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을 걷다]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김희연 작가
[책 속을 걷다]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김희연 작가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4.05.30 0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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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향한 애증의 양가감정...딸 출산 후 ‘삶은 단면이 아니고 양면이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거죠. 그래서 더 슬프기도 하지만."

2024년. 치매 환자가 100만 명,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치매’와 ‘노인’이 흔한 세상이다. 주위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가까이에는 늘 치매 노인이 산다. 내 주변엔 없다고?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잠시 운명이 나를 비껴갔을 뿐이다.

그런데 치매 노인이 우리 아빠라면? 그 안쓰러운 사람이 누군가의 인생에선 조연이자 흐르는 배경이겠지만, 내 인생에선 애증이 뒤섞인 드라마의 주연이고 상대역이다. 나? 가혹한 시련 속 주인공이다. 주저앉아 슬퍼만 하기엔 파도처럼 밀려드는 하루하루가 너무 벅차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 막다른 골목에 선 수많은 아들딸이 한 국내 포털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 사연을 나눈다. 이곳에 본인 얘기와 감정을 때론 거침없이 때론 세밀하게 풀어내던 한 치매 환자 보호자의 글이 큰 화제가 됐다. 그가 바로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의 작가 김희연이다.

김희연 작가는 치매 걸린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 하면서 겪은 희로애락 감정의 출렁임을 재기 넘치는 필체로 묘사해 독자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토록 미워하고 사랑하던 아버지가 떠나간 뒤 4년이 지나 세상에 나온 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쏙 빼닮았다. 그 양가감정을 작가는 이렇게 깨달았다.  

‘삶은 단면이 아니고 양면이구나!’

온종일 육아로 에너지를 쏟는 김 작가와 서면으로 만나 책 속을 걷는다.

 
김희연 작가 제공
김희연 작가 / 본인 제공

 

 

Q1. 작가님 첫 책인데 치매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 재미와 감동, 깨달음이 모두 잘 버무려졌습니다. 치매 아버지 간병 수기로는 꽤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개성 강한 문체로 술술 읽히게 쓰셨는데요. 혹시 학창 시절 글짓기로 수상하거나 문단에 등단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누구에게 ‘글 좀 쓰네’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나요?

어... 사실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 반응에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이 글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듯 그냥 편하게 썼거든요. 물론 뒤로 갈수록 많이 신경 쓰며 머리를 쥐어짜내기도 했지만... ㅠㅠ

Q2. 혹시 직업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지요? 작가의 꿈이 있었거나 소위 ‘글밥’을 드셨던 적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패션 화보 등을 보정하고 가끔은 의류 스타일링도 하구요. 사진도 찍습니다. 작가와는 거리가 좀 머네요. ㅎㅎ

Q3.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출간 후 가장 최근에 다시 읽은 적은 언제인가요? 힘든 시기에 겪었던 감정의 되새김질은 어렵습니다. 다시 읽고 마음속 낯선 감정이 일었다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책이 나오고 나서는 아직 못 읽었어요. 손이 안 가더라고요. 대신 블로그 초반에 연재해 놓은, 아주 날것의 엉망진창인 글은 종종 읽습니다. 다 지나고 나니 그때 좀 더 무던할 순 없었나, 의연할 순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4. 책을 읽은 지인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내밀한 가정사도 상당히 과감하게 밝히셨는데요. 책에 등장하신 분이나 특히 남편분과 ‘썬’님의 감상평은 어땠나요?

남편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더라고요. 지금의 나라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대처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나 봐요. 근데 그때라서, 그때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던 감정들도 분명 중요했을 것 같아요. 남편의 말이 위의 제 생각에 답이 되어줘 신기했어요. 썬은 엄청 좋아했어요. 내용상 둘의 비중이 크잖아요. 공동주인공인 셈이죠. ㅎㅎ 그래서인지 둘 다 열심히 홍보도 해주고 기뻐해 주고 있습니다.

Q5. 치노사모에 연재 중인 글이 회원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작가님도 팬심을 받아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댓글이나 독자가 있다면?

한 분 한 분 모든 댓글이 다 인상적이고 눈물이 났어요. 그 댓글이 지금 남아있는지 모르겠는데... '질풍노도의 시간은 지나고 연민의 시간이 옵니다'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이요. 그때 제가 너무너무 힘들었었는데 그 댓글이 뇌리에 콱 박혔어요. 그리고 그 말이 정말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끔은 인용해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Q6. 아버지의 간병과 죽음을 겪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글이라는 형식으로 ‘말하듯’ 솔직히 드러낸 점이 ‘잘 읽히는 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어두운 내용이지만 표현이 유쾌 발랄하고 섬세한 필체의 감정 묘사도 생생합니다. 평소 말이나 글로 감정 표현을 잘하시는 편인가요?

네! 맞아요. 저는 감정 표현이 엄청 풍부한 편이에요. 그래서 감정을 잘 숨기지도 못하고... 그래서 소셜 커뮤니티도 많이 활용하며 발산하고 삽니다. ㅎ

Q7. 아버지께서 소천하신 전후로 감정 소모가 크고 공황장애나 두드러기 등 여러 질환에도 시달리셨는데 지금은 회복 정도가 어떠실까요? 아직도 극복하거나 빠져나오기 어려운 감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은 육아로 인해 많이 놓여난 상태입니다. 다만 불안이라는 감정에서는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어요.

Q8. 아버지와 이별하신 뒤 따님이 태어났습니다. 육아 과정에서 아버지와 엮인 감정이 떠오른 적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어떤 감정일까요?

