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어원과 역사
치매의 어원과 역사
  • DementiaNews
  • 승인 2017.03.2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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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어원


치매(dementia)라는 언어가 인류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600년경이다.  세비야 대주교 성 이시도르가 그의 책 ‘어원학(Etymologies)’에서 치매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 용어는 라틴어에 기원을두고 있으며, 박탈 또는 상실을 뜻하는 접두사 ‘de’와 정신을 의미하는 어근 ‘ment’, 그리고 상태를 가리키는 접미사 ‘ia’의 합성어다.                     요컨대, 치매는 ‘정신이 부재한 상태(out of mind)’를 일컫는 것이다.

  치매의 역사

치매라는 증상은 인간과 오래도록 함께 해왔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노년에 이르면 점차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스 의사이며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인간의 생애를 유아기(0~6세), 청소년기(7~21세) , 성년기(2 2~49세), 중년기(50~62세), 노년기(63~79세), 고령기(80세 이상)의 6단계로 나눴다. 그 중에서 노년기와 고령기를 정신과 육체의 쇠퇴기로 간주했으며, 이 시기까지 생존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 정신이 젖먹이 수준으로 퇴행하여 마침내 어리석어진다고 했다.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인지장애가 뇌 손상에 의해 발생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노인의 정신기능은 필연적으로 저하되기 마련이어서 노령 자체가 치매의 주원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반하여 로마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며 법학자였던 마르쿠스 키케로는 노화가 반드시 정신기능의 쇠퇴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의지가 박약한 사람에게만 그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치매가 노화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서기 2세기경 터키 의사 아레테우스는 고위 인지기능의 가역적 급성장애를 '섬망', 불가역적 만성장애를 '치매'로 각각 구분해서 기술했다. 5세기 로마제국의 쇠락과 재정지원의 축소로 치매에 관한 의과학적 연구도 자연히 위축되었다. 신권정치가 지배하던 중세에는 노망치매를 다른 정신이상 증세와 마찬가지로 인간 원죄의 소산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4대 비극으로 꼽히는 ‘리어왕’을 통해 문학적 상징으로 치매증상에 관해 묘사했다. 한편, 신경과(neurology)라는 용어의 창안자이자 진료과목으로서 신경과의 창시자이기도 한 영국 의사 토마스 윌리스는 1672년 저서 <동물의 영혼에 관하여De Anima Brutorum>를 통해 사상 최초로 혈관성 치매(vascular dementia)를 학계에 보고했다.

근대에 이르러 1797년 프랑스 의사 필립 피넬에 의해 치매라는 진단명이 처음으로 의학용어로 채택되었다. 피넬의 제자인 장 에스퀴롤은 치매에 관해 “치매는 뇌 질환으로 인해 분별력, 지능, 의지에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며, 즐기던 기쁨을 잃는 것이고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1894년 스위스의 오토 빈스방거는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와 함께 치매의 원인 중 하나인 신경매독을 연구하던 중, 신경매독에 의한 치매와는 다른 원인으로 만성 뇌허혈에 의한 혈관성 치매의 여러 형태를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했다. 그 보고서에서 초로기 치매(presenile dementia)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훗날 이런 형태의 치매를 ‘빈스방거병 ’이라고 명명했다.

1910년 독일 의사 에밀 크레펠린이 치매를 노인성 치매(senile dementia) 와 초로기 치매(presenile dementia)로 구분하면서 초로기 치매의 병리소견을 발견한 제자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따서 ‘알츠하이머병’이라는 진단명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