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석] 혈관치매와 카다실
[이정석] 혈관치매와 카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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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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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치매와 카다실

 이정석
제주대학교병원 신경과 부교수

혈관치매와 카다실 질환에 대한 원고를 부탁 받았을 때 너무나 모호한 질환과 너무나 명확한 질환을 동시에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우선 모호한 혈관 치매를 소개하고 다음 기회에 너무나 명확한 질환인 ‘카다실’에 대하여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혈관치매는 논란거리가 많은 질환입니다. 혈관치매라는 말을 쓰자, 혹은 혈관인지장애라는 말을 쓰자는 논란부터 시작됩니다. 정작 논란의 핵심은 혈관치매를 정의하는 병리적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다는 점입니다. 뇌혈관 병리소견(뇌혈관이 어떻게 얼마나 상했는지를 나타내는 소견)이 실질적으로 인지기능과 치매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글이 어려우냐 구요? 어렵더라도 ‘병리소견’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암’,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뇌졸중, 중풍)’ 그리고 ‘퇴행성 관절염’ 모두가 병리소견에서 시작됩니다. 병리소견에 근거하거나 추정하지 않고 위에 질환을 얘기하면 명백한 의료사기이기 때문이죠. 특히, 치매에 대하여는 ‘의료사기’가 너무 흔하고 많아서 같은 의사로서 자괴감이 들 정도입니다. 환자 여러분, 뇌 MRI나 CT를 찍으면 반드시 뇌 어느 부위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가르쳐달라고 하십시오. 기저핵이 어디에 있는지, 시상이 어디에 있는지, 우선 물어 보십시오. 뇌 MRI도 못 보면서 ‘치매’를 진료하는 의사가 우리나라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뼈 X-ray를 모르면서 진료하는 것이 합당할까요? 현명한 환자와 가족 분들께서 ‘치매’ 관련 의료시장을 정리해주실 시기입니다.

옆길로 이야기가 벗어나고 있어서 제자리로 돌아오겠습니다. 왜 MRI 이야기가 나왔냐 하면 혈관치매라는 진한 바다안개가 MRI 영상을 통하여 조금씩 벗겨져 나가고 있어서 입니다.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하던 1969년, 그때까지도 의사들은 노인성치매의 대부분이 뇌동맥경화증에 의하여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전년도에 나온 병리논문을 통해 ‘동맥경화증’이 아니라 ‘아밀로이드반’이 노인성치매와 연관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츠하이머병’시대가 서서히 열리게 됩니다. 패자인 ‘뇌동맥경화증과 관련된 혈관치매’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고 ‘연구미비지역’으로 남게 됩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혈관치매에 대하여 좀 더 구체화된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혈관치매를 ‘큰혈관치매’와 ‘작은혈관치매’로 나누자, 큰혈관치매 중 ‘다발경색치매’는 언어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왼쪽 뇌 한곳에 뇌경색이 있으면서 다른 한 곳에도 큰 뇌혈관 질환이 있으면 정의하자, 큰뇌혈관치매 중 뇌의 전략적 핵심부위에 뇌경색이 와서 치매가 생기는 것을 ‘전략경색치매’라고 정의하자, 작은혈관치매는 백질 변성 정도와 소공성 뇌경색 개수를 몇 개로 하여 정의하자라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작은혈관치매 중에는 ‘아밀로이드 혈관병’과 카다실이 포함됩니다. 어떤 의사가 뇌 MRI를 보면서 “이렇게 하얀 부분(백질 변성)이 있어서 혈관치매다”라고 한다면 틀린 얘기입니다. 광범위한 하얀 부분과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소공성 뇌경색이 있으면서 일상생활능력의 저하가 뚜렷할 때 작은혈관치매에 해당됩니다.

