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치매 고위험군 선별 '알츠윈'...일본 시장 진입으로 글로벌 진출 '신호탄'
“인생은 기억이고, 추억이다.”
이렇게 인생의 정의를 내린다면, 치매는 참 슬픈 병이다. 치매 환자는 가족을 포함해 가까운 사람들과 쌓았던 희로애락의 기억이 조각나 점차 흩어지고, 그들과 추억할 과거가 사라지면서 인생이 텅 비어가는 듯한 과정을 겪는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오랜 지기들은 환자의 기억 조각을 붙들고 돌이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자비 없이 앗아가는 병마가 야속할 따름이다.
하지만 일생의 기억을 모조리 잃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음악이나 냄새, 이미지 등으로 환자의 감각을 자극하면 특정한 시점의 기억이 떠오르거나 감정을 느끼는 현상도 나타난다. 회상 요법(Reminiscence Therapy)은 환자가 긍정적인 기억을 되짚어 숨은 조각을 찾아 연결하도록 돕는다. 이렇게 기억의 힘을 회복하면 심리적 안정과 행복감도 되찾을 수 있다. (본지 7월 30일자 <한국에 없는 마을 ⑧ 미국의 치매 마을, 글렌너 타운 스퀘어> 참고)
이현준 세븐포인트원 대표는 창업 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 관련 사업을 구상하던 중 참여한 독거노인 봉사활동에서 예기치 않은 경험을 마주했다. 이때 만난 노인들은 이 대표에게 20대에 상경한 이후 한 번도 고향에 간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이 말을 듣고 VR 기기로 고향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대표가 돌아간 뒤에도 노인들이 고향 얘기를 많이 한다는 후문을 들은 것이다. 이 경험은 세븐포인트원이 회상 요법을 사업화한 모티브가 됐다.
이때부터 당시 함께 봉사활동에 나섰던 공동창업자들과 치매 분야를 파고들어 사업을 본격화했다. 세븐포인트원은 인공지능(AI) 기반 치매 진단 솔루션 '알츠윈(AlzWIN)'과 VR 기반 회상 요법 솔루션 '센텐츠(Sentents)'를 서비스하는 AI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7월 1일’이라는 영문 회사 이름은 인생의 하반기 첫날을 맞아 고령화를 미리 준비하는 기업이라는 뜻을 담았다. <디멘시아뉴스>가 어르신들의 피드백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이 대표를 만나 세븐포인트원의 창업 과정과 비전을 물었다.
Q. 창업 전 이력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미국 워싱턴대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했어요. 전역하자마자 글로벌 금융회사인 메릴린치에 들어가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 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했죠. 2015년에는 미미박스로 자리를 옮겨 글로벌 재무 부사장 직책을 맡아 2년 정도 근무했어요.
Q. 봉사활동 중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고요.
사실 2017년 창업할 때 치매 분야로 사업 방향을 잡진 않았어요. 시니어 사업 분야에서 뭔가를 시작해 보자는 생각뿐이었죠. 당시 VR 관련 사업을 구상 중이었거든요.
2019년 우연한 기회로 서울 중구 종로구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는데요. 그때 만난 어르신 몇 분에게 혹시 VR 기기로 보시고 싶은 게 있는지 여쭤보니 본인들의 고향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찾아서 보여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셨어요.
봉사활동이 끝나고 사회복지사님께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전화로 주셨는데, 이후에도 어르신들이 고향 얘기를 계속 많이 하신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아들 얘기를 많이 하신다고 하고요. 이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았죠. 이때 ‘이거 신기하다. 한번 파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죠.
Q. 공동 창업을 하셨어요. 다른 창업자들과도 사업 방향에 뜻이 맞았나요?
봉사활동을 같이 나갔고 어르신들 반응도 함께 봤기 때문에 설득 과정이 따로 필요하진 않았어요. 저는 경영 부문을 맡았으니 큰 흐름에서 고령화 관련 사업이 유망하다고 판단했죠. 특히 치매 분야는 고령 인구가 느는 추세에서 대안 마련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요.