너무 닮아서요... ㅎㅎㅎ 이렇게 닮을 수 있나? 어처구니도 없고 신기하기도 하고... 돌아가신 후에도 감정이 실은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밉기도 했고, 그립기도 했고, 근데 아빠를 닮은 딸을 보며 아빠에 대한 나쁜 감정들이 많이 희석되는 중이에요. 다만 가끔,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렇게 이쁜 자식한테 어떻게 그리 소홀했지? 하는 마음이요. 육아에 엄청 적극적인 남편을 보며 더욱이요. 제가 태어났을 때 산부인과 병원비를 안 내주셔서 퇴원 못 할 뻔한 적도 있었고, 분유 살 돈도 없어 엄마가 마음을 많이 졸이셨다고 했어요. 엄마 증언이라 신빙성이 얼마나 있을진 모르겠지만. ㅎㅎ 그게 괜스레 서럽더라고요.

Q9. 아버지와 나이 차가 48세입니다. 작가님께서 20대 초반일 때 아버지는 70대셨고, 30대 초반에는 80대 환자가 되셨습니다. 보통 집의 자식보다 앞서 부양을 시작하신 거죠. 아버지와 나이 차로 겪었던 특별한 감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걸 특별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저는 어느 순간부턴 아빠가 제 자식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보호해야 할 대상, 편하고 즐겁게 해줘야 할 대상... 그전에는 아주 무척 매우 싫었습니다. 부담스럽고 진저리났어요. 근데 벗어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생각하자, 한 것이 그냥 그렇게 된 거 같아요.

Q10. 책에는 아버지께서 치매를 앓게 되고 죽음에 이르는 여정이 작가님 감정 변화와 함께 소상하게 적혀있어요. 이 중 가장 힘들거나 아쉬웠던 시기는 언제일까요. 그리고 가장 미안한 감정을 느낀 적은 언제일까요?

아빠를 집에 홀로 둔 2주간의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병원에 모시기 위해서 아빠가 자력 생존이 힘들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했는데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아직도 악몽을 꿔요. 미안하고 죄송스럽죠.

Q11. 작가님 책으로 치유를 받은 독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치매 환자 보호자로서 살아가는 게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치매 환자 보호자나 돌봄자가 부딪히는 현실적 어려움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외로움이 아닐까요. 제 주변에도 이런 일을 겪은 친구들은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에 털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외롭고 고독했어요.

Q12.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 작가님이 겪었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도움이 간절한 영역은 어느 부분일까요?

치매 환자 보호자의 정신과적 진료 지원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유토피아적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치매 환자 보호자가 맘 놓고 부모님을 맡길 수 있는 요양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13. 최근에 아버지 꿈을 꾸신 적이 있나요? 혹시 꿈에서 보셨다면 어떤 모습으로 무슨 말씀을 나눴는지 기억나실까요?

꿈에서 아빠랑 대화를 나눈 적은 많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대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나요. 최근에는 아빠가 운영하시던 옷 가게를 배경으로 제가 근처에 들러서 그냥 슬쩍 보고 오는 꿈을 꿨던 게 기억나요.

Q14. 책장을 숨 가쁘게 넘기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가 빨라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후속작을 쓰는 중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아니면 ‘육아’ 등 다른 분야 집필에도 관심이 있을까요?

후반부로 갈수록 글 쓰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아빠의 만행을 고발하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쓴 글이었는데 감정이 실리고 나니 글이 무거워지고, 제가 도리어 그 감정에 다시 이입되어 버려서... 그러다 보니 조금 서둘러 쓴 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 잡고 싶지 않았어요. 뜨거운 냄비처럼 좀 힘들었달까요.

후속작은 구상 중인데요. 주제는 이미 정했습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드디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엄마에 대한 이야긴데, 각각 나, 나의 엄마, 그리고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죠.

도망가고 싶은 엄마. 도망가 버린 엄마. 도망쳐버리고 싶은 엄마. 이렇게 셋에 대한 이야기.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ㅎㅎ

Q15.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치매란 어떤 질환일까요? 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시기 전 본인의 생각과 치매를 앓던 시기, 돌아가시고 난 지금으로 나눠서 설명을 해주신다면?

제가 생각한 치매는 말 그대로, 벽에 똥칠하고 하루 종일 밥만 달라고 하고, 아무것도 기억도 못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주 미묘한 경계에서 가슴을 덜컹거리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그래서 더 쓰라린 그런 케이스도 있고... 이것이 치매다! 라고 구분 지어 정의할 수가 없는 병 같아요. 애기를 키워보니 애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정의될 수 없는 질환 같습니다.ㅠ 저에게는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Q16.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 독자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씀 모두 부탁드립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거죠. 그래서 더 슬프기도 하지만. 위에 썼던 말을 정말 많은 분께 들려주고 싶어요. 질풍노도의 시간이 가면 연민의 시간이 온다는... 그 말이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 책을 읽은 분들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외로울 때마다 제 책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말 외롭고 힘들고 누군가 필요할 때 쓴 글이거든요. 제 외로움이 가득가득 묻어있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며 ‘이런 애도 있는데’하고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독자님들이 제 글을 읽고 ‘혼자만 이런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위로가 된다’는 말을 해줄 때 가장 큰 위로를 받았어요. 모두 그런 마음인 거같아요. 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위로.

가끔은 그런 마음에 기대어 안도도 하고, 또 힘내서 다시 출발하고요. 저 역시 그곳을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그 길에 여전히 있죠. 그러니까 제 책을 읽고 위로받으시고 위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동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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