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2
[곽용태]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2
  • DementiaNews
  • 승인 2017.07.10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망상은 과학적으로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것의 실체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뇌신경과학의 발달로 망상을 치료하기 위한 항정신병 약물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용되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약물들을 개발 중입니다. 우리는 위장약, 감기약, 안약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지만, 왠지 항우울제(나는 우울증 환자야), 항불안제(나는 마음이 심약해), 그리고 항정신병 약물(나는 미쳤나?) 등은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기가 뻘쭘해집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몸에 작용하는 약물 중에 가장 극적인 것은 항정신병 약물입니다.(아 이런 약이 하나 더 있네요. 그 유명한 비아그라).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화학구조를 가진 조그만 물질이 인간의 외부에 대한 감각 인식이나 믿음, 그리고 이에 따른 행동까지 광범위하게 인간에게 영향을 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 차 부를 게요 아버지(아들)"
" 이제 갈까요? (알리샤)"
" 그럼 가야지(내시)"
" 진짜 고마워요(알리샤)"
 ….....       (내시를 바라보는 세사람)......................................  " ", " ", " "
" 왜 그래요 ?, 뭐 죠?(알리샤)"
…........    "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야지 밖에 차가 있는데....(내시)"

그리고는 자막이 올라가며 엔딩.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2002년 하워드론 감독, 러셀크로우 주연의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이 좋아할 많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요. 노벨상 수상자인 존 내시라는 실존하는 천재의 실화이고, 그 천재가 심각한 정신 질환인 조현병(정신분열병)을 앓고 있으며 이것을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아주 미국적이고 흥행 친화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망상, 환각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다양한 명장면이 기억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존 내시가 노벨상을 받은 후 나가면서 아내인 알리샤와 나누는 위의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습니다. 알리샤와 대화 중간에 잠깐 말이 끊기는 순간, 존 내시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세명을 봅니다. 그와 인생을 같이 해왔던, 그러나 지금은 조용히 내시를 멀리서 보며 작별하는 세명(자신이 만들어낸 환각), 그러면서 끝이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던 그를 때로는 흥분 시키고, 위로 해주고, 또 지독히도 그를 괴롭혔던, 그 자신 속의 세명과 이제는 헤어지는 것이겠지요. 저는 주치의가 아니기 때문에 존 내시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영화를 보건데 그리고 일반적인 환자 치료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영화에서 약물을 복용하면 환시나 망상이 사라지고 약을 끊으면 다시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제가 여기서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이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단순한 화학 물질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변화가 오냐는 것이지요.