Q. VR 기기를 통한 회상 요법으로 사업화를 진행하다가 치매에 집중하게 됐다고요.
어르신들 반응을 접한 이후 사업 구상을 더 구체화하기 위해 관련 문서들도 많이 찾아보고 이 분야의 권위자들도 최대한 만나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VR 회상 요법으로 인지 치료를 하는 것 못지않게 치매 환자를 빨리 선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VR 기기에 아이 트래킹 기술을 접목해 치매 환자를 선별하는 솔루션을 연구했어요. 그때 만난 분이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중앙치매센터장)님이죠. 김 교수님을 여러 번 찾아뵙고 조언을 듣던 중 치매 환자를 선별할 때 언어적 부분도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이와 관련한 연구를 2010년부터 직접 해오셨구요. 아이 트래킹은 VR 기기와 별도로 시선 추적기가 필요한데 없애자니 정확도 문제가 생기고, 시선 추적기를 모두 구비하려니 비용 부담이 커서 여러 모로 걸림돌이 되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김 교수님 연구에 AI 기술이 적극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터라 훨씬 개선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때 김 교수님께서 특허에 대한 전용 실시권을 허락해 주신 후 기술 개발을 이어가 지금의 알츠윈을 만들었습니다.
Q. 먼저 센텐츠의 회상 요법을 소개해 주세요.
센텐츠는 기억회상 요법을 VR로 구현한 솔루션입니다. 예를 들어 20대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그 당시 표정이나 행동이 나타나는 것처럼, 어르신들에게 회춘의 느낌을 주면서 뇌 활성화와 함께 우울감 감소 등의 효과를 줍니다. 즉각적으로 큰 반응을 해 주시는 모습을 보다보면 제가 더 감동하게 됩니다. 여행 콘텐츠 중에서 경주나 설악산, 제주도를 보여드리면 신혼여행 때를 회상하시거나 가족 여행을 떠올리시고, 다방, 극장 같은 콘텐츠는 이뤄지지 않은 첫 사랑에 대한 연민을 많이 떠 올리시는데 다들 공유하시면서 빵 터지시기도 하시고 자신의 리즈시절 자랑잔치가 됩니다. 저는 이게 어르신들의 정신건강 증진에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의 시나리오는 현재 70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생애 주기(시대)별로도 있고, 문화나 여행 관련 테마로도 나눠지고요. 어르신한테 가장 맞는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진행합니다. 콘텐츠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특히 외국에 계시는 한인 분들께서도 호응이 큽니다. 대부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커서 효과가 아주 좋은 편이죠. 국내 노인복지관에서도 센텐츠를 사용하는 프로그램 참여율이 98%에 달하고, 어르신들이 놓치시면 주말에 오셔서 보충 수업을 받는 유일한 수업이라고 합니다. 강남구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는 오시면 하실 수 있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소개되고 있어요.
보통 회상 요법은 인지 치료사나 작업 치료사들이 많이 사용하시는데 대부분이 20~30대예요. 세대 차이가 큰 80대분들에게 회상 치료를 하는 게 쉽진 않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센텐츠는 임상 현장에서도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5~10명이 동시에 하실 수도 있고요.
Q. 알츠윈도 설명해 주세요. 지방자치단체에서 활용도가 높다고요.
알츠윈은 언어 유창성을 활용한 AI 기반 치매 고위험군 선별 솔루션입니다. 우리 제품의 장점은 다른 솔루션보다 검사 시간도 짧고 어르신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 검사는 1분 정도면 끝나거든요. 검사 전 단계에서 기관에서 필요하신 개인정보 동의나 성별 등 사전 입력 절차가 있어야 한다면 2분 정도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되기에 총 3분 정도 걸립니다. 기기나 애플리케이션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전화상으로도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접근성도 높였어요.
경기도광역치매센터에서 스마트 인지 검사 시스템 공급업체로 선정돼 공식 조달 납품했습니다. 올해까지 약 7개월 만에 3만 4,000여 명이 검사를 진행했어요. 그중에 치매 고위험군으로 7,000명 이상 선별됐고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시면 지역 내 치매안심센터 연락처와 함께, 걱정하시진 않으셔도 되지만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로 방문하실 것을 권유한다는 메시지가 자동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시스트(CIST), 세라드(CERAD-K), 치매 쉼터 등 필요한 정식 진단 절차와 서비스를 제공받으시고요. 치매안심센터가 더 효율적으로 조기진단 업무를 진행하실 수 있도록 돕고 생활지원사 등 파트너 조직과 협업할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한 ‘AI 바우처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돼 전주시에서도 알츠윈이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우리 나라에서 치매 첫 증상 발현 이후 병원 방문까지 평균 3년 정도 걸린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향후 국가 예산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거든요. 알츠윈을 통해 최대한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기간 시장 검증과 데이터 확보를 통해 알츠윈의 특장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의료기기화를 진행 중입니다. 올해 말 확증 임상을 거쳐 내년까지 인허가를 매듭짓는 게 목표입니다.
