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가 알던 사람
[책소개] 내가 알던 사람
  • 김유경 사서
  • 승인 2024.09.1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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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알던 사람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

저자: 샌디프 자우하르 

옮긴이: 서정아

출판사: 글항아리

출간일: 2024년 08월 21일

정가: 20,000원

 

 

 

■ 목차
서문: 다들 나더러 수재라고 했지

1부
반과 매듭에 관하여

1장_ 우린 뭐 언제든 조지아로 이사해도 되니까
2장_ 그래서, 피아는 언제 데려올 참이니?
3장_ 그럼 난 택시를 타고 가마
4장_ 글쎄다, 나중에 이름은 남겠지
5장_ 언젠가 떠날 땐 어차피 다 두고 갈 것들인데
6장_ 여기서 다루고 있는 질환의 특수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7장_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

2부
흔적들

8장_ 아버지를 친할머니처럼 요양시설에 가둬두고 싶어?
9장_ 이제부터 무급으로 일하겠대요
10장_ 글쎄다, 외로움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어!
11장_ 너희 엄마는 어디 있니?
12장_ 그쪽이 수학을 모르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
13장_ 넌 내 가족이야
14장_ 걱정할 것 없다, 다 잘될 거야

감사의 말
찾아보기

■ 책 소개

인도계 미국인 과학자 프렘 자우하르는 어느 날부턴가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고, 새로 산 금고 비밀번호도 가물가물했다. 한동안은 그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찾아온 기억력 감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건망증이라기엔 심상치 않은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임에선 툭하면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고, 가족사진 속 얼굴들이 문득 낯설게 보이기도 했으며, 외출했다 집을 찾지 못해 길을 잃는 날도 있었다. 아내는 아들들을 집으로 불렀고, 그를 신경과 의사에게 데려가게 했다. 거기서부터 이 책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내가 알던 사람: 알츠하이머의 그늘에서』는 프렘의 둘째 아들이자 심장내과의인 샌디프 자우하르가 2014년 가을부터 7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기억을, 세상을, 끝내는 자기 자신을 잃어간 아버지를 회고한 책이다. 이 회고는 당연히 관계와 돌봄의 역학에 관한 고통스러우리만큼 진솔한 고백이다. 동시에 뇌의 퇴화와 정신의 침식에 관한 의학적 탐구이면서, 기억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이기도 하다.

■ 출판사 서평 

기억이 변화시키는
존재의 방식과 관계의 결

이 책의 원제는 My Father’s Brain, ‘아버지의 뇌’다. 샌디프 자우하르는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을 확진받는 순간부터 그분의 뇌, 그리고 치매에 걸린 다른 환자들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독자적인 탐구에 돌입한다. 그는 이 책이 그 탐구의 여정이라고 말한다. 다분히 의학적인 표현이지만 이 여정은 결국 그 탐구 대상이 ‘뇌’라는 점에서 정신으로 축적된 삶 자체, 그 안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기억과 인간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또 이런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져가는 순간에도, 어떻게 한 사람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겐 그럴 수 없을지언정 타인의 세계에서) 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가 된다.

이 책은 (…) 아버지와 나의 관계, 특히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마에 무너져가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이 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간병인 역할을 맡아야 할 때 생기는 여러 문제점과 동기들 간의 유대, 그 유대를 시험하는 난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실린 대화와 논쟁은 사적인 동시에 다분히 보편적이다. 집안 어른의 정신적 침식을 마주한 가족이 가질 법한 대화와 논쟁의 전형이랄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개인적인 사연만이 아니라 뇌와 기억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서 뇌가 퇴화되는 과정과 이유를 논하는 한편, 기억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흐릿해지고 달라지는 와중에도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들여다본다. 또한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개념이 치매로 인해 복잡해지는 까닭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그리고 사회에 갖는 의미까지 두루 살펴본다.(26-27)

저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그분이 나날의 일상에서 마주쳐야 했던 상실과 혼란을 옆에서 목격한다.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빛에 응답하듯, 그는 가족의 역사와 자신의 기억을 동원해 그분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본 적 없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이라는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을 새삼 의식하면서 부친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참으로 극적인 변화였다”(19)고 저자는 말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기만의 실험실에서 밀 유전학을 연구하던 세계적인 과학자였던 아버지가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고, 그로부터 몇 년 만에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 후 끝내는 숨 쉬는 법마저 잊어버리기까지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투병과 간병이라는 고통스런 대응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극적인 변화’는 아버지의 뇌뿐 아니라, 가족의 관계에도 찾아왔고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어쩌면 투쟁적으로 관계를 영위하고 삶을 다잡아가는 과정이었다.

