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2
[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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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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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 스톤의 발견과 해독, 그리고 치매 행동심리증상의 해석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1799년 8월 이집트 북부 도시 로제타, 그날 아침에도 프랑스 포병사관인 부샤르는 툴툴거리면서 참호를 파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태양은 아침부터 그 열기를 뿌리고 있는데, 포를 거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묵묵히 참을성 있게 땅을 파던 도중 무엇인가 덜컥거리면서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땀에 젖었던 부샤르는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왠 돌덩어리까지 나를 괴롭히는지……" 부샤르가 별 생각없이 돌덩어리를 빼내려고 살펴 본 순간, 이집트의 뜨거운 아침 햇살 아래에 알 수 없는 문자가 돌 표면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인류 문자 역사에서 최고의 발견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비석은 당시 이집트 원정중인 나폴레옹에게 보고되었고, 나폴레옹은 즉시 이집트 원정 때 동행하였던 과학 예술 위원회를 불러 모았습니다. 나폴레옹 이집트 원정은 프랑스에게는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 없는 군사행동이었지만, 인류 문자 역사에서는 매우 기념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기념비 적으로 그 중요한 비석을 2년 뒤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영국에게 고스란히 넘겨 주었다는 점도 말입니다.

비록 나폴레옹은 어처구니 없이 그 비석을 영국에게 넘겨 주어야 했지만, 마르크 오렐과 장 조셉 마르셀이 탁본을 뜨고, 과학 예술 위원회의 한 위원이 그것을 조판하여 유럽에 소개하였습니다. 이 탁본은 유럽의 언어 학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까지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국주의로 팽창하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아무리 자기 역사를 길게 잡고, 로마와 그리스 역사를 자기 역사라고 늘려 생각하여도 이들 문명이 존재하기 수천년 전에 고대 이집트 문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워하고 이를 연구하려는 열망이 넘쳤습니다. 모든 유럽인들은 로제타 스톤의 해석에 열광하고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로제타 스톤은 125Cm x 72Cm x 28Cm 의 현무암으로 첫 단에는 이집트 상형문자, 둘째 단은 민중문자. 셋째 단은 고대 그리스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파라오인 프롤레오마이오스의 즉위 9주년 법령을 적은 일종의 포고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이 세가지 글은 같은 내용을 다른 글자로 적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어떤 누구도 피라미드나 오펠리우스에 쓰여진 이상한 고대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언어 중 고대 그리스어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고대 이집트 문자의 해석은 영국과 프랑스의 수많은 학자가 경쟁적으로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이란 천재적인 언어학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30년 동안 해석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문자가 그토록 해석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집트 문자가 가진 형상성 때문이었습니다.

즉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집트 문자가 가진 형상적 특징때문에 당연히 이집트문자는 한자와 마찬가지로 표의문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해석집을 가지고도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다하다 어려우니 어떤 학자는 이집트문자가 고대 중국문자와 같은 표의문자일 뿐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까지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샹폴리옹은 이집트문자가 표의문자가 아니고 표음문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때로는 어떤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샹폴리옹의 천재성과 위대성은 모두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독창적인 생각에 있습니다.

그러나 샹폴리옹의 위대함은 독창적인 가설이나 생각이 다가 아닙니다. 그는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석하기 위하여 바로 연구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그리스어, 라틴어, 히랍어, 아랍어, 시리아어, 칼데아어, 콥트어, 심지어는 산크리스트어와 페르시아어까지 완벽하게 숙달한 후 드디어 본인의 평생 숙원인 고대 이집트어를 연구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샹폴리옹은 인류 역사를 2000년 이상 위로 끌어 올리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기는 하였으나 나폴레옹의 패망과 당시 혼란한 프랑스 정세속에서 42세라는 나이에 요절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의 병인 정신병은 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고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평생 진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자들이 보이는 괴이한 증상들이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이해하기 난해합니다. 과거에는 심장병이던, 정신병이건, 그냥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운명이라고 말하고 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신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신체에 대한 기계론을 주장하고 이 철학을 바탕으로 근대 의학이 발달됨에 따라 모든 병의 원인을 '기계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즉 예전에는 하나님의 뜻이거나 운명이라던 생각을 버리고 잘 모르면 사후에 해부를 해서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려는 수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병들이 정확한 원인을 모르더라도 해부학적 이상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이를 이용하여 그 원인을 찾아가는 현대의학의 패러다임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800년대 중반 독일의 정신의학자인 Griesinger는 이러한 현대의학의 신사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정신병을 철학적인 병에서 일반 자연과학의 법칙이 적용되는 일반 의학으로 전환시키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학 분야와 달리 매독과 같은 기질적 질환 이외의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사후 검시에서 어떤 해부학적인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신의학이 급격히 발달하게 된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Emil Krapelin을 위시한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의 해부학적이고 원인론적인 접근법이 당시 과학 환경에서는 옳은 접근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정신병은 철저히 원인론적인 접근법을 배제하고 증상의 모임인 증후군으로서만 정의하고 분류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신의학의 주류 정신은 100년이 훌쩍 지난 2015년 미국의 대표적인 진단 기준인 DSM 5가 출판된 지금도 여전합니다. 이런 진단법은 현대의 다른 질병의 접근법과는 확연히 철학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신과 영역만큼은 갈라파고스 섬과 같은 것이지요.

