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 대한치매학회 기자간담회
[기자의 눈]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생각난 대한치매학회 기자간담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4.21 0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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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네맙은 치료제로서 적합한 무기인가
대한치매학회의 ‘치매 고통 인지 감수성’은….

비 오는 주말인 20일, 2024 대한치매학회 춘계학술대회가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렸다. 주제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다”이다. 함께 참석한 이석호 기자가 전체적인 스케치를 쓰기로 하고, 나는 오전 세션에서 특징을 찾고 오후의 A, B로 나눠지는 선택식 발표 시간 중간에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헬스·바이오 전문지 중에 ‘치매’에 특화한 매체는 디멘시아뉴스가 유일하다. 그러니 신경과 연구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주요 학술대회에 풀로 참석해 공부해야 한다.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으로 일을 시작한 후 이번이 세 번째 학술대회 참가다. 그동안 학술대회마다 개회사부터 폐회사까지 모든 발표 순서를 꼼꼼히 경청해 요약했다. 하루에 많은 세션이 발표돼도 한 연자의 사소한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 독자들과 한국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소식을 전하고자 했다. 알아듣기 힘든 신경과 전문 용어와 영어식 표현이 난무하는 특이한 화법에도 점차 익숙해졌다.

 

레카네맙은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대한치매학회 춘계학술대회는 올해 하반기에 국내 승인 예정으로 기대를 모으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을 준비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갈등 국면으로 의료계가 어려운 가운데 이 학회에 많은 참석자가 모였다. 인지중재치료학회와 알츠하이머병 신경과학포럼(NFAD)에서 본 낯익은 의사들이 눈에 띄었다.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레카네맙이라는 무기가 들어오는 것에 고무적인 분위기이지만, 일반 서민 환자들에겐 실효성이 적고 가격도 비싼 데다 그 효과는 치료제라고 명명하기에 부족한 게 사실이다.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치매 단계에서 증상 진행을 평균 27% 지연시켜 주는 약제는 연구자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자 인류의 첫 구원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타워팰리스 같은 곳에 사는 어르신 중 해당 병증 단계에 있는 몇몇 분이 선별돼 맞는 주사 약제다. 그리고 치료 효과는 복불복이다. 부작용인 ‘ARIA(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가 10% 발생하는데 이미 임상시험 과정에서 뇌부종, 뇌졸중으로 사망한 환자도 있다.

앞서 미 식품의약청(FDA)이 무리하게 비과학적으로 허가하고 실패로 끝난 ‘아두헬름’보다 개선된 약물이라는 점, FDA가 정식 승인한 ‘최초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는 점이 특징이지만, 앞으로 더 개선된 약물을 만들기 위해, 황금을 지불하고 얻는 부실한 징검다리 같은 약이다. 그 징검다리가 없으면 '알츠하이머병 치료'라는 개울에 발도 디딜 수 없기에 연구자들은 환호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평범한 우리 이웃은 투약받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가격 때문에 부담스럽고 효과의 미비함 때문에 포기할 것이다. 체중에 따라 투약량이 달라지지만, 일본의 판매가를 고려하면 대략 1년에 3,000만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에서는 승인 직전에 유례없이 기술 청문회를 열겠다며 지연한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처방할 약이 필요한 의사에게 레카네맙이라는 무기가 생겼지만, 치매 가족은 폭격기를 기대하지 돌망치를 바라지 않는다. 레카네맙은 치료제가 아니라 부작용을 조심해야 하는 영양제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학술대회 오전 타임의 주요 세션에서 로슈, 에자이, 릴리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발표가 있었다. 로슈는 학회 현장에서, 나머지 두 회사는 영상 강연이었다. 이전의 학술대회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이라 새 치료제에 대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느껴졌다. 학회 이사장 임기 마지막 날인 양동원 교수와 인디애나 대학교 도나 윌콕 교수의 강연이 이어지며 레카네맙이 주는 희망과 부작용, 주의점 등 이 약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접할 수 있었다.

 

최성혜 신임 이사장, 김병채 신임 회장 선출

왼쪽부터 고성호 총무(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김병채 신임 회장(전남의대 신경과), 최성혜 신임 이사장(인하의대 신경과), 윤영철 회장(중앙의대 신경과), 양동원 이사장(가톨릭의대 신경과)
왼쪽부터 고성호 총무(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김병채 신임 회장(전남의대 신경과), 최성혜 신임 이사장(인하의대 신경과), 윤영철 회장(중앙의대 신경과), 양동원 이사장(가톨릭의대 신경과)

오후 발표들에 앞선 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최성혜 교수(인하의대 신경과), 신임 회장으로 김병채 교수(전남의대 신경과)가 임명됐다. 인지중재치료학회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대한치매학회 이사장이 된 최성혜 교수는 “진료와 연구 현장에 유능한 젊은 후학을 양성하는 학회로 만들 것”을 약속했다. 신임 회장 김병채 교수는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뿐만 아니라 간호학, 심리학, 영상의학과까지 통합해 연구하는 학회로 더 탄탄한 지속가능성을 갖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했다.