지식이 두터워질수록 나는 아버지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틈을, 내가 평생을 노력했지만 좀처럼 좁히지 못했던 그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길은, 생각건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험난한 노정이었다. 일곱 해에 가까운 세월을 나는 다그치고 재촉하며, 협박하고 회유하며, 애원하고 간청하며, 격려하고 조소하며 보냈다. 나는 아버지에게 걷기를 강권했고, 책을 사다 안겼고, 억지로 퍼즐을 들이밀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동시에 증오하기도 했다.

‘나를 잊어버리지 마라.’ 아버지의 두 눈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고로 나는 아들 된 도리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도록 온전히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버지 당신보다도 더 상세히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기묘한 책임감이었다. 모임에 나가면 나는 아버지가 책도 쓰고 학술상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고는 했다. 아버지가 당신을 괴롭히는 병보다 더 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식으로나마 모두에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27-28)

한편 아버지가 당신에게서 당신 자신을 잃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아들의 이해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전에 불가능했던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모순적인 사실은 기억이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체 기억이 무엇이길래?’ 이 질문은 책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우리 자신이 누구이길래?’와 비슷한 말로 기능한다.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앓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니가 끝내 아내를 죽인 진범을 말해주는 메모지를 없애버렸듯, 기억은 때로 삶의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기억의 정체와 의미, 네트워크에 관해 성찰하면서 저자는 기억의 본질을 활용해 관계를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우리 기억은 여러 장소에 존재한다. 책 속에, 하드드라이브에, 스마트폰에, 그리고 우리 정신의 외부에 있는 다른 독립적 실체 안에도 기억은 살고 있다. 심지어 기억은 한 개 이상의 뇌, 이를테면 한 가족 내 여러 구성원의 뇌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일차적 뇌가 기억하기에 실패하면, 필연적으로 다른 뇌들이 그 일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다.(97)

아버지가 실려 나가고 사람들이 통곡하기 시작했을 때, 낯선 추억 하나가 나를 찾아들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온 이듬해의 기억이었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나는 켄터키 옛집 뒤편의 흙먼지 자욱한 언덕 비탈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평소 내가 기억하던 그날의 아버지는, 내가 그 언덕을 혼자서 내려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자 곧바로 흥미를 잃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생기 없는 몸을 부여잡고 있던 그 화창한 3월 아침의 기억 속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아버지도 내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행여 내가 넘어질세라 나와 속도를 맞춰 달리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열심히 페달을 구르며 나뭇가지와 잡풀이 깔린, 바큇자국이 깊이 파인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그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사실일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내 기억이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간직하기로 했다.(340)

그는 이렇게 기억의 개념과 추억이란 자원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자기 안에서 다시 정의하고, 그분을 보살피며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만년의 시간과 어떤 면에서 연결되는 유년기의 기억을 수정함으로써 관계를 재정의하지만, 거기서 이 책이 미덕을 드러내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저자가 보여주는 경계적 사고다. 그는 인간을 기억과 정신의 집합체로 보는 서구철학의 큰 줄기를 두루 인용하면서도, “정신적 삶만을 기준으로 인간을 정의하다 보면, 자칫 비인간화라는 함정에 빠질 소지가 있다”(245)고 지적한다.

몇몇 신경세포 집합체의 무결성이 어떻게 한 인간에게 인격이 있음을, 그에 따라 그가 인간이라는 칭호에 수반되는 권리와 도덕적 보호, 존중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인격과 같은 중대한 특성이 겨우 몇 군데 뇌 영역에 좌우된다는 말인가? 마침, 위와 같은 흐름에 대적하는 철학적 관점이 있다. 요컨대 인격의 근간으로 간주되는 심리적 ‘연속성’은 그럼에도 결코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유년기에 경험한 어떤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청년기의 일은 기억하고, 청년기에는 유년기에 경험한 그 일을 기억했다. 그러므로 만약 현재의 내가 청년기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고 청년기의 내가 유년기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라면, 심리적 연속성이 부재하는 상황이라도 여전히 나는 유년기의 나와 동일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연히, 기억만으로는 개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결정할 수 없다. (…) 여전히 우리는 공통의 가족 관계와 공통의 인생사로 연결된 상태였다. 비록 아버지 본인은 문제의 가족관계라든가 인생사를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 아버지였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을 아버지로 생각했으니까.(246-247)

‘죽음보다 무서운’ 병
알츠하이머의 그늘

아버지에 관한 회고가 『내가 알던 사람』의 중심 줄기라면,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논의는 그 사이사이의 곁줄기다. 심장내과의인 저자는 『심장』에서와 같이 문학적 소양을 곁들여 뇌와 기억,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의학적 서사를 적재적소에 펼쳐 보인다. 치매가 ‘망령’ 또는 ‘흑담즙의 축적’(아리스토텔레스), ‘체액이 차가워진 결과’(갈레노스)라고 여겨지던 고대부터 치매 환자들을 “‘백치 [그리고] 뇌전증 및 마비 환자’라든지 매춘부나 이런저런 ‘성도착자’와 함께” 가두어 “찬물 세례나 채찍질”을 가하던 근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자신의 환자 아우구스테 데터의 뇌를 연구해 치매의 메커니즘에 다가선 후로 진행된 이 병의 명명 과정과 현재진행형인 치료법 연구, 여전히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척박한 치료 현실까지…… 부친의 병세가 깊어감에 따라 저자가 아버지와 가족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의학적 탐구도 심화되어간다.

