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9
[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9
  • DementiaNews
  • 승인 2017.06.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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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7)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어느 날 집사람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1923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캅그라스(Joseph Capgras)는 매우 흥미로운 증례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8년 전 아들이 사망하고 시기와 과대 망상이 발생한 53세 여성 환자를 치료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가부터 이 환자에겐 주변에 친근한 모든 사람을 본인이 아니라 단지 그와 얼굴만 비슷한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돌보아 주는 딸이 유괴되어 자기와 함께 있지 않으며, 지금 같이 있는 딸은 진짜 딸이 아니고 딸과 얼굴이 비슷한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는 비슷한 얼굴로 위장된 딸도 같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여러 사람이 그 역할을 하며 번갈아 그녀 앞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진짜 남편이 아니며, 나중에는 자신마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캅그라스는 이 환자에서 보이는 증상을 ‘illusion de sosies’ 라고 명명하였습니다.  Sosie는 그리스의 저명 희극 작가인 플라우투스의 작품 Amphitryon이 1668년 프랑스에서 희곡으로 각색된 연극의 등장인물로서 Amphitryon 을 보좌하는 시종의 이름입니다. 이 연극은 Sosie가 Amphitryon 의 아내를 얻기 위해 그녀 주변의 사람으로 변신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캅그라스 망상은 이후 다른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도 보고되었는데, 특이하게 이 망상의 주요 대상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캅그라스 망상은 발표 초기부터 그 증상의 괴이함과 특이함으로 정신의학 전공 의사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 믿음 형성과정, 합리성에 관심을 가지는 신경학자나 철학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이 병을 통하여 인간의 고도 정신 기능에 대해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증례를 최초로 발표할 당시 캅그라스는 이 증상이 기억이나 형태로는 내가 아는 사람과 유사하지만 감각적, 정서적으로 왠지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이 충돌함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인지의 실인(agnosia of identification), 즉 신경학적 기질적 병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의 정신과는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의 조류가 소용돌이치며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 조류 속에서 캅그라스 역시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이 증례를 발표하고 난 다음 해에 이병의 원인이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에 대한 방어 기전에 의한 것” 이라 해석하며 정신분석적인 틀에 가둬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 특이한 증상에 대해서 다양한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나왔는데, 그 중의 하나가 사랑과 증오라는 양립된 감정이 충돌하면서 생긴다는 가설입니다. 즉,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무슨 이유로든 증오하려 할 때 그가 실제로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함으로써 무의식 속의 죄의식이 희석된다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1) 그 시대를 지배하던 정신분석학이 서서히 퇴조하고, 2)이 증상이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하는 감정적 연관성이 희박하거나 심지어는 감정 개입의 여지가 없는 무생물에서도 보고되며, 3)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후 보고된 환자들에서 대부분 조현병(정신분열병)과 같은 기능적 정신병보다는 뇌 손상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해졌습니다. 대신 이 증상을 신경학적 관점(뇌의 물리적인 변화)에서 연구하게 됩니다.

특히 사람이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이 연구의 초점이 되었고, 대상(특히 얼굴처럼 중요한 부분)을 인식하는 데는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신경계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한 형태 인식과 관련된 신경계뿐 아니라 그 형태에 안에 있는 내용, 특히 정서적인 부분이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와 연관된 별도의 신경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예컨대 후두-측두엽부위에 뇌졸중이나 뇌종양이 발생한 환자에서 사진 속 가족의 얼굴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안면실인증; prosopagnosia), 이는 얼굴 형태 인식에 대한 신경계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환자들이 사진 속 인물을 직접 마주 대하면 목소리나 느낌 등 여러 가지 다른 정보를 통해서 가족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캅그라스 망상에선 얼굴은 잘 인식합니다. 즉, 안면실인증은 형태 인식의 신경계는 손상이 왔지만 다른 정서적 정보를 제공하는 신경계는 건재한 것이고, 캅그라스 망상은 그 반대의 경우이므로 이 두 증상은 얼굴 인식에 관해서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이지요.

캅그라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면전의 실제 가족을 내 가족과 매우 닮았지만 왠지 가족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매우 낯선 느낌을 받습니다. 이때 환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닮았는데 닮지 않았다.  무엇일까? 이런 이상한 인지적 감정적 충돌 속에서 불편한 심정을 해소하기 위해 환자는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합니다. “맞아, 이 사람은 우리 남편으로 변장했어” 혹은 “ 내 아들과 똑같이 만든 로봇이야” 등 허무맹랑하지만 본인에게 가장 와 닿고 설명 가능한 믿음을 형성합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경악하며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설득하지요. 그러면 마치 이 말을 수긍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다 돌아서면 이내 무슨 음모가 있을 거야 하는 또 다른 생각이 환자의 머리 속에서 번져 나가게 됩니다.

어쩌면 이런 신경학적 과정의 심리적 해석은 1920년대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했던 분할(splitting)과 투사(projection)의 현대판 신경학적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캅그라스 망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활동 가운데 단순히 주의를 집중하고 기억하고 계산하는 것을 넘어서 사물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충되는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믿음으로 형성해가는지 등 고도의 정신활동을 신경학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평균 수명이 현저히 늘어나면서 치매 환자도 급증하게 되자, 과거엔 비교적 드물었던 캅그라스 망상이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특정 치매 환자에서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고, 원인 뇌 병변 위치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저희 병원에는 많은 치매 환자 분들이 입원하고 계십니다. 휴일에 아들이 손자와 방문하여 할아버지와 시간을 잘 보냅니다. 할아버지는 보호자가 돌아갈 때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쟤는 내 손자가 아니야” 라고 중얼거립니다.

즉, 망상은 선천적으로 어떤 특정(조현병과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뇌의 특정 부분에 장애가 생기면 정상적인 사고의 오류가 발생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증상입니다. 따라서 이 인식 과정과 믿음의 형성과정을 모두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이제껏 치유 곤란했던 망상이란 증상도 앞으로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미 예전에 젊고 건강하신 얼굴은 나이 드시어 주름지고 가냘픈 얼굴로 변해지셨지만, 저는 그 어머니 얼굴 뒤에 따뜻함을 느낍니다. 그 따뜻함은 늦은 저녁 아들을 기다리시며 행여 밥이 식을까 봐 안방 아랫목 한가운데 담요 밑에 넣어둔 하얀 공기 밥, 그 뚜껑을 열었을 때 기분 좋게 올라오는 그 느낌.  이것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 즉 눈과 마음으로 함께 바라보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1. Capgras J, Reboul-Lachaux J. Illusion des sosies dans un delire systematise chronique. Bulletin de la societe Clinique de medicine mentale 1923;2:6?16.
2. Capgras J, Carette P. Illusion des sories et complexe d’Oedipe. Ann Medico-Psychologiques 1924;12:48.
3. Enoch MD, Trethowan WH. 1991 Uncommon psychiatric syndromes, 3rd edn. Oxford: Butterworth- Heinemann.
4. Kwak YT, Yang Y, Koo MS. Delusions in Alzheimer's Disease. Dement Neurocognitive Disord. 2014 Sep;13(3):6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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