 

기자간담회,
학회 임원들에게서 치매 가족을 위한 따뜻한 관심을 찾고 싶었다

만 20년을 꼬박 식물인간 상태였던 어머니를 간호했다(간병보다 간호란 말을 선호한다. Y거즈 드레싱 등 매일 의료적 처치까지 독박 돌봄 보호자인 내가 했다). 건축을 전공했고, 졸업작품은 교내 공대 졸업생의 출품작들을 심사해 주는 과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건축구조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발병에 난 모든 것을 접었다.

요양병원이 생기기 전인 1997년부터 의식이 없는 기관절개 석션 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다가 건축가를 꿈꾸던 학생에서 작가로 그리고 기자로 직업이 바뀌었다. 뇌질환 환자를 돌보는 데는 이처럼 가족의 절대적 희생이 따른다. 꿈도 생산성도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 돌봄 현실의 그 극심한 고통을 연구자들이 알기를 바란 건 아니다. 다만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이 겪는 현실 온도가 얼마나 낮고 절망적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다.

기자 대부분이 학회 발표 현장은 제치고 간담회 시간에 맞춰 참석했다. 현 이사장 양동원 교수가 먼저 취지를 밝혔다. “2024 대한치매학회 춘계학술대회의 주제는 올 7, 8월경 국내 승인 예정인 항체 치료제 레카네맙(레켐비)의 준비와 업데이트다”라고.

우선 “치매에 대해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었는지” 질문이 나왔다. 과학기술 발전 연구비 예산은 대폭 깎였지만, 치매 지원 예산은 작년 수준이 유지되고 있으며 환자를 진료하면서 경색되는 느낌은 없다고 답변했다. 정책의 변화에 흔들리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히 치매 분야는 정부와 정당의 성격에 따라 버리고 살리는 정책이 아니고 국민에게 필요한 정책으로 인식해 총선 후 여야당 모두 계속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드린 질문 위주로 정리한다. “레카네맙이 증상 악화 27% 지연인 것은 치료제로 보기 어렵고 부작용도 있는 데다 최상위 소득 계층 정도 돼야 겨우 투약받을 수 있는 가격대다. 아두카누맙처럼 실효성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신임 이사장 최성혜 교수가 답했다. “훨씬 많이 좋아지는 예도 있다. 타우 단백질이 낮은 환자는 55퍼센트 지연 효과가 있었다. 물론 타우 단백질이 많이 쌓여 있으면 효과가 작을 수 있지만, 이 약의 효과가 좋은 그룹을 연구하면 치료제 연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작용도 아두카누맙에 비해 적으니까 기대하고 써볼 수 있다.”

현 이사장 양동원 교수가 보충 설명했다. “아두카누맙은 두 그룹 중 한 그룹에서 효과가 없었고, 중간 실험에서도 효과 입증이 부족했는데 FDA에서 허가를 내줬다. 의구심이 들었지만, 치료제가 없으니 승인한 것이다. 그러나 레카네맙은 3상 연구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로서 신약의 긍정과 기대 효과에 힘을 실은 답변이지만,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의 최신 연구를 계속 파헤쳐 온 입장에서는 치매 환자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다. 이 문제를 토론으로 잇긴 어려웠다. 기자간담회이지 약물 청문회장은 아니니까.

질문받는 대한치매학회 임원 중 다수가 치매안심센터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여러 번 지적해 온 문제를 질문했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 명단을 밝히는 데만 집중하고 있고 진단받은 어르신들의 삶을 돕는 기능은 거의 없고 그쪽으로 일할 인력도 없다. 학회에서 이에 대한 대책과 치매 환자의 현실적 고충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는가?”

이후의 답변들은 답변자 특정을 생략한다.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광역치매센터가 있었고 치매안심센터로 정착했다. 이를 운영하는 전체적인 지원에는 큰 변화가 없다. 적절한 규모의 인력 투입 없이 진단 목표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문제다. 아직은 치매 조기 발견에 집중하고 있지만, 중앙치매센터에서 앞으로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 조사 중이다. 계속 환자 발굴로 가는 것보다 발굴된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지부 치매 정책에서 장기요양보험 소견서가 바뀌었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의사 소견서 양식에 치매와 함께 뇌질환, 노쇠로 인한 보행 장애, 체중 저하, 근력 감소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도록 했다. 시설 등급 평가 기준에 신체적 노쇠 평가가 추가된 것이다.”