그 겨울 아버지를 가장 곤란하게 한 증상은 단기기억상실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기억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기억은 뇌에서 어떤 식으로 부호화encoding되고, 치매에 걸리면 무엇 때문에 이것이 황폐해지는 것일까? 이건 내게 단순히 학문적인 질문에 그치지 않았다. 의사로서, 또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나는 뇌의 퇴화에 대해 과학적으로 파헤침으로써 그러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바라건대 아버지의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그분이 현재 인생의 어떤 길을 지나고 있으며 우리 가족이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 겪을 법한 일은 무엇인지를 얼마간 헤아릴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나는 아버지의 기억상실을 직시하는 것이, 소중한 사람의 달라진 인격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정서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나는 사안을 광범위하게-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아버지의 미래를 당신의 바람대로 명예롭게 지켜줄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심오한 질문들부터, 관련 약제의 효용성이라든가 참신한 치료법 및 간병 대책의 유무와 같이 더 구체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살펴보기로 했다. (…) 이후 몇 해에 걸쳐 간병인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가장 곤란했던 시기를 꼽자면, 아버지의 행동이 뜬금없고 불가해하며 목적도 청사진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상태에 관한 과학적 지식과 역사적 지식을 축적하는 일은 아버지의 욕구를 파악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더욱 세심히 돌보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56-57)

지난 40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학계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이 병은 끝의 끝까지, 임종이 가까워진 순간까지도 환자와 보호자(가족 간병인)를 혼란에 빠트린다. 자우하르의 세 자녀는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여러 문제에서 대립한다. 아버지를, 그분의 단기기억상실과 인지장애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부터 무엇이 진짜 그분의 뜻인지까지 멀리선 언뜻 자명해 보이는 문제도, 이 형제들의 일상 안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이 양립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된다. 개인의 윤리관도 돌봄의 현실과 상충할 여지가 다분하다.

몇 해 전 영국 알츠하이머학회는 치료적 속임수(혹은 ‘정당화 치료validation therapy’)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치매에 걸린 사람을 조직적으로 속임으로써 일정 부분 진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여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권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형과 여동생은 이 주제를 놓고 나와 잦은 충돌을 빚었다. 나보다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두 사람은, 아버지가 (그리고 그들 자신이) 비통한 기분에서 얼마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속임수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둘은 아버지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줄 의향이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되레 아버지의 화를 돋운다면 그런 곤경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 앞서 언급했다시피 인간의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인 편도체는 해마와 겨우 몇 밀리미터쯤 떨어져 있다 한 영역의 질환은 삽시간에 다른 영역으로 옮아간다. 그러므로 기억상실은 흔히 감정 폭발을 동반하는데, 이때 감정 폭발은 그것을 촉발한 사건에 비해 과도하게 발현되고는 한다. 거짓말과 속임수는 그러한 일촉즉발의 순간들을 손쉽게 모면하는 지름길이었다. 더욱이 아버지가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구별하지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깟 거짓말이 대수이겠는가?(193-194)

하지만 나는 반대 입장이 확고했다. 나는 아버지와의 건강한 관계가, 아버지의 심신이 쇠해진 상태라 해도 오로지 진실과 신뢰를 바탕으로만 형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소한 거짓말들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을지라도, 우리와 아버지 사이의 가뜩이나 약해진 연결고리를 더욱더 약화시킬 것이었다.(193-194)

파킨슨병으로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아내보다 먼저 치매를 앓기 시작해 아내를 떠나보낸 후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삼남매가 처한 상황은 치매 환자와 그 보호자를 비롯해 중한 만성질환에 연루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상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심신의 고통과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경력 위기, 재정 위기…… 균열이 생긴 삶에는 오롯이 개인적인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 의료 시스템의 공백이 반영되어 있다. 197쪽부터 202쪽까지 길게 이어지는 삼남매의 메신저 대화는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23년 기준 100만 명 이상으로 노인 인구 대비 10퍼센트가 넘는다. 2030년에는 그 수가 135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심각한 미국에서(미국 내 알츠하이머병 환자 수는 6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곧 65세 이상의 미국인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이 질환을 앓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그 수치는 30년 안에 곱절로 불어날 전망이다) 재택 간병인을 고용하고 사설 요양기관을 알아보며 부모를 보살피는 자우하르 형제들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의료 시스템과 각종 지원사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자와 보호자가 체감하기엔 열악하기만 한 보건 및 돌봄 서비스, 그마저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어중간한’ 환자와 보호자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

