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알츠하이머병 연구실
고령화 사회의 난제 알츠하이머병
현대 의학의 발전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많은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나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들은, 인구 고령화 사회에 속한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피할 수 없는 질병들이다. 퇴행성 뇌 질환들 중에서도 환자와 이를 돌보는 가족 모두에게 막대한 신체적/금전적 부담을 짊어지게 하는 치매는, 이미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주장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치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환자의 기억력・인지력 저하가 서서히 진행되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뇌 질환으로, 아밀로이드 베타(Aβ) 펩타이드의 과생성과 타우(Tau) 단백질의 과인산화가 핵심 병리인자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까지 실질적인 치료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배고픔이 주는 생명연장의 꿈, 그리고 공복 호르몬 그렐린(Ghrelin)
효모와 같은 다양한 균류부터 마우스와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칼로리 제한(Calorie restriction)은 노화를 지연시키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이 보고되어있다. 이러한 효과를 매개하는 기전들로 콜레스테롤과 인슐린부터, Sirtuin 계열의 효소들까지 다양한 물질들이 관여함이 제시되고 있다. 아직까지 완벽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2009년 한 연구에서 과체중 노인에게 실시한 칼로리 제한이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이 보고되었으며, 2013년에는 알츠하이머병 동물모델에서 칼로리 제한이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의 핵심병리인자인 Aβ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칼로리를 제한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먹고자하는 원초적 욕구를 끌어올리는 그렐린의 분비로 이어진다.
공복 호르몬(Hunger hormone)으로 알려져 있는 그렐린은 위에서 생산되어 혈액을 타고 뇌로 전달되어 식욕 촉진, 체중 조절, 및 에너지 항상성 조절 등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체의 여러 기관에서 그렐린의 광범위한 기능이 밝혀짐에 따라, 단순히 공복 호르몬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질환에서 그렐린의 역할 및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본 칼럼에선 알츠하이머병에서 그렐린의 역할과 치료 타깃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알츠하이머병의 완화를 위한 그렐린의 가능성
위와 십이지장에 주로 존재하는 그렐린 세포(Ghrelinergic cells)에서 분비된 그렐린이 어떻게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뇌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까? 그렐린은 말초기관 외에도 시상과 같은 뇌의 여러 국소 부위에서도 생산될 뿐만 아니라, 그렐린의 수용체인 Growth hormone secretagogue receptor type-1a (GHS-R1a)는 해마를 포함한 다양한 뇌 부위에 발현되어있으며, 다른 많은 내인성 펩타이드와는 다르게 혈액-뇌-장벽(BBB)을 통과하여 뇌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유전적으로 그렐린이 결핍된 마우스에서 현저한 인지기능의 저하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혈중 그렐린 농도의 감소가 보고되어 있으며, 이는 그렐린이 정상적인 인지기능에 필요하며 알츠하이머병에 관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반대로 마우스 또는 랫드에 그렐린을 투여한 결과, 신경 손실의 원인인 신경염증과 활성산소종(ROS)을 감소시키는 신경보호성 작용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해마 내 신경생성 촉진, 시냅스 형성 증가, 장기강화작용(Long-term potentiation)을 유도하여 공간 학습과 기억력을 유의적으로 증가시킴이 보고되어있다. 마찬가지로 유전적/실험적으로 유도된 알츠하이머병 동물모델에서 그렐린 또는 그렐린 유사체(Mimetics)의 투여가 Aβ의 축적과 Tau의 과인산화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신경염증과 시냅스 소실을 억제하고 인지기능을 향상시켰다. 그렐린이 알츠하이머병의 핵심병리인자들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명확한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밀로이드전구단백질(APP)에서 Aβ로의 처리(APP processing) 억제를 통한 Aβ 생성 감소,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의 감소를 통한 신경염증과 신경사멸의 완화,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로 인해 유도되는 세포사멸(Apoptosis)의 억제, Aβ로 인해 손상된 자가소화작용(Autophagy)의 정상화 같은 다양한 기전들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다. 게다가 그렐린이 BBB 손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고됨에 따라, 알츠하이머병에서 BBB 손상으로 인한 BBB 과투과성 문제와, Aβ의 혈관 내 축적으로 인해 발생하는 뇌아밀로이드혈관병증(Amyloid angiopathy)이 유발하는 뇌혈관 위험인자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절반 이상은 일몰증후군(Sundowning; 해질녘즈음에 혼란, 불안, 공격성, 흥분, 배회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증후군), 수면장애, 식욕부진와 같은 일주기리듬 붕괴를 나타내는데, 그렐린은 식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뇌의 시계(Master clock)인 시교차 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에 작용하여 수면-각성 주기를 정상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이 보고 되어있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은 ‘제 3의 당뇨병’이라고 할 정도로 대사 체계의 손상이 주된 병변이다. 일맥상통하게, 비만과 고혈당, 고인슐린혈증, 고콜레스테롤혈증 같은 대사증후군들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위험인자들에 대해서도 대사호르몬인 그렐린이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짧은 반감기, 비싼 가격 등과 같은 펩타이드 호르몬인 그렐린이 갖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몇몇 그렐린 유사체/작용제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임상 시험 단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동물모델에서 인지기능 향상 효과를 나타낸 일라이 릴리 사의 LY444711와 최근에 보고된 MK-0677(Ibutamoren)은 그렐린 유사체/작용제의 투여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인자들과 여러 병변들에 치료효과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알츠하이머병에서 그렐린과 같은 대사 경로와 관련된 호르몬의 역할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