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5
[곽용태] 알츠하이머병에서 행동장애 증상군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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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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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늙으면 죽어야지, 그런데 말입니다.

노인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늙으면 죽어야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분석하면,  1. 늙으면  2. 죽어야지 로 분석할 수가 있는데, 늙으면 이란 말은 (1)가정법으로 지금은 아니지만 상황이 되면 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2)가정법이 아닌 이미 난 늙었어 라는 현 상황에 대한 판단, 한탄 내지는 자조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상태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죽어야지 라는 말은 (1) 죽어야 한다는 당위성 내지는 의지 (2) 죽기 싫으니 누가 나 좀 돌보아줘  (3) 내가 스스로 죽을 수는 없으니 이세상 안 보이는 곳으로 간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 하나 내 보겠습니다. " 늙으면 죽어야지..."  이 뜻은 다음 중 무엇일가요?

1. 지금은 아니지만 늙으면 나중에 구차하게 살지 말고 꼭 죽어 야지(난 전혀 안 늙었다, 나보다 늙은 사람은 빨리 죽어야 한다. 나는 절대 안 죽고 영원히 건강하게 살거야. 지금은 아니라니까……아자, 아자)

2. 지금은 아니고 늙으면 힘드니까 나중에 잘 돌보아줘(아들아 용돈 주는 것 잊지 말고, 대통령은 노령연금 꼭 챙겨주고)

3. 지금은 아니지만 늙으면 난 혼자 어디서 처박혀 살 테니까 나 찾지 마(대신에 유산이나 이런 거 없다, 각자 살자)

4. 난 이미 늙고 힘들고 병들었고 아파 죽겠다 (살기 싫다. 빨리 죽어야겠다. 잡지마라)

5. 나 너무 힘들다. 제발 나 좀 돌 봐줘(나 죽기 싫으니까 나 좀 신경 써줘라, 용돈도 좀 많이 주고, 난 120살까지 살아야 되)

6. 이미 시간이 다가왔고, 이제는 떠날 때이니 그냥 이대로 나를 놓아주어라(이제 왔던 데로 돌아간다. 잘 있어라 잡것들아.... 세상과는 떨어진다, 조상 혹은 하나님과 같이 살겠다)

말을 좀 거칠게 써 봤는데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예문에 없는 다른 상황도  있겠지요.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 말이 무슨 의미일까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1902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마차를 탄 카를라(Karla)는 착잡한 마음으로 자신의 배를 만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는 남편과 오래된 불화, 낯선 사람과의 하루 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생명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였습니다.  고향에서는 살 수가 없게 된 그녀는 친구가 있는 이 도시로 황급히 도피 하였고 그해 6월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재혼을 하였고 그 아이는 재혼한 남편의 호적에 올렸습니다. 물론 이 아이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아이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평생 자신이 누구인가(ego, 자아)에 대한 의문과 방황을 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지금 이야기할 에릭 에릭스(Erik Erickson) 입니다.

