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치매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칼럼] 치매라는 용어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 양현덕 발행인
  • 승인 2020.10.08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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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기 전부터, 치매라는 질병은 오랫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단지 이에 대한 정의나 명칭이 없었을 뿐이다. 특히 기원전 2,000년경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치매’에 해당하는 ‘디멘시아(dementia)’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600년경이다. 세비야 대주교였던 성 이시도르(Saint Isidore, Archbishop of Seville, 560~636)는 그의 책 ‘어원학(Etymologies)’에서 ‘dementia’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Dementia’라는 단어가 의학용어로 채택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였다. 1797년도에 프랑스의 의사 필립 피넬(Philippe Pinel, 1745~1826)이 ‘dementia’를 의학용어로 처음 채택했다.

이는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박탈 또는 상실’을 뜻하는 접두사 ‘de’와 ‘정신’을 의미하는 어근 ‘ment’, 그리고 ‘상태’를 가리키는 접미사 ‘ia’의 합성어다. 해석하자면 ‘정신이 부재한 상태(out of mind)’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치매(癡呆 또는 痴呆)’라는 용어는 일본이 서양의 학문을 한창 받아들이던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정신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쿠레 슈우조(呉 秀三)가 ‘dementia’라는 라틴어 의학용어의 어원을 반영하여 ‘癡呆’라는 한자로 옮긴 것에서 유래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치매’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전해진 ‘癡呆’를 우리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같은 한자라 하더라도 나라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른 경우가 많은 데, ‘癡呆’를 우리는 ‘치매’라고 읽지만, 일본에서는 ‘치호우(ちほう)’ 라고 읽으며, 중국에서는 ‘치따이(chīdāi)’로 발음한다.

‘癡呆’에서 癡는 ‘어리석을/미련할 치’이며 呆는 ‘어리석을/미련할 매’로,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癡는 ‘병들어 기낼 녁(疒)’과 ‘의심할/헛갈릴 의(疑)’로 이뤄져 있다. 疒은 병들어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疑는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과 글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을 헤매는 노인 또는 의심하고 있는 노인을 표현하고 있다.

疑(의)의 갑골문(출처: http://qiyuan.chaziwang.com/etymology-18895.html)

疒과 疑가 모여 만들어진 癡는 지남력과 공간기억력이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 증상과 현상과 의심이 지나쳐 병적 망상을 보이는 치매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痴는 癡를 줄여 쓴 것으로, 병들어 기댈 녁(疒)과 ‘알 지(知)’로 이루어져 ‘지능이 병들어 병상에 누워있다'는 뜻을 지닌다.

呆는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 또는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로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행했음을 의미한다.

치매(癡呆)가 어리석고 미련함을 뜻하는 단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치매 환자를 비하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해소하고자 10여 년 전부터 ‘치매’를 다른 용어로 대체·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치매(癡呆)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癡·痴·呆가 만들어진 배경과 글자 구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매 환자에서 보이는 인지장애, 길 찾기 장애 또는 배회, 편집망상, 요실금 등의 증상을 지혜롭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치매’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대만, 일본, 홍콩, 중국에서는 치매(癡呆)·치매증(癡呆症)을 ‘실지증(失智症)’, ‘인지증(認知症)’, ‘뇌퇴화증(腦退化症)’ 등으로 병명을 개정했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치매(癡呆)라는 용어를 사용해오던 한자문화권 국가들이 다른 병명으로 명칭을 변경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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