“임상에서 변화를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치매 말기 환자 관리다. 중증 환자가 되면 가족이 직접 돌봐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를 가볍게 하려고 요양병원을 활성화하는 면이 있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효율이 떨어지는 연명치료에 건강보험공단 재정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명치료 위주의 요양병원 말기 환자 케어를 줄이고 조기 검진과 진행을 예방하는 항체 치료 쪽으로 매칭하는 정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기자간담회 중인 고성호 총무, 김병채 신임 회장, 최성혜 신임 이사장, 윤영철 회장, 양동원 이사장
기자간담회 중인 고성호 총무, 김병채 신임 회장, 최성혜 신임 이사장, 윤영철 회장, 양동원 이사장

그렇다면 말기 환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간병 살인, 간병 자살이 일어나는 지점은 말기 환자를 책임지고 사는 보호자이지 않은가? 정부가 존엄한 죽음을 돕겠다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치매 말기 환자는 그런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다른 기자들에게 미안했지만, 질문을 좀 많이 했다. 기자간담회는 질문하는 자리이고 ‘디멘시아’뉴스의 기자로 참석했으니까.

“커뮤니티케어의 일환으로 집에서 케어하면, 환자의 증상이 깊어짐에 따라 보호자는 몹시 고통스럽다. 집이 병원처럼 진료가 가능한 편한 장소여야 하는데 집에서 케어하는 것을 장려하려면 방문 진료 의사와 가정 방문 간호사가 훨씬 많아져야 하고 방문 수가도 조정돼야 한다. 현재 의사들은 진료실 진료를 정상으로 여기고 요양원 촉탁의도 형식적이지 않은가. 증상이 심한 환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부자가 아니면 집에서 말기 치매를 케어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복지부에서 서울의 서북병원을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했다. 치매관리주치의 시범사업도 올해 7월부터 2년간 20개 시군구에서 시행된다. 장기간 흐름으로 보면 치매가 진행되면 요양시설 입소로 관리해야 하지만, 집과 보호센터에서 보호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방문 요양보호사와 치매관리주치의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말기 환자가 요양시설에서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다시 질문했다. “이제야 서울에 치매안심병원으로 서북병원 한 곳이 지정된 것은 너무 늦었다고 본다. 정부의 전문병원 지정제도에서 올해 109개가 운영된다지만 유독 신경과는 한 곳뿐이다. 치매 환자가 이렇게 급증하고 있는데 이런 치료 현실은 이해가 안 된다.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과 같은 치매 친화 마을이 시급한데 그런 디자인으로는 한 걸음도 못 가는 것 같다.”

“치매안심병원은 빨리 세우려고 국공립병원으로 제한한 데다 너무 외진 곳에 세우는 등 첫 단추가 잘못됐다. 느리게 볼 수 있지만 4~5년의 노력으로 서울시에 서북병원이 지정된 것은 큰 성과다. 치매안심병원을 늘릴 수 없는 것은 재정 부족 때문이다.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의료수가를 조정하며 적정 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워 한계가 있다.”

학회 임원들은 레카네맙에 대한 설명으로 주제를 전환했다.

“레카네맙을 초기부터 급여화하기는 어렵다. 건강보험공단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투약 대상으로 적절한지 엄격한 검사가 많이 필요하다. 아밀로이드 PET 양성으로 초기 치매 환자이며 뇌졸중이 있으면 안 된다. 100명의 투약 신청자 중 25명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항체 치료는 안전한 치료가 아니라서 안전하게 조절하며 주사제를 유지해야 하는 이슈가 있다. 부작용으로 중단하는 예도 있다. 항체 치료를 받는 사람은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맞아야 한다. 대략 2,000번을 내원해 주사실에 와야 한다. 레카네맙 승인 후 초기 환자 150명 정도 투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병원의 주사실은 암 환자가 대부분 투약받고 있어서 기반 시설도 부족하고 추적 관찰에도 허들이 높다.”

