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8
[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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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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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6) 어느 날 벌어진 일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어느 수학천재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

20년 넘게 자전거로만 출퇴근… 졸음운전 버스에 치여 사망
"연구밖에 모르던 분이었는데…."

20년 넘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온 50대 교수가 교통사고로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일 오후 6시 50분경 광주 북구 용봉동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전남대 수학과 백정선 교수(51)가 25인승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09년 3월12일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


베르니케 교수 불의의 사고로 숨져

Carl Werniche

 14개월 전에 할레 대학의 정신과 주임 교수로 부임, 재직 중에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던 베르니케(Wernicke) 교수가 6월 14일 휴일을 맞아 오래간만에 Thuringia 숲으로의 자전거 여행 중 마주 오는 트럭을 피하다 넘어져 심한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 중 금일(15일) 사망하였다. 향년 나이는 58세,  그가 사망 직전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I'm perishing of autopsychic disorientation" (1905년 6월 15일 독일의 신문에 실린 부고란)

이 두 기사는 100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일 밖에 모르던 천재 과학자가 자전거라는 지극히 전통적이고 낭만적인 교통기관을 이용하다가 요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학이 어떤 분야인지 잘 모르고 백정선 교수가 이 분야에 어떤 이정표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베르니케의 죽음은 정신의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1800년대 말 세 명의 천재적인 정신 의학자가 있었습니다. 1856년생인 베르니케, 1856년생 동년배인 크레페린(Kraepelin),  프로이드(Freud) 입니다. 이들은 비슷한 교육 과정을 받았지만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또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1800년대 말에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정신병 증상을 어떻게 볼 것이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이고 통일된 개념이 없었습니다. 각각의 의학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자기 방식의 개념을 자기 학생들에게 가르치거나 책을 출판하던 시기입니다.

베르니케는 우연한 기회에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 혹은 지리멸렬한 말을 중얼거리는 정신과 환자를 발견합니다.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 환자들의 뇌 부검에서 뇌의 특정 부위에 질환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1861년 프랑스 학자인 브로카(Broca)가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말을 이해할 수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 장애 환자를 발견한 이후로 두 번째로 언어와 연관된 특정 뇌 부위를 발견한 것입니다.

하지만 브로카의 발견보다 더 극적인 것은 브로카가 발견한 실어증은 대부분 우측 편마비가 동반되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뇌의 특정 부분 손상이 언어장애의 원인일 것이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반면, 베르니케가 발견한 환자의 경우는 뚜렷한 다른 신체적 증상 없이 언어 장애(횡설수설하는)로 오기 때문에 대부분 전형적인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 발견은 베르니케를 젊은 나이에 일약 떠오르는 스타 학자로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베르니케의 평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이후 베르니케는 모든 정신질환이 특정 뇌의 병변에 의한 질환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한 시점에서 증명하거나 진단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크레페린은 젊은 시기에 뇌생물학자인 플레시히(Paul Flechsig)와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때 크레페린은 환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테이블 위에서 현미경으로 환자의 뇌 조직만 보는 플레시히가 너무 싫었고 이런 연구 태도는 정신의학에 옳은 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실험실적인 접근 보다는 임상가로서 많은 환자를 보면서 그 환자의 진료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이를 카드박스라는 것을 만들어 보관하였습니다. 같은 환자가 다시 그를 찾으면 이 카드박스 안에서 기록을 꺼내서 다시 기록하고 또 다시 넣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정신병이라는 것이 다양해 보이지만 시간을 두고 관찰하고 관찰하면 소수의 특정 질병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크레페린은 정신병을 가진 환자에게서 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가 살던 시점에서는 환자의 임상적인 상태를 자세히 추적 관찰하지 않고 한 시점에서 환자의 병을 뇌의 특정 부분 질환으로 한정하여 진단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언어로 번역하면, 응급실에서 MRI를 찍어서 그 시점에서 진단할 수 있는 실어증은 신경과 질환이고,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병을 좀더 오랜 기간 추적해야 병명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크레페린은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하여 정신질환에 대한 분류체계를 정립하였습니다.

크레페린의 접근법은 정신의학에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신병의 진정한 원인론적인 접근을 하였던 베르니케에게는 이것이 아주 단순한(feuilletonisch, 나쁘게 말하면 머리 나쁜) 접근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기는 근본적인 인간의 뇌 속을 파고 들고자 했던 과학자에게 환자 증상만 줄줄이 나열하고 분류하는 것이 단순 무지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베르니케는 본인의 이론을 좀더 발전시키고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환자의 뇌를 바늘로 직접 관통(뇌 천자)하는 방법을 시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후 프로이드의 등장으로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크레페린의 생각이 현재까지 정신과의 기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즉 '정신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 원인으로 질병을 분류하면 안된다. 그냥 증상만 보고 병명을 붙여라'.

하지만 저처럼 정신과가 아닌 신경과 전공 의사로서는 당연히 이런 태도는 괴이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폐 일반 사진을 찍었더니 100원짜리 동전만한 종양으로 의심되는 음영이 발견됩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CT 촬영하고 필요하면 생체검사를 하여 이것이 암인지 아닌지 그 자리에서 진단하고 치료하지요. 그냥 몇 년씩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병변이 너무 작거나, 진단적인 접근에서 애매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시간을 두고 추적하면서 병이 무엇인지 찾아갑니다. 그런데 정신과는 사실 반대 과정을 밟고 있지요.

하지만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좀더 정신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아마도 조만간 크레페린의 접근법이 굉장히 예외적인 접근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시기가 언제일까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베르니케가 너무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고 크레페린은 당시에 유행하였던 정신질환의 신경학적 접근 방법이 당시에는(물론 현재까지도) 병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던 와중에 이 천재에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베르니케라는 개인과 그의 독창적이고 시대를 앞선 생각은 역사 속에서 소멸하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베르니케는 현대적 의미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아닌 신경과 의사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 분류되면서 정신과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용어만 양산하는 의사로 치부되었고(베르니케가 죽으면서 하였던 이야기와 같은), 정신과 의사였기에 신경과 의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 칼 야스퍼스 (Karl Jaspers)는 그의 죽음으로 뇌의 신비주의(brain mythology) 시기는 종료되었다고 선언하였지만, 사고로 인한 그의 때 이른 죽음은 정신의학의 세계를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결정적으로 방향을 틀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천재들 중에 간간히 자전거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있지요.

오늘은 베르니케가 서거한지 112년 되는 날입니다. 저는 오늘도 출근 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제 머리 뒤에서 집사람이 굼시렁 거립니다. 위험하게 왜 타냐고. 

하지만 저는 꿋꿋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고 날 리가 없어, 물론 신문에 날 일도 없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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