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1
[곽용태]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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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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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이야기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어느 세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사망했고, 어머니는 6‧25 전쟁 중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나가야만 하였습니다. 첫째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일하며 가장으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가운데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일 공부 일 공부 그러는 동안 어느덧 세월이 흘러 첫째는 유명 대학교의 식품공학과 첫 여성 학장까지 지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살아서 일까요, 정작 본인은 가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도 첫째에게는 사치였고, 그녀는 그렇게 은퇴하게 됩니다. 둘째에겐 언니가 우상이었습니다. 언니가 밤을 새우며 일하고 공부할 때 둘째도 묵묵히 언니를 따라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둘째 역시 유명대학교 가정대학 주임교수까지 역임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또한 인생을 힘들게 살아서였을까요,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하고 혼자 살던 그녀도 대학에서 은퇴했습니다. 셋째는 큰 언니, 작은 언니가 돌아가며 업어 키웠습니다. 엄마를 그리며 많이도 울면서 자랐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언니들의 짐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열심히 공부했고, 셋째 역시 유수 대학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셋째는 일보다 안정된 가정과 행복을 찾고자 했습니다. 예쁘고 똑똑했던 셋째는 좋은 남편 만나서 세 남매를 낳아 잘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 첫째와 둘째는 같이 살게 됩니다. 좋은 직장과 검소한 성격, 그리고 자식이 없던 관계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두 자매는 그렇게 10여 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녀들이 어느 날 외래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첫째가 83세, 둘째는 79세, 셋째는 70세가 되던 해 어느 겨울날 오후, 빠른 낮을 재촉하며 해가 외래진료실 창 아래로 기울 무렵 그 세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주인공은 첫째, 그녀가 수년 전부터 점차 자신의 기억력이 떨어지고 일상생활 수행능력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1년 전부터는 집안일을 돌봐주는 아줌마가 돈을 훔쳐간다고 의심해서 사람을 자주 바꿉니다. 뿐만 아니라 몇 달 전부터는 예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방문하신다고 하며 심지어는 대화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집안일은 둘째가 거의 다 하고 있으며 둘째는 언니의 증상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된 셋째가 반강제로 언니들을 데리고 저한테 온 것입니다.

첫째는 전형적인 알츠하이머병 초기를 지난 상태입니다. 그런데 보호자인 둘째도 제가 보기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둘째는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숨기고 싶어 합니다. 설득해서 검사해보니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입니다. 둘째는 가사 도우미가 돈을 훔쳐 갔다고 생각하는 언니를 두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래 전 돌아가신 엄마가 자기 집에 방문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첫째가 엄마를 본다는 사실을 걱정하기보단 내심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현재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외래에서 약물 치료를 하기로 하고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다음 해 5월 날이 따듯하고 햇볕이 좋은 어느 날 세 자매가 같이 외래로 저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말하고 이해하는 것이 떨어져 보입니다. 하지만 둘째 얼굴은 오히려 편해 보입니다. 사실 최근 본인도 어머니를 본적이 있고, 가끔 셋이서 대화도 나눈다고 합니다. 셋째는 무척 불안해하고 걱정하지만 정작 두 자매 모두 불편해 보이지 않고 도우미의 도움으로 현재 살고 있는 데도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망상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망상은 그 내용의 특이함이나 괴이함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맞다 여기고 지속하는지, 그리고 어떤 명확한 반론에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입니다. 말은 쉽지만 왜 망상이 생기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고 여러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이중 신경인지 모형이 있는데, 이는 일단 정상적인 믿음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망상의 생기는지를 설명합니다. 사람은 수많은 감각을 통해서 오는 외부 자극과 그 과정을 되먹임(feedback)하면서 이 자극을 해석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전편의 캅그라스 망상과 같이 어떤 특정 뇌 부분이 손상되면 그 부분이 담당하는 부위에 국한된 지각의 왜곡이 생깁니다. 이 지각의 왜곡에 대해서 귀추법이라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평가하거나 교정하는 믿음평가 중추가 손상이 되면 망상이 생긴다는 것이 신경인지 모형의 핵심입니다. 