망상이나 환각을 보이는 환자가 주로 복용하는 화학 물질이 항정신병 약물이며, 이것은 기본적으로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함으로써 뇌가 도파민으로부터 덜 노출시키게 합니다. 그러면 도파민이라는 화학 물질이 정신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도파민이 뇌에서 하는 역할은 보상(reward)과 강화(reinforcement)입니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이야기 하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요. 우리가 좋은 음식, 안락함, 섹스, 그리고 마약과 같은 여러 종류의 일에서 세상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이때 작용하는 화학 물질이 도파민 입니다.  이런 즐거움, 아름다움은 실지로 일어나지 않더라 기대만 해도 도파민 분비가 증가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도파민 분비가 증가되면 이런 즐거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대, 꿈, 행복, 쾌락…. 이게 도파민의 분비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파민은 동기부여 현저성(motivational salience; 정확한 번역이 어렵네요)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1 이것은 어떤 현상에 대해서 의미를 과도하게 두는 것입니다. 즉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의미가 중립적이고, 사무적인 것이 도파민이 증가하면 이것이 어떤 뜨겁고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직장에 출근할 때 동료 여직원이 아침 인사와 함께 웃을 때 지금은 아주 편하게 같이 웃고 일하러 가지만, 도파민이 폭포처럼 흘러나오는 십대 시절에서는 이런 것이 개인적으로 중요한(뜨거운) 의미가 되어 뻘짓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이것이 어떤 즐거움(pleasure, 쾌락?)이라는 동기와 연동되고, 또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면 폭주 기관차처럼 변화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소년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고 하는 데 이 질풍에는 황사가 아닌 도파민이라는 미세먼지가 섞여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도파민은 상황에 맞추어 활성화됩니다. 아무 때나 활성화되지는 않지요. 하지만 어떤 원인에 의하여 상황에 맞지 않게, 아니면 지속적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활성화되면, 아니면 이것이 부적절하게 활성화 되지 않았지만 외부자극이 평상시와 달리 아주 이상하게 보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보통 환자들이 병원에 왔을 때는 상당히 병이 진행되어서 오기 때문에 이 병이 시작될 때 그 첫 느낌을 잘 알기 어렵지만, 간혹 아주 초기에 왔거나 그 증상을 기록한 사람들은 "갑자기 감각이 예민해졌어요", "지나가는 작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져요", "안 들리던 아주 섬세한 음악 소리가 들려요" 때로는 기도하다가 갑자기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거나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종교적인 것은 망상과 관련된 논의에서 제외하지만(과학은 종교를 재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 도파민 분비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좀 이상하기는 하네요.  살다가 보면 보통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지요, 그리고 이런 경험을 사업이나 예술로 승화하는 것도 간혹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부적절하게 지속될 경우입니다. 보통은 본인도 이런 증상이 당황스럽기 때문에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혼자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방치가 됩니다. 그리고 환자는 망상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신의 모순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느 정도 정신적 안정이 되지요. 물론 보호자들은 이때부터 한숨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하게 되면 이 도파민 수용체를 막아 줌으로써 도파민의 영향을 감소시켜 주게 됩니다. 하지만 약을 투여하면 도파민은 즉각적으로 감소하는데 비하여 이런 증상의 호전은 서서히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보듯이 환자는 약을 잘 안 먹으려고 합니다. 왜 일까요? 약을 먹으면 감각이 둔해 집니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이 듭니다. 내시의 경우에는 수학문제를 풀 수가 없지요(예술가에게는 영감이 안 떠오르고, 무당에게는 신기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걸 감추고 안 먹고, 그러면 다시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지요. 중요한 것은 항정신병 약물이 망상과 환각 등에 분명히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환자의 상태,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언제든지 현실속에서 재 등장할 수가 있지요. 하지만 항정신병 약물은 좀더 현실속에 있는 시간을 길게 해주고 정서적인 안정을 통하여 이를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아마 이영화에서 암시하듯 내시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들을 떨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2015년 내시는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이제는 편안 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서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증상이 치매, 특히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도 많이 관찰됩니다. 항정신병 약물 복용 후 피해 망상이 좋아진 알츠하이머병 치매 할머니에게 괴롭히던 사람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할머니가 “그건 헛것이야”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할머니는 “어제 내 방에 와서 할머니 그 동안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당분간 먼 지방으로 전근 가서 이제는 보기 힘들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하시는 할머니 얼굴에서 언젠가는 또 올 거라는 불안(기대감?)이 느껴집니다. 할머니에게는 이미 머리속에 새겨진 지금까지의 사건들은 그냥 사실이겠지요.

저는 이렇게 작고 단순한 화학물질이 인간의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너무 놀랍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마시고, 먹고 하는 일상의 작은 과정들 속에서 단순하고 작은 수 많은 종류의 물질 들이 제 몸속에 들락날락 하는데 이것들이 제 정신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불가에서 행하는 발우공양(鉢盂供養)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발우란 스님들의 그릇을 말하는데 국그릇, 밥그릇, 청수그릇, 찬그릇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안으로 들어갑니다. 행자가 청수물을 돌리면 그릇을 헹구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하고 식사가 끝날 때도 물로 헹구어 남은 음식을 모두 먹은 후 청수물로 그릇을 헹구어 정리합니다. 여기에는 자기의 그릇은 자기만이 쓸 수 있도록 하는 청결함과 모든 이가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다는 평등사상도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쌀알 하나도 감사히 여기고 그것을 지어낸 이의 공덕을 헤아려 버림이 없도록 합니다. 즉 불가에서는 먹는다는 것이 단순한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를 부처라고 생각하고 먹는 과정 자체 하나하나를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경건한 의식입니다.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작고 단순한 화학물질이 인간의 정신과 영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제 몸 속에 들어가는 밥 한톨에도 겸손하게 예를 다하려고 합니다.  지금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결코 작지 않고, 미천하지 않으며, 가볍지 않은 부처님 들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Kapur S, Mizrahi R, Li M. From dopamine to salience to psychosis--linking biology, pharmacology and phenomenology of psychosis. Schizophr Res. 2005 Nov 1;79(1):59-6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