여동생은 자주 들러 어머니의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나는 약을 관리하고 식료품을 챙겼다. 형은 형대로 집안 대소사를 살폈다. 그럼에도 양친의 집은 두 주인을 닮아 언제 봐도 황폐하기가 그지없었다. 2014년의 그 여름, 형과 여동생과 나는 적절한 보수도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노년층을 돌보는 이 나라의 약 1500만 가족 간병인 대열에 합류했다. 2016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이렇듯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수행하는 인구 가운데 특히 더 바쁜 절반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대략 30시간을 가족, 특히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는 일에 할애한다. 또한 매해 그들이 무보수로 일하는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4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들 가족 간병인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직무 생산성의 저하를 비롯한 직업적 어려움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는 병듦과 나이 듦이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병치레와 노화는 자칫 나의 지난한 노동으로 이어지기 쉽다.(46)

저자는 자연히 ‘치매 마을’로 알려진 네덜란드 호헤베이크나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의 치매 환자 장기 돌봄책인 ‘오렌지 플랜’ 등 외국의 사례로 눈을 돌리며,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이 질환을 사회가 어떻게 다루어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2009년에 문을 연 호헤베이크는 지극히 혁신적인 치매 간병 방식을 개척한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른바 ‘치매 마을’로 세워진 그 요양원은 주민이 약 150명에 달하는데, 그중 대다수는 24시간 내내 도움의 손길을 요하는 말기 치매 환자로, 카메라와 간병인이 곳곳에서 주의 깊게 지켜보는 가운데 경내의 이런저런 건물이며 야외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프랑스와 캐나다 미국 등지에도 비슷한 형태의 요양시설이 들어섰다. (…) 레오의 설명에 따르면, 그 마을 주민들은 숙련된 간병인이 한 명씩 배치된 스물세 채의 개인 주택에서 예닐곱 명이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을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어요. 본래 인간은 그런 식으로, 비슷한 관심사와 사고방식을 가진 타인들과 더불어 살고 싶어하니까요.” 레오를 비롯한 공동 설립자들은, 자기네 어머니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장기적 돌봄을 요할 때 스스로가 보호자로서 무엇을 원하게 될지를 자문해보았다고 했다. 그들이 도출한 해답은 양친이 마음 맞는 벗들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집이었다. “집은 익숙한 세계”라고 레오는 말했다. “똑같은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어야 하는 기억력 치료 병동과는 다르다는 얘기”였다.(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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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라는 유산

『내가 알던 사람』은 일차적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친에 대한 회고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가부장적이었던 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오랫동안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로 지낸 저자의 거리감이 엿보인다. 다 잘될 거다, 걱정 말거라, 널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렇게 가끔 튀어나오는 말, 긴장을 풀어줄 만큼만의 유머, 제대로 전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전해진 진심 같은 것을 통해서나 겨우 두 사람의 나누고 있는 정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광범위하게 인용된 의학 자료나 기억에 관한 길고 진지한 사유는 어쩌면 다른 경로로, 좀더 길고 깊은 방식으로 그러한 간극을 좁혀보려는 시도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본문이 끝날 때까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감사의 말」의 끝에 다음과 같이 적힌다. “내가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나를 독려하고 채찍질해주신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버지는 작가로서 나의 첫 롤 모델이었고, 일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주 많이 다른 방식으로, 나는 곧 내 아버지다.”

■ 저자 소개 

저자: 샌디프 자우하르 Sandeep Jauhar

현직 심장내과의. UC 버클리에서 실험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2015년부터 『뉴욕 타임스』에 정기적으로 글을 싣고 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 『타임』 『슬레이트』에도 다양한 의학 칼럼을 썼다. 지은 책으로 로스앤젤레스 공립도서관 등 다수의 기관과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심장: 은유, 기계, 미스터리의 역사』 외에, 『인턴Intern』 『의사 노릇하기Doctored』 등이 있다.

역자: 서정아
사람과 문화,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번역가이자 치과의사다. 좋은 글을 정직하게 전달하기 위한 자발적 고민을 즐기며 책과 언어를 사랑하는 행복한 삶을 여전히 꿈꾼다. 옮긴 책으로 『심장』 『다운 걸』 『날씨의 세계』 『칼끝의 심장』 『Holy Shit』 『생존자 카페』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 『맹그로브의 눈물』 『기발해서 더 놀라운 의학의 역사』 『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마흔아홉, 몽블랑 둘레길을 걷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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