 수건으로 온 몸의 물기를 닦는다. 몸 전체를 씻긴 후 등 아래 방수포 역할을 하는 시트를 빼낸다.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와 상의를 입힌다. 이렇게 머리 깎기와 목욕이 끝나면 어머니는 천사 같은 아기 얼굴이 되어 편하게 잠드신다.
울트라 가위손 아들의 손을 빌려 짧게 커트하신 우리 엄마, 멋지다! 내 마음은 한껏 뿌듯해진다. 활달한 성격의 커리어우먼처럼 보인다. 일주일에 두어 번 휠체어에 태워서 침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앉아 계시게 해드린다. 특히 머리 깎은 날은 휠체어 태워드리는 이벤트가 필수다. 보조해 줄 분이 필요하다. 휠체어를 침대 옆에 옮기고 나는 어머니 허리춤의 환자복을 잡고,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는 어머니 무릎 아래에 손을 넣어 함께 동시에 들어서 중환자용 휠체어에 부드럽게 앉힌다. 이때 끓는 가래를 빨리 석션하고 등에 옷이 엉키지 않게 잡아당겨 펴준 뒤 허리와 발목 안전벨트로 어머니 몸을 고정한다. 머리 위치를 바르게 잡은 후 휠체어를 밀고 거실로 나온다.
어머니는 휠체어에서 아주 편안해하신다. 누워만 계시다가 앉혀드리면 또 다른 높이의 세상을 접하는 셈이다. 집 바깥은 공원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리는 데다 터미널 주변이라 공기도 나쁘기 때문에 거실과 부엌만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병실로 꾸며 놓은 방 공기와 거실 공기는 다르니까. 휠체어에 앉아 계시면 깊이 쌓여 있던 속 가래도 배출되고, 주사기로 넣어드리는 죽도 코 튜브를 타고 잘 내려간다. 준비해 둔 두유와 주스까지 드린 후 주무시는 틈을 타 손톱, 발톱을 깎아드린다.
거실의 휠체어에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우리 모자가 기거하는 방 창문을 열어 환기한 후 대청소를 한다. 침대 시트도 속까지 말끔히 갈아 놓는다. 에어매트 상태도 점검하고 가습기도 청소한다. 이런 날은 아주 바쁘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에 집중한다. 그래야 그날 밤에도 여지없이 난 잠을 안 자고 간호할 수 있으니까.
3시간 정도 흘러 휠체어에서 주무시는 어머니가 깨시면 다시 허리춤을 잡고 도우미 아주머니는 무릎 아래 손을 넣어 맞잡아 동시에 들어 침대에 눕혀드린다. 어머니 몸을 부드럽고 안전하게 안고 침대 위에 내가 먼저 올라가서 조심스레 먼저 누워야 충격 없이 눕혀드릴 수 있다. 바지를 벗겨 기저귀를 빼내고 새 기저귀를 깔고 깨끗한 이불로 덮어드린다. 이렇게 머리도 말쑥하게 다듬고 깨끗하게 청소한 방의 향긋한 시트 위에 어머니를 다시 눕혀드리고 나면, 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개운하다.
예전의 나는 팔굽혀펴기 50개가 한계였다. 어머니 간호에 익숙해지면서 200개 이상 거뜬히 해내는 체력을 얻었다.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얻은 체력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그래서 여름에 반소매 티를 입고 나가 지인을 만나면 운동선수로 본다. 내 몸은 고통의 시간이 새로 디자인해 주었다. 훗날 어머니처럼 아프고 힘든 환자의 가족에게 힘이 되어줄 존재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병상에서 20년을 계셨고 나는 그 오랜 병간호의 세월을 마치고, 2018년에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창업했다. 그리고 지금은 치매 가족을 돕는 언론인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으로 일한다. 어머니는 내게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일을 하도록 특별한 경험을 주셨다. 나처럼 가족이 심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계속 공감하며 살아간다. 돌봄을 주제로 한 소셜벤처 창업가와 언론인으로 일하고 있는 이 길은 어머니가 걸어가게 해주신 길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뿌듯함은 집에서 오랜 세월 어머니를 간호해야만 한 내 청춘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며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로 활동
중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