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2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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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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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2편. 치매와 거울-김인숙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

이미지 출처 : Flickr

 나는 두 딸이 있다. 가끔 장난삼아 “엄마 늙고 병들면 돌봐줄 거지?”라고 물어보면, “아니, 갖다 버릴 거야.”라고 웃다가도 결국 “그럼.” 한다. 실없는 질문이지만 그런 농담을 하는 데는 그만큼 딸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아닐까. 엄마와 딸의 관계란 그런 거다.

김인숙은 <거울에 관한 이야기>라는 단편을 통해 딸의 눈으로 보는 어머니의 치매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충 예상하겠지만, 이 소설은 딸의 관점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치매를 공감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가족의 고통을 토로하기보다는 치매를 겪는 어머니의 내면을 보다 따뜻한 눈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어머니의 치매와 함께 딸의 불임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룸으로써 여성의 전반적인 삶의 문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어렵고 힘든 병, 치매. 문학에서는 그 병을 앓는 이에게 공감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 줄까? <거울에 관한 이야기>는 ‘나’로 등장하는 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 이야기를 한다. ‘나’는 세 번이나 아이를 유산한 불임여성이며,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지난날의 기억을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듯이 어머니와 딸은 소중한 것을 자꾸 잃어버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소설에는 ‘건널목’이 등장하는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길을 건너지 못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인생의 건널목을 쉽게 건너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어머니에게 화장대를 사 드리기 위해 어머니와 제과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어머니는 아들 내외와 살고 있는데, 얼마 전 당신의 방 화장대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끼워두었던 판자 조각을 빼버려 경대 거울이 박살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무언가 잘 잊어버리는 치매 증상의 하나이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잊는 증상을 보여 왔다. 냉장고 문을 닫지 않고, 가스불도 잠그지 않고, 화장실 물도 내리지 않고, 방구석에 곰팡이 핀 음식 찌꺼기를 두기도 하고…. 이 모든 증상은 ‘잊음’이라는 공통된 증상이다. 냉장고 문을 닫지 않은 거나, 경대 판자 조각을 뺀 것이나 그저 똑같이 잊어버린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은 나타난 결과에 따라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판단한다. 단지 거울에 받쳐 두었던 판자 조각의 용도를 잠시 잊은 것뿐이지만, 결과적으로 거울이 깨져 온 방에 파편이 흩어지고 하필 방에 누워있던 돌배기 손자의 팔뚝과 허벅지에 파편이 박히는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자 아들 내외는 어머니의 치매가 매우 심각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며느리 ‘영아’는 ‘두려움’을 느낀다. 어머니가 다음엔 무엇을 깨실까 하고 말이다.

치매 환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며느리인 ‘영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치매 증상의 심화를 의학적인 소견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고 위험에 빠뜨리는지 그 정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잊음’이라는 공통부분에서 냉장고 문을 닫지 않는 것이나 판자 조각을 빼는 것은 의학적으로 별반 차이가 없는 증상인데도 말이다.


『친구 어머니가 길을 잃었던 건, 치매 초기의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직은 그 누구도 당신에게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 친구 어머니는 당신 혼자만의 어둠 속으로 홀로 곤두박질쳐 버리셨다.(중략)
친구가 버스에서 내려 집 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머니가 버스 정거장과 건널목 사이에 우두커니 서 계시더라고. “엄마, 왜 거기 그러고 계세요?” 친구가 물었을 때 그의 어머니의 눈 속에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삼켜 버린 동공밖에는 보이지가 않더라고 했다. 어머니가 그 눈을 크게 두어 번 껌뻑거리다가 대답하시더라고. “얘야, 길을 건널 수가 없구나...”』

딸인 ‘나’는 어머니의 ‘잊음’을 ‘잃어버림’으로 파악한다. 또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난 후의 막막함을 이해하려고 한다.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친구 어머니의 문상을 가서 ‘나’는 친구 어머니의 사연을 마치 자기 어머니의 일처럼 느낀다.


