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행정과 상점이 알아차린 경제 효과
후쿠오카시는 2018년부터 치매에 걸려도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아가는 도시를 목표로 한 ‘치매 친화 도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산업계, 관청, 학계, 민간이 함께 치매에 걸려도 자기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을 목표로 하는 컨소시엄 ‘후쿠오카 오렌지 파트너스’ 등을 결성해 치매 환자의 일상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전개해 왔다.
후쿠오카 오렌지 파트너스에는 현재 약 110개의 단체와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파트너스의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치매 환자가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전달하는 ‘오렌지 인재뱅크’도 함께 창설해 운영한다. 현재 치매 환자 21명과 5개 단체가 등록돼 있다. 참여 기업과 단체는 “자원봉사로 협력하지 말고 치매 환자를 실제 고객으로 생각하고 참여해 달라”고 당부한다. 어디까지나 치매 환자와 기업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의 관계 구축이 목적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후쿠오카시가 주최하고 치매를 주제로 한 산-관-학을 연결하는 ‘넥스트 미팅’이 2019년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매년 6회를 열고 있다. 최근 주제는 ‘기술로 사회와 사람을 소프트하게 UPDATE!’로 60여 명의 기업 관계자와 치매 당사자들이 모여, 치매 친화 가스레인지의 출시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후쿠오카시, 가스기구 회사 린나이(Rinnai), 원예용품 회사 '웰조(welzo)' 이 세 곳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5월 27일 '넥스트 미팅'에서 가스레인지의 출시 기념 행사에 앞치마 증정식이 있었다. 이 가스레인지의 개발은 2021년 후쿠오카시가 실시한 치매 환자의 희망을 실현하는 프로그램 ‘즐겁게 요리 편’이 계기가 됐다. 치매 환자가 실제로 요리를 체험하는 행사였는데,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때 치매 환자로부터 “점화 버튼과 조작 패널이 같은 계열의 색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불을 붙일 때 어디를 누르면 되는지 알기 어렵다”, “생선 마크가 없어서 그릴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가스레인지 개발을 주도한 영업본부 매니저 타카하시 아타타카시는 “위험하다고 해서 고령자들이 가스를 끊고 전기 기구로 바꾸면 가스 회사의 존폐가 걸린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치매 환자를 위한 가스 기구를 개발하고 싶었다. 가스는 화력이 강하고 장점도 많다. 그래서 20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린나이 규슈 지사에 상담을 요청했고,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라고 가스레인지 개발의 계기를 설명했다.
치매 친화 가스레인지 제안을 받은 린나이는 곧바로 후쿠오카 오렌지 파트너스에 참여했다. 이후 첫 테스트 모델을 개발해 총 4회에 걸쳐 100명 이상의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가스레인지를 실제로 사용하도록 하고 사용 후기를 조사했다. 치매 환자와 가족의 사용감 조사를 통해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사용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조작이 어렵다면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사각형의 큰 조리구를 만들어 화염이 잘 보이게 했고, 선명한 색상으로 조작이 쉬우며, 음성 가이드가 있어 치매 어른이 요리하기 편한 빌트인 쿡탑 ‘SAFULL+’를 올해 2월에 출시했다.
후쿠오카 오렌지 파트너스 참여 기업 웰조는 치매 환자를 위해 끈으로 묶지 않고도 착용할 수 있는 앞치마를 개발했다. 원래는 원예 작업용으로 만든 것이지만, 요리에도 사용할 수 있는 이 앞치마를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증정했다.
이어진 세미나에서 게이오대학교 대학원 건강관리연구과 교수이자 치매 미래공생허브 대표인 호리타 사토코, 후쿠오카시 의료법인 스즈란카이 타로클리닉 원장이자 치매 전문의 우치다 나오키, 가정과 사무실용 로봇을 개발하는 ‘유카이 엔지니어링’ CEO 아오키 슌스케 등이 치매 환자가 참여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오렌지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적극적인 참가를 당부했다.
치매 환자 친화적인 활동이라고 해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이익을 찾지 못하면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후쿠오카시 치매지원과 야노 쿠니히로 과장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2020년 후쿠오카 오렌지 파트너스와 오렌지 인재은행에서 실시한 ‘치매 환자의 희망을 실현하는 프로그램’에서 "외출해서 식사와 쇼핑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한 명의 치매 환자가 후쿠오카시 주오구에서 버스를 타고 히가시구의 쇼핑센터로 가서 쇼핑하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때 치매 환자가 8,000엔(한화 약 7만 원)의 쇼핑을 했다. 쇼핑센터 입장에서는 “치매 환자도 쇼핑하는 고객이다”는 것을 알게 됐고, 후쿠오카시는 “치매 환자가 한 걸음 밖으로 나가 쇼핑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치매 진행과 예방에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치매 환자=소비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치매 환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치매 환자를 소비자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공생사회로 가는 지름길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후쿠오카시에서는 ‘치매 친화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었고, 치매 커뮤니케이션 케어 기법 ‘휴머니튜드(Humanitude)’의 계발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치매 친화 디자인은 하카타구청 신청사나 민간 간호 소규모 다기능형 재택 개호시설 ‘향풍관’(후쿠오카시 히가시구) 등 시내 52개 시설에 도입돼 있다. 바닥과 벽에 대비를 주고, 안내 표시는 픽토그램(Pictogram, 인포그래픽의 한 갈래로 어떤 대상이나 장소에 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합한 그림 문자)을 병기해 한눈에 어떤 시설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디자인 도입에 있어서 치매 환자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치매 친화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스털링 대학교의 연구 결과를 참고했다.
지난해 9월에 오픈한 이 프로젝트의 거점 시설인 ‘후쿠오카시 치매 친화 센터’는 후쿠오카시 치매 시책의 쇼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치매 관련 서적이 비치돼 있고, AR(증강현실)을 이용해 치매 환자의 시각 감각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화장실에 가면 벽과 문이 남성은 파란색, 여성은 빨간색,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애인 및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물리적인 장애물,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 및 정책)는 녹색으로 구분돼 있어 치매 환자는 물론 일반인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시로 편리하다.
휴머니튜드는 프랑스에서 고안된 케어 기법으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 인간다움을 회복한다는 철학에 기초한다. 치매 환자와의 적절한 의사소통을 통해 행동심리증상(BPSD, Behavioral and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됐다. 후쿠오카시에서는 전문직은 물론 구급대원, 가족 간병인,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약 260회의 치매 바로 알기 강좌를 실시해 총 1만 명 이상이 수강했다.
또한 올해 4월에는 복지국 내에 치매 전문 부서로 ‘휴머니튜드 추진부’가 창설됐다. 야노 과장은 “전국적으로도 드문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후쿠오카시가 휴머니튜드를 비롯한 치매 시책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치매에 관심이 높은 도시 후쿠오카는 치매와 함께 사는 도시로서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