Q. 세븐포인트원만의 강점은?
접근성(accessibility)이라고 생각합니다. 접근성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AB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어요. 특히 현장에서 어르신분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를 많이 마련하거나 현장의 소리를 적극 반영하려고 합니다. 솔루션을 사용할 때 어르신들께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셨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 지에 대해 소중하게 여기고 최대한 솔루션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경기도에서 처음 사업을 진행할 때 정말 많은 부분에서 피드백이 발생했습니다. 경기도치매안심센터분들께서 주말, 저녁 할 것 없이 정말 열정적으로 현장에서 뛰면서 반응을 체크하고 즉각 피드백을 주셨거든요. 이를 통해서 추가된 대표적인 예를 말씀드리면, 처음엔 홍보 포스터에 QR 코드를 넣어서 어르신들이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속하실 수 있게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QR 코드 스캔도 어려워하셨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전화는 쉽게 이용하실 수 있으니 지금은 ARS 방식처럼 전화로 테스트하는 방식도 추가됐습니다.
또 클라우드(Cloud) 기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제공돼 언제 어디서든 웹페이지에서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구축했습니다. 당연히 사이버 보안을 위한 장치들도 마련해 뒀고요.
Q. 디지털 의료기기는 기술적 허들이 낮다는 의견도 있어요. 이에 대한 대책은?
'유니크(Unique)'한 데이터부터 특허 확보까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우선 하고 있습니다. 현재 5만 9,000여 명 데이터를 보유 중이고, 우리 회사의 강점인 접근성과 관련한 특허도 등록해 놨습니다.
Q. 지난달 ‘2024 서울-로슈진단 스타트업 스프린트 데모데이’에서 최종 수상했어요.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이번 수상 이전에 서울-바젤 스타트업 허브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위스 바젤에 있는 로슈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회사가 개방적이고 글로벌 파트너십에도 관심이 많은 곳이라서 좋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데모데이에서 꼭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우승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스타트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려면 크고 작은 문제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요. 향후 로슈진단과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해외 진출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Q. 네이버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는데요. 협업은 어떤가요?
네이버가 다방면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해 주고 있어요. 네이버 클로바 소속이던 옥상훈 부장님은 초기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구요. 네이버 D2SF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과 기회를 열어주고, 네이버와의 연결다리가 되주시구요. 네이버클라우드에서는 적극적으로 기술지원과 크레딧 지원을 해주십니다. 특히, 지자체와 사업을 진행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많은 협업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Q. 해외 시장 진출 현황과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일본에서 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요. 시장은 확실히 한국보다 큽니다. 지난 5월 30일에는 일본 헬스케어 그룹과 정식 계약을 맺었어요. 연 매출 수조 원 규모의 큰 회사이고, 일본 지방에 있는 현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현지 법인도 곧 세울 예정입니다.
미국에서도 별도 법인을 설립하고 여러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큰 규모의 의료재단이 현지 프로그램의 공식 파트너로 초청하기도 했고요. 현지 IT 회사와도 사업 진행을 활발하게 논의 중입니다.
이외에도 동남아 정부 기관과 최근 논의를 시작했고 유럽, 중동 등지에서도 관심을 많이 주시는데, 제대로 대응을 못 해드리고 있다보니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Q. 파이프라인 확장 계획은?
우울증. 그다음으로 파킨슨이 될 것 같아요.
Q. 세븐포인트원의 꿈.
글로벌 시장 진출입니다.
Q. <디멘시아뉴스> 독자에게 한 말씀.
경제적인 문제든 감정적으로든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병이 ‘전투’라면 치매는 전쟁인 것 같아요. 치매는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호흡도 길어요. 특히 치매 환자와의 좋은 기억부터 시작해 가슴 아픈 기억이 쌓이게 되는 병이다 보니, 환자와의 좋은 기억을 기록하고 나누고 이해하는 습관이 결국 나중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이 전쟁에서 돈독한 전우애와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조기 진단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초기부터 병을 관리하고 환자와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과 경험을 소중히 여기면서, 힘들지만 지켜 내려 노력하고 계신 모든 분께 함께 동지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