‘나’와 만나기로 한 날, 어머니 역시 제과점 앞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파란불이 몇 차례 들어오고 나서야, 어떤 청년의 도움을 받아 겨우 건널목을 건넌다. 그리고 제과점에 들어와서도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계신 듯하다. 그리고 내가 엄마를 부르자 어머니의 시선이 내게로 오고 순간적으로 안도의 빛이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난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에서 ‘나’는 잃어버린 것,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저렇게 소중한 것을 찾았다는 듯한 표정을 읽어 낸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런 표정을 보며 ‘나’는 내가 잃어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어머니와는 다르게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들키게 될까 봐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손을 놓은 것은 분명히 나였다. 어머니가 짝 바뀐 양말을 신고 오셨던 날, 나는 이제 비로소 내 쪽에서 잡아 드려야 할 어머니의 손을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고, 그 손 안에서 내 손을 빼내어 버렸다. 어머니가 평생을 힘주어 왔던 당신의 손 안에서 살그머니 달아나 버리던 딸의 손. 그래서였을 것이다. 벌써 몇 달 동안 어머니는 내 집에 다니러 오실 수가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우는 것을 보셨거나, 혹은 내가 울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이 장면은 ‘나’가 세 번째 유산을 한 날의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그날 어머니는 딸을 위로해 주려고 임신에 좋다는 한약까지 지어 찾아왔다. 그 당시 딸은 남편이 종말 종교에 빠져 실제로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남편과의 미묘한 갈등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만다. 대신 지금의 자기 생활이 ‘지옥’이라고 말해 버렸고, 그래서 결국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돌이켜보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어머니와의 어색한 관계를 해소하려고 ‘나’는 화장대와 어머니 추억 속의 빙수를 핑계 삼아 어머니와 약속을 잡은 것이다. 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를 ‘지옥’에서 구해 줄 방법을 말해 주려고 만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이 찾아갔던 만신보살의 말을 전해 주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치매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보살이 말할 수 없이 용하더라. 내 얼굴을 보자마자, 사주도 안 집어넣었는데 저런, 허해서 어쩌나, 그러는 거야. 머릿속에서 뭐가 뭉텅뭉텅 빠져 나가니 앉아도 앉은 것 같지가 않고 서도 선 것 같지가 않겠다고...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사실이 그렇지 않니. 나도 알 건 알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는 모른다만 이런 날 양산 대신 우산을 갖고 나오기만 하겠냐. 어느 날 아침에는 벽에다가 똥칠을 하고 있겠지』

이렇게 어머니는 자신이 치매에 걸려 속수무책으로 머릿속에서 기억이 뭉텅뭉텅 빠져 나가는 순간에도 딸의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를 통해 딸인 ‘나’는 어머니의 남은 생을 ‘속수무책으로 빠져 나가는 기억들 속에 그래도 악착같이 남아 있을 고통의 기억을 끌어안고 당신의 마지막 길을 가야 하시는’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치매에 걸린 사람의 기억이 시간적 순서에 따라 소멸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기억은 시간적 순서와는 상관없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 마지막까지 남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고통스럽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에게 지금 남아 있는 생생한 고통의 기억은 내가 일곱 살 적에 손가락 사이가 짓무르는 고약한 습진에 걸렸던 일이다. 손가락 사이가 다 짓무른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용하다는 약국은 다 찾아다니던 순간에 느꼈던 어머니의 막막함, 혹시 어린 딸의 이 습진이 며칠 전에 왔던 문둥이에게 옮은 나병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 이러한 고통의 기억 속에 현재의 어머니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딸은 어머니의 이 고통을 공감하면서, 결국은 어머니가 그런 막막함과 공포를 극복할 거라고 믿는다. 과거에 어머니가 어린 딸의 손가락 병이 나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러한 딸의 믿음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거울’이다.

『내가 하는 일을 그저 옆에서 구경만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손거울을 받아들고는 문득 하셨던 말씀이었다.
-어떤 노망난 노인네가 거울을 들여다보고는 당신 누구요, 그랬더라지. 지 얼굴을 보고 말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요”
나는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렸다.
“거울의 뒷면을 들여다보고는 자기 얼굴이 안 보인다고 미쳐 버렸더래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거울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꺼내면서 당신이 자신까지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불안감을 표출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내 방식으로 위로한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실제 있지도 않은 자신의 모습이 안 보인다고 할 때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은 아니라고. 즉 어머니가 당신 자신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혹시 아시지 않을까. 모든 기억, 삶의 모든 습관들을 다 잃어버린 뒤에도 어머니는 아시지 않을까, 칠십 평생을 걸어온 삶의 기억으로 밝아진 혜안, 그것으로 어머니는 보시지 않을까, 당신의 뒤통수마저도... 아니, 이 세상의 뒤통수까지도 말이다. (중략) 흐르듯 기억이 새나가고 있는 어머니의 뒤통수도 검은색 우산 속에 가리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머니가 거울의 앞면을 통해, 저쪽 거울의 뒷면까지 걸어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울의 앞면과 뒷면 사이... 그 사이에는 더 이상 건널목이 아닌 강물이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어머니의 치매를 해석하는 딸의 관점은 어머니가 치매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 잃어버리는 어떤 것도 ‘사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어떤 순간에도 어머니 자신과 어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인 ‘나’에 대한 기억은 간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언젠가 ‘거울’의 앞면에서 뒷면으로 갈 때, 어머니가 어린 시절 진물이 뚝뚝 흐르는 내 손을 절대 놓지 않은 것처럼 나도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김인숙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는 삶의 아픔을 지닌 딸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는다면 어떤 인생의 건널목이라도 같이 건널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작가가 치매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치매로 인해 잃어가는 기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중 ‘사소한’ 것이라는 점, 치매 증상에 과잉으로 불안해하기보다는 사소한 습관, 사소한 기억을 잃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치매라는 질병을 바라보는 또 다른 혜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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