“항체 치료 보험을 하게 되면 까다로운 조건으로 열어주고 안전하다 싶으면 더 열어주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일본과 미국은 알츠넷(ALZ-NET)이라는 특정 데이터에서 관리하는 조건으로 보험을 시행한다. 기존에 없던 약이기 때문에 부작용과 효과를 추적해서 연구 관리해야 한다. 아시아인 임상 사례가 부족해서 한국과 외국 사례를 비교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병원마다 치매 치료 기반 시설 부족 문제가 있다. 대부분 암 환자 위주로 운영되며 주사실도 풀로 차 있는 상태다. 알츠하이머병 주사 치료를 하려면 병원 기반 시설 확충부터 해결해야 한다. ARIA에 대한 모니터링도 해야 하는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중증도를 보고 약을 써야 하는 구조인데, 치매는 중증도가 낮은 C로 돼 있다. 치매 치료가 원활해지려면 치매 환자의 중증도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

“중증도를 이해하기 위한 대표적인 예로 뇌졸중을 들어보면, 일반 뇌졸중은 B다. 그러나 혈전 치료가 필요하면 중증도 A로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는 중증도가 낮아도 장기간 모니터링을 받으며 관리해야 하므로 중증도를 A로 높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중증도 개정 시점이 매년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질환마다 모두 중증도를 높이려고 한다.”

“중증도를 왜 올려야 하는가. 대학 병원, 종합병원은 상급종합병원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주사실, 인력 보강 등 제반 시설이 연관돼 있다.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평가받는 데 중요한 지표가 중증도다. 상급종합병원을 유지하려면 35퍼센트 이상의 중증 환자가 입원해야 한다. 그러니 모두가 올리고 싶어 한다. 치매 말기에는 심한 폐렴으로 많이 돌아가시는데 치매가 아닌 폐렴으로 중증도를 적용해 중증 치료를 해야 하니 불합리하다.”

한 기자가 ‘치매’ 명칭 개정이 답보 상태인 것을 질문했다. 대한치매학회는 치매 정명 운동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치매를 '인지저하증'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지만, 진료와 임상에서 많이 쓰고 있는 용어를 개정하는 것보다 정확한 질병 명칭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본다.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꾼 사례가 있지만, ‘나 치매 걸렸나 봐’라는 말을 쉽게 쓰는 세상이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며 치매에 대한 공포에서 순화해 이해하는 게 낫다.”

“(웃으며) 지금 나도 인지저하증이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치매를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한다.”

치매라는 이름에 담긴 ‘어리석다’는 원어 의미와 진단받기 전에는 관심이 없고 진단 후에는 정보가 없는 데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두려움이 큰 낙인의 용어이므로 바꾸는 게 옳다는 의견을 내고 싶었지만, 대한치매학회의 입장이 그러하다고 하니 주제를 전환해 질문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의 비율이 단연 높지만, 진단이 어려운 루이소체치매의 비율도 높고 다양한 원인의 치매가 존재한다. 치매를 알츠하이머병으로 대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 호스피스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말기 치매 환자는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대한치매학회에서 말기 돌봄 시기의 치매 환자가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힘써줄 계획이 있는가?”

“그건 안 된다. 마지막 생존 기간이 정확하게 일주일 정도 남았다는 예견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치매는 남은 생존 기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불가능하다. 예상보다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질환이어서 의사가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결정해 줄 수 없다.”

이때 한 기자가 신임 이사장의 마무리 멘트로 기자간담회를 마치자고 했다. 나는 환자 중심의 병동제보다 요양원, 요양병원 등 장소 위주의 돌봄 시스템이 파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학회의 의견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마지막 답변에서 물음을 마음에 묻었다. '대한_치매_학회'는 '대한_알츠하이머병_치료제_연구학회'란 인상을 받았다. 정작 이 땅의 수많은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체휼과 치매 돌봄의 고통 인지 감수성은 아쉬웠다. 약제 연구, 상급종합병원의 치료 편리 외에는 인상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


기자간담회를 마치면서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떠올랐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 군대의 전쟁 포로인 영국군 공병대는 미얀마와 태국 사이의 415킬로미터 철도 건설에서 매우 중요한 콰이강에 다리를 짓는다. 공병대는 ‘이 지역 후손들에게 필요한 다리’라는 신념만 있지, 일본군이 제국주의를 확장해 갈 군수물자가 이송되는 전쟁의 요충지라는 헤아림은 없었다. 그저 전쟁 포로인 자신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본이 못 짓는 아름답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왜 이곳에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은 없었다. 연합군이 다리를 폭파하려 하자 다리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공병대는 아군인 연합군과 싸운다. 전쟁은 피아식별(彼我識別)을 어렵게 한다.

‘치매 극복’이라는 전쟁에서 연구자는 치매 가족의 절대 아군이다. 정작 고통스러운 돌봄 현장의 이해와 공감,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보호자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다면 치료제라는 다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짓는지, 그 성찰이 없는 콰이강의 다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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