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2]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2]
  • DementiaNews
  • 승인 2018.06.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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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항우울제

1952 년 마취제로 개발된 클로로프로마진이 항정신병 약물로서 의학적이나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후에 많은 제약회사들이 이 약을 변형시켜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중 개발된 약이 이미프라민(imipramine)이라는 약입니다. 1955년 스위스 정신과 의사인 롤런드 쿤(Roland Kuhn)은 이약을 정신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실험을 하였으나 대부분 실패 하거나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조용하였던 환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며,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지요. 모든 사람 들이 이 약이 정신과 환자에게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쿤은 정신증상이 심한 환자가 아닌 우울증이 있는 환자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이 약을 복용 후 환자는 점차 침상에서 일어나고, 주변 환자와 대화하고,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지들은 이렇게 밝은 모습의 환자를 본지가 너무 오래 전이라고 감격하게 되지요. 본격적인 항우울제의 등장이 되겠습니다. 이를 개발한 제약 회사는(Geigy)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 후 여러 제약회사에서 이와 비슷한 구조의 많은 항우울제들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항정신병약물의 등장과 더불어 항우울제의 등장은 인간이 비로소 정신과 증상에 특이적인 약물을 가지게 됨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정신과도 다른 의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인 과학 전통으로 되돌아 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약이 어떻게 우울증에 효과를 주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약들이 뇌 내의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 (norepinephrine)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증가되는 것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길래 우울하지 않게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건강한 사람이 조금 기분이 처진다고 먹는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복잡한 것은 진짜 우울증 환자라도 약을 먹어도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1-2주 이상 경과되어야 합니다. 더구나 좋아지기 전 까지는 많은 사람이 오히려 우울한 기분(dysphoric mood)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특히 대부분 환자에서 바로 좋아지지 않고 또 일부 환자는 약 복용 초기에는 기분이 오히려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환자에서는 오히려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더 떨어뜨리고 자살 경향까지도 가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과거에 개발된 삼환계 항우울제는 자살 목적으로 과량 복용할 경우 실지 상당한 독성을 보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좀더 효과가 있으면서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약 들이 개발되어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인치매 중 대표적인 알츠하이머병에서 가장 많은 행동 증상 중에 하나는 우울 증상입니다. 물론 정신과 진단 기준인 주요우울증 진단 기준으로 보면 아주 많지 않지만 우울한 기분을 기준으로 한다면 매우 많은 환자들이 이에 속합니다. 치매 환자에서 우울하다는 증상은 실지로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어 치매 초기에는 본인의 인지기능의 상실을 인지할 수 있지요. 자꾸 잊어버리고, 길을 잃어버리고, 돈을 어디다 놓았는지 모르고, 그러면 자신에 대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주변 가족들에 대한 눈치도 보게 됩니다. 1969년 스위스 정신과 의사 퀴블로 로스(Kübler-Ross)는 죽음과 죽어가는 것(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에서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을 가진 환자 혹은 그 가족들의 시간적 감정적 변화를 서술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부정(denial), 이후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마지막으로 받아들임(accept) 과정을 겪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영어의 앞에 자를 따라서 DABDA 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급격하게 진행하는 암 환자 등에서 많이 경험하지만 저는 만성적으로 진행하는 치매 환자에게도 같은 과정을 겪는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즉 아주 정상적인 감정 반응일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환자에게 정서적인 지지나 실질적인 인지기능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정해 줌으로써 환자가 좀더 안정적으로 상황을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치매가 심하며 병식이 없는데도 환자가 우울한 심리증상이나 신체 증상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심리치료나 인지치료로 안될 경우에는 약물 치료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젊은 시절 발병한 우울증과 달리 치매 환자에서 발병하는 우울증은 증상이 심하지 않고, 좀더 변동성이 클 수도 있으며, 자살 충동이나 시도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약물 치료 역시 소량, 천천히 증상을 보아가면서 치료 해도 됩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치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뇌기능 자체가 변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약물 치료가 계속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기적으로 환자를 평가하여 필요하면 약을 조절하거나 중지 할 수도 있습니다.

제 환자 중에 85세된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가 계십니다. 이 환자분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조용히 구석에서 열심히 짐을 싸십니다. 왜 싸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하십니다. 그리고 식사도 안 하시려고 합니다. 열심히 이야기 시키면 조용히 하시는 말이 “빨리 죽어야 가족에게 피해를 안 준다, 여기에 있으면 빨리 안 죽는다”고 말하십니다. 사는 것이 싫고 의미가 없다고 하십니다. 열심히 달래지만 할머니는 매일 짐을 싸십니다. 그런데 하루 하루 지남에 따라서, 할머니가 짐을 싸는 항목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항상 가득히 짐을 싸시던 분이 점차 싸는 것이 줄어 듭니다. 어느 날 제가 물어봅니다. 할머니 이렇게 짐을 싸셔서 어떻게 길을 떠나시겠어요? 그러면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어차피 가지고 가도 쓸데가 없어… 그러면 저는 짐을 싸는 것이 줄어드는 만큼 약을 조금씩 내리지요. 어느 순간 우울한 감정도 초월하는 때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초월해서 그럴 수도 있고 점차 뇌기능이 떨어져도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어디에 있던 이제 환자가 편해지는 모습을 보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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