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 칼럼] 정신증상에 대한 장내미생물 치료, 어디까지 권유할 것인가?
[김용성 칼럼] 정신증상에 대한 장내미생물 치료, 어디까지 권유할 것인가?
  • 김용성 교수
  • 승인 2024.07.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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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윤리와 증거 기반 치료에 대한 엄격한 자세

필자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장뇌 축’(Gut-Brain Axis)과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같은 장내미생물 기반 치료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항상 “일반인도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해야 하느냐?”, “어떤 프로바이오틱스가 가장 효과적이냐?”, “분변이식술 같은 치료법은 어느 때 사용하느냐?”와 같이 강의 내용을 실제 치료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아직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장내미생물 기반 치료를 똑 부러지게 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혈압약이나 당뇨약처럼 비교적 분명한 답이 나와 있거나, 치료 효과가 완전하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때마다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 환자에게 적용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보통 이 과정이 매우 길어서 의학교과서나 임상진료 가이드라인에 실릴 즈음엔 이미 환자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처럼 온라인이 발달한 시대에는 의학저널에 발표된 내용이 하루도 안 지나 언론 기사로 등장하므로 반복적인 임상연구로 확실한 증거를 수립하지 못한 설익은 최신 이론이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실정이다. 결론이 분명하지 않은 새로운 이론을 환자에게 적용할 때, 의료계에서는 일단 시도해 보는 적극적 자세와 매우 조심스럽게 적용하는 보수적 자세가 혼재한다.

장건강과 정신건강의 상호 작용 측면에서 극단적인 태도가 등장한 시대가 바로 앞 칼럼에서 소개한 1900~1930년이었다. 현대의학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였음에도 장건강이 정신증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만으로 멀쩡한 대장을 잘라내는 등 지금의 시선으로는 믿기지 않는 극단적 치료가 횡행했다. 이렇게 최신 이론에 따라 치료하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마치 시대를 앞서가는 실력 있는 의사처럼 보일 수 있고, 의사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학회에서 최신 이론을 강의하는 교수들은 연관된 임상연구를 수행하기는 하나, 통상의 진료에서 자신의 환자에게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강의는 많이 하는데 적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라는 힐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의 건강을 소중히 다뤄야 하는 의료현장에서는 항상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당시에도 히포크라테스의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Do no harm)”는 원칙에 따라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방식이 아닌 식이치료를 하거나 유산균 투여로 장건강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나 이제는 분변이식술이 임상에서 허가되고 사이코바이오틱스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시점이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인 정신증상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장내미생물 기반 치료를 적용해야 하는지 구체적 상황을 통해 살펴보자.

“우리 아이가 자폐증인데, 기사에서 분변이식술로 치료되었다는 내용을 봤어요. 우리 아이도 분변이식술을 한번 받게 해주고 싶어요”

어느 날 외래에 찾아온 환아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장건강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하에서 분변이식술은 자폐증과 같은 뇌기능 질환에 시도되고 있다. 심지어 급성 포스트코로나증후군(Post-Acute COVID-19) 환자에서 발생한 수면장애에 분변이식술이 효과가 있다는 임상연구가 지난주 보고됐다. 그런데 분변이식술의 근거가 모든 질환에서 동일하지 않다. 분변이식술 치료가 공식 허가된 재발성 C. difficile 장염의 경우 많은 임상연구로 확실한 근거를 확보했지만, 자폐증은 몇 개의 관찰연구가 보고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고 관찰연구에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임상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은 치료법을 환자들에게 바로 적용해도 될까? 이 결정에는 새로 시도하는 치료법의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과 비용 그리고 현재 치료의 제한점을 복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100년 이상 식품으로써 안전하게 사용해 온 프로바이오틱스와 달리 분변이식술은 몇 건의 사망례가 보고됐고(물론 면역이 아주 약화된 환자였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분변이식술의 경우는 의사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권유하기보다는 그 치료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설명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어떻게든 받고 싶다고 원하면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줄 수는 있겠다. 분변이식술을 먼저 권고하지는 않지만 절대 안 된다고 말리지도 않는 이유는, 현재 가능한 치료의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질환 자체에 개선이 없고 2차 치료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다면 의사들이 적절히 중재해 주는 것이 엉뚱한 사술을 찾아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허가받지 못한 적응증에 대해 임상연구가 아닌 일상 진료로 분변이식술을 해주는 곳이 아직은 없다는 점이다. 선의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과도하게 져야 하는 요즘 한국의 의료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부모들도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경우 그 한계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하고 배가 아파요. 잠도 잘 못 자는데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도움이 될까요?”

