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따뜻한 IT기술과 치매
[기고] 따뜻한 IT기술과 치매
  •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 승인 2020.07.29 09: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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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과학기술부 장관 서정욱(徐廷旭)

서언

6.25동란 이후, 우리는 폐허 속에서도 지속적인 산업화를 통해 국내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급격한 발전을 바탕으로 인간의 의식주에 대한 궁핍을 해결하고 급속성장을 완성해가던 7,80년도 시절, 집 한 채의 금액과 맞먹는 소위 백색, 청색전화는 부의 상징이었고, 80년 말 서비스를 시작한 초기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 역시 극소수의 부유한 사람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에 가까운 서비스였다.

하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하여 외산 일색인 전화교환기 시장에서 국산화를 목표로 개발하기 시작한 TDX 시리즈 전전자교환기의 개발 성공으로 인해 유선전화가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잡았으며,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한 CDMA기술을 활용한 이동전화 서비스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하게 뿌리내려, 초기 개발 당시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분야를 속속 만들어 내어 우리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해주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무모함에 가까움을 인지하고 주위의 만류와 걱정을 뒤로 하고 시작했던 이런 사업들을 통해 이제는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향유하여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극복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인간미 가미된 IT기술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개발을 이끌어 온 사람으로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크나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현대사회와 치매

인간에게 있어 생로병사에 대한 문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그 중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치매질환이야 말로 대표적인 인류의 걱정거리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치매인구는 날로 증가하여 환자수가 2050년에는 무려 3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치매는 타 질환과 달리 환자 스스로 증상을 인지하고 돌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는 물론 환자 주위의 가족과 지인에게도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한 안타까운 소식이 드물지 않게 들리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으로도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서, 2018년 한 해 국내 총 치매관리비용은 15조 7000억 원이나 되었으며, 환산하면 1인당 21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 정부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치매국가책임제’라는 슬로건 아래 정권 초기부터 야심 차게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하였으나 충분한 고민 없이 책정한 초년도 치매 관련 예산 1조원 중 체 20% 수준의 집행에 그치는 등 많은 한계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2차년도 이후 국가의 치매 관련 정책들은 중증환자 위주의 간병 체계와 초기 치매검사를 통한 선별 위주로 진행되고 있으나 정작 치매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경계성 또는 경증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들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여서 치매질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모든 질환들이 그렇듯 치매의 경우 초기발견과 대응에 따라 완치가 가능할 수도 있고 진행상태를 현저히 늦출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부모, 가족 중 치매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라게 되는데, 대다수가 치매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족, 의료인에 의한 객관적이고 검증된 내용의 의료상담 부재 등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거나 이로 인한 피해를 호소함을 알 수 있다. 2019년 한 해, 치매와 관련한 카페, 블로그 등 소규모의 모임의 구성원의 수가 전 해에 비해 약 3배 증가한 것이 이를 반증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관 주도의 국가치매센터 중심의 치매관련 사업과는 별개로 각각의 환우와 보호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좀 더 세심하고 체감도 높은 민간 주도의 치매 관련 서비스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지만 이러한 소규모 모임의 경우, 오로지 사이트 운영자 개인의 의지와 노력 위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운영에 필요한 질환 관련 의학적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고 운영의 한계로 인해 서비스 단절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따뜻한 IT기술과 치매

서언에서 언급한 유선전화나 이동전화와 같은 인간미 가미된 IT기술을 통해 현재 우리는 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요즘은 AR, VR 등과 같은 최첨단 기술까지 더해져 단지 차갑게만 느껴질 수도 있는 IT기술을 활용하여 좀 더 쉽고 편리하게 사람 간의 따뜻한 정이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한 대면접촉이 부담스러운 지금, 서로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도 서로의 생각이 전해질 수 있는 수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국내외 뉴스를 통해 치매와 관련한 IT기술 적용 사례를 보면 이러한 ‘따뜻한 IT기술’을 치매에 적용한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국내 모 이동통신회사의 AI탑재제품을 활용한 치매환자 대상 서비스, 로봇과 환자가 서로 말벗이 되어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서비스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치매질환의 환자와 연관된 치료 및 서비스의 개선과 병행하여 환자의 수발로 인해 힘들고 지쳐 있을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나 혜택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치매 환우 관련 카페나 블로그의 경우, 같은 상황에 처한 보호자들 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고 정확하고 빠른 질환 관련 지식을 접하고 다시 용기를 얻음으로써 결국 환자의 병세의 개선에도 일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순기능과 이에 더하여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제공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구성하여 운영한다면 환자 또는 보호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좀 더 효과적인 의료정책 실현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며, 의료 관련 종사자, 질환과 직. 간접으로 관련된 사업체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글자 그대로의 전문 포털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갑게도 수년 전부터 치매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다수의 의료인들과 IT 엔지니어들이 만나 환자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털사이트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야 말로 진정한 ‘따뜻한 IT기술’의 구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결언

역사적으로 인류는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잘 극복하고 한 단계 올라서는 우수성을 보여 왔다. 현 시점에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인간에 의해 정복당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치매도 머지않은 장래에 결국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기까지 풍족하고 다양한 따뜻한 IT기술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 간에 인간미를 나누고 서로 뜻을 모은다면 지금까지 그랬듯 그런 시간은 더욱 빨리 다가올 것이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서정욱 약력

前) 공군사관학교 교수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SK텔레콤 부회장
     제2대 과학기술부 장관

텍사스 A&M 대학교 대학원 전기공학 박사
서울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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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2020-07-29 09:52:48
따듯한 기술과 치매.... 기술이 아픈 치매 환자를 어루만져 주었으면 좋겠네요.

박동석 2020-07-29 10:58:29
기술이 기술 자체로서의 존재보다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더욱 기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글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