즉, 망상에는 내용을 결정하는 첫 번째 요소와 그것을 걸러내지 못하는 두 번째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순수하고 명백한 신경학적 결손이 있을 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부부,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등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이 고립되어 살면서 한 사람 특히 주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망상적 사고를 한다면 두 번째 사람도 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folie a deux 라고 하며, 세 명이면 folie a trois, folie a famille 등으로 확장해서 부를 수가 있지요. 앞서 세 자매의 경우 주도적인 언니에게 알츠하이머병 치매가 생기고, 이로 인해 생긴 망상과 비슷한 증상을 둘째가 공유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둘째가 첫째와 비슷한 망상이 생긴 것이 첫째가 원인인지 혹은 우연히 같은 증상이 생겼는지를 정확히 구분하긴 어렵지만, 알츠하이머병 치매에 의한 믿음평가 중추가 손상된 상태에서 언니가 보이는 망상의 내용을 둘째가 공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즉 첫 번째 요소는 강력한 옆 사람의 영향력이고, 두 번째 요소는 치매에 의한 믿음평가 중추의 손상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그 범위가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독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군주제가 소멸되고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한 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민주적이라는 제도에는 중우주의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이 공간을 히틀러가 파고들어가 1933년 나치정부를 수립합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이 보였던 행동이나 생각은 제3국가의 시민이 보기에는 망상적 사고입니다. 물론 현대 의학에서는 망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극도로 자제합니다. 왜냐하면 의학은 개인을 치료 하는 학문이기에 어떤 사회나 문화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망상이라는 용어 대신에 망상적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집단적 사고에는 그 내용이 통 말도 안 되고 아무리 고치려 해도 교정 불가한 망상적 특징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 그 망상의 내용은(첫 번째 요소) 히틀러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의 지속적인 선동이고 두 번째 요소는 이것을 평가해야 할 사회적 요소, 즉 전문가나 언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부터 각 방면에서 뛰어난 과학자, 철학자, 언론인 등 세계적인 지성을 배출했던 독일이 이렇게 무너진 것은 사뭇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작년 말부터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대통령 탄핵정국 속에서 극심한 양극단의 장외 투쟁이 있었습니다. 양 집단의 내용을 보면 한 집단의 말과 다른 집단의 말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한 집단이 옳다면 다른 집단은 황당한 내용을 믿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집단들은 경직된 논리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원하는 내용만 믿으려고 하고 반대되는 내용은 전혀 수용하려 하지 않는 태도) 어느 한 집단은 전형적인 망상적 사고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라가 사안마다 국민들 사이에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사안 사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손실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1930년대 독일처럼 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결국 수많은 SNS나 정치인의 의도적 선동은(첫 번째 요소) 어쩔 수가 없겠지만 이를 평가하거나 제어해야 할 지식인, 언론, 전문가(두 번째 요소)들이 과연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었을까 하는 생각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민주주의가 중우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까지 그 짧고도 긴 시간에 벌어진 일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세 자매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했습니다. 즉, 충분히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도우미나 여러 형태의 지원이 가능한 것이지요. 만약 이 두 자매가 보다 젊었다면 이들을 분리하는 것이 우선적인 치료 방안일 수 있겠지만, 이 둘은 일정 부분 망상이나 환시를 공유하면서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부분은 만족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나무속에서 맞닿은 뿌리가 얽혀버린 이 두 사람을 떼어내는 것은 과연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셋째에게 최대한 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잘 보살펴달라고 이야기했고, 처방은 기존 약물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두 자매에게는 잘 사시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날 오후는 햇볕이 누리에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아… 이 집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 생각엔 셋째의 자녀입니다. 왜냐면 이모들의 막대한 재산이 모두 자신에게 상속될 테니까요. 제 생각이 너무 속물적인가요. 이모님 사랑합니다.

<외부에서 기고한 기고문은 당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내용과 관련해서 당 사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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