다른 의학질환과 달리 정신질환에서 이와 같은 접근법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정신증상에 대한 해부학적인 위치를 규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은 항상성이라는 것이 있지요, 즉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입니다.

예를 들어 체온이 오르면 땀 분비 기관을 활성화 시켜 체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의 보상 과정이 작동합니다.

일반적인 정신병은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이 증상이 발현하기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증상이 눈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서서히 진행되고, 또 이런 증상을 보상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과정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증상이 임상적으로 발현되어 병원에 올 때는 그 병변의 정확한 해부학적 위치를 찾아 내기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시신경이 이상이 있는 사람은 그 시신경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촉각이나 청신경등과 관련된 뇌 부위가 발달하게 됩니다. 한참 지나서 이 사람의 뇌를 보았을때 시신경을 관장하는 뇌부위의 위축이 병변인지 아니면 청신경이나 촉각 신경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팽창이 이상인지 알기 어렵게 됩니다.

반면 뇌졸중, 뇌종양, 치매 등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정신병 증상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정신병 증상을 보완하려는 다른 부위의 뇌에서 보상 과정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인이 되는 해부학적인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면 만약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가 전형적인 피해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고 뇌기능영상 검사 등으로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된 것을 알 수가 있다면, 똑같은 피해망상을 보이는 20대 조현병 환자(이 환자는 최첨단 진단 방법에서도 해부학적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에도 같은 부위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같은 증상이 있다고 해서 같은 부위에 문제가 있다고 100% 장담할 수 없지만, 같은 병태해부학적인 위치가 이 증상에 관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입니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런 가설은 매우 매력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자, 우리는 아주 난해한 증상(문자)을 보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해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증상(고대 이집트어)과 똑 같은 증상(고대 히랍어)을 보이는, 이해가 비교적 쉬운 증상이 있습니다.

이 난해한 증상을 젊은 환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같은 증상이라도 치매와 같이 기질적인 병변을 가진 환자에서는 좀더 이해하기 쉽고 비교적 해부학적인 위치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먼저 이해해야 할까요?

하지만 눈앞에 섣부른 해석 가이드가 있다고 해석이 바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샹폴레옹이 그랬듯이 이런 정신 증상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이와 연관된 광범위한 증상, 즉 인지기능 등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병행되면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들어서 이러한 접근법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신병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호발 연령(흔하게 발생하는 연령)이 주로 10대말 20대 초인 질환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노인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에 연관된 치매 역시 급격하게 늘면서, 정신병 증상이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즉 어려운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쉬운 문자 텍스트의 양이 풍부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치매환자에게서 행동장애를 포함한 고도 인지기능 연구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를 진료하는 정신과가 전문이 아닌 의사들과 학자들의 경우, 정신 증상은 정신과에 맡기는 경향이 있고 정신과 의사들은 주로 고전적인 정신병(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정신병)에 더 매달리는 경향이 보입니다. 즉 이 분야는 도심 속에 있지만 잊혀진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습니다.

더구나, 콜로세움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로마 시민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과거의 로마 시민들과, 로제타 스톤을 눈 앞에 보고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19세기 유럽의 언어학자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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