왜 이렇게 복잡해? 뇌와 뇌혈관이 복잡해서 그럽니다. 지금 구글에 들어가서 뇌혈관과 뇌를 검색해보세요. 너무나 명료해진 알츠하이머병과는 달리 ‘혈관치매’는 머리에 ‘쥐’를 부릅니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치매에 이어 2번째로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혈관치매를 모른다고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의 거의 절반은 뇌경색 병리소견이 동반된 ‘알츠하이머치매 + 혈관인지장애’ 환자입니다. 이럴 땐 ‘신경과’에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하루 종일 뇌영상을 보면서 사니까 뇌와 혈관에 익숙해져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뇌졸중과 치매에 대하여 이야기할 순서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뇌졸중과 치매를 나누어 말씀하는 분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뇌졸중과 치매는 분리될 수 없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앞서 치매환자에서 뇌 부검을 해보니까 알츠하이머치매 환자의 절반 정도는 뇌경색 병리소견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뇌에 있는 작은 혈관은 ‘뇌’와 ‘혈관’이 만나서 물물교환이 일어나는 ‘시장’입니다. 모든 대사물질들이 작은 뇌혈관에 있는 틈새를 이용하거나 내피세포를 직접통과에서 뇌에 들어가고 뇌에서 사용된 물질들이 혈관으로 빠져나옵니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아밀로이드 단백이 혈관 내피세포 주변에 침착 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혈관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엉겨 붙어서 혈관내피세포 주변에 걸린 것입니다. 고령에 발생하는 알츠하이머치매의 대부분은 이러한 ‘청소장애’입니다.

첫 뇌졸중이 발생했을 때 10% 정도의 환자는 이미 치매를 가지고 있었고 뇌졸중 얼마 후 10% 정도의 환자에서 치매증상이 생기며, 뇌졸중이 재발하였을 때 첫 뇌졸중 때보다 3배 정도 많게 치매증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뇌졸중 후 치매가 발생하는 경우는 고령, 여자, 저학력인 경우가 흔하며 이러한 위험요인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요인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뇌졸중 후 치매의 상당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 경도인지장애 단계이거나 임상증상 전 단계에 있는 환자가 뇌졸중 이후 알츠하이머치매 + 혈관인지장애가 생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환자들에서는 뇌졸중의 재발을 막는 것이 치매의 발생을 막는 것이므로 치매환자와 뇌졸중 환자는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며, 바로 이점이 치매환자가 신경과에서 관리를 받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솝 우화 중에는 ‘회초리와 형제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아들이 하도 싸우니까 아버지가 회초리를 10개씩 구해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해온 회초리를 모아서 다발로 만들라고 하지요. 그 다음 형제들에게 그 다발을 부러뜨려보라고 합니다. 절대 부러지지 않지요. 이번에는 다발을 풀어서 하나씩 부러뜨리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부러지지요. 혈관치매 치료에는 6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스피린 등 항혈소판제, 고지혈증약, 고혈압약,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인지훈련, 이렇게 6명의 아들은 하나씩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혈관치매 치료에 별반 도움이 안되지만 뭉치면 엄청 강한 다발이 됩니다. ‘FINGER study’가 강한 다발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혈관치매는 다 똑같고 특효약도 없고 아무 의사나 보면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진실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혈관치매는 여러 종류가 있고 특징이 다르며 특효약은 없지만 뭉치면 강해지는 여섯 명의 아들(혹은 딸)이 있고, 뇌 MRI를 보고 해석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알츠하이머치매는 여기에 콜린분해효소 억제제, 메만틴이라는 2명의 아들(혹은 딸)이 추가가 됩니다. 치매 치료의 길은 아직도 너무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차이지만 나중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입니다. 많은 잡풀이 우거지고 뇌를 모르는 가짜들이 유명한 예언자가 된 세상이지만 정확한 치매 분류와 그에 따른 맞춤치료가 표준이 되는 날이 서서히 오리라 확신합니다.

 

<주석>
1. 카다실(CADASIL: cerebral autosomal dominant arteriopathy with subcortical infarcts and leukoencephalopathy): 상염색체 우성의 유전 질환으로 혈관치매의 일종. 편두통과 재발하는 뇌졸중, 점차 진행하는 치매가 특징.
2. Finger (Finnish Geriatric Intervention Study to Prevent Cognitive Impairment and Disability): 노인의 인지 기능 저하 예방을 위한 다중 영역 접근의 효과에 대한 핀란드의 임상 연구. 1,26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식이 요법, 신체 활동, 인지 훈련, 사회 활동, 그리고 대사성 및 혈관성 위험인자(고혈압, 고지혈증 등) 관리가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각각의 효과는 미미하지만, 위의 치료 방법을 동시에 시행하면 인지 기능 저하를 효과적으로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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