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만병통치약?
[곽용태 칼럼] 만병통치약?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0.07.20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12)

-만병통치약(panacea)?

제목: 아스피린과 위약이 노인에서 우울증 예방에 미치는 효과(Effect of Aspirin vs Placebo on the Prevention of Depression in Older People)1)

저자: Trial. Berk M, Woods RL, Nelson MR, et al.

결론: 노인에서 아스피린을 복용한 군과 위약을 복용한 군을 평균 4.7년 추적 조사 결과 우울증 발생 빈도에 대한 유의한 차이는 관찰되지 않았다.(P =0.54)

논문명; JAMA Psychiatry. 2020 Jun 3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히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그에 따른 조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이하 생략)
-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

위의 글은 의과 대학생이 의사가 될 때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파나케이아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아폴론의 아들)와 아픈 이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여신 에피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그녀는 ‘모든 병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의 여신이라고 합니다.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패너시어(panacea)’는 이 여신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만병통치약의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동서양 모두에 광범위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수은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여 황제들이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많은 중국 황제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것도 수은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브랜디와 같은 술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셜록 홈즈 소설을 보면 누군가 쓰러졌다거나 정신을 잃은 환자가 생기면 브랜디를 먹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과거 한국에서는 담배도 만병통치약처럼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아이여도, 여자여도 아프다고 하면 담배를 한 모금씩 빨게 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시골의 노인이나 중증의 환자들에게 이러 저러한 이유로 다양한 만병통치약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간단히 약 하나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약 중에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스피린입니다. 아스피린은 기원전(BC) 1,500년 전부터 버드나무 껍질의 추출물로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아스피린은 오래 전부터 사용하였던 신비한 약입니다. 이것이 다양한 증상에 확실히 효과는 있었지만 문제는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 끝에 마침내 1897년 독일 바이엘사에서 부작용을 감소시킨 아세틸 살리실산(아스피린)을 합성하게 됩니다. 이후 이 약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사용되는 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스피린은 매우 다양한 질환에 사용합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진통, 소염 효과 뿐 아니라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심혈관 질환 예방, 치매 예방, 심지어는 대장암, 전립선암, 난소암 등 다양한 암 발생 위험률도 낮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도 노령기에 지속적으로 아스피린을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도 많습니다. 실지로 주변에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약을 먹는 사람이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스피린이 또 다른 변신을 합니다. 일반적인 내과 질환이 아닌 정신의 영역인 우울증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가진 환자에서 다양한 종류의 염증 물질이 발견되고2) 일부에서 아스피린의 투약이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3)

이 연구는 아스피린이 우울증에 진짜로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한 연구입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과 호주의 지역 사회에 살고 있는 비교적 건강한 70세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중맹검 위약대조군 연구입니다. 무작위로 아스피린 100mg을 복용한 9,525명과 위약을 복용한 9,589명이 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처음 연구 등록할 때 우울증 척도인 CES-D-10 점수를 측정하였고 매년 우울증 척도를 다시 시행하여 우울증 발생 여부를 확인합니다. 평균 4.7년을 추적 조사하였습니다. 결과는 아스피린을 복용한 군과 위약을 복용한 군 사이에 우울증 척도 점수 차이도 없고 우울증 발생률에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대규모의 다기관 다국가 연구이고 연구디자인 역시 나무랄 데 없는 매우 신뢰성이 높은 돈과 노력이 많이 드는 연구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플 때 아스피린을 먹으면 배 아픈 것은 좋아져도 우울한 것은 좋아지지 않는다'입니다.

어느 날 영어 잘하는 사업하는 친구가 저에게 찾아와서 물어 봅니다. 아버님이 건강 검진으로 병원에 가서 머리 MRI 촬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바쁜 의사 선생님이 짧게 설명하였는데 자기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MRI 판독지를 신청해서 받아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판독지가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1. Mild ischemic change in the periventricular white matter, basal ganglia and thalamus probably due to small vessel disease.  2. Negative, MRA.

특히 두번째 negative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Negative 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부정적인, 나쁜 2. 비관적인, 소극적인 3. 부정[반대/거절]하는 4. 음전기의 5. 영[제로] 이하의, 마이너스의 6. 음성의

