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각성제 혹은 흥분제

 

85세된 다발성 뇌경색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다발성이기는 하지만 큰 경색이 아니고 병변이 아주 많지도 않아 걷거나 언어를 이해하거나 말을 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입을 열지도 않습니다. 가족이 와서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만 합니다. 손자가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해도, 딸이 아파서 병원에 가도 감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리치료나 인지치료처럼 환자의 참여가 필요한 때도 협조가 되지 않지요. 가끔 어떤지 안부를 물으면 “나는 죽었어”라고 합니다. 가족들은 너무 속이 상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

한달 후 병원에서 퇴원한 딸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잘 계셨어요?” 순간 할아버지는 딸의 눈을 보면서 말합니다. “많이 아팠다며? 지금은 안 아프니…?” 순간 딸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부녀가 눈을 마주치며 감정을 공유한 것이 얼마 만인지 모릅니다.

다시 1달이 지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꾸만 전화를 걸어 달라고 합니다. 누군가 재산을 훔쳐가는데 빨리 퇴원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전화를 요구하고, 안 해주면 소리를 지릅니다. 가족들도 점차 지쳐갑니다.

일상에서도 ‘사이코’라는 말을 흔히 하거나 듣습니다. 사이코란 정신증을 뜻하니 사실 굉장히 무서운 말인데 무심코 사용하지요. 정신증은 현실과 동떨어진(loss of contact with reality) 비정상적 정신상태입니다. 이것은 병명이 아니라 증상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증상과 중증도는 상당히 광범위하며, 주로 조현병(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 장애 등 심한 정신질환에서 나타납니다. 정신증의 증상은 사고, 감정, 행동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크게 양성증상(positive symptoms)과 음성증상(negative symptoms)으로 구분합니다. 양성증상은 환자의 경험에서 추가되는 증상이지요. 전에는 없었던 망상, 환각, 환청, 소리침(shouting), 폭력(acting) 등입니다. 의사들끼리는 ‘떠있는 증상’이라고도 하지요. 반면 음성증상은 말수의 감소, 감정 변화의 감소, 무관심, 욕망의 감소 등 있던 것이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겁니다. ‘가라 앉는 증상’이라고도 합니다. 치매 환자는 대부분 양성증상 때문에 병원에 옵니다. 소리치고, 뭔가 보인다 하고, 부인이 바람 피운다고 눈에 핏발이 서고, 폭력을 행사하고, 아주 시끄럽게 굽니다. 이런 증상들은 보호자에게 매우 힘들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월합니다. ‘떠 있는 증상’을 낮추는 약은 많이 개발되어 있고 치료 효과도 극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음성증상은 보호자가 덜 힘들지만 아주 치료가 어렵습니다. 말을 안 하고, 감정 변화가 없고, 꼼짝도 않고 있다가 종국에는 식사도 안 하려고 하여 영양결핍이나 사망으로까지 진행할 수 있지요. 음성증상을 추적하다 대사성질환, 우울증, 무감동증, 파킨슨 병 등 다른 질환이 발견되어 치료받고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원인이 없는 음성증상은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흥분제(각성제, stimulant)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흥분제라고 하면 대부분 마약처럼 환각을 일으키거나, 성의학에 나오는 성적 흥분제가 연상되어 거부감이 들지요. 하지만 대표적인 흥분제는 커피, 담배처럼 흔히 사용되는 물질입니다. 흥분 효과가 약하고 조절 가능한 것들이지요. 좀 더 나가면 흔히 필로폰(히로뽕)이라고 부르는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이 있습니다. 집중력과 업무 효율을 높여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독성이 심하며 장기간 사용할 경우 환각, 혈압 상승 등 다양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으로 취급하여 금지합니다.

식당에 가면 정신 없이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상당수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진단받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모예절교육결핍 증후군’이나 ‘내 아이 기 죽이지마 증후군’ 같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성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메스암페타민과 유사한 메틸페니데이트라는 약을 사용하면 증상이 완화됩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도파민 수용체와 노어에피네프린 수용체에 작용하여 뇌 속의 도파민과 노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킵니다. 도파민은 주로 보상기전, 집중력 등에 관계가 있지요. 그런데 치매 환자 중에 음성증상이 심한 환자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특히 뇌의 앞쪽인 전두엽 기능 이상으로 인한 음성증상, 구체적으로 무감동증 환자에게 효과가 좋습니다.1 똑같이 도파민 양을 증가시키지만 메스암페타민과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중독성이나 부작용이 덜해서 의료 현장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때로는 중증 음성증상에도 유용하지요. 하지만 신경자극제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환자가 ‘뜰’ 수 있습니다. 특히 정신증이 숨어 있는 경우에 그렇지요. 앞에서 말한 환자도 처음에는 아주 효과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점차 양을 늘리자 음성증상 밑에 숨어 있던 양성증상이 드러났지요. 결국 보호자도, 저도 지치고 말았습니다. 약을 끊었는데도 상당 기간 환자는 사람을 의심하며 공격적이었지요. 이후 비교적 갑자기 증상이 가라앉았습니다. 다시 말도 없어지고 무감동 상태로 돌아갔지요. 약을 다시 시작하고 늘리고 다시 줄이는 등 아주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세세한 과정은 생략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지요). 결국 처음만큼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보호자와 대화나 감정을 교류할 정도는 되었지요. 더 이상의 증량은 주저하고 있습니다.

Tipping point(티핑 포인트) –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네이버 어학사전)

2002년 개봉된 크리스 웻지 감독의 <아이스 에이지>는 도토리를 차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뛰어 다니던 다람쥐가 빙하에 도토리를 박는 순간 빙하 전체가 무너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이 티핑포인트지요. 아주 조그만 충격에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지점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물리학에서 처음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사회학이나 역학, 경제학에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티핑포인트는 환자에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위 환자처럼 어떤 용량까지는 아주 좋은 경과를 보이다가 아주 소량 약을 증량했는데도 걷잡을 수 없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요. 다른 정신과 질환에서도 나타납니다. 우울 증상이 심한 양극성 장애 환자가 약물치료 후 좋아졌다고 방심하다가 조증으로 가면 환자나 보호자가 훨씬 힘들 수 있습니다. 티핑포인트의 변화는 약 용량을 변경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습니다. 환자가 탈수된다든지, 약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약을 복용하는 등 신체 상태가 변하면 같은 용량이라도 환자 상태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약을 쓸 때는 환자의 상태를 끊임 없이 관찰하여 균형추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아내의 얼굴이 좋지 않습니다. 아뿔싸! 회식했던 카드 영수증 80만원을 들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눈치를 보면서 식사합니다. 숨을 죽이고….  무사히 식사가 끝나고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립니다. 조용히 물어봅니다. “저녁에 치맥이나 할까? 내가 카드로 긁을게”. 갑자기 아내가 소리칩니다. “아니 그렇게 카드 긁고 와서 또 돈 쓰냐…”   그냥 잠이나 잘 걸. 만 오천원 더 쓴다고 했다가 그만 티핑포인트에 걸려 버렸습니다. 세상이 다 지뢰밭 같습니다.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Reference
1. Dolder CR, Davis LN, McKinsey J. Use of psychostimulants in patients with dementia. Ann Pharmacother. 2010 Oct;44(10):16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