일부 프로바이오틱스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어 이를 사이코바이오틱스라고 하는데, 이름만 다를 뿐이지 100년 이상 사용해 온 프로바이오틱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변이식술과는 달리 안전성이란 측면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기에 의사들의 자세가 조금 유연해진다. 이 환자의 질문에 답할 때는 안전성보다는 모든 프로바이오틱스가 정신건강에 꼭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균주 특이성’ 원칙을 이해하는 것과 특정 제품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수준의 증거를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19세기에는 의사들이 치료의 성공 여부를 평가할 때, 병원을 나서는 환자에게 질문해서 환자들이 만족해하거나 의사들에게 고마워하면 ‘치료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방식은 당연히 주관적인 위약 효과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의미 있다고 생각한 많은 치료가 훗날 엉터리로 판명됐다. 20세기에 이룬 의학 발전 중 하나는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대조군 실험이라는 개념이 임상연구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 평가를 위해 (1) 위약을 사용하고, (2) 치료자와 환자가 모두 위약이 어떤 것인지 몰라야 하고, (3) 후향적이 아닌 전향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특정 사이코바이오틱스가 전향적 이중맹검 위약대조 연구가 있는지, 그리고 그 연구 대상의 증상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 선택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현재 개발된 사이코바이오틱스 중 대표적인 두 제품인인 캐나다 랄몽(Lallemand)사의 Cerebiome과 아일랜드 프리시전바이오틱스(PrecisionBiotics)사의 Zenflore 의 임상결과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 많은 동물실험 결과가 있지만 기전을 밝히는 목적이 아니면 동물과 사람은 다르므로 임상연구만을 기준으로 논해야 한다. 두 제품 모두 정신증상 개선이라는 사이코바이오틱스 정의에 합당하나 실제 임상연구의 내용은 약간 차이가 있다. Cerebiome은 정상인과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환자를 대상으로 두 편의 이중맹검 위약대조 연구를 통해 4~8주 투여하면 우울 불안 점수가 위약에 비해 유의하게 개선된 것을 보고했다. 반면 Zenflore는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킨다는 증거를 보였지만, 실제 우울 불안 점수의 개선은 유의하지 않았다. 또 Cerebiome은 우울 불안과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스트레스로 유발되는 위장관 증상을 유의하게 예방한다는 연구도 있다.

수면장애의 경우 Cerebiome은 8주 투여 후 수면의 질이 개선됐다고 보고했지만, 이것은 대조군 없이 제품만 주고 8주 후 수면 점수를 측정한 관찰연구이므로 그 효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물론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하는데 임상에서는 이런 효과를 일부 환자에서 경험하기도 한다. 반면 Zenflore는 시험을 보는 대학생이나 수면의 질이 나쁜 사람들을 대상으로 8주간 위약대조 연구를 수행했는데 우울 불안 점수는 변화가 없었으나 수면의 질 점수는 위약 대비 유의하게 개선됐다.

그러므로 환자가 가벼운 정도의 우울 불안 증상으로 불편해하거나, 우울증 약의 효과를 조금 더 증가시키고 싶거나, 스트레스로 배가 아픈 증상이 있다면 이 두 제품 중에서는 Cerebiome을 선택할 수 있겠다. 그러나 환자의 주된 불편감이 수면의 질 감소와 스트레스 적응 문제라면 Zenflore를 선택하는 것이 맞겠다.

현대의학이 전래의학(주술의학, 민속의학, 민간의학)과 다른 근본적 특성은 과학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이다. 의과학(Medical Science)는 서구의 산업화된 국가에서 지난 200년간 발전해 왔고, 20세기에는 이전의 모든 시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발전과 진보를 이뤘다. 그러나 그 과학적 발전에 비해 의학 윤리의 면에서는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여전히 후진적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터스키기 비치료 매독 관찰 실험’을 들 수 있다. 미국 공중 보건국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40년간 앨라배마주 터스키기 지역 주민 중 25~60세의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439명의 매독 환자와 185명의 비감염 대조군을 선발해 관찰하고 기록했다. 매독에 걸린 후 치료하지 않는 경우 환자가 겪는 증상과 합병증 등을 조사하는 목적이었기에 연구 대상자들에게 연구 목적이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40년 동안 대조군에서 추가 감염이 생기기도 했고, 1942년부터 미국에서 치료제 페니실린이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이를 제공하지 않아서 다수의 환자가 매독으로 고통과 신체 기형 등을 겪었고 사망하기도 했다. 이 실험은 1972년 폭로돼 미국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고 즉시 중단됐다. 특히 그 대상자가 가난한 흑인이었다는 사실은 의학 실험의 윤리성과 합법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지금은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반드시 생명윤리교육(Good Clinical Practice Training)을 받아야 하는데 환자 권리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대표적인 예로 이 터스키기 실험이 등장한다.

뜬금없이 터스키기 실험을 언급한 이유는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고 환자의 증상을 개선한다는 목적으로 치료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100년 전 광기의 시대에 벌어진, 장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을 잘라내지 않는다고 해서 덜 나쁜 것은 아니다. 모든 새로운 이론과 치료법 적용에는 조심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학문과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진 빅블러(Big Blur) 시대인 지금은 많은 의료 관련 제품이 의학 분야가 아닌 과학과 산업영역에서 개발돼 의료계로 들어오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 시작하지 않은 경우는 위와 같이 환자의 위해라는 측면에서 엄격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소 있기에 실제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의사들의 의학윤리와 증거 기반 치료에 대한 엄격한 자세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장내미생물 기반 치료를 정신증상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직은 미숙한 것임을 인식하고 치료의 종류와 근거 수준을 잘 따져서 환자에게 적용해야 한다.

 

 

김용성
소화기내과 전문의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겸임교수
좋은숨김휘정내과 부원장
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부편집장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지 부편집장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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