위의 사전에서 보듯이 네거티브라는 형용사에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의사가 아닌 일반인은 이 판독지의 네거티브라는 단어의 뜻이 저 중에 어떤 것인지 꼭 집어 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판독지에서 네거티브의 의미는 맨 마지막 ‘음성의’라는 뜻입니다. 즉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떤 검사를 하여서 그 검사가 어떤 병을 발견하려면 그 검사 소견이 정상과 아주 유의하게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 검사 소견이 정상과 다르지 않다면 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negative의 의미는 '정상 대조군과 다르지 않다, 튀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아스피린이 노인에서 우울증 예방에 효과가 없다고 밝혀낸 이 연구는 연구 방법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흠잡을 때가 없는 매우 훌륭한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섭섭합니다. 보통 연구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 관심도 받고 명성도 생기지요. 물론 좋은 논문에도 실리구요. 하지만 위의 연구처럼 연구 결과가 두 군사이에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가 되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 아닙니다. 즉 이 연구는 전형적인 네거티브 스터디입니다. 네거티브라는 말은 통계학에서 기인하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싫던 좋던 두 연구 대상의 차이를 분석할 때 p값(p-value)이라는 것을 사용합니다. 통계처리의 신뢰도 값이라고 생각하면 되지요. 연구에서 알고자 하는 결과가 상정한 p값보다 클 때 연구 대상군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하는 연구를 네거티브 스터디(negative study)라고 합니다. 반면 이 값이 충분히 작으면 연구 대상군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포지티브 스터디(positive study)가 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열심히 연구하였는데 결과가 네거티브가 나온다고 하면 연구자 입장에서는 ‘새’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연구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치매 치료제가 있는데 새로운 치매 치료제를 개발할 때는 원칙적으로 새로운 치매 약을 이중맹검을 통하여 신약을 복용하는 환자군과 위약을 복용하는 대조군으로 나누어서 연구를 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방법은 연구를 위하여 지금 치매가 있는 환자에게 검증된 약을 먹이지 않고 위약을 복용시켜야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기존에 효과가 있다고 검증된 약을 먹는 사람과 새로운 약을 먹는 사람을 비교하여 연구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기존의 약보다 통계적으로 효과가 뛰어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통계적으로 기존의 약보다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차이만 나더라도 됩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더라도 이 약이 기존약 정도의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신약으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경우 제약회사는 부작용이나 경제적인 측면 등 다른 여러 이유를 만들어 기존 약물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지요. 이를 비열등시행연구(non inferiority trial)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네거티브 스터디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연구에서는 결과가 p값이 애매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네가티브 스터디라고 하지 않고 그냥 불확정(indeterminate) 혹은 동력부족(underpowered) 연구라고 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음성(cold negative)은 잘 디자인되고, 잘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군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약으로 말하면 두 약 사에 치료 효과의 우위를 증명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구는 실패라고 보면 안됩니다. 네거티브 스터디도 과학이나 임상에서는 양성연구보다도 더 의미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시행되고 발표됨으로써, 다른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 노력, 동물들의 희생 등 필요없는 연구에 사용되지 않게 하며, 임상가나 환자가 필요없는 시술을 하거나 받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2004년 황우석 연구팀은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합니다. 전세계는 이 기적과 같은 연구 결과에 환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여러 논란 끝에 이 논문은 조작으로 결론지어지고 황우석 연구팀은 이후 무대에서 사라져야만 하였습니다. 황우석 팀이 하였던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 세포는 과거부터 매우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시도되어 졌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네거티브 연구이지요. 아무리 힘들여서 열심히 하여도 이런 연구는 학술지에서 잘 받아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이런 연구에 네거티브가 나오면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혹은 학술지에서 받아주지 않고) 스스로 구석에 던져 두고 잊어버리지요. 그런데 만약 다른 연구자가 본인이 하였던 거의 비슷한 그러나 실패하였던 연구를 성공한다면 대부분은 아마도 성공한 이 연구자는 무엇인가 본인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뛰어난 네거티브 스터디가 인정되고 학술지에 실린다면 연구를 성공시켰다고 생각한 황우석 팀도 이 논문을 기고할 때 좀더 신중하게 다시 검토해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네거티브 스터디는 다른 유사 연구의 사기 가능성 방지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 과학계에서 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네거티브 스터디 역시 좋은 연구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포지티브가 성공이라는 방식을 버릴 때도 되었고  그런 면에서 이 연구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족.  파나케이아 여신은 항상 습포제와 물약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를 이용하여 아픈 사람을 치료하였던 것이지요. 습포제는 주로 타박상이나 상처 같은 곳에 염증과 통증을 줄여주었고, 물약은 주로 내상에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 물약은 안되는 사랑도 이루어 주는 마술적인 약으로 변합니다. 1832년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이 물약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받아 들여졌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즉 파나케이아가 만병통치약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불치병인 안되는 사랑도 이루지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스피린이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꾸준히 복용하면 비아그라에 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4)   안되는 사랑도 이루어지게 하는 아스피린, 역시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1. Effect of Aspirin vs Placebo on the Prevention of Depression in Older People: A Randomized Clinical Trial. Berk M, Woods RL, Nelson MR, et al. JAMA Psychiatry. 2020 Jun 3
2. Association of high-sensitivity C-reactive protein with de novo major depression. Pasco JA, Nicholson GC, Williams LJ, et al. Br J Psychiatry. 2010;197(5):372-377.
3. COX-2 inhibitors, aspirin, and other potential anti-inflammatory treatments for psychiatric disorders. Müller N. Front Psychiatry. 2019;10:375
4. Antiplatelet (aspirin) therapy as a new option in the treatment of vasculogenic erectile dysfunction: a prospective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study. Bayraktar Z, Albayrak S. Int Urol Nephrol. 2018 Mar;50(3):411-418.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