의과대학으로 진학하라는 양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에릭 에릭슨은  예술대학으로 입학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 그는 학업 대신 유럽의 여러 나라를 떠돌며 방황합니다. 그는 오랜 방황 끝에 비엔나에서 우연히 프로이드 딸인 안나 프로이드(Anna Freud)를 만나게 됩니다. 인생이 전환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릭슨은 안나의 권유와 도움으로 비엔나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게 되고 부인이자 연구 동료인 조안(Joan Erikson)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유럽은 독일 나치의 팽창으로 급속히 정세가 불안해졌고 유태인의 피를 가진 에릭슨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안나의 도움으로 직장도 구하고 일생일대의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에릭슨은 뼛속까지 프라이드의 제자 이었지만 프로이드가 주로 성인의 개인적(성적)갈등에만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하여 그는 아이들의 자아 성장에 개인적 욕망이 아닌 사회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 하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프로이드는 성인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아동이나 노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성인에서 생기는 문제를 아는 방법으로서 일부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하여 중년 이후 노령기에 대해서 프로이드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정신분석학적으로는 이 연령대는 자아가 굳어져 치료적으로 해줄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였지요). 처음 에릭슨이 연구할 때는 프로이드의 이론을 단순히 보완하는 정도의 연구였습니다. 하지만 에릭슨의 아동기 자아 발달 과정 연구가 깊어지면서  자아 발달이 아동에서만 있고 아동기에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발달이 끝난 성인기 이후에도 지속적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연구 초기에는 에릭슨은 자아란 성인기까지 주요 발달이 끝나고 그 이후에는 큰 변화는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서 자아는 평생 성장해 간다는 개념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에릭슨은 사람에 있어 자아 발달은  8개의 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하였으며 65세부터 시작하는 ego integrity vs despair(자아통정 대 절망감)를 마지막으로 자아 발달 과정이 끝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Life cycle completed, 1987).1 하지만 문제는 에릭슨이 상당히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치매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93세 사망). 즉 65세에서 끝날 것 같았던 인생이 상당히 많은 시간을 그에게 보너스로 준 것이지요. 지금까지 에릭과 조안에릭슨의 타인을 대상으로 한 객관적인 연구와(쉽게 말하면 남의 이야기) 달리 실지로 자신들이 80세가 넘어서 직접 경험해 보니 65세 이상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또 이전의 정형화된 8단계로서는 인간 전체의 삶을 조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실존적인 경험 후 이들은 인생은 8단계로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결국 에릭슨이 죽은 후 그의 아내는 1997년 “Life cycle completed” extended version 에 9번째 단계를 추가하고 그녀도 그해 사망하게 됩니다(말년에 에릭 에릭슨이 치매와 암으로 거의 활동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아 마지막 9번째 단계이론은 조안에릭슨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이 80세 이상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해결해야 하는 hope vs despair(희망 대 절망) 입니다. 에릭슨은 9번째 단계도 이전의 발달 단계에 맞춘 전형화된 도식을 제시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이전의 갈등 속에서 한 단계씩 위로 성장해가는 도식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에릭이나 조안에릭슨이 생각한 것은 갈등과 이를 통한 자아의 상승 보다는 인생 마지막에 맞이해야 하는 노년초월(gerotranscendence)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였던 그들도 인생 말년에 실존론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인 고통, 불안, 우울을 겪으면서 그런 삶의 마지막 정점, 절벽 앞에선 자신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후 이들이 그 정점 위에서 본 것은 갈등 속에서 위로 올라가는 직선적이고 발달적이라는 단계가 아니라 그들이 평생 동안 연구하였던 그 발달 단계를 역순으로 진행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에릭 에릭슨이던 조안 에릭슨이던 삶의 마지만 단계에서 해야 하는 일은 갓 태어난 아이가 넘어가야 했던 trust vs mistrust (신뢰감대 불신감) 이었습니다. 

이 대가들의 일생을 바라보며 또 최근의 많은 연구들을 통하여 우리의 인지 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나 정서 역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젊은 사람들 위주로 생각하고 병을 만들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큰 인생을 놓고 본다면 가끔 보이는 우리 할아버지의 “늙으면 죽어야지” 를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즉 노인에 있어서는 정서적인 disengagement(분리) 혹은 gerotrancedence(노년초월) 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런 복잡한 심리 정서적 노화를 알지 못하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틀 안에 밀어 넣으면, 우울증 검사 때 왜 행동과 말이 노인에게는 일치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인생을 거꾸로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  스콧피츠제럴드 단편집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고 끝내겠습니다(2008년 작 “벤자민버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로 영화화 된 바가 있습니다, 제가 번역하면 오해할 수 있어 구글 번역하였고 아주 약간만 수정하였습니다, 항의 사절입니다).
 Then it was all dark, and his white crib and the dim faces that moved above him, and the warm sweet aroma of the milk, faded out altogether from his mind.( 그때 그것은 모두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움직이는 그의 하얀 침대와 희미한 얼굴들, 그리고 우유의 따뜻한 달콤한 향기는 그의 생각에서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참고문헌
1. The Life Cycle Completed(with J.M. Erikson,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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