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6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6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18.04.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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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16편 – 아이고 내 새끼야 네 어찌 생긴지 내 어찌 알꼬-김훈의 <고향의 그림자>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있으면 자식은 어떤 마음일까? 눈물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플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김훈의 <고향의 그림자>는 그런 처지에 놓인 아들 이야기이다.
주인공 ‘나’는 형사이다. 나는 중학교를 마치자 고향을 떠났다. 나에게 고향은 피난민의 판자촌과 DDT 냄새, 군부대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연명하던 ‘가난’의 유년기가 있던 장소이다. 그 시절 판자촌을 휩싸던 불길은 신기루처럼 몽롱해졌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기를 피해 왔다.

고향의 어머니는 육십 세를 넘기면서 치매 증상을 보였고, 이는 ‘소고기’를 사서 자식들에게 보내는 독특한 증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당신을 모시고 사는 형에게, 심지어 조카들에게까지 아무런 용도도 없이 용돈을 요구했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갈비, 등심, 안심, 안창살 등을 부위별로 사 냉장고에 쟁여 놓고 가족들에게 실컷 먹기를 요구했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는 냉동포장해서 택배로 보내 왔는데, 열흘 돌이로 한 뭉치씩 배달되는 소고기는 매번 열 근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다 먹기 힘들어 이웃에 나누어 주면 어머니는 방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이렇게 깊고도 질긴 울음과 같이 찾아왔다. 나는 그 울음이 원인이 무엇인지 몇 년 전 아버지 제상 앞에서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캄캄한 망각 속에서도 당신 생애의 마디마디들을 복원해서 재현해내고 있었다. 치매의 어둠 속에서, 삶의 마디들은 오히려 명료하게 되살아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사 개월이 되었을 때, 끼니 걱정에 지친 어머니는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려고 산부인과 병원에 갔었다. 어머니는 세 시간 동안 의사를 기다리다가 날이 저물어서 나를 그대로 뱃속에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낳은 게 너다 이놈아. 그때 의사만 있었더라면 널 긁어내서 신문지에 싸서 버렸을 게야.


이 말을 하고 어머니는 쓰러져 울었다. 어머니가 고백한 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시작되는 어머니의 넋두리는 형과 나 사이에 또 한 명의 아기를 임신중절로 버렸다는 것으로 귀결되곤 한다. 그리고 그 넋두리와 함께 어머니의 치매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간다. 어머니는 아파트 쓰레기통에서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인형을 주워 와 인형을 신문지에 싸서 끌어안고 울었고, 신문지에 볼을 비비고 울었다.
 

아이고 이 새끼야, 네 어찌 생긴지 어찌 알꼬. 그 플라스틱 인형이 당신이 버린 아기였다. 어머니는 그 플라스틱 인형을 반드시 신문지에 싸서 안았다. (중략) 미즈코(水子)야 미즈코야, 가라 마, 집에 오지 마. (중략) 미즈코는 그 플라스틱 인형에 어머니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중절수술로 긁어낸 태덩어리들은 저승에서 열 달을 채우고 다시 태어나 이승으로 돌아오는데 아들도 아니고 딸도 아닌, 말 못하고 눈먼 아이가 되어 아득한 물 위를 떠돌며 육지에 닿지 못한다는 일본 민담을 어머니는 일정 때 일본인들에게서 들은 모양이었다. 미즈코(水子)의 물 수(水)자는 그 아이가 떠도는 바다였다.
 

이렇게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앓으면서 당신 생애를 복원해 내는 과정의 최종점에는 나나 형이 아니라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가 임신중절로 긁어낸 아이 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아이를 낙태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발현된 것일까?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가 원귀가 되어 떠돌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공포가 치매 상태에서 이상 행동으로 나타난 것일까?

물론 어머니가 하는 이상 행동 속에는 무의식적인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작품 <고향의 그림자>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은 유년기의 가난, 배고픔의 문제이다. 미군부대의 쓰레기통을 뒤져 살아간 시간, 레이션 박스를 압정으로 눌러서 지은 판잣집이 순식간에 불에 타고 아예 마을이 사라져 버린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임신중절로 지우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내 위의 아이는 바로 ‘끼니’ 걱정 때문에 사라진 아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통해 보여주는 이상 행동의 중심에는 아이를 없앴다는 죄책감 이전에 가난 때문에 뱃속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게 했다는 어미로서의 안타까움이 자리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식들에게 소고기를 먹이려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난한 시절 감히 새끼들에게 실컷 먹일 수 없었던 ‘소고기’, 그 소고기를 쟁여두고 실컷 먹이고 싶었을 어머니 생의 가장 간절한 욕망이 치매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베개의 위쪽이 찢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베개의 입 속으로 밀어 넣기를 계속했다. (중략) 수철아, 자자 자. 밥 먹었으니 자거라. 수철이는 나의 이름이었고, 어머니의 무너진 정신 속에서 그 베개는 바로 나였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중략) 너가 수철이냐? 미즈코냐? 들어와 들어와. 아이고 내 새끼야. 네 어찌 생긴 줄 내 어찌 알꼬. 어머니는 눈물도 없는 메마른 울음을 울었다. 울음소리가 목구멍에서 막혀 끼룩끼룩했다. 어머니는 방 윗목에 놓여 있던 신문지에 싼 뭉치를 내 쪽으로 던졌다. 상한 소고기였다. 미즈코야 고기 먹어라. 안창살이야.


내가 요양병원에 찾아갔을 때,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나빠진 어머니가 보여준 모습이다. 어머니는 베개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계속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그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한 내 위의 아이 미즈코인지, 나인지 모른다. 다만 치매 상태의 어머니가 해 주고 싶은 것은 자식을 배불리 먹이는 것, 그 하나인 것이다. 


치매는 병이 아니라 매우 비정상적인 노화현상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중략) 치료법은 없었고 그 속수무책에 대한 설명은 있었다. 이 속수무책은 시간의 불가역성과 같은 것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그 불가역성 속에서 어머니는 죽음 이후의 시간을 당겨서 견디고 있었고, 당겨진 죽음의 시간 안에서 생명의 힘을 다하여 삶의 마디들을 복원시키고 있었다.


치매 상태의 어머니에게 남겨진 시간은 어쩌면 죽음의 시간을 당겨 놓은 것인지 모른다. 죽음의 순간에 생의 마디마디를 생각하듯, 치매의 시간 속에서 삶의 마디들을 복원시켜 그 아픔을 다시 느끼고, 당시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해 보는 시간이 아닐까. 그래서 치매의 시간 동안 첫사랑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서넛 살의 아이가 되기도 하는 것일지 모른다.

<고향의 그림자>에서 어머니가 보여 주는 치매의 시간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아픔을 견디는 시간이다. 그 아픔은 열 달을 채우고 낳은 자식뿐만 아니라, 끼니를 해결해 주지 못할까 봐 낳아 보지도 못한 자식으로까지 확대된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며, ‘나’가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고향의 그림자인 것이다.

작품 속의 서술자인 ‘나’가 고향을 가게 된 것은 범인 검거를 위한 출장 업무 때문이다. 잡범인 조동수를 쉽게 검거할 수 있었지만, ‘나’는 조동수를 일부러 놓아 주고 만다. 조동수의 어머니를 만나고, 그 어머니에게서 ‘나’의 어머니를 느끼고, 조동수에게서 ‘나’를 혹은 태어나지도 못한 ‘미즈코’를 느꼈기 때문이다. 범인을 놓아 주는 나의 이런 행동은 정신이 무너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식의 끼니를 걱정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생의 종착역까지 자식을 놓지 않는 모성, 어머니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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